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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임팩트 전환의 시대

패션 기업의 넷제로 달성
가치사슬 밑단부터 혁신해야

정경선,이미지,양동찬 | 332호 (2021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패션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10%를 배출한다. 그뿐만 아니라 옷이 생산되고 폐기되기까지 물, 토양 등 다양한 환경오염이 발생하기도 한다. 패션 기업들은 GHG 프로토콜이 제시하는 온실가스 배출 측정 기준(Scope 1, 2, 3)에 맞춰 자사의 온실가스 배출을 측정하고 감축해야 한다. 글로벌 패션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발표하고 재생 에너지 사용을 확대하거나 해상 및 전기차 등 환경오염이 적은 운송 수단을 활용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물, 토양 오염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실내에서 목화를 재배하거나 물 없이 염색을 하는 등 관련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있다.



늦여름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거리에는 어느덧 가을/겨울(FW) 시즌 의류가 쇼윈도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짧은 생산 주기, 다양한 스타일과 컬러, 시즌이 끝날 때마다 이뤄지는 세일 등으로 다양하고 많은 의류 제품이 생산되고 또 유통된다. 옷장이 꽉 찬 탓에 아직은 충분히 입을 수 있는 옷들을 꺼내 버리는 일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의식처럼 되풀이되기도 한다. 이렇게 쉽게 옷을 사고 버리는 소비 패턴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의류를 빠르게 제작하고 유통하는 패스트패션의 등장과 함께 가속화됐다.

하지만 이처럼 다분히 소비적인 패션 산업에 대한 자성적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패션 산업이 온실가스 배출에서 높은 지분을 차지하고 물과 토양 등 막대한 환경오염을 야기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다. 최근 방탄소년단이 UN 연설에서 국내 지속가능 패션 브랜드 ‘래;코드(RE;CODE)’의 업사이클링 수트를 입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윤리적 소비’라는 흐름을 타고 지속가능 패션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 그 대명사 격인 파타고니아는 올해 미국 ‘악시오스•해리스 100’ 브랜드 평판 설문 조사 결과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 이에 대해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며 ESG를 적극 실천하는 기업의 브랜드 평판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파타고니아처럼 태생부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비즈니스로 설계되지 않은 기업, 즉 패스트패션을 지향하던 기존의 글로벌 패션 기업들도 사회•환경적 악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변화의 물결에 합류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옷의 소재가 되는 원료를 추출하는 단계부터 의류를 제작, 유통하고 소비자가 이를 구매, 폐기하기까지 패션 산업의 가치사슬이 매우 길고 복잡해 사회•환경적 임팩트를 고려한 비즈니스 전환은 쉽지 않다. 패션 기업들은 어떤 방식으로 임팩트 전환을 고려해야 할까? 패션 산업에서 발생하는 가치사슬 단계별 문제점을 짚어보고 임팩트 전환을 위한 글로벌 업계들의 노력과 대안이 될 해결책을 알아보자.

1. 패션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패션 산업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한다. 2019년 UN환경총회에서 출범한 UN 지속가능한 패션연합(UN Alliance for Sustainable Fashion)은, 패션 산업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10% 책임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국제 항공 및 해상 운송으로 인한 배출량보다도 많다. 2

패션 산업의 넷제로 도달을 위해서는 다른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세계자원연구소(WRI)의 ‘온실가스 회계 처리 및 보고 기준(GHG Protocol for Corporate Accounting and Reporting Standard, 이하 GHG 프로토콜)’에 따라 공급망 내 온실가스 배출의 핵심 지점을 파악해 측정 및 감축 계획 수립을 할 필요가 있다.3 환경부는 ‘기업 탄소 경영 가이드라인’에서 이 산정 방법론에 따라 주요 배출원에 대한 배출량을 산정하고, 이 배출 데이터를 기업 관리 시스템과 연계할 것을 권고한다. (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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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복잡한 가치사슬 추적해 온실가스 측정

대부분의 소비재 기업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중 공급사와 협력사 등이 배출하는 Scope 3가 80% 이상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4 이는 Scope 3의 측정 및 감축 노력이 기후 위기 대응에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Scope 3는 필수 공개 사항이 아니며 주요 다국적 기업들도 Scope 3 배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새로운 공시제도는 온실가스 배출 정보를 공급망 전체(Scope 3)로 확대할 예정5 으로 한국의 공급사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전 세계에 걸친 방대한 공급망, 협력사를 두고 있는 패션 산업에서 Scope 3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에 일방적으로 협력사들에 데이터를 요구하기보다는 온실가스 배출이 가져오는 리스크를 이해하게끔 돕고, 교육을 진행하는 등 온실가스 배출 저감에 대한 단계적 전략을 함께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패션 산업의 가치사슬을 파악하고 이에 해당하는 공급사들의 배출 원인 및 배출량을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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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산업의 가치사슬은 [표 2]와 같이 구성된다. 패션 회사가 브랜드(brand)인지, 제조사(manufacturer)인지, 벤더(vendor)인지에 따라서 주요 온실가스 배출 영역도 다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패션 회사라고 생각하는 브랜드들은 소재 추출 및 가공 공장, 봉제 공장 등(Tier 1∼4)을 직접 운영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대부분이 Scope 3에 속하며 공급망 전반에 걸친 협력사들과 함께 Scope 3의 정확한 측정 및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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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섹터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출하는 방식이 복잡하다 보니 그간 [그림 1]과 같이 배출량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다양하게 시도됐다. 6 그중에서도 2020년 ‘로드맵투넷제로(Roadmap to Net Zero)’ 보고서의 의류 섹터를 담당한 WRI와 Apparel Impact Institute 역시 패션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기 위해 시도했다. Tier 1∼4 단계만을 중심으로 계산해 여전히 완벽한 데이터는 아니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 추정치의 총량을 가치사슬에 위치한 각 단계(Tier)에서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감축 전략을 세워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들이 Higg MSI7 를 기준으로 분석한 2019년 패션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총 13억9300만 t이다. 이를 다시 가치사슬별로 구분한 온실가스 배출량과 단계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방법은 [표 2]의 하단 막대 그래프와 같다.

흔히 패션 산업이라 하면 봉제 공장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 단계인 재료 추출 및 가공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소재로의 대체 및 소재의 가공을 위해 운영되는 공장, 시설 등의 에너지 사용 개선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맥킨지앤드컴퍼니는 패션 산업이 지구 온난화를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목표에 기여하려면 2030년까지 11억 t의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를 위해 패션 산업의 이해관계자, 참여자들이 실천해야 할 주요 활동 3개를 도출하고 실행 시의 저감 예상치도 함께 제시했다.

1) 업스트림 공정에서의 온실가스 배출 줄이기

먼저 패션 산업의 업스트림 단계는 원재료의 추출부터 하나의 옷이 생산되기까지(Tier 1∼4)를 말한다. 제조업체와 섬유 생산업체는 재료 생산 및 처리의 탈탄소화, 폐기물 최소화 등을 통해 제시한 전체 저감 활동 중 약 61%에 해당하는 온실가스 저감에 기여할 수 있다. 화석연료에서 재생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면 2030년, 약 10억 t의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2) 브랜드 자체의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 줄이기

브랜드가 배출 감소에 기여할 수 있는 주요한 방법으로는 △재활용 섬유 사용 확대 등 소재 사용의 개선 △지속가능한 운송책 사용 증가 △재활용 및 경량 재료 사용 등 포장 소재 개선 △소매 운영의 탈탄소화 △반품 및 과잉 생산 최소화 등이 있다. 이 같은 노력들로 2030년에는 약 3억800만 t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저감을 달성할 수 있다.

3) 지속가능한 소비 장려하기

소비자 행동의 변화와 이로 인한 브랜드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도입 등을 통해서는 2030년에 3억4700만 t의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이 예상된다. 의류 대여, 재판매, 수선 등을 촉진하는 순환 비즈니스 모델을 늘리고 리사이클링 및 수집을 통해 폐기물을 줄이는 방법 등이다.

2. 글로벌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

그렇다면 글로벌 패션 업체들은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이와 같은 노력을 하고 있을까.

H&M은 2017년 ‘2040년 Climate Positive’ 목표를 설정했고, GHG 프로토콜 기준에 맞춰 Scope 1, 2, 3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측정하고 이를 감축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우선 2030년까지 Scope 1, 2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 대비 40% 줄일 것을 선언했다. 세부 계획으로는 2030년까지 100% 재생 에너지 전력 사용을 통해 감축 목표를 달성하며, Scope 3에서 제품당 59%의 배출량을 줄일 것을 목표로 삼았다. H&M은 직접적으로 제조 공장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다. Tier 1만 해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위치한 무려 1600개 이상의 공장과 거래 중이다. 이에 H&M은 Scope 3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Tier 1과 2의 공장 중 영향력이 큰 업체들을 선별해 ‘에너지효율프로그램(Energy Efficiency Program)’에 우선적으로 등록시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2020년 기준 총 757개의 공급 업체가 참여해 약 3만 t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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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온실가스 배출량의 비중이 높은 소재에 대해서도 2020년 기준 재생 및 지속가능 소재로 64.5% 대체했다. 면의 경우 100% 오가닉, 재활용 등 지속가능한 방식의 소싱을 진행했다. 포장재 영역에서는 14%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라는 성과를 거뒀다.

2020년 기준 총 운송 연료 중 20%를 머스크(Maersk)사의 폐식용유로 만든 탄소중립 연료 ‘에코 딜리버리 연료’로 사용했다.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네덜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전기차와 페달 자전거 등을 활용한 친환경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소비자들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올해 ‘컨셔스 포인트(Conscious Point)’를 론칭했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쇼핑백을 구매하지 않거나 입지 않는 옷을 매장으로 가져와 재활용하도록 제공하는 등 지속가능한 선택을 내릴 때마다 포인트를 제공하는 것이다.

패스트패션 브랜드 자라를 소유한 인디텍스(Inditex)그룹 또한 가치사슬 전반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8년 대비 Scope 1, 2의 90% 감축, Scope 3의 20% 감축을 목표로 설정했다. 2020년에는 그룹의 모든 디자이너에게 순환경제의 기본 원칙을 교육해 제품 생산의 모든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폐기물과 낭비를 막을 수 있게 했다. 특히 의류 타입별로 순환 가능한 디자인을 교육해 디자이너들이 일상적인 업무를 할 때도 순환 가능한 방식을 적용하도록 도왔다. 또한 소비자들이 지속가능한 제품을 식별할 수 있도록 ‘조인라이프(Join Life)’라는 제품 라인을 별도로 만들었다.

지속가능성을 강조한 신발 브랜드인 올버즈는 상대적으로 작은 공급망을 추구하고 있기에 공급업체와의 온실가스 감축 추진에 더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이 회사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전략을 수립해 2025년까지 50%, 2030년까지 95%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버즈는 2020년 지속가능보고서에서 “2025년 12월까지 올버즈가 소유•운영하는 시설에서 100%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고 95% 이상의 운송을 항공이 아닌 해상 운송으로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항공 화물이 해상 운송보다 47배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며 가능한 해상 운송을 우선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의 기후 솔루션을 제공하는 네이티브(NativeEnergy)사의 신재생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지원해 올버즈의 북미 지역 사업을 100% 재생 에너지로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버즈는 신발 한 켤레가 만들어질 때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에 대한 투명한 데이터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전 과정 평가(Life Cycle Assessment)’를 기반으로 신발의 재료, 제조, 운송, 제품 사용 및 세탁,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환경적인 영향을 총체적으로 평가했다. 이를 토대로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공개한다. 또한 패션 브랜드 최초로 상품에 부착된 라벨에도 제품 생산 시 발생한 이산화탄소의 총량, 즉 탄소 발자국을 표시했다. 이 탄소 발자국 계산기 키트를 다른 패션 브랜드들도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올해 4월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웹사이트에 무료로 공개하며 패션업계의 동참을 적극 호소했다.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과정도 중요하다며 건조기 대신 자연 건조를 권장하는 등 고객 행동 변화도 적극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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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소재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들도 관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업스트림 공정에서 약 84%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차지하는 Tier 2∼4 영역에서 대안 소재를 개발하는 스타트업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스타트업들과의 협업을 통한 오픈이노베이션이 패션 기업의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내부에서의 혁신 및 개선이 실패할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자체 개발보다 빠른 속도와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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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스타트업 갈리(Galy)는 자연환경이 아닌 인공 환경의 실험실에서 목화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혁신적인 패션 기술 발굴을 위해 H&M재단이 2015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GCA(Global Change Award)에서 2020년 올해의 기술로 선정되기도 했다. 갈리의 실험실에서 생산되는 면화는 기존의 면화 생산 방식보다 물과 토지를 80% 적게 사용한다. 또한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토양과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고 면을 생산할 수 있으며 목화를 기르는 속도 또한 기존의 방식보다 10배나 빨라 많은 패션 기업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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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이나 직물을 염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줄이는 기술들 또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스타트업 웨어울(Werewool)은 산호로부터 추출한 적색 형광 단백질을 활용해 석유 기반 합성 물질이 필요 없는 직물을 개발했다. 아직 개발 초기 단계이지만 이들이 연구하는 것은 천연 형광성 단백질 섬유이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단백질을 모방하고 활용해 자연 그대로의 컬러를 만들고, 이를 염료나 안료를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직물로 만드는 데 적용한다는 장점이 있다. 웨어울 또한 GCA가 2020년 올해의 기술로 선정했다.

물 대신 이산화탄소를 사용해 섬유를 염색하는 기술도 있다. 네덜란드의 다이쿠(DyeCoo)는 염색 과정에서 물과 추가적인 화학물질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기술을 개발했다. ‘CO2 Dyeing’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물 대신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염색 매체로 사용한다. 초임계 염색 공정에서는 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폐수가 발생하지 않고, 섬유에 대한 높은 침투력을 가진 초임계 이산화탄소의 특성상 분산제가 필요하지 않다. 또한 수계 염색과 달리 건조 과정이 필요 없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으며 순환 방식 공정으로 이산화탄소를 재사용할 수 있다.

대안 가죽의 개발 및 상용화도 한창이다. 영국의 어내너스아남(Ananas Anam)은 버려지는 파인애플 잎으로 대체 가죽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고, 미국의 볼트스레즈(Bolt Therads)는 버섯의 균사체 세포를 배양해 친환경 가죽을 개발했다. 버섯 인조가죽이라 불리며 아디다스, 룰루레몬, 스텔라맥카트니 등과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와 협업했다.

폐(廢)직물을 줄이는 기술

버버리는 2017년에만 약 2860만 파운드(한화 약 415억 원)에 달하는 재고 의류를 소각했다. 8 버버리는 이것이 자원 낭비, 환경오염의 문제로 공론화되자 곧바로 재고 소각을 중단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현재는 재고 의류를 기부하고 있다. 재고의 폐기는 비단 한 브랜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치사슬 전 과정에서 다양한 폐직물이 발생하기도 한다.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들도 있다. 미국의 스타트업 언스펀(Unspun)은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직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D스캐닝 기술을 활용해 고객을 위한 맞춤형 청바지를 제작한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낭비를 줄이며 동시에 3D 아바타를 통해 보이는 과정 자체로 즐거운 고객 경험을 제공한다. 주문 제작 방식이라 당연히 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

홍콩의 스타트업 텍스타일제네시스(Textile Genesis)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섬유가 추출되는 단계부터 의복에 이르기까지의 이력 추적 기술을 개발했다. 섬유에 대한 통합 공급망을 추적하는 기술로 현재 오스트리아 섬유 회사 렌징의 텐셀, 에코베로 브랜드 섬유에 적용됐다. 이 섬유를 구매, 이용하는 브랜드들은 ‘텍스타일 제네시스 플랫폼’을 활용해 지속가능 섬유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다.9

글로벌 패션 기업들 역시 관련 기술 및 순환 비즈니스 모델(Circular Business Model)에 투자하고 있다. H&M재단은 홍콩섬유의류연구소(HKRITA)와 합작해 2016∼2024년에 이르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린 머신(Green Machine)’이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대부분의 의류 소재가 단일 소재가 아닌 혼방이라 재활용이 어려웠다는 페인포인트(pain point)에서 착안한 이 기술은 열, 물, 압력과 생분해 가능한 친환경 화학물질만을 활용해 면과 폴리에스테르 혼방을 완전히 분리하고 재활용해 고품질 섬유를 만들 수 있게 한다. 또한 다른 공정과 달리 섬유를 손상시키지 않기에 폴리에스테르는 새로운 의류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고, 면은 셀룰로오스 파우더 형태로 추출해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 이 공정에서 사용되는 물과 열, 그리고 생분해성의 친환경 화학물질은 순환 방식 공정에서 재사용할 수 있다.10 이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대형 섬유 생산 공장인 카하텍스(Kahatex)와 계약을 맺었고, 2020년 H&M그룹의 브랜드 중 하나인 몬키(Monki)가 그린 머신을 이용한 의류 컬렉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린 머신 기술을 활용한 세계 최초의 인스토어 리사이클링 시스템인 H&M의 루프 머신(Looop Machine)은 수거한 헌 옷을 세척, 조각내기, 필터링, 소모, 추출, 방적, 연사, 편직 등 총 8가지 단계를 거쳐 새로운 의류로 재생산하는 과정을 스웨덴 스톡홀름 H&M 매장의 고객들에게 보여준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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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주도하는 주축이 기업에서 소비자로 변화하고 있다. 좋고 건강한 원료를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친환경적인 생산 과정, 노동 착취 문제 해결 등 사회적 가치의 실현까지 고려하는 착한 소비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이러한 소비자의 변화와 ESG 리스크 관리를 위한 기업들의 수요를 반영하듯 올해 9월에 열린 섬유패션박람회 ‘프리뷰인서울 2021’에서는 많은 친환경 소재 및 염색 관련 기업이 참여했고 바이어들의 상담 열기도 뜨거웠다.

신소재, 재활용, 이력 추적 등의 새로운 기술 개발 및 도입이 기업에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값싼 옷을 제공하는 즐거움에 취해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가속화될 ESG 요구에 의해 값을 매길 수도 없는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특히 의류 공장 및 오프라인 매장을 타지에 둔 다국적 기업이라면 글로벌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친환경적 전환에 대한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투자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정부와 규제 기관은 지속가능한 소비를 촉진하고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지원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자는 포트폴리오사들의 혁신을 장려함으로써 패션 회사의 온실가스 저감에 기여를 할 필요가 있다.


정경선 실반그룹 공동 대표는 고려대 졸업 후 컬럼비아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성수동 체인지메이커 클러스터를 구축한 비영리 단체 루트임팩트, 소셜벤처의 성장을 지원하고 한국 임팩트 생태계의 지평을 넓히는 임팩트 투자 회사 HG Initiative(HGI)를 창립했다. 록펠러 자선자문단의 이사회 멤버다.
이미지 HGI 커뮤니케이션팀 리더는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CJ그룹 CSR팀, 사회공헌추진단, CSV경영실을 거치며 지속가능경영 전략 수립, 계열사 및 해외 지사 연계 CSV 사업 기획, 사회적 가치 측정•평가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KAS(현 아동권리보장원)의 정책연구부, 코오롱FnC의 지속가능패션 브랜드에서도 근무했다.
양동찬 전(前) HGI 연구원은 UC 버클리대를 졸업하고 런던정경대(LSE)에서 환경정책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에코시안에서 배출권거래제 및 기후변화 관련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WWF에서 자연환경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환경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HGI 전략기획팀에서 사회문제 및 혁신 기술 솔루션을 찾아내기 위한 연구를 수행했다.

  • 정경선 | 실반그룹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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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 무신사 어스 카테고리 오너

    이미지 무신사 어스(earth) 카테고리 오너는 기업 지속가능경영 담당자로서 사회·환경적 가치를 만들고 확산하는 일에 전념해왔다. CJ주식회사 CSV경영실, 코오롱FnC를 거쳐 임팩트투자사 HGI에서 기업의 임팩트 전환 전략을 연구했다. 현재 ‘지속가능한 생산 및 소비로의 전환’을 위한 실행 중심 이니셔티브 무신사 어스 서비스를 이끌고 있다.
    miji.lee@musin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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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동찬 | HGI 전략기획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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