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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CI 시대

움직이는 기업 로고도 등장

이은실 | 18호 (2008년 10월 Issue 1)
아이덴티티 디자인(identity design)’은 기업이나 브랜드가 갖는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디자인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CI(corporate identity)와 BI(brand identity) 디자인이 여기에 해당되며, 넓게는 제품이나 환경디자인을 통한 아이덴티티도 포함된다. 이러한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만들어 클라이언트인 기업이 소유하지만, 실제 사용자는 최종 소비자다.
 
이러한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지금까지 소유자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까지는 기업을 상징화하고 돋보이게 하는 목적의 권위적 디자인이 대세를 이루다가 1980년 이후 기업과 소비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하는 기능적인 요소로 변했다. 2000년 이후에는 소비자에게 친근감을 주는 미적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BP(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의 과거 CI는 기업의 명칭이 방패 형상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형태였다. 권위와 전통을 상징하는 사례다. 하지만 최근 BP는 ‘녹색 태양’을 의미하는 고객 친화적인 아이콘으로 CI를 바꾸고 명칭 또한 소문자로 바꿨다.(그림1) 소비자에게 친근감을 주는 미적인 요소를 강조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SK가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하는 워드마크형 로고에서 고객 만족의 가치를 표현하는 감성적인 디자인으로 CI를 변경했다.(그림2)
 

 
이는 디자인의 주체가 기업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변한 까닭이다. 즉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경영자의 지시에 따르고 기업의 경영전략에 발맞추는 하위 개념으로서,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대중의 만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됐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디자인 자체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면서 디자이너의 창의적이고 기발한 발상과 상상력에 의한 감각적 디자인이 각광받고 있다. 일본의 아사히TV는 최근 로고 디자인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더했다. 정적인 그래픽 요소로 인식되어 왔던 로고 디자인에 움직임을 부여했다. 화면에서 보이는 로고들이 단 한 번도 같은 형태를 띠지 않고 움직이는 방식을 시도한 것이다.(그림3) 방송국에 적합한 새로운 비주얼 아이덴티티로 발상을 전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아이덴티티 디자인만이 아니라 디자인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변화다. 이에 따라 디자이너가 소비자의 감성을 리드하고, 기업 경영의 중심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소유자나 사용자가 아닌 생산자, 즉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의사가 존중되는 풍토는 창의력이 뛰어난 디자이너를 존경하는 문화적 전통을 가진 스칸디나비아,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일찍이 찾아볼 수 있다.
 
디자인은 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프로세스를 갖지만 즉흥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직관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디자이너의 직관에 의한 창의적이고 기발한 디자인을 논리적 잣대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필립스탁이 디자인한 알레시의 레몬즙 추출기는 디자이너의 기발한 상상력이 사용자와 소유자의 공감을 얻어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된 대표적인 사례다.(그림4)
 
국내에서도 디자이너가 경영의 중심에 서서 디자인을 기업의 핵심전략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반 대기업에 그치지 않고 중소기업,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에도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가 주관하는 2008 서울디자인올림피아드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디자이너로 구성된 디자인총괄본부가 주축이 돼 디자이너의 상상력과 감성을 그대로 표현했다. 우리나라 전통 보자기를 응용해 보자기를 펼치거나 싸는 이미지로 올림피아드 엠블럼을 만들었다.(그림5)
 
디자이너가 기업 경영의 중심에 서는 ‘디자인 경영’이 효과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디자인에 대한 최고경영자(CEO)의 의식이 확고해야 한다. 삼성그룹은 ‘디자인이야말로 21세기 최후의 승부처’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이미 1990년대 이후 본격적인 디자인 경영에 착수했다. 디자이너 스스로도 다양한 분야의 체험과 지식을 쌓는 등 높은 수준의 업무수행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 응용미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보스턴대에서 미술학 석사(MFA)를 취득했으며, 서울대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시디알 어소시에이츠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삼성디자인학교(SADI) 교수를 겸하고 있다. 에쓰오일, 2008 서울디자인올림피아드, 현대제철, 국민연금, 서울메트로 등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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