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3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은 2030을 위한 코미디 콘텐츠를 선보인다는 목표 아래 ‘재미’라는 본질에 집중한 결과 2021년 10월 말 기준 147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며 두터운 팬덤을 형성했다. 과거 TV나 소극장 중심의 코미디를 유튜브라는 플랫폼에 맞게 재해석해 성공한 피식대학은 과거의 성공 문법에서 벗어나 ‘재미’라는 본질에 집중했다. 또한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포맷을 따르기보다 멤버들이 강점을 가진 상황극 기반의 코미디에 몰두했다. 실감 나는 캐릭터와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를 만들어 시청자들의 공감과 몰입을 높였다. 특히 재미와 불편을 동시에 유발하는 ‘킹받는’ 캐릭터로 기존에 흥행한 ‘부캐’들과는 차별화된 매력을 선보였다. 여기에 콘텐츠가 가진 세계관이 서로 연결되고 확장되면서 두터운 팬덤이 형성됐다.
지난 5월30∼31일 양일간 서울에서 열린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한국 정부가 처음 개최하는 기후환경 분야 정상회의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연사로 참여했다. 하지만 이 행사와 관련해 유튜브상에서 대중의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사람은 김갑생할머니김의 이호창 미래전략실 본부장이었다. 김갑생할머니김은 시가총액 500조 원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김 생산 기업으로 그동안 APEC 정상회담, G20 정상회의 등 국내외 주요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이호창 본부장은 이 회사의 3세 경영인이자 미래전략실 본부장으로 이날 강연을 통해 김갑생할머니김의 ESG 전략에 대해 발표했다. 발표 동영상에는 “스티브 잡스 이후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이라는 댓글이 달렸고 동영상 게시 하루 만에 50만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영상에서 이 본부장은 ESG 경영에 대해 “기업이 자사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며, 투명하고 윤리적인 지배구조를 갖춰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ESG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친환경 ‘업사이클링’ 제품을 선보인다는 계획도 밝혔다. 금빛 김 포장지를 활용해 ‘딱지’를 만들겠다는 것. 이 본부장은 “‘김갑생 김딱지’를 통해 그 옛날 골목을 가득 채웠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되찾겠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읽고 “김갑생할머니김?” “이호창 본부장?” 하며 의아해 하고 있다면 당신은 트렌드에 뒤처져 있다. 김갑생할머니김은 인기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대표 콘텐츠고 이호창 본부장은 그 콘텐츠의 주인공이다. 앞서 언급한 김갑생할머니김의 ESG 경영 전략 발표 동영상은 정부가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홍보 차 피식대학에 의뢰해 만든 홍보 동영상이지만 기발한 발상과 허를 찌르는 패러디 덕분에 2021년 10월 말 기준으로 조회 수 171만 회를 기록했다.
김갑생할머니김이라는 기업은 실존하는 기업은 아니지만 피식대학 안에서 이 회사는 실존하는 기업처럼 일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ESG 경영 일환으로 ‘업사이클링 딱지’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공개 채용 절차에 MBTI 검사와 사주팔자 전형을 도입하고 채용 우대사항으로 ‘김 씨 할당제’를 적용하기도 한다. 또한 연초 신년사에서는 자기 전에 주문한 김이 아침상에 오를 수 있도록 배송하는 ‘김팡맨’ 시스템 도입과 김을 장에 찍어 먹는 ‘김앤장’, 신재생에너지로 돌아가는 ‘김 클러스터 단지’ 등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김에서 정육까지. 정육에서 전기 자동차까지. 흙에서 우주까지”라는 신사업 청사진을 제시하며 지구 너머를 바라보는 새 비전을 선포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피식대학과 김갑생할머니김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다. 이호창 본부장의 ESG 경영 전략 프레젠테이션 동영상을 본 시청자들은 “이런 기업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김갑생할머니김과 이호창 본부장이 유튜브 채널 내 가상의 인물임에도 이들의 세계관에 적극 동참해 마치 회사가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댓글 놀이를 한다. 이호창 본부장의 2021년 신년사에 대해서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아무 말 대잔치”라며 호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