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다음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자. 당신은 지금 홀로 편안한 자세로 욕조에 앉아 잡지를 읽고 있다. 은은한 촛불과 잔잔한 음악, 라벤더 아로마까지 곁들여진 안락한 시간이다. 이 때 청룡열차나 바이킹 등으로 가득한 놀이공원 광고를 발견한 당신이 이 곳에 방문해야겠다고 결심할 확률은 얼마일까? 만약 당신이 평소 놀이기구와 같이 스릴을 즐길 수 있는 모험을 무척이나 즐기는 타입이 아니라면 그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반면 동일한 상황에서 잡지를 읽다가 안락하고 편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파 광고를 접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놀이공원을 방문해야겠다고 결심할 확률보다는 훨씬 높을 것이다. 욕조처럼 평안하고 안락한 장소에 있다면 흥미진진함과 스릴을 제공하는 상품보다 평안함과 안락함을 제공하는 상품에 더 큰 매력을 느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감정이 제품 평가에 미치는 영향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때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분이 좋은 원인과 평가를 내리는 대상 간에 아무런 관련성이 없어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인지적인 활동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용어로 묘사한다. 그 결과, 인간은 인위적으로 일정량 이상의 인지적 자원을 투입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에 대한 출처나 원인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사람들은 이러한 이유로 자신이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이 평가대상과는 전혀 관계없을 때도 이로부터 기인한다고 잘못 추론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를 잘못된 귀인 오류(Misattribution Error)라 부른다. 예를 들어, 날씨가 궂은 날보다 날씨가 좋은 날 측정한 삶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더 높게 나타난다. 즉 날씨가 좋으면 만사가 만족스럽고 날씨가 흐리면 만사가 불만스러워진다. 이는 사람들이 기분 좋다는 사실을 일종의 평가 단서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의 역할을 ‘정보로서의 감정(Affect-as-Information)’이라 부른다. 기분이 좋다는 정보를 이용해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다는 잘못된 추론을 하는 셈이다. 실제로 기분 좋은 이유는 날씨에 기인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귀인 오류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사람들의 인지적 노력을 조절하기 위한 특별한 장치가 없는 한 귀인 오류를 쉽게 고치기는 어렵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과거 프로이트 심리학에서부터 최근 신경과학의 발달로 인해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무의식 연구의 결과들과도 맥을 같이 한다. 우리는 의식적인 사고가 대부분의 평가와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 밖에 떠 있는 빙산은 전체의 일각이듯 인간의 의식은 인간 사고 작용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무의식은 관찰하고 인지하기 어렵지만 인간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앞서 설명한 감정의 역할도 비슷하다.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부지불식간 우리의 평가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물론 감정의 출처나 원인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감정으로 인한 편향 효과는 사라진다. 예를 들어, 기분 좋은 이유를 날씨에서 찾도록 소비자들을 유도하면, 삶에 대한 만족도와 감정 간의 관계는 없어진다.이는 소비자들이 자신의 감정상태를 날씨 때문이라고 정확하게 귀인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감정이 제품 평가에 미치는 효과를 간략하게 설명했다.그러나 감정에 관한 현상들이 이처럼 단순하게 일어나는 건 아니다.특히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제품에 대한 평가일수록 소비자 감정의 효과는 복잡한 방식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최근 정서 마케팅이나 감성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광고가 제작되고 있다.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항공사의 기내서비스 광고,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와 결부시키는 맥주 광고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제품이나 광고가 증가한다는 사실은 감성적 호소가 매우 강력한 설득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소비자들은 제품과 관련해 감성에 호소하는 메시지를 비교적 쉽게 수용한다. 반면 자세한 정보 및 설명이 포함된 메시지를 이해하는 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마케터들은 소비자들의 긍지, 흥분감, 휴식, 행복, 만족감과 같은 긍정적 감정을 강조하거나, 반대로 죄책감, 분노, 슬픔 혹은 지루함과 같은 부정적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을 감정적으로 쉽게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감성 마케팅은 대부분 그 자체가 소비자의 특정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렇게 마케팅 활동에 의해 직접적으로 유발된 감정을 내재적 감정(Integral Emotion)이라 부른다. 반면 앞서 설명한 소비자의 감정은 평가의 대상이 되는 제품이나 광고 등과는 전혀 관계없는 원인으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에 우발적 감정(Incidental Emotion)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감성 마케팅과 소비자의 우발적 감정은 어떠한 상관관계를 지닐까? 감성 마케팅에서는 상품이나 광고 메시지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과 해당 메시지를 받는 순간 소비자가 느끼고 있던 감정이 서로 일치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일본 여행에 관한 다음의 두 가지 가상 광고를 생각해 보자. 앞의 <그림1>은 평안하고 잔잔한 혜택을 강조한다. 반면, <그림2>는 신나고 모험적인 여행임을 강조한다. 소비자 감정이 두 광고에 제시하는 여행을 평가하는 데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까? 기본적으론 앞서 설명한 대로 소비자들이 부정적인 감정보단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광고에 대한 평가는 더 호의적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필자는 연구 결과를 통해 사람들이 흥분감을 느끼고 있을 때 신나고 모험적인 여행 상품을 더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잔잔하고 안정된 감정을 느낄 땐 평안한 여행 상품을 더 호의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흥분감과 안정감은 모두 긍정적인 감정이다. 감정의 방향성 자체는 동일하다 해도 소비자의 구체적인 감정 상태와 상품이 전달하는 감성적 메시지가 일치할 때 소비자가 해당 상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이번 연구 결과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소비자의 감정 상태와 상품이 전달하는 감성적 메시지가 일치할 때 상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 광고를 본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여행이 정말 나에게 이러한 감정들을 선사할까?” “이 여행이 실제로 광고한 대로의 여행이 될 가능성은 얼마나 높을까?” 모험을 강조한 광고의 예를 보자. 사람들은 마음이 평안한 상태에서 이 광고를 봤을 때보다 흥분한 상태에서 이 광고를 봤을 때 해당 여행이 광고처럼 신나고 멋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기대한다. 소비자들이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 상태에 따라 감정적으로 소구하는 상품에 대한 기대 정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