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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정의란 무엇인가

사회적 갈망 + 파워 마케팅, 신화를 낳다

김유영,이문규 | 71호 (2010년 12월 Issue 2)
 
 
 
 
2010년 대한민국은 공정 사회 열풍에 휩싸였다. 이 열풍의 기폭제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쓴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가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인문 서적으로서는 8년 만에 처음으로 1위에 오르면서 서점가를 휩쓸었다. 그런데 <정의란 무엇인가>의 열풍이 여기서 그쳤다면, 이 책은 그저 수많은 베스트셀러 중 한 권에 그쳤을 것이다. 이 책은 각종 정치나 사회 이슈와 결부돼 신문의 문화 면이 아닌 사회면, 정치면, 오피니언면에 훨씬 더 많이 언급됐다. 사회 전반적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신드롬을 낳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름 휴가 도서 목록에 이 책을 포함시켰다고 했다. 이후 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국정 기조로 제시했다. 때마침 김태호 총리 후보의 낙마,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부적절한 채용 등의 사건이 잇따랐다. 공정함과 정의로움이라는 화두는 마른 장작에 불이 붙듯 번져 나갔다. 언론에서는 사회 이슈들을 분석하거나 논평하면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함께 거론했다.
 
김영사에 따르면 <정의란 무엇인가>는 5월 24일 출간 이후 61만 권(출고 기준)이 팔렸다. 대부분의 인문 서적 판매가 2000권을 넘기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특히 이 책은 12주간 1위(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주간 집계 기준, 누적)를 달렸다. 인문도서로서는 8년 만에 종합 1위를 차지했다. 2000년 대에 인문 도서가 1위를 차지한 것은 2000년 <노자와 21세기 2(김용옥 저)>, 2002년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1(신경림 저)> 두 차례뿐이다. 더욱이 이들 책은 4주 연속 1위를 하는 데 그쳤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이처럼 출판업계의 전반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른 것은 공정사회에 대한 열망이라는 시대 정신을 잘 읽어내고, 하버드대의 강연을 바탕으로 집필된 책이라는 점을 적극 부각시켰으며 책의 라이프 사이클 별로 독자들의 관심을 단계적으로 환기 시킨 노력이 주효했다. 서영준 김영사 편집부장과 장재경 홍보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역발상의 승부수에 하버드의 브랜드 파워
김영사가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글판을 기획하게 된 것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영사의 해외 에이전시인 에릭양 측에서 전화가 왔다. 마이클 샌델이라는 하버드대 교수가 학교에서 정의론을 강의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에 들어갔는데, 미리 계약할 의향이 있겠느냐고 묻는 전화였다. 물론 책이 나오기도 전이어서 책을 보지도 않고 계약하기란 쉽지 않았다. 또 정의라는 소재가 딱딱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주저했다.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은 주로 <시크릿> 등과 같은 자기 계발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서를 밀어붙이기가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영사는 대학 강연이어도 정의라는 주제는 사회가 성숙기에 접어들게 되면 일반인들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볼 만한 주제라고 예상했다. 더욱이 하버드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한국 사회에서 남다르다는 점도 감안했다. 실제로 하버드 의대생의 이야기인 <닥터스>나 홍정욱 의원의 하버드 입학 과정 등을 다룬 <7막 7장>은 하버드 후광 효과에 힘입어 국내에서 장기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었다. 이런 판단에 따라 김영사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이후 마이클 샌델은 집필을 마쳐 2009년 말 김영사는라는 원본을 받아볼 수 있었다.
 
지방선거=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
김영사는 우선 국내에 출간하는 시기를 정해야 했다. 달력을 펼쳤다. 이듬해 시장은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남아공 월드컵, 광저우 아시안게임 등이 잇따랐다. 굵직한 스포츠 행사가 있으면 출판 시장은 침체된다. 말 그대로 스포츠 경기를 보느라 책을 상대적으로 멀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방선거도 있었다. 역시 좋지 않은 징조였다. 선거철에도 사람들의 관심은 책에서 멀어져 출판 시장도 약간의 타격을 받는다.
 
하지만 김영사는 이를 ‘역이용’하기로 했다. 전체 출판 시장의 규모는 줄어도, 마케팅을 잘 하면 순위를 올려 독자들에게 제대로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같은 1000권이 팔리더라도 호황기 때는 50위에 그칠 수 있지만 불황기에는 5위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초기에 마케팅을 잘해서 높은 순위로 주목을 받으면 여세를 몰아 승부수를 띄울 수 있다.
 
특히 선거 이후 승자와 패자의 명암이 갈리면서 정의라는 주제가 많이 거론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정의라는 주제는 주택 복지 보건 환경 등 사회 전반과 결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다. 선거 결과가 어떻든 간에 선거 기간에 다양한 정치적 논란이 일 것이고, 김영사의 책이 그 잣대를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했다. 이렇게 해서 김영사는 책을 출간할 ‘D데이’를 6·2지방선거 직전으로 잡았다. 실제로 이 책은 각종 신문과 방송의 선거 결과에 대해 논평하는 기사에서 많이 인용됐고, 선거 직후 베스트셀러 2,3위를 달리다가 한 달 뒤인 7월부터는 1위가 됐다.
 
마케팅 콘셉트: 하버드의 브랜드 파워와 명교수의 열강
책의 마케팅 콘셉트를 잡는 것도 문제였다. 원서를 그대로 한국 시장에 내놓는 게 아니라, 한글판으로 바꿔서 한국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케팅 콘셉트 및 전략도 한국화해야 했다. 표지나 제목 결정, 마케팅 방법도 이에 맞춰서 바꿔야 했다.
김영사는 동양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하버드라는 브랜드 파워가 유럽이나 미국에서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염두에 뒀다. 하버드라는 브랜드 파워를 강조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마이클 샌델이 하버드대에서 펼치는 ‘Justice’라는 강의는 매년 1000여 명의 하버드대 학생들이 수강하는 명강의로 꼽힌다.
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원제(JUSTICE: What’s the right things to do?)도 하버드대 강의라는 콘셉트에 맞췄다. 처음에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 이외에도 ‘저스티스’가 유력 후보였다. 원서 역시 ‘JUSTICE’를 크게 부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영사는 한글 제목을 원제보다도 더욱 딱딱한 느낌이 나게 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의 제목이라는 인상을 풍기기 위해서였다. 보도자료에도 ‘하버드대 학생들은 정의를 어떻게 배우는가? 하버드가 전 세계에 최고의 강의실을 개방한다’라는 문구를 큼지막하게 써서 하버드대 강의라는 콘셉트를 부각시켰다.
 
 
책 표지도 마찬가지다.(왼쪽 사진 참조) 원서는 앞 표지 중간에 ‘JUSTICE’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써 있고 표지 바탕은 흰색으로 별다른 문양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디자인이 심플하고 깔끔한 전형적인 인문서적이었다. 하지만 한글판 표지는 이와 다르게 했다. 앞 표지, 뒤 표지 전면에 샌델 교수가 하버드대에서 강의를 하는 모습을 그대로 실었다. 사진 속 강의실은 거대하고 웅장한 계단식 원형 극장과 비슷했고, 여기에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다. 또 양복을 입은 샌델교수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강의하는 뒷모습이 보인다. 국내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분위기로 독자들을 압도하기 위한 것이다.
 
또 책 뒷표지에 실리는 추천사 4개 중 2개는 하버드대 학생들에게 맡겼다. 커스 밀러 하버드대 정치철학과 학생은 “이런 강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정신 없이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거수 투표를 하고 도덕적 딜레마를 깊이 고민하게 하는 수업은 흔치 않다. 학생들은 열정적인 토론의 주인으로 참여한다”고 했다. 에밀리 라일 하버드대 정치철학과 학생은 “샌델 교수의 강의실에 앉아 있으면 마치 수천 년 전 그리스의 아테네 학당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교수님은 나에게 스무 살 풋내기도 위대한 철학자와 동등하게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이 책을 치켜 세웠다.
 
김영사는 책 표지에 나온 강연 사진을 서점 출구앞 대형 광고판에 그대로 실었다. 한국 독자들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으면서 하버드대 강의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인상을 풍기기 위해서 였다.
 
표지 디자인, 역발상으로 차별화 전략
김영사는 이 책의 표지 디자인을 다른 인문서와 차별화했다. 주황색을 썼고 표지 글씨도 많다.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보면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 표지 색깔 역시 앞 표지의 전면을 강의 사진으로 싣되, JUSTICE와 Michael Sandel은 영어로 주황색으로 했다. 대개의 인문 사회 서적은 무채색의 차분한 톤으로 디자인했기 때문에 똑같이 진열돼도 눈에 띄게 했다. 김영사는 ‘촌스러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실용적인 면을 택했다고 설명한다. 이로 인해 인문학 서적이라기보다 경영 서적처럼 보인다는 평가도 받았다.
 
책 출간 후 단계별 마케팅 전략
이런 과정을 거쳐 <정의란 무엇인가>는 6·2 지방선거 9일 전인 5월 24일 출간됐다. 이제부터 ‘본 게임’ 시작이었다. 김영사는 이 책의 라이프사이클 별 전략을 달리해서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했다.
 
 
오피니언 리더 공략
책을 출간하자마자는 오피니언 리더를 집중 공략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당시) 등의 정치인, 연예인 김제동 씨,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두루두루 책을 보냈다. 특히 정의라는 주제는 정치 성향을 뛰어 넘어 누구나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해 정치적 성향을 구분하지 않고 보냈다. 입소문을 기대한 전략이었는데, 실제로 이들은 공식 석상이나 지면, 방송 등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거론하면서 시국을 논했다. 지방 선거에서 여당이 예상 외로 참패하자 <정의란 무엇인가>를 언급하면서 ‘지금의 정치가 정의로운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붙었다.
 
김영사는 이와 함께 온라인 서점인 YES24와 함께 출간 기념 대담회를 마련했다. 금태섭 변호사와 우석훈 교수 등을 초청해 ‘한국의 지식인, 정의를 논하다’라는 제목의 대담회를 마련하고 독자를 초청했다. 책 홍보 효과도 있었지만, 정의에 대한 토론 저변을 넓히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강연 동영상으로 통합적인 경험 제공
김영사는 대형 서점과 대학가 서점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판매대 옆에 TV를 비치하고 샌델 교수의 강연 장면을 실은 동영상을 그대로 내보냈다.특히 <정의란 무엇인가> 3쇄를 찍을 때부터는 동영상 강연을 실은 DVD를 책 뒤에 첨부했다. 하버드대 수업을 30분으로 압축해 제작한 것이다. 다른 나라에 출간된 책에는 이런 방법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김영사는 국내에서 동영상을 함께 책에 넣으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샌델 교수를 설득했다.
 
이는 마이클 샌델의 수업이 한 편의 토크쇼와 같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마이클 샌델은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도덕적인 딜레마에 대해 쉴 새 없이 알쏭달쏭하면서도 도발적인 질문 공세를 퍼부으면서 학생들과 핑퐁식 문답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이클 샌델은 방한해서 강연할 때에도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무선 마이크를 요청했고, 리허설에 수시간 공을 들였을 정도다. 강연이긴 강연이되 청중들이 몰입할 수 있게 ‘쇼’와 같은 성격을 가미한 것. 한국 독자들이 실제 강연 현장에는 없지만, 직접 수업을 듣는 것처럼 몰입도를 높여주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김영사는 이를 통해 하버드대 실제 수업이라는 마케팅 콘셉트를 살릴 수 있었다. 또 비슷한 주제여도 강연은 또 다른 형태의 감동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도덕적 사고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대화를 통해 노력해서 얻는 것이다. 자기 성찰만으로는 정의의 의미나 최선의 삶의 방식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마이클 샌델의 생각과도 궤를 같이 했다. 혼자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문답식 강연을 통해 사고의 폭을 확장시키도록 유도한 것이다.
 
샌델 교수의 방한을 이슈화
김영사는 책을 출간할 때부터 마이클 샌델 교수를 한국에 초청하고 싶어했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은 6·2 지방 선거 이후 책에 대한 뜨거운 관심에 힘입어 아산정책연구원의 초청으로 방한하기로 했다.일정은 8월 19일(기자간담회 및 비공개 강연), 20일(공개 강연)로 잡혔다.
 

 

 

 김영사는 온라인 카페를 통해 강연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접수했다. 처음에는 주제 특성상 사람이 많이 올까 싶어서 직원들 사이에서는 농담 삼아 ‘마이클 잭슨도 아니고 마이클 샌델인데 1000명이면 많이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1000명 규모의 코엑스 강연장을 예약했다. 하지만 접수 결과 수천 명이 몰렸다. 부랴부랴 5000석 규모의 경희대 평화의 전당으로 강연 장소를 바꿨다. 신청 사연도 각양각색이었다. 가족 단위의 신청자들도 적지 않았고, 제주도에서 서울에 숙소를 미리 예약해놓았으니 반드시 강연회에 가고 싶다는 사연도 있었다.
 
마이클 샌델의 방한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의 인터뷰 및 강연 내용이 거의 대부분의 언론에 실리면서 다시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마이클 샌델의 방한 전인 7월 넷째 주와 8월 첫째 주 및 둘째 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3권>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내줘야 했다. 휴가 철에 소설책이 잘 팔리는데다가 기존 마케팅 노력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이 방한한 8월 셋째 주부터 <정의란 무엇인가>는 다시 1위 자리를 탈환해 이후로도 10월 둘째 주까지 8주 연속으로 1위 자리를 수성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강연은 한국 사회 전반의 영어 학습 열풍과도 맞물리면서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영어 번역을 자원 봉사하는 숙명여대 학생들은 강연 내용을 번역해서 공유하겠다고 했고, 경기 파주의 한 어학원에서는 원서와 번역서를 병행해서 읽었다면서 전세 버스를 빌려서 왔다. 영어를 공부하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 역시 부모와 함께 강의에 와서 명사의 영어 강연을 경험하고 갔다.
 
책에 대한 끊임 없는 관심 환기
아낌없는 마케팅 투자도 큰 효과를 봤다. 김영사 관계자는 “언론사와 출판사가 행복하게 결합했던 경우다. 독자들이 도움될 만한 정보를 적시에 주는 광고를 실었고, 이는 단순한 상품 광고와는 달랐다”고 강조했다. 통상 출판사는 책의 마케팅 비용은 매출액의 10%를 잡는다. <정의란 무엇인가>도 이 비율을 지켰지만 매출액이 다른 책보다 컸기 때문에 신문 광고를 더 많이 해서 독자들의 관심을 환기시켰고, 광고가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특히, 책 광고는 대개 출판 이후 2∼3주간 하는데, 이 책은 6월 말부터 10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실시했다.
 
이와 함께 김영사는 주기적으로 특정 주제를 잡아서 꾸준히 책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8년 만에 인문서가 1위했다’(7월), ‘샌델 교수가 방한할 계획이다’(7월), ‘25만부가 단기간에 팔렸다’(7월), ‘강연에 4500여 명이 참석했다’(8월) 등의 보도자료를 배포해서 책 자체를 이슈화했다.
 
특히 9, 10월에는 하버드대에 초점을 둔 마케팅을 펼쳤다. 때마침 하버드대 교수들이 펴낸 번역서가 한국에서 반응이 좋았다. 하버드대 학생들과 석학들의 인터뷰를 실은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돌배게)>, <그들이 위험하다: 왜 하버드는 디지털 세대를 걱정하는가(갤리온)>, 하버드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엮은 <하버드 대학의 학자들(민음사)> 등이었다. 김영사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들 책과 함께 넣어서 홍보했다. 그 결과 ‘출판계 하버드 마케팅 바람’ 등의 기사 등이 나오면서 책에 대한 관심을 과거와 다른 방법으로 환기시킬 수 있었다.
 
한글판의 이런 마케팅 전략은 효과를 봤다. 이 책은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김영사 관계자는 “아시아권에서의 하버드대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은데다가, 정치 사회 풍토상 투명하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거나 일부 분야에서 불공정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아시아권에서 호응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한국판이 일본어판보다 성과가 더 좋았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60만 부 팔려나갔다. 한국과 부수가 비슷하지만, 일본 인구가 한국 인구의 2배에 이르고 출판 시장이 훨씬 큰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실적이 월등하게 더 좋은 셈이다.
 
성공 요인 분석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의란 무엇인가>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성공을 거뒀다.
첫째, <정의란 무엇인가>는 소비자 욕구의 정중앙, 즉 ‘스윗 스팟(sweet spot)’을 맞췄다. 최근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기가 싫어하는 교사에 대해 비난과 악플을 적어놓은 사실이 학교에 알려져 정학을 당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싫어하는 교사에 대해 글을 올린 사람이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학생의 페이스북에까지 관여한 학교가 잘못한 것인가? 학생이 교장을 상대로 고소를 했다니 법정에서 가려질 일이다. 이렇게 우리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를 살아 나아가면서 종종 도덕적 도전에 접하게 된다. 무엇이 옳은 일이고 무엇이 그른 일인가? 현대인들은 정의에 목말라 있다.
 
이 책은 우리는 우리가 지불한 가격에 맞게 서비스를 제공 받고 있는지, 우리는 우리가 낸 세금에 맞게 국가로부터 대우를 받고 있는지, 우리가 뽑은 정치인들은 나라를 정의롭게 가꿔나가고 있는지 등 세속적인 질문부터 좀더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윤리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사안에 대해 판단의 기준을 공리, 자유, 미덕, 공동선에 비추어 설명했다. 다만 마이클 샌델은 정의에 대한 명확한 해답과 사안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지는 않는다.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정치적 결정에 대해 어떤 시각과 본질을 갖고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거울을 제공하고 있다.
 
둘째, 구전 마케팅(word-of-mouth)의 성공이다. 이 책은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기에 매우 좋은 화두를 던져준다. 마이클 샌델은 도덕적 사고가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대화를 통해 노력해서 얻는 것이라고 믿는다. 자기 성찰만으로는 정의의 의미나 최선의 삶의 방식을 발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정의와 공정함에 대한 이슈에 목말라 했던 많은 사람들의 구전과 토론이 이 책을 널리 알리고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신문에 기사나 칼럼으로 소개되고, 정치인이 각종 공식석상에서 언급했다. 비유를 하자면, 사회에서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제품 시장에서의 트렌드 세터(trend-setter)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들의 입소문과 김영사의 꾸준한 광고가 시너지를 일으켜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다. 특히 권위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언급으로 책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셋째, 다양한 사용자 경험(user-experience)을 제공했다. 김영사는 책을 홍보할 때 책에 담긴 콘텐츠를 책이라는 단일 플랫폼이 아닌 동영상, 강연 등의 멀티 플랫폼을 활용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의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대 강연 영상을 틀어줬으며 국내 지식인을 초청한 대담회를 열었고, 마이클 샌델이 한국에 왔을 때에는 독자들을 초청해서 직접 강연을 들을 수 있게 했다. 책에 담긴 콘텐츠는 일관되지만, 이를 다양한 경로와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연은 언론과 블로그 등 개인 사이트에 소개돼 부수적 홍보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또 방한 강연 이후 잠재적인 고객까지 끌어들여서 책 판매량을 추가로 늘릴 수 있었다.
 
넷째, 하버드라는 브랜드를 레버리지 삼아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했다. 아시아권에서 형성된 하버드대에 대한 독특한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책의 표지, 홍보, 제목 등을 핵심 마케팅 콘셉트인 ‘하버드대의 전설적인 강연’과 정렬(alignment)시켰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현경(23·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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