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생로랑, N세대를 껴안다

42호 (2009년 10월 Issue 1)

2009년 9월 12일 신사동 가로수길 등 서울의 주요 거리들이 이브생로랑(YSL)의 매니페스토 캠페인으로 들썩였다. 잘 알려진 대로 매니페스토는 ‘과거의 행적을 설명하고 미래의 행동 동기를 밝히는 공적 선언’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마니페스토에서 나왔다. 감각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패션 브랜드와 정치 용어가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점이 꽤나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이 캠페인의 골자는 매 계절 이브생로랑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과 그 제작 과정 등을 담은 인쇄물을 만들어 세계 주요 도시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하는 일이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이브생로랑이 최근 몇 년간 가장 야심 차게 펼치고 있는 이벤트다. 그간 주요 배포 대상지는 파리, 뉴욕, 런던, 베를린 등이었다. 올해는 그 영역을 아시아로 넓혀 9월 12일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홍보물을 배포했다.
 
다섯 번째를 맞는 이번 시즌(2009년 가을/겨울)의 매니페스토가 이전과 다른 점은 온라인 배포를 강화했다는 사실이다. 오프라인으로 인쇄물을 배포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활용해 인터넷에 홍보물을 공개한 것. 뉴욕이나 파리에 살지 않아도 인터넷만 사용할 수 있다면 누구나 매니페스토 캠페인을 접할 수 있다.
 


 
이 캠페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상류층을 주 고객으로 삼는 명품 패션 브랜드가 핵심 고객이 아닌 불특정 다수인 길거리 대중을 향해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형식 또한 기존 명품 브랜드가 펼쳐온 커뮤니케이션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에 대해 이브생로랑 측은 고급 패션은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며, 더욱 많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이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지 그뿐일까?

이브생로랑을 비롯한 명품 브랜드들의 이런 노력은 머지않아 사회 모든 분야, 특히 명품 패션 산업의 주 소비 계층으로 떠오를 N세대의 성향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N세대는 1980년대 이후 태어나 어려서부터 인터넷과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온 세대다. 이들은 블로그나 게시판 등에서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거리낌없이 표현한다. 정치나 사회 현상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전 X세대와 달리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표현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특히 N세대는 환경이나 빈부 격차와 같은 사회적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단순한 관람자나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인 자세로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참여하고, 스스로 창조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 또한 N세대의 특징이다.
 
자신들의 몸을 낮추고 젊은 세대와 끝없이 커뮤니케이션하려는 패션 브랜드들의 몸짓은 일부 특정 소비자에게만 어필함으로써 고급스럽고 특별한 이미지를 쌓아가려는 명품 브랜드의 일반 전략과 완전히 상반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결국 이 역시 쉴 새 없이 변하는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기 위한 자구책이다. 덤으로 다른 브랜드보다 앞서가는 브랜드라는 인식도 심어줄 수 있다.
 

비단 이브생로랑뿐 아니라 최근 많은 명품 브랜드들은 N세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열심이다. 샤넬은 최신 패션쇼의 비디오 동영상과 이미지, 휴대전화 사용자가 위치한 곳에서 근접한 샤넬 매장의 위치 등을 휴대전화로 볼 수 있는 프로그램 을 개발했다. 보수적인 느낌의 명품 남성복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도 페이스북에 자사 블로그를 만들어 패션쇼를 생중계하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의 실시간 채팅도 선보였다. 버버리 역시 온라인 브로셔를 만들어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신제품 소식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명품의 핵심 소비 계층은 끊임없이 바뀐다. 각각의 세대가 선호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 또한 계속 변화한다. 명품 브랜드 또한 그에 발맞춰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바꿔야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이브생로랑의 매니페스토 캠페인은 살아남으려면 항상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자신을 거기에 맞춰야 한다는 자연의 법칙을 새삼 깨닫게 한다.

패션 칼럼니스트인 필자는 남성 패션지 <에스콰이어>와 여성 패션지 <W Korea> 패션 에디터를 거쳐 현재 <에스콰이어> 패션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10아시아> <한겨레21> 등 다양한 매체에 패션 관련 글을 기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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