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경영

남성 고객은 갈대가 아니다

55호 (2010년 4월 Issue 2)

지난 2월 2일, 프랑스 명품업체 에르메스는 뉴욕 매디슨 애비뉴에 자리 잡은 플래그십 스토어 맞은편에 또 하나의 매장을 열었다. 이곳은 227제곱미터 규모의 4층짜리 건물로 남성용 향수, 넥타이, 맞춤복까지 두루 선보이는 남성 전용 매장이다. 다른 에르메스 매장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분위기, 즉 고급스러움과 위트를 강조한 19세기 영국 신사들의 사교 클럽 같은 분위기가 묻어나도록 만들어졌다. 유명 디자이너 톰 포드가 불과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옛날 영화에 나오는 양장점 분위기’를 표방하며 호화로운 2층짜리 매장을 연 게 2007년이었다. 불과 2년 사이에 매디슨 애비뉴에만 ‘옛날 신사들의 클럽’을 경험할 수 있는 매장이 두 곳이나 생긴 셈이다.

19세기 이후 서서히 패션 및 미용업계에서 소외됐던 남성들이 다시 명품 브랜드의 주요 타깃으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남성용 명품 시장의 매출액은 여전히 여성용 명품 시장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아내를 비롯해 여자가 사다주는 옷과 화장품에 만족했던 남성들이 조금씩 자신의 취향과 필요에 따라 직접 물건을 구매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명품업체들 또한 이 점을 놓치지 않고 남성 고객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여러 가지 마케팅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다.
 
이 중 에르메스가 선택한 남성 전용 매장 개설은 ‘쇼핑을 대하는 남성들의 태도가 여자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쇼핑 자체를 즐거워하고 일종의 취미 생활로 여기는 여성들과 달리 아직도 대부분의 남성들은 쇼핑을 귀찮고 재미 없는 일로 여길 때가 많다. 또 꼭 필요한 물건이 생기기 전에는 쇼핑에 나서지 않는다. 이런 남성들을 매장으로 불러들이려면 품질 좋은 물건 외에도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로 매장을 채울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들은 이성적 관심 유무와 무관하게 낯선 여자들이 보는 데서 자신이 ‘그깟’ 옷이나 신발을 앞에 두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특성들이 결합한 결과가 바로 남성들만을 위한 매장이다.

앨프리드 던힐이 운영하고 있는 ‘던힐 홈’은 남성들만을 위한 매장이 어떤 장소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고급스러우면서도 풍요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남성들을 겨냥해 영국풍 클래식 스타일에 기반한 의류, 가죽 제품, 라이터, 펜 등의 소품을 내놓고 있는 알프레드 던힐은 런던, 도쿄, 상하이에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모든 것을 갖춘 ‘던힐 홈’을 운영하고 있다. 고객이 제품을 구경하고 살 수 있으므로 매장이라 불러도 무방하지만 던힐 홈은 단순한 매장 이상이다.
 
진열된 제품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여러 공간들, 가령 19세기 새빌 로(Savile Ro·고급 양복점이 밀집한 유명한 런던 거리)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주문 제작 양복점, 오래된 가죽 의자가 놓인 전통 영국풍 이발관, 시가나 와인을 음미할 수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바 등은 쇼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성들을 매장으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 특히 던힐 홈은 이곳을 찾은 남성들에게 던힐의 브래드 이미지와 라이프스타일을 끊임없이 주입한다.
 
세상은 남성들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남성들에게도 감각 있는 옷차림과 잘 관리한 외모가 필수라고 종용하며 그들을 쇼핑으로 내몬다. 남성들 또한 조금씩 그 필요성과 재미에 눈을 떠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남성들은 옛날 남성들이 갖고 있었던 남성성과 전통적인 남성다움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한다. 명품업체들이 남성용 매장을 별도로 운영하고, 매장 안에 ‘전통적 남성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두는 것은 이러한 남성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미끼다.
 
물론 여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월척을 낚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한 법이다. 남성은 갈대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한번 인정한 브랜드나 제품에 대해서는 금액에 구애받지 않고 지갑을 연다. 또 여성 고객에 비해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 한번 인연을 맺으면 좀처럼 돌아서지도 않는다. 그러니 누가 이 월척을 마다하랴. 월척의 마음을 잡기 위한 명품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4호 세계관의 세계 2021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