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의 발명으로 도시와 건축은 혁신적으로 변화했다. 엘리베이터는 수직적 이동을 쉽게 함으로써 도시의 삶을 새롭게 재편했다. 즉 수평적이던 삶의 방식을 수직적으로 쌓아 올려 새로운 삶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에 인구가 도시로 모여들면서 도시의 과밀화는 건축의 수직화를 가속화했다.
초고층 건물 하나에 도시의 여러 가지 인프라와 기능들을 한꺼번에 담은 ‘수직 도시’에 대한 열망은 신화적 상상력을 기초로 하고 있다. 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은 수직 도시에 대한 욕망을 잘 드러낸다. 바빌로니아에 정착한 노아의 자손들은 결속과 명성을 위해 도시를 건설하고 높은 탑을 쌓아 올리려 했다. 신을 향한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는 고층 건물 숲이 형성돼 있다. 2001년 월드트레이드센터의 붕괴는 바벨탑의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9·11테러는 마천루의 유토피아에 위협을 가했고, 참혹한 수직 도시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새로운 월드트레이드센터를 건립하기 위한 국제 공모전이 진행됐다.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당선작 등 흥미로운 초고층 건물들이 제안됐다. 두바이에서는 162층 규모의 ‘버즈 두바이’가 완공을 앞두고 있고, 높이가 1km를 넘는 ‘나킬 타워(Nakheel Tower)’도 등장했다. 세계 각지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수직 도시 경쟁이 치열하다.
새로운 월드트레이드센터는 수직 도시 개발에 어울리는 다양한 건축을 선보였다.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수직적인 도시를 전면적으로 재고해 수직 타워보다는 저층부의 수평 도시를 강조한 ‘세계의 정원(garden of world)’ 개념을 보여줬다. 리처드 마이어와 피터 아이젠만은 기존의 격자형 도시 구조를 수직적으로 변형한 건축물을 제
시해 흥미를 끌었다. 라파엘 비뇰리는 높이 1660피트의 개방된 격자형 구조인 트윈타워를 구성했다. 일반적인 마천루의 적층(積層) 공간 구조를 벗어나 필요에 따라 상층부나 중층부에 작은 건물들을 끼워 넣을 수 있도록 공간의 자유로움을 꾀했다. 예를 들어 마천루에 공연장이 필요하다면 공연장으로 쓰일 작은 건물 하나를 격자 공간 사이에 끼워 넣는 식이다. 벤 판 베르켈은 춤추는 듯 입체적인 튜브 구조를 결합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유로운 구조의 초고층 건축물을 선보였다. 특히 55층의 스카이 파크 부분은 전체 빌딩들을 관통하며 공공의 역할을 하고, 구조적으로는 안정성을 꾀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함께 완공된 램 쿨하스의 ‘CCTV 타워’는 초고층 건축의 구조적 자유와 랜드마크의 특성을 혁신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높이와 특이한 구조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게이트와 같은 모양으로 입체적인 볼륨을 주었다. 마름모꼴의 외관 구성도 색다르다. 한스 홀라인의 ‘몽트 라 타워(Monte Laa Tower)’는 꼭대기 층에 컨퍼런스룸, 프레스룸, 레스토랑, 강당, 테라스를 상자처럼 배치해 중력에서 벗어난 듯한 구조적 자유로움을 완성한다.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터닝 토르소 타워(Turning Torso Tower)’는 뒤틀린 듯이 움직이는 구조로, 초고층의 자유에 도전한다.
마천루 건축의 생태적인 측면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건축가 켄 양의 ‘에디트 타워(Editt Tower)’ 프로젝트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타워 사이사이에 숲과 같은 공간을 끼워 넣어 수직 타워가 간과할 수도 있는 대지의 풍경을 보여준다.
혁신적인 형태의 디자인도 나오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현대적으로 변형한 장 누벨의 ‘토레 아그바 타워(Torre Agbar Tower)’가 있다. 이 건물은 색채의 변화와 화소(pixel)의 패턴을 유선형의 덩어리 모양에 대입한 독특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일반적인 마천루에 사용되는 철골조 대신, 공장에서 만들어진 철근 콘크리트를 조립하는 특이한 공법을 사용했다.
한국도 수직 도시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상암 랜드마크타워(133층), 용산 드림타워(150층), 제2롯데타워(112층), 송도신도시 인천타워(151층), 부산 WBC타워(126층) 등에서 보듯 우리나라도 마천루 경쟁에 들어갔다. 현대 도시에서 마천루 건축은 도시의 랜드마크를 만들고 부의 축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건물을 사무실이나 아파트만으로 쓰는 게 아니라, 건물 내에 인공 정원이나 문화시설 등을 갖춰 하나의 건물이 마치 하나의 도시처럼 기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도시의 인프라를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