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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동그라미 세모 네모(○△□)로 통한 ‘오징어게임’

세계적 현상이 된 K콘텐츠의 힘
한국적•심미적•초국가적 스토리텔링이 먹혔다

박영은 | 335호 (2021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021년 9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 94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오징어게임이 성공한 까닭은 첫째, 기업 측면에서 일찌감치 한국을 거점으로 관련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에 나선 넷플릭스의 과감한 투자와 선견지명 덕이다. 둘째, 소비 측면에서는 흔한 사랑 놀이에서 벗어나 전통적인 놀이 문화나 한국적 정서 등을 녹여내고 심미적 가치를 살린 차별화된 콘텐츠가 있었다. 셋째, 글로벌 측면에서는 전 세계인의 공감 시대를 연 보편적이고도 현실적인 스토리텔링, 글로벌 라이제이션과 로컬라이제이션을 잘 결합한 초국가적 전략이 있었다.



‘오징어게임’의 숫자가 말해주는 것들

456, 218, 067, 001.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시청한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숫자다. 오징어게임 속 참가자들이 입고 있었던 체육복에 적힌 번호이기 때문이다. 2021년 9월17일 글로벌 온라인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에서 첫선을 보인 이 9부작 드라마는 전 세계 94개국에서 시청 순위 1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켰다. 동영상 콘텐츠 데이터 분석 업체 ‘보빌’에 따르면 ‘오징어게임’의 공식 예고편과 클립, 팬들이 만든 각종 동영상의 유튜브 조회 수를 합치면 약 170억 뷰에 달한다. 이는 8주 만에 HBO의 역대 히트작 ‘왕좌의 게임’이 10년에 걸쳐 달성한 기록을 가뿐히 추월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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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신드롬은 단순히 드라마 시청으로 끝나지 않고 전 세계적인 패러디 현상을 일으켰다. 무수한 팝업스토어 및 체험관이 생겨났고 오징어게임 참가자들의 체육복과 진행 요원들의 복장은 올해 미국 핼러윈데이 단골 코스튬이 됐다. 달고나, 라면 등 한국 식품들도 함께 세계 시장 곳곳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오징어게임’을 테마로 한 암호화폐 ‘오징어(SQUID) 코인’까지 등장해 하루 새 2400%까지 폭등하고 코인 개발자가 이를 현금화해 달아나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그야말로 2021년의 하반기를 장식한 키워드는 ‘오징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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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작비 약 253억 원(2140만 달러), 회당 제작비 약 28억 원을 들여 만든 이 글로벌 메가히트 작품은 넷플릭스에 거의 1조500억 원(약 9억 달러)의 가치를 안겨준 것으로 추정된다. 넷플릭스가 2021년 9월 ‘파트너 데이’ 행사를 통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 콘텐츠들의 글로벌 흥행이 가져온 경제적 파급 효과는 약 5조6000억 원 규모이며 창출한 일자리도 1만6000명에 달한다. 한국 드라마 제작비가 할리우드 드라마 제작비의 약 5분의 1, 10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는 점에서 가성비도 뛰어나다. 이를 반영하듯이 오징어게임의 성공 이후 넷플릭스 주가는 2021년 4분기 한때 사상 최고치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렇다면 좀처럼 시들 줄 모르는 오징어게임 신드롬은 왜 일어났을까? 이 한국 드라마에 세계인이 열광한 이유는 무엇이며 향후 한류의 지속을 위해 어떤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을까?

오징어게임의 성공 법칙 1: 넷플릭스의 선견지명
기업 측면의 관점

먼저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흥행을 이해하려면 이 드라마 한 편을 있게 한 거대한 판,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구조 변화를 들여다봐야 한다. 오징어게임의 성공 배경을 말하면서 드라마의 오리지널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넷플릭스 사업 구조의 변화, 이로 인한 판과 게임의 룰 변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오징어게임은 한국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 등으로 유명한 황동혁 감독이 2008년부터 구상해 왔던 시나리오였다. 그동안 작품을 묵혀 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국내에서 투자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주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극적이고 사회 풍자적인 콘텐츠에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하고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과감한 투자, 지원을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없었다면 오징어게임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1997년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와 마크 랜돌프(Marc Randolph)가 온라인 영화 렌털 사업으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지난 25년에 걸쳐 미디어 업계 거물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콘텐츠 시장의 새로운 제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자리를 잡은 넷플릭스의 다음 과제는 이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내보낼 콘텐츠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넷플릭스는 다른 기업이 만든 작품을 내보내는 창구 역할에 치중해 왔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추구하는 방향은 오리지널 콘텐츠 저작권을 단독 소유한 회사, 나아가 이 저작권을 게임과 음악, 머천다이징 상품으로 확장하는 종합 ‘미디어 & 엔터테인먼트 회사’였다.

보통 기업들은 성장하면서 사업의 범위를 확장해 나간다. 이때 크게 두 가지 접근을 취할 수 있다. 기존 사업과 유사한 혹은 같은 산업 내에서 지배력을 높이고 거래 비용을 낮추기 위한 목적으로 ‘관련 다각화(related diversification)’를 시행할 수도 있고, 기존 사업과 관련이 전혀 없는 사업, 즉 ‘비관련 다각화(unrelated diversification)’를 시행할 수도 있다. 다각화의 방식은 인수합병, 합작 투자 및 전략적 제휴, 내부 개발을 통한 직접 설립 등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성장 과정을 보면 ‘관련 다각화’ 전략을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콘텐츠를 보유한 기업은 콘텐츠를 내보낼 수 있는 플랫폼을 가지기 위해 사업을 확장하고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은 플랫폼에 선보일 수 있는 콘텐츠를 채우기 위해 사업을 확장한다.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 성공 이전부터 일찌감치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를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해 왔고, 이번 성공은 넷플릭스의 이런 관련 다각화 노력의 결실이라고도 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2016년 1월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2020년까지 약 5년간 한국 콘텐츠에만 약 7700억 원을 투자했다. 리드 헤이스팅스가 2015년 한국 시장 진출 계획을 발표할 당시 언급했듯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려는 회사에 있어 한국은 아시아에서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핵심적인 거점 시장이었다. 이미 포화 상태인 북미나 유럽, 또 반대로 시장이 미성숙한 남미나 아프리카보다는 성장 일로에 있는 아시아 시장이 전략적 관점에서 중요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이 같은 판단에서 영향력 있고 질 높은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역량과 소비력이 받쳐주는 ‘한국’을 선택했고 그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2021년 초에도 한국 콘텐츠에 55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그 결과로 2022년 2월까지 ‘지옥’의 뒤를 잇는 ‘고요의 바다’ ‘소년심판’ ‘지금 우리 학교는’ ‘모럴 센스’ 등의 신작이 줄줄이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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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글로벌 메가히트를 친 ‘오징어게임’에 들어간 총제작비 253억 원은 모두 넷플릭스가 투자한 비용이었다. 넷플릭스는 그 덕분에 드라마의 오리지널 판권을 소유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 오리지널 판권으로 관련 사업으로의 확장 가능성까지 확보했다. 벌써 넷플릭스는 자사 온라인 스토어와 대형 소매업체를 통해 ‘오징어게임’ 관련 소품과 티셔츠 등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오징어게임’ 성공을 계기로 월마트와도 협업해 월마트 홈페이지에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 관련 굿즈를 모아둔 ‘넷플릭스 허브(Walmart.com/Netflix)’도 구축했다. 그동안 넷플릭스의 핵심 사업이었던 플랫폼 구독 서비스를 넘어 관련 사업 전방위로 다각화함으로써 팬덤을 구축하고, 팬들의 충성도와 애정까지 더욱 굳건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콘텐츠의 창작자 입장에서도 윈윈 게임이다. 기존 방송 사업자가 들이대던 심의나 규제, 편성 등의 잣대에서 자유롭다 보니 제작사 입장에서도 OTT 기업을 통해 콘텐츠를 내보내는 것이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 있다. 이처럼 콘텐츠 창작에 자유를 보장하는 넷플릭스의 원칙과 선견지명이 가져온 이 거대한 미디어 업계 판의 이동은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메가 히트를 계기로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넷플릭스가 걸어가는 길이 이제 게임의 룰이 됐다.

오징어게임의 성공 법칙 2: 모노톤에 컬러 입히기
소비 측면의 관점

그동안 한류를 이끌었던 한국 드라마의 기본 주제는 대부분 ‘사랑’이었다. 이는 한류의 포문을 연 작품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에서 ‘Korean Wave’, 즉 ‘한류(Hallyu)’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낸 한류의 효시는 1997년 6월 중국의 국영 CCTV에서 방영된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였다. 그다음 한류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작품은 한류 1세대이자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둔 2003년 KBS2TV 드라마 ‘겨울 연가’다. 이후 2009년 장근석 주연의 SBS ‘미남이시네요’, KBS의 ‘꽃보다 남자’를 지나 2013년 SBS의 ‘별에서 온 그대’, 2016년 KBS2TV 드라마 ‘태양의 후예’, 2016∼17년 tvN ‘도깨비’, 2020년 tvN ‘사랑의 불시착’에 이르기까지 한류의 궤도를 이어 온 한국 드라마를 보면 장르 불문 ‘사랑’ 이야기를 기본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멋지고 예쁜 남녀 주연 배우들의 사랑과 그 인기에 힘입어 한국의 화장품과 요리는 ‘K-뷰티’ ‘K-푸드’라는 이름하에 글로벌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물론 이런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가 전 세계인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한류를 선도하긴 했지만 일각에서는 스토리가 진부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K-드라마, 음악, 영화의 주제는 사랑 놀이를 벗어나 다양한 스토리로 확대되면서 소재의 한계마저 뛰어넘고 있다. 마치 ‘모노톤에 컬러 입히기’를 시작한 기분마저 든다.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세계관을 구축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BTS의 음악,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등 사회 비판적인 묵직한 이야기로 2020년 칸 국제영화제의 황금 종려상과 아카데미 4관왕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 미국 이민자 가족의 삶을 그려 2021년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고 배우 윤여정에게 미국 및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긴 영화 ‘미나리(2021)’, 넷플릭스 83개국 전 세계 1위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오징어게임’이 대표적인 예다. 기타 넷플릭스 인기 상위권을 달린 액션 누아르 ‘마이 네임(2021)’, 2019년 첫 공개된 좀비 미스터리 스릴러 ‘킹덤’ 시리즈 1, 2와 정체불명의 크리처가 나오는 ‘스위트홈(2020)’, 영화 ‘승리호(2021)’, 탈영병을 잡는 군대 이야기 드라마 ‘D.P.(2021)’도 마찬가지다. 모노톤의 단선적인 구조를 벗어나 다양한 컬러를 입힌 한국 작품들이 이렇게 선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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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오징어게임’의 경우 콘텐츠 측면에서 몰입감을 증폭시키기 위해 ‘게임’이라는 소재를 사용한다. 시나리오를 쓴 황동혁 감독은 게임에서 사용할 놀잇거리 선정에 있어서 염두에 둔 조건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누구든지 30초 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게임의 룰이 간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단순성과 보편성은 글로벌 시청자들을 쉽게 끌어들인 요인이 됐다. 다만 이 작품의 강점은 진입장벽을 낮춰 다양한 계층에 알기 쉽게 다가가는 데 그치지 않고 신선도에 대한 욕구도 100%를 충족시켰다는 데 있다. 작품의 신선도를 평가하는 미국의 리뷰 사이트 ‘로튼 토마토 닷컴(rottentomatoes.com)’의 기록에서도 이 점은 입증된 바 있다. 공개 직후 한동안 평론가 리뷰에서 ‘로튼 토마토 지수’, 즉 신선도 지수가 90∼100%를 기록한 것이다. 이렇듯 어릴 적 아이들이 놀던 게임의 아주 간단한 룰을 보여주면서도 글로벌 시청자에겐 낯선 한국적인 코드와 참신함을 적절하게 섞으면서 드라마의 주요 시청 층인 중년 여성을 뛰어넘어 중년 남성 및 젊은 세대까지 아우르는 힘을 보여줬다.

이처럼 신선한 소재는 실제 체험에 대한 욕구도 자극했다.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전통 놀잇거리를 시도해 보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든지 쉽게 따라 할 수 있지만 해본 적도 없고 친숙하지 않은 K-놀잇거리의 특성이 글로벌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도시 곳곳에서 펼쳐진 ‘오징어게임’ 체험 행사는 신선한 스토리가 가지는 힘, 실제 놀이 문화나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줬다.

전략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Michael Eugene Porter) 교수는 비즈니스 수준의 전략으로 ‘차별화 전략(Differentiation)’ ‘비용 우위 전략(Overall Cost leadership)’ ‘포커스 전략(Focus strategy)’을 정립했다. 시장마다 경쟁 우위를 추구하는 전략은 다를 수 있는데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영역에서는 여전히 차별화 전략이 주효하다. 차별화 전략은 산업 전반에 걸쳐 독특하고 고객이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무언가를 만들어 회사 제품이나 서비스의 차이를 만드는 것을 뜻한다. 물론 1980년대 포터 교수가 이 전략을 정립할 당시 경영학의 이론적 틀은 제조업에 초점을 두긴 했지만 포터 교수의 차별화 전략은 문화 콘텐츠 산업에 있어서도 여전히 가장 가치를 둬야 할 주제다. 무조건 낮은 제작비를 투자하는 비용 우위 전략으로 엔터테인먼트 상품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메이저 경쟁자를 피하고자 틈새시장에 집중하는 포커스 전략을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콘텐츠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제작비를 들일 필요도 있고 평균 이상의 수익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작은 틈새를 겨냥하기보다는 관객의 범위를 폭넓게 가져가는 것이 더 유리하다. 이에 따라 콘텐츠의 경우 특히 차별화 전략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징어게임’은 콘텐츠부터 기존 드라마의 흔한 사랑 놀이를 벗어났다는 차별점이 있다. 콘텐츠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브랜딩 역시 차별화된다. 한국의 전통적인 놀이 문화와 고유성을 살리고 쉽게 콘텐츠를 복제하지 못하도록 ‘지적재산권(IP, Intellectual Property)’으로 관리하고, 음향이나 특수 효과 등 고유 제작 기술과 전문 지식이 있는 스태프 인력 풀을 동원해 심미적 가치를 더한 것도 모두 차별화 요소다. 이 밖에도 콘텐츠 제작의 프로세스와 마케팅 혁신, 고객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 등 여러 가지 차별화 요소를 동시에 제공한 것이 이 작품을 다른 작품과 구별 지었다. 이처럼 성공적인 차별화는 콘텐츠나 관련 상품에 프리미엄 가격을 매겨줄 뿐만 아니라 수익 혹은 매출을 평균 이상으로 높여주며, 이를 구매하고 따라 하려는 소비자의 충성도까지 강화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마치 세계인이 ‘오징어게임’ 패러디를 양산하고 관련 상품을 사고 드라마 속 게임들을 실제로 따라 하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성공으로 이끈 차별화 전략은 이런 복합적인 요소의 합이다.

오징어게임의 성공 법칙 3: 글로벌 공감 시대
글로벌 측면의 관점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인간 군상으로 이뤄진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의 456명. 분명한 것은 이들이 모두 삶의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세계가 디스토피아적이긴 하지만 불공평과 불평등이 만연한 우리네 현실을 더 날카롭게 비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징어게임에 참가한 극 중 성기훈 등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100% 허구가 아니라 현실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미국도 2008년 전 세계를 뒤흔든 글로벌 금융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속 가계 부채로 인해 폭발했듯이 가계 부채의 위기가 매우 심각한 수준일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계 부채의 증가 속도는 더 가팔라지고 있다. 더욱이 주택 담보 대출과 이자, 신용대출도 있겠지만 미국인들에게 의료 부채 문제는 특히 심각한 이슈다. 또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건너간 미국 이민자 및 불법 체류 노동자 문제도 사회적으로 계속 논의되는 큰 어젠다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는 현재를 살아가는 세계인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건드린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은 단순히 삶과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여기에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도 덧붙인다. 게임을 하면서 협력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짝꿍을 구하지 못한 참가자(한미녀)가 깍두기가 돼 부전승으로 바로 가는 등 ‘깍두기’란 약자를 배려하는 정서까지 녹아들어 있다. 현실적인 이슈를 다루면서도 이야기의 포커스가 게임이 아니라 결국 ‘사람’에게 가 있다. 잔혹한 ‘데스게임’에 앞서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사람’ 그 자체, 더 나은 삶에 대한 인간의 ‘간절함’인 것이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이 게임의 플레이어가 돼 죽고 끝나는 여타의 유사한 서바이벌 콘텐츠들과 차별화된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에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집합시켜 놓은 드라마라 그런지 드라마 속 캐릭터 중 나와 닮은 인물을 찾는 ‘인물 심리테스트’ 게임도 생겼다. 참가 번호 ‘457번’으로 게임 속에 들어가 ‘오징어게임’의 인물 중 나는 어떤 인물과 흡사한지 찾아보는 것이다. 보통의 데스 게임과 달리 게임 참가자 각각의 삶이 관심 있게 그려지기 때문에 각자와 공통점이 있고 애정이 가는 인물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징어게임’이 그야말로 찝찝한 뒷맛을 남기는 오징어 맛과 같은 이유는 목숨을 건 이 무차별 서바이벌 게임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오락물이었다는 점이다. 경제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삶 속에서 소수의 부를 독점한 사람들은 이 상황을 그저 즐기고 있다. 현대인들이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어둡고 우울한 면이 투영돼 있다. 이는 영화 ‘기생충’이 널리 공감을 얻은 이유와 같다. 이처럼 ‘오징어게임’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면서 전 세계인이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을 그대로 스토리텔링에 담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메시지를 전하는 패러디물을 전방위로 양산해 내면서 글로벌 공감 시대를 열었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 진입을 시도할 때 ‘비용 절감(cost reduction)’과 ‘현지 시장 적응(adaptation to local market)’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에 직면한다. 이때 기업이 선택하는 전략은 비용 절감에 대한 압박과 현지화 압박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마케팅 분야의 대가이자 교수인 데오도르 레빗은 일찍이 표준화된 글로벌 제품과 브랜드를 선호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 전략을 제안하면서 기업이 전 세계 시장에 맞게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표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전략은 비용은 절감할 수 있지만 국가별로 상이한 소비자 선호와 니즈를 따라갈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즉, 비용 절감에 대한 압력에 대응하는 것 외에도 글로벌 기업은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현지 시장의 요구에 맞게 제품을 맞춤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국가별 제품을 차별화하고 유통 채널, 인적 자원 관행, 정부 제도 차이도 반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 전략이다.

한국은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쓴 지금도 여전히 로컬 문화산업이 강한 국가다. 우리만의 탄탄한 내공을 지닌 K-엔터테인먼트가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K-엔터테인먼트의 경쟁력은 글로벌라이제이션 요소와 로컬라이제이션 요소를 모두 갖췄다는 데 있다. ‘초국가적 전략(Transnational Strategy)’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엔터테인먼트는 본래 비용 절감과 현지 적응 모두에 대한 압력이 상당히 높은 산업이다. 고위험, 고수익을 특징으로 하는 산업 특성상 ‘비용 절감’이 화두이지만 지역마다 다른 문화와 관습, 언어적 차이를 염두에 두고 ‘현지 시장 적응’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지금의 한류가 단기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이 초국가적 전략을 잘 짜는 게 관건이다.

‘오징어게임’이 주는 시사점, 앞으로의 한류는?

한류 메라키(Meraki)로 세계를 사로잡자!

그렇다면 이제 글로벌 메이저 장르로 성장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즉 K-콘텐츠, K-엔터테인먼트가 이 흐름을 계속해서 이어 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456번 마지막 참가 번호를 달고 오징어게임에 참가해 상금을 거머쥔 주인공 성기훈처럼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세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K-콘텐츠가 이렇게 길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류 메라키(Meraki)’가 필요하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메라키’란 단어는 “내가 하는 일에 내 혼신의 힘을 쏟는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요즘 말로 ‘영끌(영혼을 끌어모으는 힘)’과 유사하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 각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최고를 이뤄내는 것을 뜻한다. 기업, 소비, 글로벌 측면에서 어떻게 하면 한류 메라키로 세계를 사로잡을 수 있을지 살펴보자.

기업 측면의 관점

‘오징어게임’의 성공은 K-콘텐츠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줬지만 한편으로는 글로벌 OTT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 증가와 수익 독식에 대한 경각심도 불러일으켰다. 경쟁력 없는 개체는 도태되는 ‘적자생존’의 원리는 엔터테인먼트 세상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금 이 업계는 OTT(Over The Top) 1 기업들이 생태계 혁신을 위해 각축전을 벌이는 전쟁터와 같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영화는 주로 극장에서, 드라마와 방송 프로그램은 주로 TV를 통해 배포됐으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비대면으로 콘텐츠를 보는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장이 넷플릭스 같은 OTT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완전히 판이 바뀌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콘텐츠 제작과 플랫폼 사업을 동시에 벌이기 시작한 글로벌 OTT 기업들은 오직 플랫폼 사업에만 승부를 걸고 있는 국내 OTT 기업들과는 다르다.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아마존의 프라임 비디오, 월트디즈니의 디즈니+(디즈니 플러스)와 훌루, 애플의 애플TV+, 워너 미디어 산하의 HBO 맥스, NBC 유니버설, 라이온스게이트 산하 스타즈, 바이어컴 CBS의 파라마운팅+ 등 글로벌 OTT 기업들이 해외 콘텐츠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가입자를 늘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자연히 음악과 영화, 웹툰과 웹 소설, 드라마를 불문하고 글로벌 OTT 기업들의 K-콘텐츠 투자 계획은 더욱 커지고 있는 추세다. 2021년 11월12일 한국 시장에 진출한 디즈니+의 경우 2023년까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50개 이상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그 콘텐츠 판권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특히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중에서도 블랙핑크나 강 다니엘 등 한국의 아이돌 스타들이 참여하는 작품의 경우 아이돌 팬덤까지 함께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기업들에 매력적인 선택지다. 또한 애플의 애플TV+도 첫 번째 한국어 오리지널 콘텐츠로 김지운 감독의 ‘Dr. 브레인’을 선택해 2021년 11월4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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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글로벌 OTT 기업이 전 세계 시장과 국내 시장을 장악하는 상황을 마냥 안심하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 국내 OTT도 자생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지 못하면 재주는 한국 콘텐츠 생산자들이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가 전부 벌어가는 양상이 될 수 있다. 모바일인덱스와 이카웍스가 발표한 2021년 2월 기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월 사용자 수는 약 1001만 명으로 가장 많다. 이에 반해 국내 OTT 사업자인 웨이브의 월 사용자 수는 약 395만 명이고, 티빙과 U+모바일tv가 각각 약 265만 명, 213만 명, 시즌과 왓챠가 약 168만 명과 139만 명이다. 이들 플랫폼은 K-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해 글로벌 플랫폼에 공개되지 않는 다양한 K-드라마 등 양질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지만 티빙과 왓챠 정도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이용자 수가 감소하는 추세다. 여기에 이용자 대부분이 넷플릭스를 중복으로 이용하고 있는 상황, 디즈니+와 애플TV+까지 경쟁에 가세한 상황 등은 국산 OTT들에는 위협 요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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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들은 이렇게까지 국내에서 활발한 사업을 펼치면서도 국내 인터넷망을 이용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인터넷이 ‘망 중립성’ 원칙에 따라 공공재로 규정돼 오긴 했지만 국내 사업자인 카카오와 네이버 등은 연간 수백억 원의 망 이용료를 내고 있는데 트래픽 폭증의 주원인인 글로벌 사업자들만이 이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 한국 내수 시장에서 ‘오징어게임’의 성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은 것도 이런 불공정에서 기인한다. 국내 제작사 및 감독, 배우, 스태프에 대한 처우 개선을 포함한 ‘콘텐츠 판권 계약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넷플릭스의 제작비 전액 투자로 인해 판권이나 저작권도, 흥행에 따른 추가 인센티브나 보상도 없다는 게 알려지면서 넷플릭스의 수익 독식 문제,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는 문제 등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나아가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거둔 매출 중 77%를 수수료 명목으로 본사에 이전해 영업이익률을 낮췄고, 이에 따라 조세 회피 의혹까지 받고 있다

물론 흥행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리스크가 큰 콘텐츠에 과감한 투자를 한 넷플릭스를 마냥 탓할 수는 없다. 오랜 시간 국내에서 투자자를 찾기 힘들었던 황동혁 감독도 계약의 내용을 모두 알면서도 투자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글로벌 메가 히트로 인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이 넷플릭스의 하청 업체가 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향후 한국 콘텐츠가 정당한 대우를 받고 이에 맞춰 국내 제작 판도를 바꾸려면 글로벌 OTT 업체에 끌려가지 않도록 국내 OTT 사업자들도 콘텐츠와 플랫폼의 경계를 풀고 ‘한국’이라는 로컬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과 글로벌 소비자를 상대해야 한다.

소비 측면의 관점

‘오징어게임’의 성공은 콘텐츠 소비 측면에서도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와 시사점을 남겼다. 먼저, ‘오징어게임’도 콘텐츠 불법 유통 및 저작권 동의 없이 제작된 불법 굿즈의 생산이라는 이슈를 피해가지 못했다. 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되지 않는 중국에서는 ‘오징어게임’이 불법 유통을 통해 60여 개의 불법 사이트에서 유통이 됐을 정도다. 물론 저작권을 보유한 넷플릭스가 발 빠르게 움직여 문제가 된 사이트 및 온라인 쇼핑몰 등 판매 업체를 상대로 경고문을 보내고 알리바바그룹에 속한 타오바오, 티몰 등 대형 온라인 업체에서 이런 불법 굿즈 판매 업체를 퇴출하면서 어느 정도는 대응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는 여전히 엔터테인먼트 세계에서 골치 아픈 이슈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경제 생태계 안에서 새롭게 부상 중인 NFT 사업, 즉 대체불가토큰(Non-Fungible Token)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NFT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복제와 위변조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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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는 ‘오징어게임’과 함께 2021년을 강타했던 강력한 키워드였다. NFT는 유무형의 다양한 자산과 그 소유권의 거래 내역을 블록체인에 저장하는 디지털 파일을 의미하며 이를 다른 토큰으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NFT가 새로운 디지털 경제 생태계를 일으킬 수단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아티스트 및 콘텐츠 굿즈를 NFT로 사업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음으로, 한국어로 만들어진 콘텐츠를 영어권 국가에 배포할 때 더빙이나 자막 품질 관리 문제도 더 비중 있게 고려돼야 한다. 얼마 전만 해도 미국인들은 대부분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만들어진 콘텐츠의 자막을 보는 불편함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류 콘텐츠의 성공은 이런 미국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까지도 바꿔 놓았고, 한국어 학습 열풍까지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한국어 콘텐츠의 선전 속에서도 여전히 짚고 가야 할 난제들이 있다. 실제로 ‘오징어게임’의 영어 더빙과 자막은 품질 논란을 빚었고 ‘더빙판’과 ‘자막판’ 중 어떤 것이 더 나은지를 두고 네티즌 간 설전을 유발하기도 했다. 물론 번역에 의존해야 하는 외국어 콘텐츠 특성상 작품의 의도를 정확하게 담아내기가 쉽지 않고 오리지널 작품의 문화적 뉘앙스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연히 ‘오징어게임’ 더빙판도 연기자의 분위기, 말투와 맥락 등을 잘 잡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해 가지 못했고 자막판 역시 번역이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콘텐츠 제작자들 역시 더빙과 자막을 모두 제공해 국가별, 개인별로 각기 다른 선호도를 충족시켜줄 수 있어야 하고 가능한 원래의 의미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도록 둘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 자막이 더빙보다 비용 우위에 있다고 해서 자막에만 신경을 써서도 안 된다. 넷플릭스는 ‘더빙’을 기본 설정으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18년 넷플릭스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어 콘텐츠의 경우 자막판보다는 더빙판이 더 선호되는 게 현실이다.

세계 5억 명 이상이 등록한 미국의 언어 학습 앱 ‘듀오링고’에 따르면 ‘오징어게임’ 방영 이후 한국어를 배우려는 신규 사용자가 미국에서는 약 40%, 영국에서는 약 76% 이상 늘었다고 한다. 또한 세종학당의 수도 현재 전 세계 234곳에서 2022년에는 270곳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한국 영화와 드라마, 음악 등 대중문화의 세계적인 인기는 언어 학습 트렌드로 바로 반영된다. 현재 전 세계 한국어 학습자는 약 790만 명에 달하며 한국어가 인도의 힌디어 다음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언어라고 한다. 콘텐츠가 가지는 ‘임팩트 밸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인지하고 언어에 담긴 내용들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글로벌 측면의 관점

앞서 언급했듯 이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글로벌 시장을 하나로 보는 글로벌 전략과 각 로컬 시장에 맞춘 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을 병행하는 ‘초국가 전략’ 시대로 들어왔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경영은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콘텐츠 작품 하나하나를 개별적인 프로젝트로 함께 다뤄야 한다는 점에서 결코 쉽지 않다. 또한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져 엔터테인먼트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기까지 ‘기획•개발-투자-제작(후반 제작 포함)-배급-홍보•마케팅-상영-부가 시장’ 등 콘텐츠 제작 프로세스상에 있는 여러 회사를 거쳐야 한다. 이에 하나의 콘텐츠 제작에만 수십 종의 계약이 동반된다. 제작사와 배급사는 물론이고 촬영 종료 후 편집과 사운드 믹싱, CG나 DI 작업 등을 진행하는 후반 작업 업체, 홍보•마케팅 회사 등 여러 관련 기업이 협력하는 까다로운 여정이다. 물론 대기업 계열과 같은 큰 회사들은 수직계열화를 통해 이 전체 프로세스를 통합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각 활동, 분야별로 다른 전략이 요구된다.

먼저, 분야별로 글로벌 전략이 필요한 부분과 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이 필요한 부분을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치사슬에서 업스트림 활동(upstream activities, 원재료, 물류 및 운영)에 해당되는 작가 혹은 창작자의 콘텐츠 기획 개발, 감독 및 스태프, 배우 등의 전문 인력 관리와 고용, 제작의 경우 ‘글로벌 전략’을 택해야 한다. 업스트림 활동을 수행할 때는 현지 시장별로 맞춤형 전략을 짤 필요가 별로 없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더 큰 이익과 효율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전략을 수행하되 지역 로케이션들을 적극 활용하면 해외 촬영 세트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감을 낮추고 까다로워진 엔터테인먼트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각국이 제공하는 세제 혜택을 챙기거나 할리우드 배우보다 몸값이 낮은 각국 배우를 캐스팅해 제작비 규모도 낮출 수도 있다.

반면 다운스트림 활동(downstream activities, 마케팅 및 판매, 서비스)의 경우 엔터테인먼트 소비자들과 더 가깝게 맞닿아 있는 활동이기 때문에 글로벌 전략이 잘 먹히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국가별 차이를 두고 ‘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을 취해야 한다. 한류의 중요 거점 지역을 지정해서 권역별로 아웃바운드 창구를 시스템화 및 체계화하는 작업이 먼저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한류 확산 거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콘텐츠의 판매 및 마케팅 활동, 각국 정부의 규제에 대한 대응 등 지역 상황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활동 거점을 여러 곳으로 분산해야 한다.

한편 콘텐츠의 이야기 자체에도 초국가 전략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오징어게임’의 성공에서 확인됐듯이 다양한 색깔과 스펙트럼을 가진 한국적인 콘텐츠는 세계인들에게 통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보편적인 이야기와 인물 서사를 바탕으로 하되 한국적 정서와 먹거리, 전통 놀이, 문화 등 지역적 요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이때 유의할 점은 세계 시장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영화계는 한중 합작, 한미 혹은 한일 합작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양국 소비자 니즈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시도는 어느 쪽의 입맛도 맞추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다. 한국은 스토리텔링 강국이고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기대 수준에 부합하는 작품이라면 세계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에 우리의 언어로 만든 웹툰, 웹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의 IP를 살리되 각 지역에 맞는 언어 더빙과 자막을 통해 현지화를 도모하면 된다.

초국가 전략을 사용하는 엔터 기업의 혁신은 조직 학습(organizational Learning)이라는 광범위한 프로세스의 결과로 간주될 수 있다. 효율성과 현지 적응의 절충점을 찾아 최적화하는 기업만이 혁신에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혁신하는 기업은 업스트림, 다운스트림 활동별로 적합한 이해관계자와 협업해 관련 기업들의 기여를 적절히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단, 콘텐츠 제작과 유통 과정에서 공공성과 윤리성의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흥행 이후 세계 곳곳에서는 오징어게임 속 인권 침해를 언급하는 기사도 속속 등장했다. 게임에 진 참가자를 무자비하게 죽이는 장면이나 불법 노동자 착취를 다루는 장면, 탈북자 강새벽과 가족의 기본권 침해 장면 등은 일부 인권단체의 반발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콘텐츠의 모든 장면을 심의할 수도 없고 ‘창작, 표현의 자유’도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한류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의 메인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여파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잠재적 리스크에 대한 대비도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메가 히트는 서구 중심의 문화 주도권이 서서히 한국으로 옮겨지고 있는 흐름을 실감하게 한다, 글로벌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를 알아야 하는 당위성마저 생겼을 정도다. 그러나 콘텐츠 관련 요인만이 한류 성공의 전부가 아니다. 격동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을 휘감고 있는 디지털 생태계와 기업 차원의 구조 변화를 이해해야 하며, 기존 성공 공식을 복제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차기 작품으로 ‘오징어게임’과 같은 ‘제2의 오징어게임’ 작품을 만들 것이 아니라 그 패턴과 규칙을 깨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야생의 세계에서는 동물들이 체급을 정해 놓고 싸우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상대와 링 위에 올라가는 경우도 많다. 또한 그 싸움의 결과가 항상 예상과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는 엔터테인먼트 세계가 야생을 방불케 하고 있다. 한국이 이 싸움에서 먼저 기선을 제압하긴 했지만 결국 승리는 이 싸움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의 몫이다. 마지막 번호 456번을 매달고 참가한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이 끝내 살아남아 상금을 거머쥐었듯이 말이다.


박영은 사우디아라비아 프린스슐탄대 경영학과 교수 ypark@psu.edu.sa
박영은 교수는 사우디아라비아 프린스슐탄대학에서 전략센터 센터장을 지냈으며 현재 경영학 연구, Journal of Distribution Science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마케팅 전공)와 박사(전략 및 국제경영 전공) 학위를 받았고, 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박사 후 과정(포닥)을 마쳤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을 거쳐 영화진흥위원회의 전문연구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등급분류 심의위원,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심사위원, 지역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의 심사위원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베스트셀러인 『엔터테인먼트 경영 전략(2021)』 『엔터테인먼트 경영학(2019)』 『K-콘텐츠,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성공전략(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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