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지향적 수요•공급 체계 수립법

31호 (2009년 4월 Issue 2)

재고는 쌓여 있으나 제품 공급이 불안정한 탓에 매출이 오르지 않고 있는가. 재고를 줄이기 위한 영업 및 마케팅 비용의 출혈이 심각한가. 매출이 늘어남에도 수익성이 악화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가. 영업부서와 생산부서 간 불신의 골이 깊어만 가고, 거래처의 불만이 커져 경쟁사에 시장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는가.
 
한국 제조업체들은 세계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둬왔다. 그러나 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품 ‘밀어내기(push)식’ 사업 방식에 의존해온 기업들이 점차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성장이 침체되고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 기업의 견고한 성장을 이끌고 수익성을 높이려면, 내부 운영이 얼마나 시장의 수요에 발맞춰(synchronize)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성장을 위한 손쉬운 선택: 밀어내기
성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는 조직은 전년도보다 수십 퍼센트의 성장을 이뤄야 한다는 목표를 정하고 조직원을 한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 즉 단순한 ‘의지’에 기반해 목표를 정하고, 이를 각 조직에 하향식으로 할당해 목표 달성을 종용하는 고전적인 밀어내기식 사업 방식을 사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처음에는 어느 정도 성과로 나타나지만, 결국 시장에 먹혀들지 않는 포화 상태에 도달한다. 밀어내기를 어느 정도 흡수해주던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성장은 답보 상태에 머문다. 가격 할인이나 유리한 거래 조건 등 인센티브를 점점 더 많이 줘야 매출을 낼 수 있게 되면서 수익성은 나날이 악화 일로를 걷게 된다.
 
밀어내기식 사업은 한번 들어서면 발을 뺄 수 없는 마약과도 같다. 거래처에 사정하고 윽박질러가며 그달의 목표 물량을 밀어내면, 다음 달에는 밀어낸 유통 재고 때문에 월 중반까지 매출이 극도로 저조하다. 그러다 월말이 되면 밀어내기의 강도를 더 높여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이러다 보니 많은 기업들에는 월말에 매출이 비정상적으로 몰리는 현상이 낯설지 않다. 즉 임시방편의 상황이 매달 반복된다.
 
밀어내기의 폐해
밀어내기식 사업 방식은 여러 가지로 독이 되어 기업을 위태롭게 한다.
 
첫째, 수익성 악화다. 시장에 정상적으로 흡수되지 않고 쌓인 재고는 재고 관리 비용, 즉 창고 비용, 취급 비용, 운송 비용 등을 증가시킨다. 또 비효율적인 재고 자산에 자금을 묶어버려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킨다. 재고가 장기적으로 쌓이면 시장 가치의 하락으로 인한 손실이 발생할 뿐 아니라, 장기 재고를 없애기 위해 영업 및 마케팅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재고는 자사의 창고에 쌓여 있건, 거래처의 유통 재고로 쌓여 있건 자사의 비용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즉 적정 수준을 초과한 자사의 재고를 셀인(sell-in·자사로부터 유통 채널로 판매)하려면 리베이트와 같은 영업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유통 채널에 재고가 쌓여 체증이 생기면, 셀아웃(sell-out·유통 채널로부터 소비자로 판매)을 위해 제조업체가 다시 한 번 마케팅 비용을 들여야 판매로 연결된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매출이 증가해도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되는 상황에 처한다.
 
둘째, 마케팅 기능이 약해져 중장기적인 수요 창출 기회를 뺏어간다. 마케팅 예산은 시장의 수요를 만들어내기 위해 투자의 일환으로 집행돼야 하는데, 당장의 성과를 위해 유통 채널로 재고를 떠넘기거나 재고로 막혀 있는 유통 채널을 뚫는 목적으로 사용되기 쉽다. 원래 마케팅 활동은 유통 채널에서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 상품 기획에 반영하고, 출시 제품을 소비자에게 홍보하며, 수요를 촉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마케팅 활동이 약화돼 또 다른 밀어내기식 사업의 원인이 된다.
 
마케팅 기능의 부실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래처와의 관계 약화를 살펴봐야 한다. 셀인과 셀아웃 과정에서 밀어내기로 일관하는 공급자는 거래처와의 협상력이 당연히 떨어진다. 마케팅 활동을 위해 필요한 거래처의 협조를 얻어내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거래처는 공급자가 제공하는 리베이트라는 편한 방식을 즐기며 제조업체와 마케팅 협업을 할 필요성을 덜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돈을 얹어 밀어내기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공급처는 마케팅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거래처가 단정해버리는 순간, 앞으로 협업의 기회를 가지기는 어려워진다.
 
이렇게 마케팅 기능이 유명무실해지면, 조직의 관심은 생산 물량을 급히 거래처에 떠넘기고 유통에 쌓여 있는 재고를 소비자에게 밀어내려는 비생산적인 사후 영업 활동에 집중된다. 그리하여 중장기적인 영업 및 마케팅 전략에는 에너지를 쏟지 못한다.
 
셋째, 생산부서와 영업부서 간에 업무 혼선이 생긴다. 생산부서는 영업부서에서 할당한 목표에 맞춰 생산을 하면 경험적으로 회사의 재고가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해 스스로 생산량을 조절하게 된다. 재고에 대해 생산부서가 받는 압박을 고려하면 나름대로의 자구책이다. 반면 영업부서는 생산부서의 자체 결정에 의해 물량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고, 그 결과 판매 목표를 더욱 과장해 요청하지 않으면 매출을 올릴 기회를 놓쳐 영업 실적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학습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생산부서와 영업부서가 자기 부서의 최적화를 위해 각각 다른 목표를 세우다 보니, 관리부서가 제시하는 목표 따로, 생산부서가 바라보는 목표 따로, 영업부서가 믿는 목표 따로, 게다가 타 부서에 요청하는 숫자까지도 각각 따로 돌아가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경영진은 총 매출이나 총 공급 물량 수준에서 사업을 바라보기 때문에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가기 쉽다. 하지만 현업에서는 제품별로 공급량과 수요량이 달라 괴로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영업부서는 생산부서를 조력자가 아닌 방해꾼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상적인 업무 수행보다 예외 상황에 대처하는 일이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부서 간의 계획과 실행의 동기화(synchronization)는 아예 교과서에나 나오는 비현실적 이상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매출 중심으로 평가받는 영업부서, 생산성 중심으로 평가받는 생산부서의 서로 다른 성과 평가 체계도 여기에 일조한다.
 
사내에서 업무가 혼선을 빚으면, 재고가 쌓이는 가운데서도 영업부서가 매출 실기(失機)를 하소연하는 ‘수요-공급의 불일치(demand-supply mismatch)’로 이어진다. 그러다 거래처로부터 공급 안정성(reliability) 및 가시성(visibility)이 좋지 않은 회사라고 낙인찍히면 거래처의 매장 진열대에서 제품이 하나둘씩 경쟁사의 것으로 대체된다. 이는 결국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GP TIP] 수요 기반 생산에 대한 오해: 매출이나 점유율이 떨어진다?
 
거래처와 함께 수요를 예측하고 이를 동기화된 내부 생산을 통해 충실히 충족시키는 게 변화의 핵심이라면, 결국 취합된 수요만큼만 팔라는 말인가? 영업의 성과는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지 않는가? 만약 고객이 사고자 하는 만큼만 공급하면 매출이나 점유율 하락은 불 보듯 빤하지 않은가? 성장을 포기하고 수익성에만 전념하라는 말인가?”
 
시장 지향적 수요 공급 체계로 전환하는 일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경영자는 거의 없다. 다만 매출이나 점유율 확대가 절실한 현실에서 ‘수요에 기반한다’는 말이 경영자들에게는 이상적 원칙으로만 들릴 수도 있다. 이러한 선입견은 시장 지향적 수요 공급 체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다.
 
시장 지향적 수요 공급 체계는 선행적인 마케팅으로 시장 수요 창출을 가능하게 한다는 중요한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 즉 고객이 사고자 하는 만큼만 공급하는 수동적 사업 방식이 아니라, 시장의 수요를 창출해 이를 동기화된 생산으로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경쟁사보다 우위를 추구하는 매우 적극적이며 경쟁적인 성장 지향적 사업 방식이다.
 
수요 기반의 시장 지향적 생산이 의지에 의한 밀어내기 사업 방식보다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요인은 크게 2가지다. 첫째는 공급 안정성과 가시성의 향상으로 얻는 경쟁력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거래처는 계획에 대비한 공급 상황에 대해 꾸준히 피드백하고, 불가피한 문제가 발생할 때는 대안을 제시하는 공급처를 선호한다. 따라서 공급 안정성과 가시성을 제공하는 공급처는 거래처 내의 점유율이 높아지며 성장할 수 있다.
 
둘째는 이로 인해 고객과의 관계가 강화돼 시장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이러한 정보가 내부 동기화 과정에서 조직 깊숙이 전달돼 마케팅 역량이 강화된다는 점이다. 일단 일방적으로 결과를 통보하는 관계에서 상호 협의하는 관계로 바뀌면서 영업과 마케팅이 거래처로부터 얻는 시장 정보의 차원이 현격히 달라진다. 출시된 제품에 대해 소비자가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전개한 마케팅 활동에 대한 반응은 어떤지, 제품의 세부 단위로 정보를 주기적으로 공유하게 된다.
 
무엇보다 과거에는 이러한 시장 정보를 제공했다 해도 영업사원의 머릿속에서 사장돼버리는 일이 많았다. 반면 이제부터는 수요 기반의 내부 동기화 과정 중 마케팅 부서와 경영진에게 정보가 정기적으로 계속 전달된다. 이를 통해 상품 기획에서 채널 관리까지 다양한 마케팅 활동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그 효과가 상세히 모니터링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마케팅 담당자가 감에 의존해 신제품 출시와 단종을 관리하면, 기존 제품이 소진되지 않고 유통 재고로 남아 새로 출시된 제품의 판매를 가로막는 사례가 종종 생긴다. 많은 기업들이 유통 채널과 영업 그리고 마케팅의 단절로 인해 빈번히 겪는 현상이다. 만약 내부 동기화 과정을 통해 마케팅이 유통 재고를 미리 파악하면 다양한 마케팅 수단으로 기존 제품을 매장에서 사전에 소진해버려, 신제품이 출시와 함께 기획한 마케팅 활동 효과를 충분히 보고 팔려 나가도록 도울 수 있다. 즉 현장 상황에 근거해 제품을 출시하고 단종 관리를 함으로써 더 나은 판매 실적을 거두게 된다.
 
이렇듯 현장에 바탕을 둔 마케팅은 현실과 동떨어진, 감에 의존하는 마케팅에 비해 탁월한 성과를 내고, 유통 채널에 체증을 일으키지 않는 안정적 성장을 가능케 한다.

 
시장 지향적 수요 공급 계획 체계
그렇다면 밀어내기식 사업을 중단하기 위해 목표 달성을 포기해야 하는가. 매출 드라이브 없이 향후 성장이 가능한가. 경쟁사가 밀어내기로 치고 나오면 공들여 쌓아온 시장점유율을 단숨에 잃게 되지는 않을까. 모니터그룹은 ‘시장 지향적 수요 공급 계획 체계(demand-driven sales & operation planning)’를 확보함으로써 성장과 수익성 향상이라는 2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본다.
 
시장 지향적 수요 공급 계획 체계는 단순히 경영자의 감(感)이나 의지로 수치적 목표를 세우고 하달해 밀어내기 영업을 하는 사업 방식에서 벗어난다. 즉 시장의 수요를 창출하는 사전 마케팅 활동을 통해 거래처와 함께 시장 수요를 예측하고, 이를 근거로 동기화된 부서 간의 목표를 세워 실행한다. 이로써 공급의 안정성 및 가시성을 확보해 거래처의 만족도를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선순환적 사업 방식이다.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GP TIP] 공동 수요 예측 구현의 장벽
 
우리 시장에는 수요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한 거래처가 없다. 그렇다면 부정확한 수요 예측에 의한 공급 계획은 결국 무의미하지 않은가? 우리 회사에라도 탁월한 수요 예측 방법론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거래처와 공동으로 수요를 예측할 때 부딪히는 첫 번째 장벽은 거래처의 수요 예측 역량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인식이다. 자연히 시장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해주는 툴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만병통치약과 같은 수요 예측 방법을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면 결국 시장 지향적 운영 자체에 대해 회의론이 생긴다. 이것이 두 번째 장벽이다.
 
실제로 수준 높은 시장 지향적 운영을 한다는 회사들도 예측치의 정확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 기업들이 수요와 공급의 동기화를 훌륭히 구현하는 비결은 바로 거래처와의 주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일단 불충분할지라도 수요 예측을 만들어내 계획하며 논의할 근거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발생하는 시장 및 공급의 현실을 반영해 상호 조율한다. 이 과정에서 거래처와 공급처가 모두 불필요한 재고와 매출 실기(失機)를 점차 줄여나가며 훌륭한 시장 지향적 운영을 이루어내게 된다.
 
일반적으로 거래처가 수요 예측을 제공하도록 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대가로 공급자의 서비스 수준, 즉 공급 대응 능력이 달라지지 않으면 거래처도 무성의한 숫자를 형식적으로 전달하게 될 뿐이다. 공급처와 긴밀하게 논의함으로써 유통 채널 자신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체감하면, 거래처는 적극적으로 좀더 정확한 수요 예측에 힘을 기울이고 공급처와의 협업도 확대하게 된다. 공급자 입장에서도 거래처와 긴밀히 협의하고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시장의 실제 수요 패턴을 이해하고, 시장에서 자사 제품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어떤 마케팅 및 영업 활동을 통해 얼마만큼의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거래처와 공급처가 동의하는 수요 예측을 만들어내고, 향후에 더 나은 수요 예측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축적해가면서 실제로 쌍방의 수요 예측 역량이 향상된다. 즉 수요 예측은 책상머리에 앉아 미래를 예측하는 ‘점치기’ 활동이 아니라 거래처와 공급자 간의 협업을 통한 상호 조율이며, 이를 통해 서로 만족스러운 성과를 달성해가는 활동이다.

 
공동 수요 예측
우선 거래처와 함께 수요를 예측하고 공유하는 것(collaborative forecasting)이 그 첫 단추다. 부서 간의 상이한 계획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이제껏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보인 내부 부서들이 동일한 계획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믿을 만한’ 수요 예측이 필요하다. 고객사가 제공하는 수요 예측치는 사내 부서들이 만드는 예측치보다 시장 지향적이다. 물론 고객사가 제공한 수요 예측치도 시장 동향, 과거의 판매 이력, 현 거래처 재고 등 다양한 정보를 통해 검증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공급 계획의 기본 수치가 된다. 이때 수요 예측은 총 물량 수준에 머물면 의미가 없다. 주요 거래처별, 세부 제품별로 만들어야 제대로 된 내부 계획 수립이 가능하고, 진척 결과에 대해 거래처에 의미 있는 피드백을 할 수 있다.
 
공동 수요 예측은 내부 업무를 뒤엉키게 하던 다양한 부서 간의 계획을 통일하는 근거가 될 뿐 아니라, 거래처와의 협업 과정에서 수준 높은 대(對)고객 활동을 정례화하는 효과가 있다. 즉 과거에는 영업사원이 거래처로부터 받은 요청에 대해 기일에 임박해서야 결과를 통보하기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거래처에 할당된 공급 계획과 진척도를 미리 공유할 수 있다. 또 문제가 발생하면 공급자 측에서 제시하는 대안과 거래처 측에서 내놓는 차선책을 사전에 함께 논의하는 보다 나은 대고객 활동을 할 수 있다. 거래처가 느끼는 공급의 안정성은 처음 약속한 물량을 어김없이 납기에 맞춰 공급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계획대로 완벽하게 실행하기가 불가능한 현실에서는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거래처가 미리 인지해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도 공급의 안정성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정도의 공급 안정성을 제공하기만 해도 거래처의 만족도는 현격히 높아진다.
 
내부 협의 및 의사결정 체계를 확보하라
생산과 영업의 동기화를 위해서는 생산부서와 영업부서의 협의 및 의사결정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생산과 영업이 동일한 계획을 수립하고, 원칙에 따라 정기적으로 협의해 계획과 실행을 점검하고, 발생한 문제의 해결책을 협의해 이를 각 부서의 새로운 계획에 반영하는 주기적인 협의 활동이 필요하다. 이를 ‘S&OP(Sales & Operation Planning) 체계’라고 부른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생산과 영업 간의 협의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내부의 동기화는 잘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협의체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내부 동기화가 되고 있다는 말은 전혀 다르다. 실제로 S&OP 미팅이 있다고 하는 기업들의 협의 수준을 파악해보면, 내부 동기화를 달성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는 사례가 대다수다. 대부분 이미 발생한 공급 문제에 대해 귀책 부서를 가려 해결의 책임을 지우거나, 귀책 부서가 명확하지 않을 때는 경영진에게 판단을 요청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이런 수준의 협의는 사고가 터진 후에야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사후적 협의에 불과하다. 시스템에 의해 업무가 수행되는 조직 역량이 아닌, 실무 담당자의 개별 역량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매우 위험한 업무 처리 방식이다.
 
말뿐인 생산-영업 협의는 원칙에 의거한 정형화된 협의 및 의사결정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 크게는 일상적 프로세스와 예외 관리 프로세스를 구분한다. 일상적 프로세스는 주 단위의 단기 계획과 실행을 점검하는 단기 협의체, 월 단위 혹은 분기 단위의 계획과 실행을 합의하는 중장기 협의체를 명확히 구분하고, 협의체의 성격에 따라 참여 부서, 직급, 논의 사항을 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단기적 협의에서는 생산과 영업의 실무자가 단기 계획을 확정하고, 발생 가능한 단기 문제에 대해 대응하면 충분하다. 하지만 중장기적 협의에서는 이동 계획(moving plan)을 확정하고, 중장기 구간에서의 마케팅과 개발 및 생산 문제와 그 해결을 위한 활동 계획(action plan)까지 논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장기적 협의에는 경우에 따라 마케팅 부서와 연구개발(R&D) 부서까지 포함해야 하고, 경영진도 참여해 필요한 의사결정까지 도달하도록 운영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부서 간의 계획이 동기화되고, 실행상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 노출해 해결책을 결정하며, 거래처에 공급 안정성과 가시성을 제공할 수 있다.
 
거래처와의 공동 수요를 예측하고 생산과 영업을 동기화하는 것은 상호 보완적 관계다. 거래처와의 수요 예측 활동이 내부 운영의 기본 계획을 수립하는 데 필요하듯, 생산과 영업이 동일한 계획 아래 움직이는 동기화가 확보돼야 거래처에 의미 있는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돼야만 지속적으로 거래처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다.
 
경쟁력 향상을 위한 비즈니스 툴
공동 수요 예측과 정형화된 생산-영업 협의 및 의사결정 체계를 확립해 공급 가시성을 향상시키면, 영업부서가 대(對)거래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무기로 이를 활용해야 한다. 즉 앞서 언급했듯 영업이 거래처가 요구하는 제품을 얼마만큼 어느 시점에 공급할지 사전에 정기적으로 거래처에 알려주고, 공급 문제가 발생하면 그 이유가 무엇이며 어떤 대안이 있는지를 제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거래처의 만족도가 올라가고, 결국 거래처 내의 점유율 향상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공급의 가시성이 확보되면 자신감을 갖고 영업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신감은 거래처에 믿음을 심어주고 거래처와의 협상에서 더 나은 결과를 얻게 하는 원동력이다. 즉 새로운 프로세스가 영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비즈니스 툴(tool)로 활용될 수 있다.
 
경영진도 새로운 프로세스를 경쟁력 강화를 위한 비즈니스 툴로 활용해야 한다. 과거에 경영진이 쥐는 것은 대부분 총 매출과 총 판매량 위주의 실적,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에 기반한 향후 매출 계획, 최근 발생한 중대 이슈 정도였다. 따라서 경영진은 성과 달성을 위해 분발하라고 현업을 단순히 독려하거나, 발생한 문제에 대해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속성상 책임을 묻는 논의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새로운 프로세스를 통해 주요 거래처의 향후 수요 및 자사의 공급 계획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확인하게 되면, 어떤 거래처와 어떤 제품에 향후 어떤 성과 위협 요소가 존재하는지를 소상히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개별 문제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실무진과 대책을 논의하고 활동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할 수 있어 현장의 실행력은 향상된다. 또한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논의 및 의사결정 과정이 반복되면, 현장 실무자도 감에 의존해 주먹구구식으로 하던 업무의 수준을 점차 높이는 효과도 있다.
 
심도 있는 변화 관리가 성공의 핵심
시장 지향적 수요 공급 계획 체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심도 있는 변화 관리 과정이 필수다.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들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보기술(IT)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기꺼이 대규모 투자를 하더라도, 기대했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기존 업무에 새로운 업무가 더해졌다는 실무진의 불평이 쏟아지는 사례가 많다. 이는 새로운 변화가 단지 업무 프로세스의 변화일 뿐이라고 잘못 판단하는 데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시장 지향적 수요 공급 계획 체계는 단순히 순서도에 그려지는 업무 과정의 변화가 아니다. 사업에 대한 철학의 변화이자, 실무적으로는 개개인에게 고착된 업무 행태의 변화다. 즉 시장에 밀어내던 방식에서 거래처와 협업해 시장으로부터 끌어당기는(pull) 사업 방식으로의 변화다. 이를 구현하려면 새로운 프로세스를 기존에 익숙해진 업무 방식을 완전히 대체하는 새로운 업무 방식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영진이 진정한 변화의 의지를 갖고 이를 조직 내부에 알리는 게 중요하다. 변화 추진 과정에서 경영진은 단기적 매출 성과를 위해 과거의 밀어내기를 지속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기 마련이다. 당장의 실적에 급급해 ‘그래도 일단 이번 달 매출은 늘리고 보자’고 하거나 ‘공장은 무조건 생산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시장 지향적 생산과 모순된 방향을 제시하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영업은 다시 밀어내기를 시작하고, 공장은 생산성에 유리한 제품 위주로 생산해 영업부서에 다시 이를 억지로라도 팔아달라는 요청을 하게 돼 성공적인 변화에서 멀어져버린다. 따라서 경영진이 단기 성과에 대한 유혹과 공급자 중심적 사고를 뿌리치고 변화의 노력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경영진의 의지가 단기간의 ‘반짝 효과’에 머물지 않으려면 성과 평가 체계라는 더욱 공고한 제도를 병행해야 한다. 생산과 영업의 실무자에서 임원까지 공급자 기반이 아닌 시장 지향적 새로운 체계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평가받는 지표를 설계해 성과 보상 체계에 반영해야 비로소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또한 실무 수준에서는 새 프로세스가 몸에 배어 오히려 기존 방식보다 업무를 더 잘할 수 있다고 느끼도록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는 툴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심도 있는 현장 트레이닝(on-hand training 혹은 workplace learning)을 실시해야 진정한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
 
송기홍 모니터그룹 아시아 공동대표는 연세대에서 경제학 및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한국P&G와 맥킨지를 거쳐 1999년 모니터그룹에 입사했으며, 한국과 중국 지역을 담당하는 아시아 최고위 임원이다. 강석호 팀장은 서울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다. 전자·반도체·디스플레이·통신 산업의 경쟁 전략과 마케팅 및 영업 전략 프로젝트를 비롯해 수요 공급 계획 및 생산-영업 협의 체계의 혁신을 주도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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