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이상 필기구 사업을 해온 일본 기업 ‘파일롯(Pilot)’사는 지금도 한 장짜리 인쇄 광고를 통해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2016년에는 ‘쓰는 사람은 천천히 살아간다’는 카피를 통해 쓰는 사람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며, 그 시간은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2019년의 카피는 다소 공격적이다. ‘울까, 먹을까, 쓸까’. 어쩐지 화가 나 보이는 여인의 옆얼굴 위로 무심하도록 큰 글자로 쓰인 동사 세 개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으로 ‘쓰기’를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2021년 광고에서는 ‘써보았다. 내 목소리가 들렸다’라는 카피를 통해 손 글씨를 쓰는 행위가 주는 감정을 치유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10대 때 흥얼거린 노래를 사람은 평생 흥얼거린다.”
2009년 교환학생으로 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절 만난 광고 카피다. 이때부터 필자는 일본 광고에 빠졌다. 어린 시절에도 꿈이 ‘카피라이터’였지만 본격적으로 일본 광고 덕질을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꿈인 카피라이터가 되지는 못했지만 요즘도 필자는 문장을 수집한다는 마음으로 일본 광고를 찾아본다.
좋은 카피는 정말 많다. 하지만 필자가 중점적으로 덕질하는 광고는 프린트 광고다. TV 광고는 시놉시스와 장면들을 파악해서 전달하기에 깊고 다양하게 생각할 여지가 많지 않다. 하지만 인쇄 광고는 좀 더 시적(詩的)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인쇄 광고가 사양화했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인쇄 광고 파워가 상당하다.
첫 번째로 감상을 나눌 인쇄 광고는 100년 이상 필기구 사업을 지속해온 ‘파일럿(Pilot)’사의 작품이다. [그림 1]에 있는 2016년 ‘쓰는 사람은 천천히 살아간다’는 카피의 광고를 살펴보자. 쓰는 사람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며, 그 시간은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휴대폰 문자, 메신저, e메일 등을 통해 수많은 글을 쓰지만 진정한 글의 가치란 손으로 시간을 들여 써내려 가는 것임을 파일럿은 말하고 있다. 여기에 부드러운 필기감을 자랑하는 유려한 글씨체, 잉크의 농담으로 멋지게 쓰인 카피가 아날로그 시계와 매우 잘 어우러져 보인다.
이해원inky.june@gmail.com
작가(일본 프린트 광고 덕후)
필자는 일간지 기자로 치열히 살다가 평범한 회사원이 됐다. 여전히 읽고 쓰는 것에 천착하고, 외국어로 사고를 확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의 명언, 짧은 글이 주는 영감을 사람들과 나누는 데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