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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금 ‘삶의 질’을 소비한다

배영준 | 21호 (2008년 11월 Issue 2)
룽룽(容容)은 베이징(北京) 중앙희극학원 연극영화학과에 재학 중이다. 영화배우 지망생답게 빼어난 외모를 갖췄다. 게다가 재력까지. 그녀는 휴대전화 대리점 사업으로 거부가 된 아버지가 사준 ‘바오마(BMW) 3 시리즈’를 몰고 다닌다. 평일에는 수업 일정에 쫓겨 여가를 즐길 틈이 없다. 그러나 주말이 되면 궈마오(國貿) 빌딩 지하 명품코너에 들른다. 쇼핑을 마치면 대개 100위안(약 1만8600원)이 넘는 영화관 VIP 좌석에서 영화를 즐긴다. 영화를 본 뒤에는 베이징에서 가장 ‘물 좋기로’ 소문난 믹스(Mix) 나이트클럽을 찾는다.
 
룽룽은 올해 여름방학에 가족과 함께 인도네시아 발리로 일주일 간 여행을 다녀왔다. 3인 가족이 최고급 별장과 명품 쇼핑에 줄잡아 10만 위안(약 1860만 원)을 썼다. ‘돈은 인생을 즐기는 데 꼭 필요해. 나도 조금만 운이 따라준다면 영화배우가 되고 CF도 찍어서 큰돈을 벌 수 있겠지….’ 룽룽은 앞으로도 인생을 제대로 즐기겠다고 생각한다.
 
원쯔(文子)는 베이징 뒷골목에서 조그마한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20대 사장이다. 원래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그의 꿈은 중국 최고의 공포소설가. 손님이 많지 않은 골동품 가게 한 귀퉁이에서 언제 출간될 지도 모르는 원고 집필에 하루 종일 매달린다. 한 달 수입이 3000위안이나 될까. 그래도 ‘이 나이에 자기 가게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라고 자위하며 산다. 원하는 시간에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소설을 하루 종일 쓸 수 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 다 있다. 영화? 고급 극장을 갈 필요는 없다. 10위안짜리 해적판 DVD가 거리에 즐비하다. 아가씨가 유혹하는 KTV(유흥주점)가 아니더라도 양판식(量販式) 노래방(많은 룸이 있고, 술과 음료를 파는 소형 슈퍼마켓까지 갖춘 대형 노래방)에서 신나게 즐길 수 있다. 원쯔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隨心所慾) 것이야 말로 인생을 즐기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매달리기 시작한 중국인들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중국인들의 인생에 대한 생각은 ‘살아 있어야(活着) 하는’ 수준에서 ‘즐겨야 하는(享受)’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물질적 행복을 넘어 정신적 만족까지 추구하는 선진국형 라이프스타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장쩌민 등 3세대 지도부는 이미 수년 전에 “중국은 배고픔을 걱정하던 ‘원바오(溫飽)’ 시대를 벗어나 문화적 여유를 뜻하는 ‘샤오캉(小康)’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선언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생활의 향유(享受生活)’ ‘건강한 생활(健康生活)’ ‘환경보호(環保)’ ‘생활의 질(生活品質)’ ‘녹색생활(綠色生活)’ 등의 용어가 언론과 대중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이는 한국의 참살이(웰빙)와 유사한 개념들이다. 한 신문은 ‘녹색생활’이라는 주말섹션까지 만들었다. 이 코너는 건강한 생활을 위한 음식, 운동, 여행 등에 관한 정보만 담아낸다. TV나 라디오 방송에서도 심심찮게 ‘녹색’ ‘건강’ ‘향유’라는 단어를 들을 수 있다. 아침 출근 길 택시에서 “이 정도는 돼야 인생을 즐기는 거죠”라고 외치는 방송 진행자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하루 일과가 됐다. 세계적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고성장의 관성과 탄탄한 내수 시장의 배경을 가진 중국 시장은 상대적으로 심리적 타격이 작다.
 
자, 여기서 익숙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돈 많은 사람들이야 인생을 즐긴다고 쳐도 1, 2위안짜리 국수로 끼니를 때우는 빈곤층은 어떻게 하나. 물론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빈곤층의 존재와 함께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 중국은 ‘차이(差異)’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중국인들은 그 차이를 ‘다양함의 공존’으로도 해석한다는 사실이다. 차이를 받아들이는 배포가 다른 나라보다 넉넉하며, 이제는 정신·문화적 여유를 추구하는 풍조도 불고 있다.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최고급 와인을 마시는 부자가 있지만, 그 호텔 뒷골목의 좌판에서 한 병에 몇 위안하는 얼궈터우(二過頭)를 들이키며 희희낙락하는 서민이 함께 사는 나라가 중국이다. ‘부자가 인생을 즐긴다면 서민도 나름대로 자기 인생을 즐길 수 있다’ ‘물질을 즐기기 벅차다면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즐기면 될 것 아닌가’라는 것이 중국인의 인생관이다. 아래에서 물질과 정신 두 가지 측면에서 ‘생활의 품질’을 추구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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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영준

    - (현) 로이스컨설팅 연구위원
    - LG경제연구원 중국 시장 전략 연구 및 컨설팅 수행
    - 오픈타이드차이나 컨설턴트
    - 포스코경영연구소 베이징 주재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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