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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킴벌리 ‘매직팬티’ 성공스토리의 교훈

마케팅 만으론 新제품 없다

김진교 | 4호 (2008년 3월 Issue 1)
유한킴벌리 개요
1970년 유한양행은 한국에 여성 생리대와 화장지 등의 생활·위생용품을 판매하기 위해 미국 킴벌리클라크와 합작으로 유한킴벌리를 설립했다. 1983년 위생 종이기저귀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이후 유한킴벌리는 국내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많은 한국 소비자들은 이 회사의 ‘하기스’를 위생 종이기저귀의 대명사로 인식하고 있다. 또 유한킴벌리는 장기적으로 환경 보호 캠페인을 실시, 친환경 기업이란 이미지를 고객들에게 심어줬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신생아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기저귀 시장도 성장세를 멈췄고 유한킴벌리 기저귀 사업 분야의 매출액도 답보 상태에 빠졌다. 이런 위기를 유한킴벌리는 ‘하기스 매직팬티’라는 팬티형 기저귀를 내놓아 새로운 프리미엄 시장을 개척하며 성장기회를 마련했다. ‘하기스 매직팬티’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계속 성공할 수 있는 유한킴벌리 신제품 개발활동의 저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하기스 매직팬티’의 성공은 하루 아침에, 우연히 달성된 것이 아니다. 유한킴벌리는 팬티형 기저귀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1993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풀업스’, ‘토들러 팬츠’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두 번 모두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음에도 쓰라린 실패를 맛봤다. 이런 좌절에도 불구하고 유한킴벌리는 팬티형 기저귀가 장기적으로 유한킴벌리의 성장을 이끌 사업이라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또 두 번의 실패로부터 얻은 경험과 노력을 토대로 ‘하기스 매직팬티’의 성공이란 결실을 거뒀다. 특히 이런 실패와 성공의 과정 속에서 유한킴벌리가 합작 투자사인 킴벌리클라크의 영향력을 줄이고 자체 마케팅 및 연구개발(R&D) 능력을 폭넓게 활용하는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체득, 기저귀 사업의 전망을 밝게 했다.
 
풀업스 - 팬티형 기저귀 시장 개척
유한킴벌리는 1993년 ‘풀업스(pull-ups)’라는 팬티형 기저귀 제품을 국내 최초로 내놓았다. 1980년대 한국 기저귀 시장에서 유한킴벌리에 필적할 만한 경쟁자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시장이 커가면서 1989년부터 국내외 경쟁사들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로 인해 유한킴벌리의 시장점유율은 45%까지 줄어들었다. 특히 세계 최대 생활용품 업체인 P&G의 한국시장 진입은 유한킴벌리 입장에서 큰 위협 요인이 됐다. 이에 유한킴벌리는 미국 킴벌리클라크에서 개발된 팬티형 기저귀(걸을 수 있는 아이들이 쉽게 착용할 수 있도록 팬티처럼 만들어진 제품) 제품을 국내시장에 내놓아 제품군을 다양화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 했다.
 
당시 유한킴벌리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킴벌리클라크와 동일하게 구성하려 했다. 미국에서 성공한 킴벌리클라크 제품 중 한국 시장에 맞는 제품을 선정해 국내에 판매하는 신제품 출시 방법을 선호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한킴벌리는 킴벌리클라크의 ‘풀업스’라는 팬티형 기저귀 제품에 주목했다. 배변연습용으로 제작된 ‘풀업스’가 미국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으며 일반 기저귀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데다 킴벌리클라크 내에서 매우 성공적인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한킴벌리는 킴벌리클라크와 마찬가지로 20개월 전후의 아이들에게 배변연습용으로 적합한 제품이란 점을 적극 홍보했고 브랜드도 ‘풀업스’를 그대로 사용했다. 유한킴벌리 직원들은 무려 120년간 축적된 킴벌리클라크의 기술에 대해 신뢰했고 미국과 다른 글로벌 시장처럼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강한 믿음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1993년 출시된 ‘풀업스’는 이런 기대와는 달리 자체 기저귀 제품의 매출에서 2%를, 전체 시장점유율에서는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성과를 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출시됐던 테이프형 기저귀 ‘하기스 에어 울트라슬림’이 전체 시장에서 22% 이상을 차지하는 큰 성공을 거둔 것과 비교됐다. 풀업스는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1995년 일본과 합작한 국내 한 경쟁사가 흡수력과 착용감이 뛰어난 제품을 수입해 ‘풀업스’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자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유한킴벌리는 무려 100억 원의 손해를 보면서 제품 판매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토들러 - 유한킴벌리 자체 마케팅 적용 
유한킴벌리는 1996년에 ‘토들러 팬츠’라는 제품으로 다시 한 번 팬티형 기저귀 시장에 도전했다. 풀업스 실패를 통해 미국 소비자에게는 익숙한 ‘배변 연습용’ 트레이닝 팬츠란 개념이 국내 소비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유한킴벌리는 팬티형 기저귀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취향과 요구를 파악하기 위해 마케팅 전문 인력을 대폭 충원했다.
 
하지만 팬티형 기저귀가 국내시장에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 지 확신할 수 없었던 유한킴벌리는 이 제품에 대한 투자를 망설였다. 이에 따라 킴벌리클라크가 생산하는 ‘풀업스’의 시제품(proto-type)을 바탕으로 신제품을 개발하게 됐다. 따라서 킴벌리클라크는 신제품 개발과정에 적극 개입했다. 킴벌리클라크가 정한 품질기준이나 원료, 디자인에 기초해 신제품 개발 작업이 진행된 것이다.
 
유한킴벌리는 킴벌리클라크의 연구개발(R&D)팀과 공동으로 여러 차례 시장 조사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기저귀 사용실태와 문제점, 주부들이 선호하는 팬티형 기저귀의 특성과 관련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개발팀은 결국 12개월 전후의 걷는 아기들을 주요 고객으로 한 ‘토들러 팬츠’라는 브랜드의 신제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토들러 팬츠’는 유한킴벌리가 원했던 수준의 제품은 아니었다. 킴벌리클라크의 시제품을 갖고 국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기에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킴벌리클라크의 기술력은 최고로 인정받았지만 국내 시장을 상대로 한 제품 테스트에서는 경쟁사 제품에 비해 품질 면에서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특히, 제품의 착용감과 편안함에 있어서는 크게 뒤져 있었다. 유한킴벌리는 그러나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판단 하에 일단 제품을 출시해놓고 매출이 어느 정도 올라가면 추가 투자를 단행해 품질을 높이는 전략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렇게 출시된 ‘토들러 팬츠’ 역시 회사 전체 매출액의 2∼3%밖에 기여하지 못하는 등 매우 저조한 성과를 냈다. 오히려 팬티형 기저귀 제품에 대한 회의론만 확산시키고 말았다. 급기야 1998년 외환위기와 더불어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수입제품이던 ‘토들러 팬츠’는 원가상승을 감당하지 못해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하기스 매직팬티 - 자체 역량으로 제품 개발
2005년 유한킴벌리는 다시 한 번 팬티형 기저귀인 ‘하기스 매직팬티’를 출시했다. 이번에는 유한킴벌리가 신제품 개발의 전 과정을 주도했다
 

 
특히 1995년부터 추진된 ‘NEWAY’란 혁신 정책으로 인해 유한킴벌리의 국내시장에 대한 정보수집 및 R&D 역량이 크게 강화됐다. ‘NEWAY’란 혁신적 제품 개발, 공정 및 품질 개선, 사회책임 강화, 평생학습 등 다양한 혁신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유한킴벌리가 장기간 추진해온 캠페인이다. 이런 혁신활동으로 재무, 구매, 엔지니어링, 영업, 유통망 관리 등의 분야에서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또 풀업스와 토들러 팬츠의 실패 경험과 일반 기저귀 신제품 개발활동에서 얻은 경험도 유한킴벌리의 신제품 개발에 귀중한 자산이 됐다. 특히 신제품이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케팅 부서에서 얻은 국내 시장 정보를 R&D부서에 정확하게 전하고, R&D 부서의 혁신 성과를 마케팅 부서가 소비자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또 1998년부터는 사업부제가 실시되면서 시장조사, 영업, 생산, R&D, 재무 및 회계부서가 신제품 개발활동에 초기부터 참여해 제품 개발활동을 벌이는 관행이 정착됐다. 이를 통해 각 부서의 정보와 지식이 공유됐고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도 여러 부서에서 생산된 지식이 활용됐다. 지식 공유를 위한 체계적인 프로세스와 의사소통 프로세스도 구축됐다. 특히 부서별 목표가 아닌 사업부 전체의 목표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함에 따라 신제품 개발활동이 모든 부서의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이에 따라 과거 마케팅 등 특정 부서가 신제품 개발을 전담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신제품 아이디어 발굴부터 출시까지 전 과정에서 마케팅, R&D, 시장조사, 재무, 생산, 영업 등 모든 부서가 망라된 CFT(Cross Functional Team)를 통해 협업이 가능해졌다. CFT를 통해 부서간 의견과 정보 공유 및 토론이 가능하기 때문에 성공이 기대되는 신제품 아이디어 및 컨셉트의 조기 발굴과 빠른 제품 개발이 가능해졌다.
 
실제 매직팬티 개발 과정에서 유한킴벌리는 철저한 시장 조사를 바탕으로 이전 제품보다 한 차원 높은 품질을 구현했다. 기저귀 내부와 외부에 통풍이 잘 되는 부드러운 재료를 써서 착용할 때 불편함을 없앴으며 수분 등 흡수력도 대폭 높였다. 아이들이 어떤 동작을 취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기저귀 옆면의 신축성을 대폭 높였으며 착용감도 높였다.
 
이런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유한킴벌리는 ‘하기스 매직팬티’로부터 14% 정도의 새로운 매출을 얻을 수 있었다. 또 고품질 전략을 통해 일반 기저귀보다 높은 투자수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과거 전체 기저귀 시장의 1∼2%에 머물렀던 팬티형 기저귀 시장도 17%까지 확대됐다. 특히 국내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세계적 품질의 제품을 세계 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길까지 터 놓는 계기도 마련했다.
 
시사점
유한킴벌리의 신제품 개발 역량은 점진적으로 확대됐다. 과거 경험에서 발견된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토대로 점차 발전해나간 것이다. 초기에 킴벌리클라크의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형태로 팬티형 기저귀 제품을 개발했다. 하지만 유한킴벌리는 지속적으로 자체 마케팅 역량과 R&D 역량을 축적, 발전시켰다. 또 이런 역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신제품 개발 시 부서 간 유기적 협력 체계도 구축했다.
 
결론적으로 현재 유한킴벌리가 갖추고 있는 신제품 개발 역량의 핵심은 바로 각 부서의 지식과 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신제품 개발프로세스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의 핵심에는 CFT가 있다. 이런 프로세스를 갖추기 위해서는 사업부 제도나 공동 목표 설정 등 각 부서를 통합하고 연결해주는 체계도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각 부서별 전문 지식과 능력이 뒷받침돼야 이런 프로세스를 통한 높은 성과 달성이 가능하다.
 
필자는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MIT교수로 재직했으며 세계적 학술지인 〈Management Science〉등 저명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미국통계학회의 ‘Zellner 최우수 박사학위 논문상’과 한국마케팅학회의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마케팅 문제와 관련한 계량적 통계모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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