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천국, 美 데이비스

39호 (2009년 8월 Issue 2)

미국 캘리포니아의 주도인 새크라멘토 서쪽에 위치한 데이비스(Davis)는 인구 6만5000여 명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이곳에서 가장 큰 기관은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 데이비스)인데, 대학생만 3만 명이 넘고 대학 관련 시설도 많다. 한마디로 ‘대학 마을’이다.
 
이 작은 대학 마을의 상징은 ‘자전거’다. 학생은 물론이고 주민, 어린아이까지 모두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캠퍼스 내에서나 다운타운에서나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어딜 가나 자전거 도로와 주차대가 있다. 최적의 ‘자전거 라이프’를 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데이비스다.


 
자전거 천국의 명성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 데이비스는 미국 자전거 동호회가 인정한 유일한 ‘플래티넘급 자전거 도시’다. 미국은 자동차가 없으면 생활이 불편하지만, 데이비스에서는 자전거로 어디든 갈 수 있다. 데이비스의 자전거 도로는 총 길이가 160km가 넘는다. 시의 총 자전거 보유 대수는 4만 대 이상이다. 직장인 중 17%가 자전거로 통근하고, 대다수 학생들도 자전거로 통학한다.
 
자전거 교통 체계도 독특하다. 데이비스 시는 자전거와 자동차의 혼선이 없도록 27가지 종류의 교차로를 갖추고 있으며, 자전거 교통질서 유지를 위해 ‘자전거 교통경찰(Bike Police)’ 제도를 도입했다. 이들은 도시를 순회하며 전조등 없이 야간에 달리는 자전거나, 시속 24km 이상으로 달리는 과속 자전거를 단속하고 15∼20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
 
자전거 교육은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된다. 데이비스의 학교에는 스쿨버스가 없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통학한다. 주민들이 일찌감치 투표를 통해 공립학교의 스쿨버스를 없애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전거 지도가 잘 발달돼 있다.
 
대학 총장이 시작한 ‘자전거 도시’
 
데이비스 시의 전체 취업자 중 40%가 대학 관련 일을 한다. 도시의 역사는 UC 데이비스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다. 데이비스의 자전거 역사도 UC 데이비스의 두 번째 총장인 에밀 마크(1901∼1987년)의 획기적인 자전거 친화 정책에서 시작됐다. 자전거 애호가였던 그는 1961년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나무로 둘러싸인 캠퍼스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2년 뒤 UC 데이비스에 변화가 일어났다. 자전거 정책이 포함된 장기 개발 계획이 추진됐고, 캠퍼스에서 자전거를 쉽게 타고 다닐 수 있는 획기적인 인프라가 마련됐다. 캠퍼스의 모든 길에는 보행자 도로와 구분된 자전거 길이 만들어졌다.
 
자전거 인프라가 발달하자 자동차 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교차로에서는 자전거가 차도의 밑이나 위로 지나가도록 전용 통행로를 만들었다. 캠퍼스 중심부에는 차가 다닐 수 없도록 막았다. 학생들은 날씨나 교통 체증에 방해받지 않고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대학이 일으킨 변화는 주민들의 노력으로 도시 전체에 확산됐다. 1963년 대학 캠퍼스에서는 자전거 열풍이 불고 있었지만 데이비스 시 당국은 역주행을 했다. 시는 거대 주차장을 지어 자전거 이용률을 떨어뜨리는 정책을 펼쳤다. 자전거를 사랑하는 시민들은 1964년부터 1966년까지 데이비스를 자전거 중심 도시로 만들기 위한 로비 활동을 시 당국에 적극적으로 펼쳤다.
 
시민들은 자전거 연구 모임을 결성하고 시청 직원들, 경찰들과 지속적으로 회의를 열었다. 주민의 90%가 서명한, 자전거 우선 정책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시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66년 데이비스 시장 선거에서 자전거는 최대 이슈로 떠올랐고, 자전거 우선 정책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됐다. 이때부터 자전거 도시로서의 인프라 확충이 급격하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자전거 도시의 성공 요인은 ‘4E’
 
데이비스 교통연구소(ITS-Davis)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 포틀랜드에서 자전거 타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테드 뷜러는 데이비스가 국제적인 자전거 도시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4E’로 요약한다.
 
①교육(Education)주민들이 스쿨버스를 없애기로 결정하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타는 문화가 뿌리를 내렸다. 어른이 돼서도 자전거는 일상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유치원에서 시작한 자전거 교육은 대학까지 이어진다.
 
②공학(Engineering)데이비스 시 당국은 자전거 문화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자전거 전용 도로와 자전거 루프 건설 등 인프라 투자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데이비스가 자전거 프로젝트에 쓴 비용은 1400만 달러에 이른다. 또 매년 자전거 인프라 유지비로 10만 달러가 책정된다. 데이비스의 인구를 생각하면 적은 액수가 아니다. 그 결과 데이비스 도로의 95%에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졌다.
 
③규제(Enforcement)데이비스 시는 자전거 교통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전거 관련 법규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무거운 벌금과 강제적 법 집행보다 자발적인 법규 준수를 유도하는 게 데이비스 시 자전거 관련 규제의 특징이다. 벌금의 액수를 줄이고, 바이크 폴리스가 미등이 없는 자전거에 미등을 나눠주는 식이다.
 
④장려(Encouragement)주민들의 자전거 이용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시민들이 자전거를 교통수단이자 레저용, 건강용 도구로 즐겁게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만든 자전거 동호회, 자전거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도구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자전거 교회, 자전거 경매 등 자전거 관련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또한 자전거 박물관을 짓기 위해 데이비스 시와 UC 데이비스가 공동으로 40만 달러의 펀드를 조성해 1835∼1920년대까지의 희귀한 자전거를 수집하고 있다.
 

 
한국형 자전거 도시를 만들자
 
최근 기후 변화 대책으로 자전거 이용을 늘리고, 자전거 인프라를 조성하려는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이 대표적이다. 독일 베를린과 뮌헨에서는 자전거 유료 대여 서비스인 ‘콜어바이크(call-a-bike)’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포항의 포스코 공장, 창원시, 서울에서 자전거 사용을 늘리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데이비스에서 보듯, 단숨에 자전거 문화를 정착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데이비스의 노하우와 한국 도시민의 라이프스타일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자전거 문화 정착 시기를 훨씬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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