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일수록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소비를 잘 하지 않으려는 속성을 보인다. 이 때문에 호황기와는 뚜렷이 다른 소비자 특성이 나타난다. 이런 소비자의 특성을 잘 파악하려면 소비 트렌드를 읽을 능력을 소유해야만 한다.
소비 트렌드는 소비자의 과거 행동과 라이프스타일을 사후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아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작은 징후를 포착, 미래에 나타날 소비문화의 동향을 더욱 정확하게 예측하고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를 분석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즉 트렌드에는 고객이 소망하는 것이 들어 있다. 불황기에 나타날 수 있는 소비 트렌드를 읽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트렌드와 역트렌드의 변증법을 이해한다
현재 우리는 상충되는 트렌드가 동시에 나타나는 역설과 모순의 시대에 살고 있다. 트렌드와 역트렌드가 일정 기간 서로 공존한 뒤 상충되는 자극들이 모여 제3의 새로운 종합트렌드를 형성한다는 뜻이다.
지방화(localization)와 세계화(globalization)로부터 ‘세방화’(glocalization)라는 종합적인 트렌드가 탄생한 것이 좋은 예다. 코카콜라와 월마트 같은 글로벌 기업은 초창기에 각 나라 소비자들이 서로 다른 취향과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결과 큰 대가를 치렀다. 이후 이들 기업은 글로벌 브랜드의 강점이 각 나라의 고유한 지역성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세방화 전략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황기건 아니건 우리 곁에는 언제나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며, 이들의 특성은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은 불황이라고 해서 모든 지출을 다 아끼지 않는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투자하고 그 외의 다른 부분을 극도로 아끼는 성향을 보인다.
2. 주위의 작은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한다
변화는 겉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가 친숙하게 느끼는 현실 속에서 움직인다. 미래의 징후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있다는 의미다. 트렌드를 잘 읽으려면 보통 사람은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변화의 징후를 발견, 그 배후에 숨어 있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을 포함해 가족, 친구나 친지, 거리의 사람들, TV와 영화 등 대중매체 속 사람들의 생활에서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 그런 변화가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세심하게 관찰한다. 불황기에 소비자들의 마음상태, 그들의 욕구와 두려움, 추구하는 것 등도 추적한다.
LG애드의 트렌드 헌팅팀의 예를 보자. 이들은 도심의 번화가, 나이트클럽, 옷가게 등과 같이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으로 가서 캠코더를 이용하여 촬영하고 각자가 찍은 비디오를 팀원들끼리 비교하면서 변화를 추적한다.
3. 상호연관성을 분석한다
소비자는 동시에 여러 제품 및 서비스를 구매하거나 사용한다. 옷과 먹을 것을 사고, 여행을 가고, 책도 산다. 각각의 소비 영역은 얼핏 보면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의 깊게 관찰하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
불황기에 식비를 가능한 한 줄이려는 소비자라면 비싼 레스토랑에서 외식하지 않을 것이며 비싼 옷도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미래주의 마케팅 회사인 브레인 리저브는 생활 교차분석 방법을 이용해 예측한 트렌드를 매년 발표하고 있다.
4. 창조적인 상상력과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세계는 항상 한 방향으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매우 혼란스럽고 임의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때문에 과거의 전망과 통계에만 의존하지 말고 창조적인 상상력과 열린 마음을 통해 소비 트렌드를 읽어야 한다. 사회적 통념을 버리고 문제를 실제적이고 다원적인 측면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의미다.
클래식한 고급 가방의 대명사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일본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와 함께 알록달록한 ‘무라카미 백’을 출시,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루이비통은 이 밖에도 세계 유명 아티스트들과 손잡고 분기별로 한정판 핸드백을 내놓으며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들의 선호에 맞게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5. 거리 문화를 분석한다
트렌드를 읽기 위해서는 주류 문화보다 주변 문화나 언더그라운드 문화, 제품 전체보다 특정 제품에 대한 정서와 감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 사회의 거리 문화는 다양한 하위 문화로 이뤄져 있고, 이런 다양성은 소비자들에게 차별성과 관련한 기쁨과 즐거움을 선물한다. 과거에는 패션 디자이너가 유행을 주도했지만 이제 거리의 청년 문화가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
구찌는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소재와 디자인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뉴욕 거리와 나이트클럽에서 영감을 얻은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것이 바로 가죽에 대나무 소재를 접목시킨 ‘뱀부 백’과 캔버스 소재 핸드백이다.
미국 광고업체 스푸트니크 네트워크는 미국의 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통신원들을 통해 트렌드를 예측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편집한다. 이 통신원들은 거리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젊은이들과 동년배이자 가장 친한 친구들이어서 문화 현장에 직접 침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