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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의 비밀 : 호기심 자극해 팬덤 키우는 스위프트·아이유

강력한 팬덤 만드는 ‘의문(Q)’의 마법
대중이 채워 넣을 ‘빈칸’을 설계하라

권문혁,정리=백상경 | 443호 (2026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월드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성공은 뛰어난 음악성 때문만은 아니다. 핵심은 대중을 끝없이 궁금하게 만드는 ‘의문(Q)의 설계’에 있다. 콘텐츠 곳곳에 복선을 심어두고 결정적인 정보를 비워두면서 미완성의 서사를 써 내려간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강한 인지적 갈증을 느끼고 빈 서사를 채우고 싶게 만드는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를 유발한다. 이러한 전략은 한국의 톱스타 아이유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아이유 역시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고도의 은유와 퍼즐로 쪼개어 대중에게 전하며 자신의 팬으로 끌어들였다. 사람을 강렬하게 몰입시키고 팬덤으로 만드는 힘은 완벽하게 닫힌 정답에 있지 않다. 모든 것을 구구절절 설명하려는 친절함을 버리고 스스로 탐구하며 의미를 채워 넣을 수 있는 ‘정교한 빈칸’을 설계해야 한다.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과 테일러 스위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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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실감하기가 조금 어렵지만 테일러 스위프트는 실로 어마어마한 월드 스타다. 미국 빌보드 역사상 최초로 1위부터 10위까지 자신의 곡으로 채우고 ‘에라스 투어(The Eras Tour)’로 공연 역사상 최초로 티켓 매출 20억 달러를 돌파한 인물. 그가 움직이면 도시 경제가 흔들리고 항공권과 호텔 가격이 요동친다. 미국 연준(Fed)이 공식 보고서(Beige Book)에서 이 슈퍼스타가 진행하는 콘서트의 파급력을 이례적으로 언급했을 정도다. 언론은 아예 ‘스위프트노믹스(Swiftnomics)’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음악적 성과도 압도적이다. 미국 팝계의 거장들을 제치고 그래미(Grammy) 최고 권위인 올해의 앨범상(Album of the Year)을 역사상 최초로 4차례 수상했다. 타임지 ‘2023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에도 단독 선정됐다. 한마디로 인기, 돈, 예술적 권위까지 완벽하게 통일한 ‘절대 무적’이다. 어느 순간 그는 유명 가수의 범주를 벗어나 살아 숨 쉬는 거대 기업이자 현대 대중문화가 도달할 수 있는 위대한 문화 현상 그 자체가 됐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분위기가 꽤 다르다. 미국 차트에서 1위를 밥 먹듯 하지만 국내 멜론 차트에서는 100위권 진입조차 버거운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인기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는 국내 스위프티(Swifties, 스위프트 팬덤)도 인정하는 거의 공인된 팩트다. 2023년 국내 개봉한 영화 ‘에라스 투어’ 역시 글로벌 열풍과는 온도 차를 보였다. 일부 상영관의 텅 빈 객석 사진이 팬들 사이에서 씁쓸한 밈처럼 돌 정도였다.

기막힌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또 하나 있다. 국내 팬덤 사이에서 오래 회자되는, 이른바 ‘테일러 스위프트 지하철 굴욕 사건’이다. 2011년 ‘Speak Now World Tour’ 공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가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승객들 틈에 끼어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사진이 지금도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당시 그는 이미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거머쥔 미국 최고의 청춘스타였다. 앨범을 내면 첫 주에 100만 장이 팔려나가며 북미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던 슈퍼스타였지만 서울 지하철 안에서는 그저 ‘키 큰 외국인 관광객 A 씨’쯤으로 보였던 것이다.

지구촌을 뒤흔드는 글로벌 스타가 한국에선 왜 기운이 쑥 빠지는 걸까? 이 기묘한 현상은 엔터산업에서 말하는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의 전형적인 사례다. 한 문화권에서 압도적인 콘텐츠가 다른 문화권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언어, 정서, 맥락의 차이로 인해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현상 말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장벽은 특히 ‘텍스트’에서 비롯된다. 그의 음악은 단순한 팝 음악 감상이 아니라 연애와 이별의 서사를 해독하는 일종의 세계관 소비에 가깝다. 가사 속 ‘그 남자(he)’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뮤직비디오 속 숨겨진 메시지나 장난(이스터 에그, Easter Egg)1 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만 비로소 콘텐츠가 완성된다.

반면 한국의 음악 소비 방식은 상대적으로 훨씬 직관적이다. 한마디로 즉각 감정이 꽂히는 멜로디와 폭발적인 가창력이 주류 시장에서 강세를 보인다. 특히 노래방에서 핏대를 세우며 3단 고음을 내질러야 속이 뻥 뚫리는 한국인의 유별난 ‘고음 사랑’ 문화 속에서 컨트리 장르에 뿌리를 둔 테일러의 서사 중심 창법은 어딘가 클라이맥스가 빠진 듯 밋밋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우리에게는 번역기가 필요 없는 ‘국내 원탑 싱어송라이터’ 아이유가 10년 넘게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결국 한국 대중에게는 테일러 스위프트보다 아이유의 감성이 훨씬 더 직접적으로 꽂히는 셈이다.

결정적으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은 팬에게 상당한 ‘노동’을 요구한다. 앨범 하나가 나오면 과거 인터뷰와 연애사, 가사 속 복선, 팬덤 내부 밈까지 줄줄이 따라가야 비로소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가뜩이나 바쁘고 피곤한 한국인에게 남의 나라 셀럽의 복잡한 연애사를 영어로 독해하며 덕질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미국 팬들에게는 놀이이자 참여 문화지만 한국 대중에게는 피로한 숙제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이유다.

흥미롭게도 그의 이런 특징은 과거 밥 딜런(Bob Dylan)이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가졌던 위상과 묘하게 겹친다. 대중음악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밥 딜런이 ‘가사가 너무 깊고 문학적이라서’ 대중성에 한계가 있었다면 테일러 스위프트는 ‘가사가 너무 촘촘하고 개인적인 서사라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멜로디의 즉각적인 타격감을 우선시하는 한국 시장에서 두 아티스트의 음악은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제한되기 쉽다.


팬을 탐정으로 만드는 ‘궁금하게 만들기’

한국 시장에서는 즉각적인 쾌감을 방해하던 이 ‘서사 중심 음악’이 영미권 시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힘으로 작동한다. 가사의 숨은 맥락을 자연스럽게 읽어내는 대중을 만나는 순간,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은 단순한 팝송이 아니라 하나의 참여형 콘텐츠로 변모한다. 팬들은 노래와 뮤직비디오, 인터뷰와 SNS를 오가며 스스로 힌트를 찾아내고 의미를 추리하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놀이처럼 소비한다.

전 연인과의 이별, 복잡미묘한 연애 과정에서 빚어지는 설렘과 상처, 질투와 후회 같은 개인적인 경험들이 실제 인물과 연결되는 순간, 팬들은 마치 세계적인 스타의 비밀 일기장을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강렬한 몰입감을 느낀다. 결국 테일러 스위프트의 진짜 재능은 단순히 노래를 잘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하고 해석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바로 이것이 그를 세계 최정상의 팝스타로 만든 힘이다.

이처럼 대중의 몰입을 유도하는 ‘궁금하게 만들기’가 흥행에 기여하는 위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필자는 과거 한 방송사에서 PD로 활동할 무렵, 시청률의 비밀을 탐구하다가 이를 ‘Q(Question) 모델’이라는 아이디어로 발전시킨 적이 있다. Q 모델은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돌아간다. 예를 들어 “누가 최종 우승자가 될까?”처럼 결론을 알 수 없는 커다란 질문을 던지는 거시적 의문이 작동해야 한다. 시청자가 진입한 후에는 1분 1초의 미시적 단위마다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데?”라는 작은 궁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쉴 새 없이 이어져야 한다. 프로그램 전체를 감싸는 거시적 의문과 1분 1초를 쪼개 시청자를 안달 나게 만드는 미시적 의문이 촘촘하게 맞물려 돌아갈 때 콘텐츠는 하나의 큰 ‘의문의 덩어리’로 진화한다.

“60초 후에 공개됩니다!”는 시청자들이 수없이 들었던 대중적인 Q 모델의 상징이다. ‘슈퍼스타 K’에서 MC 김성주의 이 멘트는 한국 방송 사상 미시적 의문과 완결되지 않은 일에 불편을 느껴 그 일에 대한 잔상이 지속되는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를 가장 절묘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이 원초적 호기심을 찌르는 개그맨 허경환의 유행어도 ‘의문과 호기심(Q)’이라는 흥행 키워드를 비튼 매우 재치 있는 유머였다.

테일러 스위프트 역시 이 Q 모델의 원리를 팝 음악 시장에 완벽하게 적용한 케이스다. 그의 전략이 영리한 이유는 모든 해답을 선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데 있다. 심리학에서는 마무리되지 않은 정보나 비어 있는 서사를 마주했을 때 인간이 강한 인지적 갈증을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그 빈칸을 채우려 집착하는 현상을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부른다. 사람을 오래 붙잡아 두는 콘텐츠는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콘텐츠가 아니라 어딘가 결정적인 한 조각이 빠져 있는 콘텐츠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바로 그 ‘빈칸’을 누구보다 능숙하게 활용하는 아티스트라고 볼 수 있다.

스위프트의 엄청난 글로벌 메가 히트는 단순히 운이 좋았다거나 시대의 흐름을 잘 탔다는 식의 게으른 분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노래와 가사, 뮤직비디오와 인터뷰 곳곳에 질문을 심어두고 팬들이 그 질문을 따라가며 스스로 의미를 완성하게 만들었다. 물론 뛰어난 작사·작곡 능력과 시대감각, 팬덤 운영 전략 같은 여러 요소도 함께 작동했다. 다만 그 관심과 참여를 오래 지속시키고 증폭시킨 중요한 동력 중 하나가 바로 의문의 설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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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과 서태지의 경우

시대와 국경을 불문하고 대중의 뇌리에 공백을 남겨 스스로 추리하게 만드는 이 의문 던지기 전략은 한국 가요계 역사에서도 이미 그 폭발력을 뚜렷하게 증명한 바 있다. 1978년 심수봉의 데뷔곡 ‘그때 그 사람’은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주던…” 그 ‘남자’의 실체를 끝내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당시 대중은 가사 속 ‘기타를 쳐주던 그 남자’가 당대 최고의 남성 톱스타 누구일 것이라며 각종 추측과 해석을 쏟아냈고 이 모호한 빈칸은 노래 바깥에서 또 다른 이야기와 입소문을 증폭시켰다. 완전히 설명하지 않고 결정적인 공백을 남겨두는 이 방식은 이후 팬덤 문화와 해석 공동체의 원형이 되는 의문의 설계와도 맞닿아 있다.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앨범도 마찬가지다. 당시 10대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는 발매되자마자 엄청난 추리 게임 소재로 변모했다. 그때 PC통신을 중심으로 “교실 이데아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면 ‘피가 모자라’라는 악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괴담이 빠르게 퍼져나갔던 것이다. 수십만 명의 청소년이 카세트 플레이어의 모터가 타들어 갈 정도로 테이프를 역재생하며 그 ‘비밀의 소리’를 찾기 위해 몰두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괴담의 진위가 아니라 서태지가 취한 ‘시큰둥한 대처’다.

만약 그가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음향 전문가와 함께 주파수를 분석하고 “이것은 기계음의 왜곡일 뿐이다”라고 친절하게 해명했다면 대중의 호기심은 그 즉시 차갑게 식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서태지는 기묘한 침묵을 지키거나 모호하게 반응하며 대중의 뇌리에 생긴 커다란 ‘공백’을 그대로 방치했다. 이 의도된 방치는 팬들에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했다. 그들은 음악을 단순히 감상하는 것을 넘어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음악 추적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가사 한 줄, 숨소리 하나까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이 지독한 해석의 노동은 결국 서태지의 음악을 단순한 댄스곡이 아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처럼 소비하게 만들었다.

심수봉의 가사 속 기타를 쳐주던 그 사람의 정체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백워드 매스킹 괴담, 스위프트의 가사 속 비밀 메시지는 같은 선상에 놓인다. 의문을 던져놓고 자이가르닉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 즉 ‘궁금하게 만들기’라는 아주 기본적인 흥행 코드의 다른 변주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가요계의 사례와 스위프트 사이에 존재하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의문이 던져진 시대적 배경이다. 심수봉이나 서태지 시절의 추리와 디코딩이 다방이나 교실 안 입소문에 머물렀다면 스위프트는 SNS를 통해 궁금증을 글로벌 스케일로 폭발시켰을 뿐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감정의 거울’

SNS라는 확성기만으로 팬덤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안을 채우는 이야기가 빈약하다면 호기심은 일회성 가십으로 끝난다. 스위프트가 이 한계를 넘어선 힘은 사적인 감정 체험을 누구나 해석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는 글쓰기 능력에 있었다.

스위프트는 10대 초반부터 시와 소설을 쓰던 문학소녀였다. 2022년 뉴욕대(NYU) 졸업식 연설에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나의 글쓰기의 연장선상에 불과할 뿐이다(Everything I do is just an extension of my writing)”라고 고백했듯 그의 음악은 철저히 문학적 서사에 기반한다. 흥미로운 점은 스위프트의 문학적 능력이 대중의 감정과 무의식을 정확하게 건드렸다는 사실이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다. 필자는 ‘감정이 함정이 될 때’가 많은데 가끔 그런 나 자신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사람은 스스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다. 우리는 왜 갑자기 우울해졌는지, 왜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해석하려 한다. 드라마와 영화 속 인물에 몰입하고 유명인의 사생활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필자가 방송에 입문한 뒤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현장의 경구도 바로 “사람은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였다.

스위프트는 바로 이 ‘사람에 대한 관심’을 세련된 방식으로 가공해 낼 줄 아는 아티스트다.2 스위프트는 매끈하게 가공된 플라스틱 이미지가 아니라 피가 돌고 숨을 쉬는 ‘진짜 자기 이야기(Authentic Narrative)’를 활용하는 데 매우 유능하다. 연애와 상처, 후회 같은 사적인 경험들을 가사 속에 녹여놓고 “도대체 이 노래의 주인공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초기 대표곡인 ‘Teardrops on My Guitar (2007)’에서는 노래 시작부터 “드루가 날 바라보네(Drew looks at me)”라며 실존 인물 드루의 이름을 툭 던져버린다. ‘You Belong With Me(2009)’에서는 치어리더 여자 친구를 둔 남학생을 짝사랑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관계의 결말은 끝내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스위프트는 감정을 단순히 설명하는 대신 장면을 제시하고 비어 있는 결론은 청자 스스로 채우게 만든다. 대중은 그 여백 속에 각자의 가슴 아팠던 짝사랑과 후회, 지나간 연애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투영한다.

이 전략의 정수를 보여주는 곡이 바로 ‘All Too Well(2012, 2021 재녹음 버전)’이다. 스위프트는 “너의 여동생 집에 내 스카프를 두고 왔어(I left my scarf there at your sister’s house)” 같은 구체적인 소품에서 출발해 “우린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며 북쪽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지(We’re singing in the car, getting lost upstate)” 같은 장면들을 이어 붙인다. 또 “냉장고 불빛 아래 부엌에서 춤을 추고(dancing ’round the kitchen in the refrigerator light)” “나를 바라보느라 빨간불을 지나칠 뻔했지(You almost ran the red ’cause you were lookin’ over at me)” 같은 세밀한 기억들이 반복된다. 청자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도대체 이 관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바로 이 의문이 팬들을 단순한 청취자에서 적극적인 팬덤으로 바꿔 놓는다.

이것은 사람들이 연애에 빠질 때 느끼는 집착의 원리와 유사하다. 처음엔 단순 호감일 수도 있지만 차츰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왜 그런 말을 했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점령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상대에게 더 강렬한 감정을 갖게 되는 힘은 ‘상대의 감정과 내면을 알고 싶은 욕구’에서 파생한다. 상대가 완전히 이해되는 순간, 그 관계는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해석 중인 단계(공백이 남아 있는 상태)라면 남녀의 연애 감정은 훨씬 더 커지게 마련이다.

보통 스타는 “나를 봐!”라고 외치지만 스위프트는 자기 이야기를 통해 청중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대중은 스위프트의 연애와 상처를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연애 기억과 감정을 그 안에서 발견한다. 테일러 스위프트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2020)’를 보면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객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대중 앞에서 결코 ‘완벽함’을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흔들리는 감정과 외부에서 가해진 상처, 미숙함과 후회 같은 내면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인간은 빈틈없이 완벽한 대상을 존경하고 우러러볼 수는 있다. 하지만 기꺼이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투영하고 공감하는 대상은 역설적이지만 ‘결핍이 보이는 사람’이다. 스위프트는 흠결 없는 우상으로 군림하는 대신 기꺼이 자신의 결핍을 전시함으로써 대중이 스스로 삶을 비춰볼 수 있는 ‘감정의 거울’을 완성해 낸다. 이렇게 형성된 감정적 몰입은 단순한 공감에서 끝나지 않는다. 스위프트는 이 대중의 몰입을 대중 스스로 그 의미를 추적하고 해석하게 만드는 집단적인 ‘추리 게임’으로 확장했다.

이런 추리와 해석의 놀이는 단순한 가사 해석에서 끝나지 않는다. 스위프트가 숨겨놓은 ‘이스터 에그(Easter Egg)’ 전략은 대중으로 하여금 많은 물음표를 낳는다. 그는 ‘1989(2014)’ 앨범 가사집 속에 무작위로 대문자를 숨겨놓아 메시지를 찾게 만들었고, 뮤직비디오 속 시곗바늘이나 재킷의 단추 개수 같은 디테일에도 다음 앨범을 암시하는 암호를 심어놓았다. ‘Reputation(2017)’ 공개를 앞두고는 SNS 게시물을 모두 삭제한 뒤 뱀 영상만 남겨 대중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과거의 팬들이 혼자서 추리하고 상상하는 데 그쳤다면 스위프트가 던진 미완성의 떡밥은 SNS라는 초연결망을 타고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팬들은 영상을 0.1초 프레임 단위로 멈춰가며 화면 속 상징과 암호를 찾아냈고 서로의 해석을 교차 검증하는 능동적인 ‘탐정’이자 하나의 ‘해석 공동체’가 돼 갔다. 음악 소비가 한 번 휘리릭 듣고 끝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참여형 놀이로 바뀐 것이다. 팬들은 다음 복선과 숨은 맥락을 추적하며 자연스럽게 스위프트 세계관을 확장해 나갔다.


한 차원 높은 심리전 :
스스로 설계자(Mastermind)가 되다


가사와 영상 속 퍼즐 맞추기에 대중이 익숙해질 즈음 스위프트는 한발 더 나아가 아티스트의 정체성 자체에도 물음표를 던졌다. 바로 끊임없는 ‘장르 변화와 자기 혁신’이다. 그는 컨트리 가수로 데뷔해 팝의 여왕으로 올라섰고, 팬데믹 기간에는 돌연 인디 포크 앨범 ‘Folklore(2020)’를 발표하며 기존의 이미지를 다시 갈아엎었다. 성공한 공식에 안주하지 않을 때마다 대중은 다시 묻는다. “다음엔 도대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이 거시적 의문은 매 앨범 발매를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었다.

소속사와의 음원 권리 분쟁 이후 과거 앨범을 다시 녹음한 ‘테일러 버전(Taylor’s Version)’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단순히 옛 노래를 다시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미공개 곡들에 ‘금고에서 꺼낸(From the Vault)’이라는 이름을 덧붙이면서 ‘저 금고 안에는 또 무엇이 들어 있을까’라는 기대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여기에 공연마다 두 곡만 바꿔 부르는 ‘서프라이즈 송’ 코너까지 더해지자 공연장에 가지 못한 전 세계 팬들은 ‘오늘은 무슨 곡을 부를까(불렀을까)’를 확인하기 위해 SNS를 검색해야만 한다. 팬들이 계속 다음 의문을 찾아 움직이도록 만드는 구조를 설계한 셈이다.

이 전략은 최근 들어 더욱 메타적인 방향으로 확장된다. 스위프트는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은 10분짜리 뮤직비디오 ‘All Too Well(2021)’에서 실제 전 연인과의 나이 차를 연상시키는 배우들을 캐스팅하며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일부러 흐려놓았다. 그 결과 대중은 “어디까지가 실제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 연출일까”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된다. 여기에 더해 스위프트는 아예 자신을 ‘설계자(Mastermind)’로 규정한다.

‘Midnights(2022)’의 수록곡 ‘Mastermind’에서 그는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라 내가 짜놓은 계획이었다(What if I told you none of it was accidental? I laid the groundwork…)”라고 노래한다. 팬들은 이제 단순히 숨겨진 장치를 찾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혹시 이것까지 예상하고 한 번 더 꼬아놓은 건 아닐까’라는 식으로 해석을 확장해 나간다. 결국 스위프트 전략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정답을 한 번에 설명하기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의미를 추적하게 만드는 ‘의문(Q)의 설계’다.


스위프트와 아이유의 수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

심수봉과 서태지 이후 한국에서도 시간이 흘러 스마트폰과 SNS의 시대로 접어들며 대중은 아티스트의 투명한 진짜 삶을 원하게 됐다. 이때 아이유(IU)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사생활의 오픈 소스화’와 거의 유사한 전략으로 한국 가요계의 정점을 차지한다. 아이유는 대중이 원하는 솔직함을 제공하되 그것을 결코 다큐멘터리처럼 1부터 10까지 나열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내밀한 성장통과 연애사, 심지어 대중의 비난으로 인한 상처까지 모든 개인적 삶의 조각을 고도의 은유와 퍼즐로 쪼개어 가사와 뮤직비디오 속에 은밀하게 잠복시켰다.

‘스물셋’ ‘팔레트’ ‘에잇’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나이 시리즈’는 이 영악한 의문(Q) 전략의 정수를 보여준다. 스물세 살의 도발을 담은 ‘스물셋(2015)’에서는 “여우인 척, 하는 곰인 척, 하는 여우 아니면 아예 다른 거”라며 당시 자신을 둘러싼 대중의 엇갈린 시선을 인용해 놓고 정답은 비워버렸다. 이어 스물다섯 살의 이야기를 담은 ‘팔레트(2017)’에서 그는 “핫 핑크(Hot Pink)보다 진한 보라색을 더 좋아해” “긴 머리보다 반듯이 자른 단발이 좋아”라며 지극히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취향의 파편들을 툭 던져놓는다. 나아가 스물여덟에 발표한 ‘에잇(2020)’에서는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춰”라는 몽환적인 가사와 뮤직비디오 속 상징(흰옷을 입은 소녀, 비행기 등)들을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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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이 파편화된 서사들 앞에서 단순한 리스너에 머물지 않았다. 팬들과 대중은 그가 언급한 ‘진한 보라색’이 과거 어떤 시기의 감정과 연결되는지, ‘스물셋’의 가사가 특정 루머나 안티팬을 의식한 것인지, ‘에잇’의 뮤직비디오 속 상징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 연예인들을 암시하는 것인지 인터넷 게시판과 커뮤니티에서 실시간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스위프트 팬들이 ‘All Too Well’ 속 스카프의 의미를 추적했듯 한국 대중 역시 아이유가 남겨둔 서사의 빈칸을 각자의 해석으로 채워 넣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시공간을 넘어 이어지는 이스터 에그의 연결이다. 2013년 발표한 ‘분홍신’ 뮤직비디오에서 미완으로 남겨졌던 서사는 6년 뒤 ‘시간의 바깥(2019)’ 뮤직비디오에서 다시 이어진다. 동일한 소품과 세계관이 연결되자 팬들은 과거 앨범과 영상을 다시 꺼내 보기 시작했다. 신곡이 나올 때마다 이전 작품들을 복습해야만 전체 맥락이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팬들은 단순 음악 소비자를 넘어 ‘이지은이라는 한 인간의 일대기를 함께 집필하는 공동 저자’, 아이유 세계관의 공동 해석자 역할을 맡게 됐다.

그렇다면 아이유와 테일러 스위프트는 서로의 전략을 의식적으로 모방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이들이 보여주는 유사성은 생물학의 수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서로 다른 환경의 생물이 비슷한 방식으로 진화하듯 치열한 대중문화 시장에서 살아남은 아티스트들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결국 사람들을 오래 머물게 만드는 힘은 단순한 가창력이나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쉽게 해소되지 않는 의문과 해석의 여백에 있었다.

여기에 바로 이케아 효과(IKEA Effect)가 연결된다. 사람은 완성된 결과물을 수동적으로 소비할 때보다 직접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의미를 완성했다고 느낄 때 훨씬 강한 애착을 갖는다. 가사를 해석하고, 스트리밍 전략을 공유하고, 세계관의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 자체가 팬덤의 참여 경험이 되는 셈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아이유는 대중에게 이 참여의 공간을 열어뒀고 팬들은 그 안에서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콘텐츠를 함께 완성하는 참여자가 됐다.


방송과 픽션 속 의문 장치:
양파 껍질을 까게 하라


이 원리는 방송과 드라마, 영화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MBC ‘브레인 서바이버’는 “누가 탈락할 것인가” “낙엽 줄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매 라운드마다 배치하며 긴장을 유지했고, JTBC ‘히든 싱어’는 “진짜 가수는 누구인가”라는 단순한 질문 하나만으로도 시청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021)’ 역시 “누가 살아남는가?”라는 큰 질문 위에 “이 잔혹한 게임은 누가, 왜 만들었는가?” “프런트맨의 정체는 무엇인가?” 같은 작은 의문들을 겹겹이 쌓아 올렸다. 시청자에게 이 정보의 공백은 극심한 자이가르닉 효과를 유발해 다음 회차의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영화관에서 정보의 유예는 복선(Foresha-dowing)이라는 고도의 서사 기법으로 탈바꿈한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2012)’은 인물들의 진짜 속내를 단번에 설명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대사 한마디, 미세한 시선 처리 속에 결말을 뒤집을 단서들을 촘촘하게 흩뿌려 놓는다. 영화가 끝난 뒤에야 관객들은 “그 장면이 그런 뜻이었나?” “처음부터 복선이 깔려 있었던 건가”라는 거부할 수 없는 의문에 사로잡혔고 수많은 힌트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극장으로 향해야 했다. 실제로 ‘도둑들’은 숨겨진 복선과 캐릭터의 진짜 의도를 다시 맞춰보려는 관객들의 열띤 해석 속에 장기 흥행을 이어 갔다.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이영돈 PD의 통찰처럼 ‘TV 프로그램의 구성은 추리 소설 쓰기이며 양파를 까는 것’과 같아야 한다. 훌륭한 구성은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른 채 매번 긴장하며 껍질을 벗겨 나가는 과정 그 자체여야 한다. 국보급 도자기의 아름다운 자태를 1초 만에 바로 화면에 띄워버리는 것은 삼류 하수들의 방식이다. 도자기가 보관된 지하실 창고로 향하는 좁고 어두운 복도를 통과하고, 쇠창살 문을 두꺼운 열쇠로 열어젖힌 후, 드디어 금고 문의 숫자를 맞춰서 겨우 문을 연 다음, 그제야 겹겹이 싸인 보관함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열어젖히는 그 지난한 양파 껍질 까기의 과정을 하나하나 정성 들여 빠짐없이 보여주면서 시청자를 끝까지 궁금해하게 만들 줄 알아야 S급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

이 무서운 공백의 효과는 유튜브의 현란한 섬네일과 광고의 카피라이팅(Copywriting), 신문 기사 제목 등 각종 콘텐츠 영역에서 노골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글로벌 K팝 기획사들은 신곡을 발표할 때 뮤직비디오나 음원을 한 번에 통째로 공개하는 하수를 두지 않는다. 컴백 한 달 전부터 의미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로고, 단 10초짜리 짧은 티저(Teaser) 영상을 감질나게 차례대로 던진다. 이 텅 빈 정보의 공백 앞에서 팬덤은 음악을 기다리는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영상을 초 단위로 멈춰가며 복선과 상징을 분석하고 스스로 해석 영상을 만들어 열심히 실어 나르는 자발적 전파자로 돌변한다.

결국 시간을 뚫고 살아남는 위대한 기획은 완벽하게 채워진 100%의 정답이 아니라 대중이 스스로 뛰어들어 채울 수 있는 ‘정교한 빈칸’을 설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장 차원 높은 흥행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수용자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묵직한 철학적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2015)’가 “당신도 정말 한국이 싫은가?” 혹은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 사회로부터 도망치게 만드는가?”라는 날카로운 화두를 던지듯 말이다. 대중은 이미 결론이 난 이야기나 한 치 여백도 없는 친절한 설명서 앞에서는 미미한 호기심조차 느끼지 못한다. 완벽하게 닫힌 결론은 소비되는 즉시 휘발될 뿐이다.

당신이 지금 붙들고 있는 기획서는 어떤가. 완벽한 기능과 장점을 구구절절 설명하며 고객을 납득시키느라 땀을 빼고 있지는 않은가. 기능을 설명하는 두꺼운 매뉴얼을 당장 덮어라. 그 대신 소비자의 본능을 파고들 매력적으로 디자인된 단 한 줄의 의문을 던져라. 대중 스스로 당신의 콘텐츠 안에서 길을 잃고, 묻고 답하며 안달 나게 만들어라. 쉽게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과 생각거리, 대중이 스스로 탐구하고 채워 넣을 수 있는 빈칸이야말로 사람을 사로잡는 매우 강력한 장치다.
  • 권문혁

    히트메카닉스 대표

    필자는 MBC-TV 시사교양PD로 ‘인간시대’‘PD수첩’ 등을 제작하고 기획했다. 편성국 프로그램개발TF팀장, ‘PD수첩’ CP,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강원대 초빙교수를 지냈다. 대중문화 흥행 비결을 분석하는 개인 연구소 ‘히트메카닉스’ 대표로 다양한 킬러 콘텐츠 기획을 자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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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백상경baek@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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