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고객 시장은 중국과 인도 시장을 합친 것보다 크다. 그런데 왜 기업은 여성 고객에게 주목하지 않는가? 세계적으로 연간 소비 지출의 약 20조 달러가 여성 소비자에게서 나온다. 향후 5년간 이 수치는 최대 28조 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13조 달러인 여성의 연간 소득은 5년 후에는 18조 달러로 늘어날 것이다. 이 수치를 종합하면 여성 소비자 시장은 중국과 인도 시장을 합친 것보다 2배 이상 크다. 이러니 여성 소비자를 간과하거나 평가절하하는 태도는 매우 어리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 고객에게 무관심한 기업이 부지기수다. 심지어 여성 고객에 대해서라면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는 기업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출시 후 얼마 못 가 사라진 델의 여성용 노트북을 보자. 델은 올해 5월 여성용 노트북 출시와 함께 ‘델라(Della)’ 프로모션을 선보였다. 골자는 전통적 여성상이라는 해묵은 통념에 기초했다. 델은 ‘여성을 위한 아주 특별한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이 사이트에는 노트북 색상, 칼로리 계산법, 여러 가지 요리법 찾기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델의 야심 찬 계획에 여성 소비자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선은 끌지만 당혹스럽고 여성을 비하한다는 원성도 쇄도했다.
블로거들이 먼저 반격에 나섰다. 온라인 테크놀러지 매거진 <레지스터>의 오스틴 모딘은 반어법을 사용해 신랄하게 반박했다. “컴퓨터 구매가 여성적 행위라고요? 왜 난 미처 몰랐을까요. 빅토리아 시대의 의사들도 이 의견에 동의할 거예요.” 뉴욕타임스는 델이 마케팅 심화 과정에 등록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결국 몇 주 만에 델은 웹사이트의 타이틀과 주요 내용을 수정한 후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델의 즉각적인 궤도 수정에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왜 출시 전에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많은 기업들이 여성 고객 마케팅에 대해 잘 모른다. 2008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여성이 자신의 일, 생활, 소비 전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주제로 연구에 착수했다. 조사 대상은 지역, 소득 수준, 계층별로 40여 개 집단 1만2000여 명이었다. 응답자들은 36개 제품 및 서비스군에 대한 자신의 구매 행태, 소비 행태, 교육, 금융, 부동산, 재산, 직업, 이력, 취미 활동, 대인관계, 자신이 바라는 것과 두려운 것 등 총 120개 문항에 답했다. 우리는 수백 회에 걸친 인터뷰와 13개 직군 50개 직장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도 동시에 진행했다(설문 항목 및 조사 결과에 관한 추가 정보는 www.womenspeakworldwide.com 참조).
조사 결과는 간단히 ‘여성들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 100년간 시장 구매력 및 사회적 지위가 급격히 높아졌음에도 시장에서 여성의 가치는 여전히 낮게 평가되고 있다. 일터에서도 다르지 않다. 여성은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고, 일과 가정과 가족 사이에서 가파른 곡예를 벌인다. 그러나 여성 고객을 대상으로 제품 및 서비스를 선보이는 기업 가운데 시간에 쫓기는 여성들의 요구를 만족시킨 곳은 거의 없다.
고객으로 대접받는 맛도 없이 어떻게 가족들의 옷을 챙기고, 유기농 식단을 짜고, 재테크를 하고, 몸매 관리에 신경을 쓰겠는가. 소비재 제품들 대다수는 여성이 구매를 결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업은 마치 여성은 아무런 의사결정권도 없다는 듯 제품을 판매해왔다. 줄곧 별 아이디어도 없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고 전형적인 여성상을 재탕하는 케케묵은 마케팅 전략으로 일관해왔다. 자동차 업계만 해도 그렇다. 그간 자동차 설계의 핵심은 여성들의 주 관심사가 아닌 오로지 ‘속도’였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운전하는 엄마들을 위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없다. 바운티 화장지가 최근 선보인 광고는 이런 현실을 패러디했다. 방이 물바다가 됐는데도 상냥한 미소를 띤 아내가 그 난리통을 다 수습할 때까지 남편과 아들은 그저 멀뚱히 서 있기만 한다.
세계 시장에 미치는 여성의 영향력도 날로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 내 여성 근로자의 수가 남성 근로자보다 많다는 사실을 아는가. 최근 경기 침체로 직장을 잃은 근로자 4명 가운데 3명이 남성이었다. 물론 평균적으로 보면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임금도 적고, 정규직이 아니라 시간제 근로자일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여성이 전 세계를 덮친 경제 위기에서 안전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섬에 따라 여성 고객은 시장 최대의 블루칩으로 떠오를 거라는 사실이다. 여성 고객은 기업에 불황을 타개하고 번영의 새 장을 열어줄 수 있다.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
응답자 개개인의 특성이 다르지만 조사 결과 여성 고객들을 다음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소득 수준, 연령, 계층을 기본 변수로 했을 때, 응답자들은 ‘주도형’ ‘시간 압박형’ ‘관계 지향형’ ‘독립형’ ‘노부부형’ ‘절약형’의 6가지 형태로 나뉘었다. 응답자 가운데 이 중 하나의 유형에만 속하는 여성은 별로 없었다. 즉 자녀를 둔 기혼 여성으로 주도형에 속하는 응답자가 어떤 항목에서는 시간 압박형에 속하기도 했다(HBR TIP ‘여성 소비자의 6가지 유형’ 참조). 나름의 한계는 있겠지만 이러한 유형 구분은 기업의 제품 개발 및 마케팅에 유용한 정보다. 대상 고객이 어떤 사람인지, 이 여성이 시장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안다면 매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업종을 막론하고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삼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특히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는 6대 산업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4대 산업은 상대적으로 여성의 소비 비중이 더 높은 식품, 몸매 관리, 미용, 의류다. 나머지 2대 산업은 여성들의 만족도가 현저히 낮다는 결과가 나온 금융, 보건의료 서비스다.
HBR TIP 여성 소비자의 6가지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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