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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규제의 정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안덕근 | 38호 (2009년 8월 Issue 1)
올해 초 정부는 2012년까지 36개 사업에 50조 원을 투자해 약 100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녹색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저탄소, 친환경, 자원 절약 등 녹색 성장 전략에 고용 창출 정책을 융합해 ‘녹색 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목표다.
 
녹색 경제에 관한 선진국 기업들의 대응 속도는 매우 빠르다. 델은 ‘심플리파이(simplify) IT’라는 기치를 걸고 전력 소비가 적은 친환경 PC를 개발하기로 했다. 필립스는 회사 전체 차원에서 향후 5년간 에너지 효율을 25% 높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독일 화학기업 바스프는 원재료 구매, 제품 생산, 고객 이용과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생성된 이산화탄소의 감축분을 조사하고, 회계장부처럼 탄소 대조표도 만들어 공표하고 있다.
 
올해 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회의’는 세계 각국의 친환경 기조를 더욱 강화시킬 전망이다. 과거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의무를 부담하지 않았던 한국 등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날로 강화되는 친환경 정책 및 이에 따른 경영 기조는 국제 무역에 예기치 못한 문제를 야기한다. 대표적 예가 2007년 6월부터 시행한 유럽연합(EU)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다. REACH는 기존 40여 개의 법률을 통폐합했기 때문에 그 내용이 매우 방대하고 세부 이행 방안도 복잡하다. REACH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시험 비용, 등록 수수료 등도 총 87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2007년부터 REACH가 끝나는 2018년까지 12년 동안 필요한 비용). 
 

소니의 예를 보자. 네덜란드에 수출하려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콘솔에 포함된 카드뮴이 REACH가 정한 기준을 초과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소니는 수출품 전량을 반품해야 했고, 약 20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EU는 EU 내 제조 또는 수입되는 완제품 내의 특정 유해 물질에 대한 정보를 유럽화학물질청(ECHA)에 제출해야 하는 REACH 신고 규제를 2011년 6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한-EU FTA 체결을 예상하고 EU 수출을 기대하는 한국 기업은 반드시 REACH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도 지난 5월 자동차 연비를 대폭 강화하는 규제 안을 발표했다. 2016년까지 차종별로 평균 연비를 갤런당 35.5마일로 향상시켜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일반 승용차는 갤런당 39마일(리터당 약16.58km)의 연비가 필요하다. 문제는 현재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차 중 새 연비 기준을 충족시키는 제품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반면 도요타, 혼다가 생산하는 하이브리드카와 소형차 상당수는 이미 새 연비 기준을 맞추고 있다.
 
유럽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폭스바겐은 새 연비 기준보다 연료 효율이 좋은 친환경 디젤 엔진을 지난해 개발했다. 고급 차를 주력으로 하는 벤츠, BMW, 아우디 역시 한국 업체보다 먼저 친환경 디젤 엔진을 개발했다. 한국 업체가 반드시 친환경 기술 개발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다.
 
환경 규제가 야기하는 무역 장벽
 
선진국은 정부 차원의 규제뿐 아니라 비정부기구(NGO) 등 시민단체의 압력으로 환경 규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추세다. 문제는 환경 기준을 적용하면서 자칫 자의적이거나 차별적으로 이를 적용해 불필요한 무역 장벽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회원국 정부에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허용하되, 시행 방식은 지나치게 무역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고 있다.
 
환경 규제가 무역 제한 효과를 야기하는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첫째, 녹색 관세를 통한 시장 진입 제한을 들 수 있다. 환경 오염과 생태 환경 악화를 가져오는 수입 상품에 대해 차별 세금을 부과하거나 수입을 제한함으로써 수출국이 국제환경협약 기준이나 수입국의 환경 기준을 충족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이다. WTO 설립 후 최초로 통상 분쟁을 일으킨 미국의 휘발유 수입 규제 조치가 대표 사례다.
 
미국은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을 1990년 개정해 대기 오염이 심각한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일반 휘발유가 아닌 개량 휘발유(reformulated gasoline)만을 판매하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수입 휘발유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한 환경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수입을 대폭 제한했다. 이에 주요 수출국인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는 WTO에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미국은 ‘수출 업체들이 국내 정유업체들보다 질 나쁜 휘발유를 생산하기 때문에 좀더 엄격한 기준 적용이 불가피하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WTO 분쟁해결기구는 미국의 조치가 자의적이고 차별적으로 시행돼 WTO 협정을 위반했다고 판정했다.
 
최근 WTO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환경 관련 무역 분쟁은 소위 ‘새우-거북이’ 분쟁으로 불리는 미국의 멸종 위기 종(種) 보호법 사건이다. 미국 정부는 1987년 새우잡이 어선들이 새우를 포획할 때 먹이를 쫓아온 바다거북들이 대량 살상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어선들이 반드시 바다거북 보호 설비를 장치하도록 규정했다. 이후 Earth Island Institute와 같은 환경 단체들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카리브 해와 서대서양 연안에 국한되던 법규의 적용 범위가 전 세계로 확대됐다.
 
결국 미국은 바다거북을 보호하는 장치 없이 새우를 잡는다는 이유로 인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태국 등에서 생산되는 새우 제품에 수입 제한 조치를 취했다. 이에 해당 국가들은 미국 정부의 조치가 환경보호를 가장한 보호무역 조치라 항변하며 WTO에 미국을 제소했다. 이들은 자국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새우는 바다에서 잡은 게 아니라 양식장에서 키워냈기 때문에, 바다거북 살상을 방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분쟁은 미국의 바다거북 보호 조치가 인도양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 적용된다면 자국 어선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돼야 하는지, 관련 국제환경협약 규범을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 등등 환경보호 조치에 관한 여러 문제들이 다양하게 나타난 사건이었다. 결국 WTO 분쟁해결기구는 국가별 고유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수입 제품에 일방적으로 자국의 환경 기준을 강제하는 일은 WTO 의무에 위반한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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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덕근dahn@snu.ac.kr

    - (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세계무역기구(WTO) 근무
    - 스위스 세계무역연구소(WTI) 근무
    -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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