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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과 체험으로 들여다보는 고객경험

잡스가 ‘마케팅 개념’ 싫어한 까닭
‘고객경험’ 넌 대체 뭐니?

김병규 | 395호 (2024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학계와 기업 현장, 미디어에서 고객경험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저마다 이를 다른 맥락에서 활용한다. 고객경험을 통해 재무적 성과를 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고객경험 자체의 개념적 모호성은 목표와 전략과는 다른 결과를 낳는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이 목표하는 것이 ‘내적 반응으로서의 고객경험’인지 ‘체험으로서의 고객경험’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전자를 목표로 한다면 고객 여정을 분석하며 고객경험을 향상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때의 고객경험은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지식과 관심에 기반하므로 브랜드 자체의 가치와 이미지 또한 점검해야 한다. 후자가 목표라면 자사의 제품에서 실제 체험이 소비로 이어지는지 살피고 체험을 통해 원하는 광고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체험이 브랜딩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체험 속에 담아낼 수 있는 브랜드의 본질(essence)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마케팅을 싫어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잡스가 애플을 이끌던 시절 그의 옆에는 조엘 포돌니라는 부사장이 있었다. 2023년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필자는 그와 식사할 기회가 있었고 이런 질문을 했다. 조엘 포돌니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잡스가 마케팅 자체를 싫어한 것은 아니고 마케팅의 개념들을 싫어했습니다. 마케팅 개념들이 너무 모호한 경우가 많고, 이런 모호함을 그는 싫어했어요.”

이 간단한 대화 속에는 사실 마케팅 분야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이 담겨 있다. 마케팅 연구자들과 실무자들, 그리고 출판업계는 마케팅 트렌드와 소비자행동을 기술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런 개념들은 종종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채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이로 인해서 마케팅 실무자와 경영자에게 혼란을 준다. 결국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잡스가 마케팅 개념들을 싫어한 이유다.

만약 잡스가 살아 있더라면 지금 유행하고 있는 마케팅 개념들 가운데 어떤 개념을 싫어했을까? 필자는 ‘고객경험(Consumer Experience)’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 고객경험은 마케터와 경영자 사이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말이지만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큰 혼란이 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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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경험이라는 개념의 모호함

필자는 고객경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학술 논문, 언론 기사, 기업 관계자의 인터뷰 등 다양한 문헌을 연구하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1. ‘향상시키는 것’ ‘제공하는 것’

어떤 사람들은 고객경험을 ‘향상시킨다’ 또는 ‘개선한다’고 표현하고, 어떤 사람들은 ‘제공한다’ 또는 ‘선사한다’고 표현한다. 향상이나 개선은 ‘상태’와 관련된 표현이다. 반면 제공이나 선사는 유, 무형의 ‘존재’와 관련된다. 하나의 대상이 상태이면서 존재이기는 어렵다. 가령, 상태를 의미하는 ‘수질(물의 품질)’은 향상시키는 것이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존재를 의미하는 ‘선물’은 제공하는 것이지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고객경험에 대해서는 향상과 제공이라는 표현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2. ‘~을 통해’ ‘~으로’

고객경험이라는 용어 앞에는 ‘~을 통해’ 혹은 ‘~으로’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 표현이 지칭하는 것은 고객경험 향상 내지는 제공의 수단들이다. 그런데 고객경험의 수단으로 언급되는 것들을 살펴보면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필자가 문헌을 통해 직접 확인한 수단들만 해도 아래와 같이 다양하다.

개선된 품질, 개선된 성능, 개선된 성분, 신제품, 신기술, 새로운 부가서비스, 앱의 사용성, 제품의 사용성, 개인 맞춤 서비스, 추천 서비스, 사용자 후기, 사용자 커뮤니티, 매장, 브랜드 공간, 팝업스토어, 이벤트 등

제품의 성분부터 자동차의 자율주행 기능까지 기업이 제공하는 모든 것이 고객경험 향상(혹은 제공)의 수단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 종류가 너무 다양하고 폭넓어서 고객경험의 수단이 되지 않는 것이 과연 있을지 생각이 들 정도다. 모든 것이 고객경험의 수단이 된다면 왜 기업들은 고객경험이라는 주제를 어려워할까라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3. ‘~한 고객경험’

고객경험 앞에 고객의 반응과 관련된 수식어가 붙는 경우도 자주 관찰된다. ‘즐거운 고객경험’ ‘특별한 고객경험’ ‘혁신적인 고객경험’ 등이 그 예들이다. 그런데 ‘즐겁다’ ‘특별하다’ ‘혁신적이다’ 등의 반응은 고객의 감정과 인식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르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가령, 야구장에 가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지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주관적 반응을 기업이 ‘제공’한다고 표현하고는 한다. 사실 이런 표현은 주로 광고 문구에서 사용된다. 가령 “우리 리조트 방문자들에게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드립니다”와 같은 광고 문구가 그렇다. 실제로 리조트를 방문한 사람들 중의 상당수는 특별한 시간을 갖지 못하겠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리조트에 대해 멋있게 상상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과장된 표현이다. 이런 광고성 문구가 경영자와 마케터들이 고객경험과 관련된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 설명할 때 자주 관찰된다.


개념의 모호함, 왜 문제인가?

어떤 개념이 모호함을 갖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추상적 개념이 이러한 모호함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서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보자. ‘아름다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라고 질문하면 사람들의 대답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제의 대답과 오늘의 대답이 다를 수도 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다른 것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아무런 불편함 없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고객경험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경영과 마케팅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가령, 일반인이나 학생, 대학 교수 등)이라면 고객경험이라는 용어를 다양한 의미로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것도 고객경험이고, 저런 것도 고객경험이라고 말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고객경험을 통해 재무적인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에게 개념의 모호함은 커다란 혼란과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가령, 고객경험을 향상시키겠다는 경영 목표를 세우고서도 그 방법을 찾지 못할 수도 있고, 고객경험을 위해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서도 재무적인 성과는 전혀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기업의 교육 현장에서도 강사마다 고객경험을 다르게 이야기하다 보니 실무자들의 혼란은 가중된다. 심지어 필자에게 고객경험에 대한 강연을 의뢰하면서도 의뢰자 스스로도 고객경험이 무엇인지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객경험, 도대체 무엇인가?

고객경험이라는 개념의 기반이 되는 ‘경험’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돼 있다. 하나는 ‘체험으로부터 얻은 것’이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체험을 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를 구분하며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경험은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다. 경험은 그 일을 통해서 사람이 무엇을 하는 지다(Experience is not what happens to a man; it is what a man does with what happens to him)”라고 말했다.

경험의 의미가 두 가지로 존재하는 것처럼 고객경험이라는 개념도 크게 두 가지 의미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 의미는 체험(즉,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내적, 주관적 반응이다.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갖게 되는 인식과 지각, 감정 등 고객의 총체적인 반응을 고객경험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고객경험은 ‘향상’하거나 ‘개선’하는 대상이다. 디자인과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말하는 사용자 경험도 이러한 ‘내적 반응으로서의 경험’을 지칭한다. 이와 구분되는 고객경험의 두 번째 의미는 ‘체험’이다. 고객이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행위(즉, 체험) 자체를 고객경험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고객경험은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공’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의 고객경험은 각기 다른 배경을 갖고 사용되기 시작한다. 우선, ‘내적 반응으로서의 고객경험’이 중요하게 여겨진 배경에 대해 살펴보자. 브랜드의 재무적 성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자 대비 차별적 우수성이다. 과거에는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이 차별적 우수성의 원천이었다. 시장에 공급되는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 수준이 상향평준화되면서 디자인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품질로도, 디자인으로도 차별적 우수성을 보여주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제품과 서비스 외에 고객이 기업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느끼는 모든 것이 차별화의 요소로 고려되기 시작한다. 즉, 경쟁의 심화와 차별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차별화의 대상이 제품과 서비스 단위에서 고객의 총체적인 인지적, 감정적 반응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객 반응을 지칭하기 위해 기존의 UX(User Experience) 개념을 확장해서 CX(Customer Experience)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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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로 고객경험이 정의된 문헌은 안드레 슈와거와 크리스 메이어가 2007년도에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Understanding Customer Experience’1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고객경험은 회사와의 직접적, 간접적인 접촉에 대한 고객의 내적, 주관적 반응(Customer experience is the internal and subjective response customers have to any direct or indirect contact with a company)’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으며 이러한 고객경험이 기업 경영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제시한다. 이들이 제시한 고객경험의 정의는 현재 학술지에 무려 3523회(구글 스칼라 기준)나 인용되고 있을 정도로 현재 학계와 산업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고객경험의 두 번째 의미, 즉 ‘체험으로서의 고객경험’이 등장한 배경은 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체험으로서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체험 마케팅(Experiential Marketing)’ 개념의 등장과 관련된다. 컬럼비아대 마케팅 교수인 번트 슈밋이 1999년 『체험 마케팅』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기업의 마케팅 활동에서 고객들이 상품 혹은 브랜드를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애플스토어가 고객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제품을 사용하게 해주거나 아이스크림 회사 콜드스톤이 고객 앞에서 아이스크림과 토핑을 섞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체험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로 뽑힌다.

체험 마케팅이라는 개념의 등장 이후 오랜 기간 체험은 마케팅에서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지만 지금처럼 마케팅의 핵심적 요소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후반 사이 근 20년 동안 MBA 과정에서 마케팅 수업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체험 마케팅에서 대해서 듣지 못했거나 들었더라도 마케팅 과목의 작은 꼭지 하나로 배웠을 가능성이 크다.

체험 마케팅이 마케팅의 핵심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 아주 최근의 일이다. MZ세대들 사이에서 남들이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나 가보기 어려운 곳, 즉 관심과 부러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을 방문한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이 유행하고, 독특한 콘셉트를 가진 카페나 식당, 매장이 성공하기 시작하면서 ‘체험’이 마케팅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체험’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경험’이 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한다.

한쪽에서는 경영의 목표로서 ‘내적, 주관적 반응으로서의 고객경험’이 중요해졌고, 다른 한쪽에서는 마케팅 기법으로 ‘체험’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개념이 ‘경험’이라는 단어를 공유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고객경험’이라는 표현이 모호한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내적 반응으로서의) 고객경험을 향상시키킨다는 경영 목표를 세운 기업이 (체험 요소로서의) 고객경험을 제공하는 것에만 집중하기도 하고, (체험 요소로서의) 고객경험을 제공하려는 기업이 고객 여정 분석을 통해 (내적 반응으로서의) 고객경험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경영진의 경영 목표 발표 내용에도 ‘반응으로서의 고객경험’과 ‘체험 요소로서의 고객경험’이 뒤섞여서 사용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경영자나 마케터가 고객경험이라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목표로 하는 고객경험이 ‘반응’인지 ‘체험’인지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목표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필요한 전략과 방법, 실현 가능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두 가지 고객경험 목표를 구분하고 각각의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반응으로서의 고객경험’이 목표인 경우

지금 시대에 ‘반응으로서의 고객경험’이 기업의 재무적 성과를 위해 중요하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고객은 더 나은 고객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고객경험을 향상시키려는 목표를 세운 기업은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첫 번째 문제는 고객 여정 분석과 관련된다. 고객경험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고객의 모든 여정을 분석해서 문제점을 파악해야 한다. 애플리케이션(앱) 기반의 사업자(가령, 이커머스나 콘텐츠 사업자)의 경우 대부분의 고객 여정이 앱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분석이 용이하다.

반면 제조사의 경우 고객이 정보를 얻고 구매를 얻는 채널이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정형화된 고객 여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객경험 향상의 출발점부터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 고객의 다양한 여정을 몇 가지 유형으로 범주화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즉, 고객경험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 기업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선 던져야 한다.

□ 내 고객의 여정은 단일한가, 복잡한가?

□ 내 고객의 여정이 복잡한 경우 이들을 몇 개의 유형으로 단순화할 수 있는가?

고객경험 향상과 관련된 두 번째 문제는 방법과 연관된다. 앱 기반 서비스의 경우 고객의 행동 대부분이 앱 안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고객경험 향상의 방법이 명확하다. 앱의 사용성을 개선시키는 것이다. 많은 앱 사업자가 마찰 없는(frictionless)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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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제조사의 경우 브랜드와 고객의 접점이 제품 사용, 구매, 정보 탐색 등 다양한 곳에서 발생하며 그 형태도 고객여정마다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객경험을 향상시키는 방법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고객경험 향상이 기업의 전략 수정과 커다란 비용을 수반할 수도 있다. 가령, 프랜차이즈 형태로 존재하는 판매 채널의 서비스가 고객경험 향상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파악되는 경우 해결책은 프랜차이즈 방식을 버리고 직영 체재로 전환하는 것일 수 있는데 이는 사실상 경영 전략의 전면적인 변경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업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고객의 접점은 어디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

□ 각 접점에서 고객경험 향상의 방법은 무엇인가?

□ 이 방법은 실현 가능한가? 예상 비용과 소요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고객 여정을 제대로 분석하고 고객경험 향상의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했더라도 여전히, 그리고 가장 어려운 문제가 존재한다. 고객경험은 말 그대로 고객의 내적, 주관적 반응이라는 점이다.

출장을 간 지역에서 식사를 하려고 한다고 생각해보자. 주변에 있는 유일한 식당이 몹시 낡아서 쓰러지기 직전이다.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경험은 결코 유쾌하지 못할 것이다. 식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함께 간 동료가 이 식당이 유명한 노포라고 이야기하면 어떨까? 낡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똑같은 행위가 즐겁고 특별한 경험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사진을 찍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또 다른 예로 매장 앞 줄 서기를 생각해보자. 필요한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오랜 시간 줄을 서는 경우, 줄 서는 체험은 고객들에게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브랜드 매장 앞에서 오랜 시간 줄을 서는 체험은 그 자체로 즐겁고 신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내적, 주관적 반응으로서의 경험은 체험 자체가 그대로 경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지식과 믿음, 감정에 의해서 저마다 다르게 해석되기 마련이다. 특히 브랜드에 대한 지식과 감정이 경험에 절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브랜드의 가치가 높고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으면 모든 체험이 긍정적 경험으로 인식되고, 반대의 경우 모든 체험이 부정적 경험으로 인식된다.

한마디로 고객경험은 브랜드의 함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브랜드 전략 없는 고객경험 향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다. 앱 기반 사업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업자에 고객경험 향상이라는 과제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전략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 따라서 고객경험 향상이라는 목표를 가진 기업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 내 브랜드의 가치와 이미지는 고객경험에 현재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가,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가?

□ 내 브랜드의 가치와 이미지가 그대로일 때 고객경험 향상의 재무적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 내 브랜드의 가치와 이미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지금까지 ‘반응’으로서의 고객경험에 대해서 살펴봤다. 제품 차별화가 어려운 시대에 고객의 반응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앱 기반 사업자들이 아닌 경우 고객경험을 향상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앱을 업데이트하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경영 전략의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할 수도 있고, 큰 비용이 수반될 수도 있다. 게다가 제대로 된 고객경험 향상을 위해서는 브랜드 전략의 수립과 실행이 함께 수반돼야 한다. 어쩌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기업이 고객경험을 고객의 내적 반응이 아니라 체험 자체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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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으로서의 고객경험’이 목표인 경우

최근 고객경험이라는 용어는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체험 요소들, 가령 제품의 체험, 고객 참여 이벤트, 매장의 콘셉트, 브랜드 공간, 팝업 매장 등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MZ세대 소비자가 색다른 체험을 찾아다니고, 그 사진을 SNS에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체험으로서의 고객경험’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마케터와 마케팅 교수들에게서 요즘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 ‘MZ는 경험을 좋아하기 때문에 경험을 제공해줘야 한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함정이 존재한다. MZ세대 소비자들이 체험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체험 자체가 아니라 SNS에 올렸을 때 많은 관심을 받을 만한 새롭고 독특한 체험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들이 원하는 체험을 제공해도 기업의 매출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체험이 소비의 대상인 경우라면 체험과 매출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매력적인 체험의 제공은 매출의 증가로 이어진다. 가령, 여행 상품이나 식음료의 경우 체험의 대상과 소비의 대상이 동일하다. 특히 맛에 대한 경험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똑같은 음식이나 음료가 환경에 따라 더 맛있게 혹은 더 맛없게 인식될 수 있다. 그래서 식당이나 카페, 베이커리 등의 매장은 인테리어나 콘셉트가 가장 중요한 차별화 요소가 된다. 트렌디한 패션이나 향수, 액세서리처럼 소비 결정이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충동구매가 빈번한 제품군에서도 체험 요소는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케팅 문헌에서 쾌락적 소비(Hedonic Consumption)에 속하는 제품군은 즐거운 감정 자체가 소비의 목적이 되며, 체험이 제공한 즐거움이 소비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기능성 제품의 소비 경험에는 환경 요소의 영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컴퓨터를 구입하는 경우 매장의 인테리어보다 제품 자체의 품질과 사용성, 디자인, 가격 등 제품 본연의 특성들이 구매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요즘 멋진 공간을 갖춘 식당과 카페가 성공한다고 해서 기능성 제품을 판매하는 제조사가 멋진 체험 공간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 예로 20여 년 전 애플스토어가 처음 선보이고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할 때 미국에서 애플과 경쟁하던 소니는 ‘소니 스타일’이라는 체험형 매장을 미국 곳곳에 선보였지만 고객들의 주관적 반응은 향상되지 않았고 소니 스타일은 문을 닫았다. 미국의 ‘베타’라는 스타트업은 고객사의 제품에 대한 체험만을 고객사의 잠재 고객에게 제공하는 고급스러운 느낌의 경험 매장을 선보이며 큰 화제를 모았지만 수년 만에 파산하고 말았다. MZ세대가 체험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기업에 체험 제공이 재무적 성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고객에게 ‘체험’을 제공하려는 목표를 가진 기업은 우선적으로 자신이 판매하는 제품에 대해 체험과 소비의 연결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 내가 판매하는 제품은 체험과 소비의 연결성이 높은가, 낮은가?

체험과 소비의 연결성이 높은 경우라면 체험은 지금 가장 중요한 차별화 요소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체험을 제공하는 목적을 현실적으로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체험이 소비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면 체험을 제공하는 목적은 광고와 브랜딩,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광고 목적이란 체험을 제품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호감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최근 많은 브랜드가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가령, 성수동이나 연남동 등)에 팝업스토어를 열어 제품을 체험하게 해주고 고객이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를 제공함으로써 SNS 공간에서 제품에 대한 인지도와 화제성을 높이고 동시에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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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든 광고가 인지도와 호감 상승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광고 목적으로 체험을 제공하는 것도 그 효과가 동일하지는 않다. 팝업스토어가 유행한 초기에는 팝업스토어를 여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광고 효과가 발생했다면 이제는 얼마나 새롭고 독특한 체험을 제공하는지가 승부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많은 마케터가 ‘어떤 체험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체험을 제공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수많은 브랜드가 지금 서로서로 상당히 유사한 체험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체험의 광고 효과를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내가 제공하는 체험은 원하는 광고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 (얻어냈는가?)

□ 내가 원하는 광고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체험을, 어떻게 제공해야 하는가?

브랜딩 목적으로 체험을 제공하는 것은 브랜드 공간을 통해 브랜드의 철학, 정신, 핵심 가치, 비전 등 브랜드의 본질(Essence)을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럭셔리 브랜드나 일부 패션 브랜드가 운영하는 경험 매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이 만든 매장을 보면 누구라도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숨은 함정이 존재한다. 브랜드 공간을 제공하는 목적은 고객의 마음속에 브랜드에 대한 생각과 믿음, 감정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즉, ‘내적 반응’으로서의 고객경험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내적 반응’으로서의 고객경험은 브랜드의 가치와 이미지에 큰 영향을 받는다.

위상이 높고 좋은 이미지를 가진 브랜드가 제공하는 브랜드 공간은 긍정적인 경험이 되지만그렇지 않은 브랜드인 경우 브랜드 공간의 효과는 미미할 수 있다. 이것이 럭셔리 브랜드나 신생 브랜드가 만든 브랜드 공간에 비해서 기존 브랜드(특히 브랜드 이미지가 노후화되거나 좋지 않은 브랜드)가 선보인 경험 공간들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다.

체험을 브랜딩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에는 체험이 전달하는 브랜드 본질의 수준도 중요하다. 브랜드가 매력적이고 차별적인 본질을 갖고 있다면 이런 본질을 담아낸 브랜드 체험 공간이 탄생할 수 있겠지만 브랜드 본질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다면 브랜드 공간도 매력을 갖기 어렵다.

대기업이 선보이는 브랜드 공간이 가진 한계가 여기에 있다. 브랜드만의 철학이나 정신,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 겉만 멋지게 꾸며 놓은 브랜드 공간은 브랜딩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큰 비용을 들여 고객경험(체험)을 제공해도 고객경험(반응)은 향상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험 공간을 제공하는 마케터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 내 브랜드는 브랜드 공간 경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가?

□ 내 브랜드는 브랜드 공간에 담아낼 매력적인 본질을 갖고 있는가?

지금까지 ‘체험으로서의 고객경험’을 목표로 설정하는 경우에 대해서 살펴봤다. 이런 의미의 고객경험이 ‘체험마케팅’에서 파생된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체험으로서의 고객경험’은 하나의 마케팅 수단 내지는 광고 수단 가운데 하나라고 인식해야 한다. 모든 마케팅, 광고가 원하는 효고를 가져오지는 않는 것처럼 체험으로서의 고객경험도 언제, 어떻게,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성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고객경험을 체험으로 간주하는 것에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 고객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명확해진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반응으로서의 고객경험’을 향상시키는 것은 (앱 기반의 사업자를 제외하면) 무척 어려운 일이다. 반면 고객경험을 체험으로 정의하게 되면 고객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이 구체적인 체험 요소이기 때문에 경영자와 마케터 입장에서는 별다른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 다양한 체험 요소를 만들어서 제공하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체험 요소들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외부 업체가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경영자와 마케터 입장에서는 비용만 지불하면 손쉽게 고객경험은 ‘제공’된다. 하지만 아무리 경험(체험)을 제공해도 경험(반응)은 향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모두가 고객경험에 대해 말하는 시대다. “MZ는 경험을 좋아하기 때문에 모든 브랜드는 고객에게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있다. 이 말에 토를 달면 경영과 마케팅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고객경험이라는 말이 어렵고, 모호하고, 모순되게 느껴지는 것이 나 하나뿐일까? ‘고객경험(체험 요소)’을 제공하면 정말로 ‘고객경험(주관적 반응)’이 향상되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어쩌면 몇 년 후에는 아무도 더 이상 고객경험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또 다른 모호한 개념이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철학자 토머스 리드의 말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지식의 발전에 있어서 단어의 모호함보다 더한 방해물은 없다(There is no greater impediment to the advancement of knowledge than the ambiguity of words).”
  • 김병규kyukim@yonsei.ac.kr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심리학 학사, 경영학 석사를 받고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받았다. USC마셜 경영대학 교수를 거쳐 연세대 경영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마케팅협회 최우수 논문상인 폴 그린 어워드(Paul E. Green Award)의 최초의 한국인 수상자이자 오델 어워드(William F. O’Dell Award)의 유일한 한국인 수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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