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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가격을 결정한다면?

김남국 | 30호 (2009년 4월 Issue 1)
어느 레스토랑이 “고객들이 원하는 만큼만 밥값을 내라”고 선언하면 어떻게 될까? 고객들은 아예 돈을 내지 않아도 되고, 1만 원 또는 10만 원을 내도 된다. 이 레스토랑은 고객들의 ‘무전취식’으로 결국 망하게 될까?
 
고객이 원하는 만큼 돈을 내게 하는 가격 정책을 ‘PWYW(Pay What You Want)’라고 부른다. 보통 가격 결정권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회사가 갖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가격 결정에 참여하는 혁신적 모델들이 속속 등장했다. 대표적인 예가 경매다. 경매에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격을 제시해 판매자가 이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을 받아들인다. PWYW는 경매보다 훨씬 혁명적이다. 경매는 소비자가 가격 결정에 일부 참여하는 수준이지만, PWYW는 가격 결정권을 몽땅 고객에게 위임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마케팅 저널인 ‘Journal of Marketing’ 최근 호(2009년 1월 호, Vol. 73, 44∼58)에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실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주용 연구원이 이끈 연구 결과, PWYW를 시행하더라도 식당은 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프랑크푸르트 시내 한 뷔페식당에서 고객들이 마음대로 가격을 지불하도록 했다. 평소 이 뷔페식당 이용 가격은 7.99유로. 하지만 PW YW 도입 후 고객들은 평균 6.44유로를 지불했다. 순전히 경제 논리로만 보면 고객들은 돈을 한 푼도 내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실험이 진행된 2주 동안 고객들은 꽤 높은 가격을 지불했다. 게다가 매출도 32%나 늘어났다. 새로운 가격 정책에 흥미를 느낀 많은 신규 고객들이 식당을 찾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극장과 음료 가게에서도 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영화관의 평균 티켓 가격은 6.81유로였는데, PWYW 정책을 시행한 후 고객들은 평균 4.87달러를 지불했다. 음료 가게에서는 PWYW 시행 전 평균 판매 가격이 1.75유로였는데, 고객들이 정한 자발적 가격은 평균 1.94유로에 달했다. 앞서 얘기한 식당과 달리 영화관은 외부에 가격 정책 변경을 홍보하지 않은 탓인지 매출이 줄어들었으나, 음료 가게는 3% 정도 매출이 늘었다.
 
PWYW의 효과가 드러나자 실험 대상이 됐던 뷔페식당은 아예 이 방식으로 가격 정책을 바꿔버렸다. 논문 저자들은 실험 이후 몇 달이 지났지만 이 식당이 여전히 장사가 잘된다고 전했다.
 
사람들은 왜 공짜로 즐길 기회를 마다하고 상당히 합리적인 수준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일까. 동아비즈니스리뷰(DBR) 19호(2008년 10월 15자)와 20호(2008년 11월 1자)에 그 실마리가 있다. 정재승 KAIST 교수는 ‘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 글에서 최후통첩 게임을 소개했다. 이 게임에서는 한 사람이 1만 원 가운데 자기 몫과 상대방 몫을 나눠 제안하고, 상대방은 이 돈을 받을지 말지를 결정한다. 제안자 입장에서는 9999원 대 1원으로 제시하는 게 가장 경제적으로 타당하지만, 상당수는 비교적 공평하게 돈을 나눠 갖겠다고 제안했다. 또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어차피 공짜여서 1원이라도 받는 게 이익이지만, 8대 2나 9대 1의 제안이 왔을 때에는 공평하지 않다고 판단해 제안을 거절했다. 인간이 공평성을 추구하는 심리를 갖고 있다는 게 이 게임으로 입증됐다.
 
물론 이번 PWYW 실험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독일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지역적, 문화적 특성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 업종과 산업에 따라 PWYW는 대단히 위험한 전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파격적인 가격 책정도 상황에 따라 성공할 가능성이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이 연구 결과는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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