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융기관 종사자나 예비 금융인들 중에 고액자산가를 관리하는 ‘프라이빗 뱅커(PB)’를 꿈꾸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고액 자산가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있겠지만 금융 각 분야를 꿰뚫고 있어야 하는 PB의 프로다운 모습이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모습을 접할 때마다 ‘PB의 제1 생존 및 성공 조건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여러 조건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고객 관리와 네트워킹 능력인 것 같다.
네트워킹의 핵심은 정보력
PB 고객들은 언제나 정보에 목말라 있다. 이들을 진정한 고객으로 모실 수 있는 방법은 남들보다 앞선 정보를 전해 주거나 고객이 각종 문제가 생겼을 때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소개해 주는 것이다.
필자는 항상 오전 5시 반에 기상해 7시반까지 출근한다. 출근 전 2시간 동안 인터넷 서핑을 통해 공개된 각종 정보와 시황을 모두 체크한다. 사무실에 나와서는 신한금융네트워크에서 공유되는 정보 및 리포트를 스크린한다. 이로써 일단 기본적인 정보는 챙긴 셈이지만 이를 갖고 고객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
고객을 감동시키려면 정보에 부가 가치를 더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뉴욕, 런던, 싱가포르, 홍콩 등 해외 PB들과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은 해외 고액자산가들과 복수 거래를 한다. 글로벌하게 가장 빠르면서도 돈 되는 정보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실제 이들을 통해 국내에서 미처 간파하지 못한 금 투자(골드 리슈)와 보유 통화의 다변화를 다른 곳보다 앞서 고객들에게 자문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또 다른 중요한 네트워킹 스킬은 ‘나를 통하면 시장의 최고 전문가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고객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사안별로 전문가 그룹을 세분화해서 최고의 자문을 할 수 있는 키맨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하나 주면 하나 받는다’는 ‘기브 앤드 테이크’ 전략은 곤란하다. 최근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오른 ‘레이첼의 커피’(코리아닷컴, 2008)를 보면 ‘Go-giver’란 용어가 나온다.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줄 때만이 이런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결국은 사람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돈을 보고 이 일을 해온 것이 아니다. 사람을 보고 했다. 성과에 조급해 무리한 포트폴리오를 제안하다 보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고액자산가들은 워낙 경험이 풍부하고 다양한 자문 그룹을 두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답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부처님 손바닥에서 노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것이 필자의 생활원칙이다. 고객 자녀의 결혼문제까지 해결해 주는 ‘커플 매니저’ 역할까지 하곤 한다. PB에 국한된 얘기일 수도 있지만 고객의 ‘집사’ 역할을 한다는 생각까지 가져야 한다.
필자가 정말 비즈니스맨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처음에 절대로 ‘노(no)’란 말을 생각해서도 안 되고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끝까지 검토한 뒤 중간 중간 피드백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노력까지 다한 뒤 그때서야 힘들다는 얘기를 꺼내는 것이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고객 못지않게 중요한 사람은 회사 안의 내부 고객이다. 상사, 부하, 동료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 얼마 전 내가 신규 고객을 창출한 뒤 후배인 신임 팀장에게 과감하게 실적을 양보했다. 몇 년 지나고 보면 결국 어떤 형태로든 되돌아온다는 것을 여러 경험을 통해 체험했다.
프라이빗뱅킹시장은 최근 들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신한은행 서울 파이낸스 골드센터는 패밀리 오피스의 성격으로 복합 거래를 하는 거액 고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고객들은 점점 더 가문이나 가족 단위의 체계적인 자산관리를 원하고 있다. 즉 가업승계 또는 평생 집사 개념으로 PB시장은 바뀌고 있으며, 앞으로 핵심 사업 분야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필자는 2005년 이후 3년 연속 신한은행 ‘베스트 프라이빗(Best Private)’상과 2006년 2회 연속 신한은행 시너지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신한은행 내 유일한 ‘마스터 프라이빗 뱅커’다. 칼럼 기고와 강연 등 외부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