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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려면 아담이 되어라

이종범 | 21호 (2008년 11월 Issue 2)
요즘 드라마 ‘에덴의 동쪽’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에덴은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가 살던 천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 에덴의 동쪽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영원히 추방당한 곳이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모든 동물의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 가운데 ‘작명’이라는 능력은 태초부터 있었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무다쿠 바지’의 비밀
사업을 할 때도 이 태초의 법칙은 유효하다. 사업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그 창조물에는 아담의 작명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필자가 인터넷쇼핑몰에서 리바이스 제품을 팔던 시절 ‘기무다쿠 바지’가 유행한 적이 있다. 바로 ‘엔지니어드 002 레터링’ 제품을 말한다. 국내에는 엔지니어드 바지(엔진)가 흥행했지만 사실 전 세계적으로 엔진은 실패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2002년 한일 월드컵 전후로 엔진 생산은 중단되었다. 국내 리바이스는 아시아판에 속하기 때문에 자연히 엔진을 판매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는 때 아닌 엔진 바람이 불면서 엔진 ‘669’ ‘001’ ‘002’ 등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일본과 미국, 유럽에서 제품을 공급해야 했다.
 
일본에서마저 엔진이 동날 무렵 필자는 일본 리바이스 시장을 뒤지며 엔진을 찾아다니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중 워싱을 심하게 한 연한 청색 원단에 레터링을 한 제품을 찾아냈다. 가장 인기가 좋았던 통이 좁은 001과 통이 넓은 002가 그 제품군에 모두 있었지만 연한 청색이라는 점이 약간 꺼림칙했다. 청바지는 진한 청색일수록 잘 팔리는 데다 특히 엔진은 진한 ‘0835’ 색상이 가장 인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나가는 0835는 동난 지 오래여서 어쩔 수 없이 연한 청색의 레터링 제품을 대량 가져왔다. 동향을 살펴보니 다른 쇼핑몰에서도 이 제품을 이미 판매하고 있었다. 잘 안 팔렸는지 저렴한 가격에 모든 사이즈가 구비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자 필자는 앞이 깜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엔진이라는 이름만 믿고 급한 마음에 덜컥 대량으로 사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생각보다 잘 안 팔리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일본의 유명 배우 기무라 다쿠야가 TV에 이 제품을 입고 나온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필자는 일본의 패션아이콘인 기무라의 이름을 빌려 그 제품에 ‘기무라 다쿠야 바지’라는 이름을 걸어 판매했다. 기무라 다쿠야는 애칭으로 ‘기무다쿠’라고도 불리기에 ‘기무다쿠 바지’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잘 안 팔리던 제품이 이름을 바꾸고 나자 거짓말처럼 잘 팔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되었고, 리바이스 판매 업계에서 큰 이슈를 낳으며 전설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이 밖에도 여러 경험을 통해 이름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같은 제품이라도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짐을 알 수 있었다. 제품번호를 나열해 잘 팔리지 않던 것도 제품의 특징과 유명세를 잘 이용해 작명하면 불티나게 팔렸다. 제품 하나 하나를 자신의 자식처럼 생각한다면 작명의 중요성을 저절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자녀 이름을 ‘개똥이’ ‘소똥이’로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작명의 기술
1. 유명세를 이용한다 유명세를 이용한 제품은 그 유명세를 등에 업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대상은 연예인이 될 수도 있고, 이슈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보청기를 인기 드라마 이름을 따 ‘베토벤 바이러스 보청기’라 하든지, 지휘봉에 ‘베토벤 바이러스 지휘봉’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그 전의 이름보다 몇 배는 더 잘 팔리지 않을까. 화투장은 만화의 이름을 따 ‘타짜 화투장’으로 판매하거나, 이 만화의 주인공들 이름을 사용해 ‘고니 화투장’ 또는 ‘아귀 화투장’으로 지으면 그 전보다 매출이 오를 것이다. 단 유명세를 이용하려면 법적인 부분을 분명 고려해야 한다. 불법적으로 이용하여 적발되면 번 돈 이상을 토해내야 한다.
 
2. 제품의 특징을 부각한다 제품의 특징을 크게 부각하는 작명도 소비자에게 제품을 인식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제품 개발자나 판매자 입장이 아니라 철저하게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의 특징을 부각해야 한다.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특징을 잡아내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부드럽고 잘 써지는 컴퓨터 키보드를 사기로 했다. 시중에서 파는 키보드 가운데 ‘무영각 키보드’나 ‘솜털 키보드’ ‘스노 키보드’ 등 키보드의 감각을 내세운 이름을 넣은 제품이 있었다면 금세 샀을 것이다. 그러나 키보드는 주로 개발자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저 제품 번호를 나열해 놓고 회사 이름만 알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의 특징을 내세우는 것은 작명의 가장 기본이다.
 
3. 음운을 고려한다 학창 시절에 잘 외워지지 않은 어려운 내용이라도 노래 부르듯 외우면 신기하게도 잘 외워지던 생각이 난다. 조선시대 왕 이름의 앞 글자를 딴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이유는 음운을 넣어 일곱 자씩 끊어 외웠기 때문이다. 음운을 넣으면 외우기가 한결 쉬워진다. 음운은 반복될 때 더 잘 기억된다. 상품 이름이 잘 기억된다는 것은 친숙하다는 의미도 된다. 음악이나 음운을 이용할 때 복잡한 음악이나 음운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단순하고 익숙하고 친숙한 음운을 사용한다.
 
예전에 기무라 다쿠야 바지의 이름을 기무다쿠로 바꾼 이유 또한 음운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기무다쿠 바지는 기무라 다쿠야 바지라고 부를 때보다 더 큰 인기를 끌었고, 당시 기무라 다쿠야가 누군지 모르던 사람들도 기무다쿠라는 이름은 쉽게 외웠다. 이처럼 작명을 할 땐 반복과 발음을 고려해야 한다.
 
이름을 짓는 것은 사람에게 주어진 독특한 재능이다. 이는 곧 사물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사람들이 개명 신청을 많이 하는 이유도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제품 또한 마찬가지다.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그 제품의 운명은 바뀐다. 제품의 정체성이 바뀌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제품 이름에 걸맞은 품질이 있어야겠지만, 품질이 받쳐준다면 그 다음에는 이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품의 상품번호만 나열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기 바란다. 사람들은 상품번호만 나열되어 있는 제품을 결코 사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필자는 현재 대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한 적이 있다. 경제적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블로그 ‘익사이팅 Biz & Blog’와 TV에 대한 생각을 쓰는 블로그 ‘익사이팅TV’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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