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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아름다움’을 위한 변명

박주희 | 20호 (2008년 11월 Issue 1)
객관적인 아름다움(beauty)만이 인간의 마음에 즐거움을 환기해 주는 것은 아니다. 고통·공포·비장·우스꽝스러움과 심지어 추한 것조차도 광의의 미(aesthetics)에 포함되며, 인간에게 궁극적으로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숭고(sublime)·비장(tragic)·골계(comic)·추(ugliness) 등 우리에게 다소 낯선 이 미적 범주들은 아름다움이 직접적으로 즐거움을 전달하는 것과 달리 고통과 쾌락, 공포와 환희, 부정과 긍정이라는 양면 감정에 의한 불쾌(不快)를 거쳐 좀 더 고차원적인 쾌(快)를 회복할 때 생성된다.
 
단순히 화려하고 세련된 신제품을 소개하는, 다시 말해 객관적인 아름다움으로 직접적인 쾌를 전달하는 보수적인 패션쇼가 진부해지면서 최근 패션계에서는 개념과 역사를 탐구하고 미의 다양한 범주를 실현하고 있는 영국·벨기에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주차장, 유기된 지하철 역사, 창고, 폐허 등 버려진 도시 공간에서 쇼를 여는가 하면 패션 기술자들을 연상케 하는 흰색 실험복 차림의 남자들을 패션모델들과 함께 걷게 하고 급기야 모델 대신 옷 사진이 붙은 샌드위치 보드를 걸친 남자들을 쇼에 내보내기도 한다. 이들은 또 화려하게 꾸민 런웨이 대신 장소를 옮겨 다니며 군중 속에서 거리를 표류하는 쇼를 연출하고, 기자들에게 패션쇼 초대장 대신 파업을 알리는 포스터를 보내기도 한다. 이들의 실험적인 패션쇼는 소외·타락·트라우마 등 소비자 문화와 현대인의 걱정거리에 관한 복잡한 주제를 드러내면서 관객에게 불쾌의 감정을 통한 쾌를 전달한다. 

이들의 전략은 1960년대 프랑스 상황주의 이론의 선구자인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과 거리두기’를 떠오르게 한다. 기 드보르는 자신의 저서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소비, 여가, 이미지가 중요해진 현대사회를 스펙터클이 지배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스펙터클이 우리 사회를 장악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표류(derive)’와 ‘방향전환(detournement)’으로 대표되는 ‘스펙터클과 거리두기’를 제안했다.
 
이전 시즌에 발표한 작품을 재활용하고, 시즌마다 같은 모티브를 반복하고 해체하며, 심지어 디자인을 하지 않겠다는 파업을 선언하는 등 이들 패션 무법자의 탈선은 패션이 요구하는 영속적인 신선함과 일회성, 빠른 변화에 대항한다. 나아가 생산과 소비라는 산업을 조롱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패션쇼가 풍자 없이 스펙터클을 구체화하는 동안 스펙터클에 대한 반감을 실현하는 이들의 시도는 또 다른 차원의 스펙터클로 전환될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스펙터클한 패션 매장으로 유명한 일본 도쿄 아오야마의 프라다 매장보다 콤 데 가르송에서 운영하는 편집매장 ‘도버 스트릿 마켓’이 패션계 안팎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도 변장하고 다녀갔다는 이 화제의 매장은 자본이 반영된 비싼 인테리어나 화려한 전시에서 벗어나 거친 철판과 나무로 꾸민 저예산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미국 뉴욕의 대표적 쇼핑거리인 피프스 애비뉴보다 도살장과 푸줏간 거리인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에 들어선 디자이너 부티크나 갤러리, 레스토랑이 최신 유행 장소로 부각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펙터클과 스펙터클에 대한 반감 사이의 모호한 관계를 논하지 않더라도 풍자와 지식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혁신적인 시도들은 패션의 레퍼토리를 확장시키고 있다.
 
필자는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한 뒤 뉴욕주립대 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를 거쳐 서울대 의류학과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아쿠아스큐텀과 인터패션플래닝에서 디자이너, 나프나프·스테파넬·디디피에서 디자인실장을 각각 역임했다.
  • 박주희 | - (현) 삼성디자인학교(SADI)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 아쿠아스큐텀, 인터패션플래닝 디자이너
    - 나프나프, 스테파넬, 디디피 디자인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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