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sed on “Can Marketing Enable Firms to Counter Import Competition? Evidence from the China Shock” (2025) by Nandini Ramani in Journal of Marketing, Vol. 89, Issue 5.
값싼 수입품 공세와 글로벌 지정학적 갈등은 내수 기업과 제조업체의 경영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기업들은 보통 이러한 거시적인 무역 위기나 수입 경쟁 상황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원가를 절감하거나 정부에 관세 장벽을 높여달라고 로비를 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오퍼레이션과 비시장 전략 중심의 대응에 집중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원가 절감과 관세 로비만으로 외부의 공세를 영원히 막아낼 수 있을까.
미국 텍사스 A&M대 연구진은 마케팅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사실 재무적 압박이 심해질 때 가장 먼저 삭감하는 것이 마케팅 예산이다. 마케팅을 단순히 물건을 더 많이 팔기 위한 판촉 수단이나 호황기에나 누릴 수 있는 사치 정도로 여기는 시각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강력한 마케팅 역량이 거대한 지정학적 위기나 거시경제적 수입 경쟁으로부터 기업을 지켜내는 최전선의 방어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입증했다.
연구진은 2000년부터 2019년 사이 수많은 미국 산업을 혼란에 빠뜨린 저가 수입품의 급증 현상, ‘차이나 쇼크(China Shock)’ 시기를 주목했다. 미국이 중국에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ermanent Normal Trade Relations) 지위를 부여한 외생적 충격을 기점으로 7197개의 기업-연도(firm-year) 데이터를 분석해 수입 경쟁 속에서도 매출 타격을 덜 받고 살아남은 기업들의 특성을 추적했다.
연구 결과, 마케팅은 거시적 무역 위기 속에서 기업의 수익 성장을 지키는 핵심적인 방패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품의 거센 공세 속에서도 유연하게 살아남은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세 가지 ‘시장 기반 자산’을 무기로 삼고 있었다.
첫째는 마케팅 부서의 힘(Marketing Department Power)이다. 최고경영진 내에서 마케팅 부서의 발언권이 강하고 의사결정 권한이 큰 기업은 부서 간 팀을 기민하게 조율하고 고객 중심의 혁신을 주도해 경쟁 우위를 지켜냈다. 둘째는 전략적 차별화(Strategic Differentiation)다. 수입산 저가 제품이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의 품질, 지속가능성 혹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와 같은 독보적 브랜딩을 구축한 기업은 프리미엄 가격을 유지했다. 셋째는 끈끈한 고객 관계 자본이다. 평소 고객과 두터운 신뢰를 쌓은 기업은 강력한 전환 비용(Switching costs)을 발생시켰다. 시장에 아무리 값싼 대체재가 쏟아져도 고객이 쉽게 경쟁사로 이탈하지 않는 록인(Lock-in)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연구진은 이 세 가지 자산이 구체적인 ‘탈(脫)가격 경쟁’ 전략으로 발현한다고 강조한다. 마케팅 권한이 강한 기업은 위기 상황이 닥치더라도 고객이 기꺼이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할 신제품을 기획하는 ‘공격’을 택했다. 저가 범용 제품 시장에서 섣불리 가격 전쟁을 벌이는 대신 고부가가치 틈새시장에 집중하거나 친환경·자국산(Made in America) 등 비가격적 가치를 내세워 비싼 가격을 정당화했다. 나아가 압도적인 품질 향상과 고객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전환 비용 장벽을 더 두텁게 쌓았다. 고객이 품질 불량이나 납기 지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낯선 해외 업체로 갈아타지 못하도록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가격을 깎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투자와 마케팅을 통해 비싼 가격을 정당화할 명분을 만들어냈다는 의미다.
수익성 악화와 거시경제적 압박이 만연한 시대다. 위기가 닥쳤을 때 조건반사적으로 마케팅 예산을 삭감하거나 핵심 전략에서 마케팅 리더를 배제하는 것은 기업의 가장 튼튼한 방어막을 스스로 걷어차는 패착이다. 더욱이 전문가들은 조만간 전기차와 태양광 패널 등 최첨단 부문조차 저가 수입품이 쏟아지는 ‘차이나 쇼크 2.0’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변동성이 극에 달한 글로벌 무역의 파도를 넘기 위해선 마케팅 부서를 비용을 쓰는 부서가 아니라 회사의 생존을 책임지는 핵심 전략 부서로 격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