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복고열풍의 의미는?

30호 (2009년 4월 Issue 1)

난루어구샹(南羅古巷)은 베이징(北京)의 중심인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북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후통(胡同·골목길)이다. 폭 10m 남짓한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베이징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술집과 카페,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흔한 유흥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지역은 베이징에서도 몇 안 되는 후통 보호구역이다. 골목 안쪽으로 난 더 좁은 길로 들어서면 베이징의 전통 가옥인 사합원(四合院)들이 가득하다.
 
골목 어귀에 있는 한 사합원에 ‘용문객잔(龍門客棧)’이라는 큰 간판이 걸려 있어 호기심에 들어가봤다. 빨간색 치파오(旗袍·원피스 형태의 중국 전통의상)를 입은 종업원이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손님. 숙박을 하실 건가요, 아니면 식사를 하러 오셨나요? 저희 사합원 객잔에 처음 오신 것 같은데, 먼저 한번 구경부터 하시겠어요?”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담장 안쪽의 정원으로 들어서니, 아늑한 정원에서 서양인 손님들이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후원에는 5평 남짓한 작은 객실들이 복도를 따라 배치돼 있었고, 객실 안에는 옛날 냄새가 물씬 나는 고가구들이 가득했다.
 
‘중국다운 것’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
중국인들은 문화혁명 시기(1966∼1976년)에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를 스스로 파괴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 상황을 ‘역사를 거스른 10년’으로 평가할 정도로 실수를 자인하고 있다.
 
유교를 포함한 모든 전통문화와 사상은 문화혁명 기간 동안 ‘4가지 낡은 것을 타파하자(破四舊)’는 구호 아래 전면적으로 부정됐다. 혁명이 남긴 상처는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아물지 않았다. 조상들이 남긴 과거 유산을 폄하하는 풍조는 문화혁명 이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됐다.
 
그렇지만 전통문화의 가치는 최근에 들어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사합원, 골동품, 서화, 고가구 등은 엄청나게 비싼 값에 거래되며, 국학(國學) 관련 서적들은 지식인의 서가를 채우고 있다. 또 전국에서 엄청난 숫자의 박물관들이 새로 지어지고 있다.
 
이런 복고 열풍에는 사실 한국 등 주변 국가의 자극도 큰 몫을 했다. 한국인들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분노했던 것처럼, 중국인들은 2006년 11월 ‘강릉 단오절’이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 유산에 지정된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 후싱도우(胡星鬪) 베이징 이공대학 교수는 “주변국들의 전통문화 보호 움직임이 중국의 전통문화 부흥에 촉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중국의 전통문화 부흥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2008년에는 1966년 문화혁명 이후 폐지됐던 전통명절(청명절, 단오절, 중추절)이 휴일 법령 개정을 통해 국가 공휴일로 부활했다. 그 이전 중국의 법정 공휴일은 춘절과 노동절, 국경절뿐이었다.
 
복고의 영역은 과거에 공산당이 철저하게 부정했던 전통 사상까지 아우르고 있다. 유교 사상은 ‘국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중국 전역을 강타하는 중이다. 위단(于丹) 베이징사범대 교수가 출간한 ‘논어심득(論語心得)’은 400만 권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논어’와 ‘도덕경’ 등 유교 경전은 물론 ‘홍루몽’ 같은 고전소설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베이징대 등 명문 대학에서는 학비가 연 3만 위안(약 620만 원)씩 하는 ‘국학 교실’을 운영해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유교는 대중문화계에서도 흥행 키워드로 다뤄진다. 공자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와 연극이 잇달아 방영되거나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유명배우 저우룬파(周潤發)가 주연을 맡은 블록버스터 영화 ‘공자(孔子)’도 개봉 한참 전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中華民族 大國崛起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식자층에서는 ‘따궈줴치(大國崛起)’가 대유행이었다. CCTV의 특집 프로그램 ‘따궈줴치’의 반향이 2006년 11월 방영 후 2년 가까이나 이어진 것이다. ‘강대국이 솟구쳐 일어남’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중세 이후 세계를 호령했던 9개국의 발전사를 ‘객관적’ 시각에서 조망했다. ‘객관적’이라는 말을 쓴 것은 중국 제작진이 ‘서구 열강들은 식민지 수탈이라는 강압적 방법을 통해 강대국으로 부상했다’는 사회주의적 역사관을 고집하지 않고, 그들의 내재적 성장 요인에도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중국 밖에서는 ‘따궈줴치’가 21세기 초강대국이 되려는 중국의 의지와 신중화주의를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것은 중화사상에 대한 중국인들의 묘한 반응이다. 젊은이들에게 “따궈줴치가 최근 화두가 됐는데 요즘 중국인들의 중화사상은 어느 정도인가?”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요즘 세상에 중화는 무슨 중화…”라고 답한다. 하지만 곧 “우리가 따궈줴치를 외치는 건 미국을 상대하기 위해서이며, 미국에 질 수는 없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이미 미국에 필적할 만한 국력을 가졌다는 자신감이 은연중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중국의 국력 수준과 한참 거리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중화사상은 알게 모르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근간에는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생각이 숨어 있다.
 
따궈줴치를 통해 중국인이 고찰해본 ‘강대국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강성한 문화가 없으면 대국도 없다’는 포인트다. 최근 중국이 강조하는 복고(復古)니, 국학이니 하는 말들은 결국 중국이 진정한 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정책적 포석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이런 움직임을 꼭 패권주의나 중화민족주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중국적 전통을 되살리자는 그들만의 ‘우리 것 찾기’ 운동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화사상과의 충돌 미리 막아야
우리 기업들은 이러한 중국의 트렌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용해야 할까. 우선 필자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4호(2009년 1월 1자)에서 지적했듯, 중화주의가 배타적 성향으로 치닫는 상황을 예상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중국 소비자들이 한국 기업과 관련한 특정 사안이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린다고 오해한다면 해당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이나 브랜드 이미지 하락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의 리더들은 자사의 제품이나 마케팅 활동 중 중화사상과 충돌할 수 있는 요소를 미리 찾아 제거해야 한다.
 
더 나아가 중국인들의 애국심이나 취향에 호소할 수 있는 마케팅 전술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펩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간 동안 기존의 파란색 캔을 버리고 중국인의 정서에 맞는 빨간색 캔을 쓰는 파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전개했다. 까르푸는 대주주인 LVMH가 달라이 라마를 지지한다는 소문이 중국에 퍼지면서 대대적인 불매 운동이 일자 크게 당황했다. 이에 중국 국기를 본뜬 유니폼을 모든 종업원에게 입혀 ‘까르푸는 중국의 친구’라는 애국심 마케팅을 전개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은 과거보다 한층 더 무섭게 변한 중국 국민의 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작은 실수로 자칫 여론의 마녀사냥에 휘말렸다가는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을 두려워만 하기보다는 긍정적인 여론을 만들어내겠다는 사고의 전환도 필요하다. 중국 정부로부터 ‘믿을 수 있는 동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지멘스는 개혁 개방 30년 동안 ‘변함없는 중국 정부의 파트너’ 역할을 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멘스는 이러한 우호적인 정부 관계를 최대한 활용해 수천만 위안 규모의 대규모 정부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제 ‘메이드 인 코리아’ 이미지를 강조하는 전략에서 벗어나 새로운 브랜드 전략을 세워야 한다. 글로벌 기업 이미지를 최대한 강조하고, 중국 정부나 소비자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좋은 기업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좋은 예다. ‘민족 감정 리스크’에 가장 많이 좌우되는 일본 기업들은 철저한 주재원 교육을 통해 존경받는 기업 이미지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0호 오프라인 매장의 반격 2020년 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