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5. 성폭력 이슈 대응을 위한 기업 위기관리 역량

피해자가 원하는 것을 먼저 파악
객관적으로 조사할 감사 전문가 키워야

306호 (2020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성폭력 사건은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과 다르지 않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정당한 조치를 취하면 된다. 그런데 유독 회사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에 대해 기업들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쉬쉬하거나 은폐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는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성급한 조치는 피해자를 오히려 숨어 버리게 만든다. 또한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억울한 가해자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피해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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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적 초기 대응이 키포인트

현대 기업에서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는 익숙한 개념이다. 자연재해, 질병, 전쟁과 정치 변동, 재정 위기, 영업 비밀 누설, 공금횡령 등이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직원 간의 괴롭힘, 특히 성희롱이라는 행위가 기업에 얼마나 심각한 위협 요인인지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성희롱 사건이 조직에 미치는 악영향을 기업들은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조직 내에선 여전히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정확히 제대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응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게 되면 조직 내 사건들은 결국 더욱더 음지로 숨어 버리게 된다.

성희롱 사건을 잘 대처한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초기 대응이다. 수차례 피해자들이 호소했음에도 회사가 무시할 때 피해자들은 외부로 사건을 끌고 나간다. 심한 경우, 성희롱을 문제 삼은 사람을 색출하려는 기업도 있다. 일시적으로는 이런 강압적인 태도가 먹힐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회사도 통제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비화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성희롱 피해자들이 원하는 조치는 무엇일까. 관련 전문가들은 보통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한다. 가해자가 가해 행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한다. 사태가 극단으로 치달아 자신의 소중한 직장과 동료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물론 가해자와 평소에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나 가해자가 직장 관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 판단하면 사과를 포함한 일절의 접촉도 원치 않고 강력한 처벌을 바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평소 가해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을 때라도 회사와 가해자의 태도에 따라 피해자의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 회사가 미온적으로 대처하거나 피해자를 오히려 괴롭히거나, 또는 진정성 있는 방식이나 내용으로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회사와 가해자를 상대로 강력한 법적 처벌을 요구하기도 한다. 피해자가 어려움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초기에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고 조치를 하는 기업 내 매뉴얼과 이를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조직 내 문화가 조성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다.

실제로 사건 초기, 피해자들이 대부분 직속상관에게 관련 사실을 털어놓으며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관리자들이 이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가해자에게 경고 조치를 하고, 당사자에게 사과 조치를 하도록 유도해야 된다. 요즘 30∼40대 직원들은 이런 사건들이 매우 중요하고, 빠르게 조치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임원급 등 연차가 높은 직원들 가운데는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뭐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나, 분위기 좋게 하려다 ‘오버’한 거 같으니 그냥 넘어가자”고 회유하는 경우가 여전히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경우 후속 조치도 지지부진하게 전개된다.

만약 성폭력 피해가 심각해 관리자 선에서 해결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즉시 관련 문제를 조사하는 담당 조직으로 보고해야 한다. 보통 성폭력 관련 사건은 감사팀이나 인사팀에서 조사를 한다. 조사는 사실 청취, 관련 증거 채취, 가해자 조사, 조치 등의 절차로 진행된다. (그림 1)

조직의 상황에 따라 인사관리팀에서 성폭력 관련 사건을 맡는 경우가 있는데 필자는 감사팀과 같이 회사 내 문제를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부서에서 담당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사안에 집중해 조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인사팀에서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어떤 인사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수사를 한 후 판결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초동 대응은 우선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직급과 가치관이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성격에 따라 대응책도 바뀌어야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 매뉴얼은 기업마다 어느 정도 갖추고 있겠지만 구체적인 대처 방안은 획일화하기 어렵다. 사건화된 경로, 사안의 경중, 가해자의 인정 여부 등에 따라 대처 방법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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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사건화된 경로가 중요하다. 얼마 전 모 수입차 브랜드 한국법인 대표가 직원을 상대로 성희롱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증언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오자 회사는 부랴부랴 대표를 직무 정지했다. 이처럼 피해자가 청와대, 수사기관, 인권위원회, 고용노동부 또는 언론 등 외부에 알렸다면 그 사안은 회사가 통제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회사는 관련 법규와 회사 내규에 따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 즉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직장에서 분리하고 당사자들과 참고인에 대해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당사자들을 설득하거나 시간을 끈다는 느낌을 주면 회사가 더 난처해지기 쉽다. 사실 사건이 지지부진하게 처리될 때 피해자가 외부로 사건을 끌고 나가는 사례가 많다. 수입차 대표 사례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은 본사 등에 수차례 진정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이다. 피해자들이 이미 감정적으로 격앙됐고 회사와 가해자에 대해 강력한 처분을 원하는 상황이었다.

사건이 기업 내부에서 문제 제기됐다면 기업은 좀 더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우선 분리하고, 조사하는 것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아직 외부인들이 개입하지 않았으니 피해자의 의사에 따른 중재도 가능한 상황이다. 남녀고용평등법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조치나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의 조치를 할 때 피해자의 의견을 존중하라고 적시하고 있다. 피해자가 직장 동료, 상사, 또는 사내 감사실 등 내부에 피해 사실을 알렸다면 회사에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사람은 사건을 외부로 끌고 나가 키울 수도 있었지만 회사 내부에서 해결되기를 바란 것이다. 물론 이때도 피해자가 행위자에 대한 강한 처벌을 원할 수 있다. 피해자의 의견을 존중해 절차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해자가 성희롱 행위를 인정하는지도 사건 처리 방향의 중요한 요인이다.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을 때 사과만 제때 해도 문제가 봉합될 수 있다. 사실, 상당수 사례에서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성희롱임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 부하직원의 화장법이나 옷차림, 또는 몸매를 지적하는 것을 희롱이 아니라 권리나 의무쯤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면 몹시 당혹해하고 때로는 분노한다. 하지만 냉정함을 되찾고 피해자가 원하는 대로 사실인정과 사과만 해도 더 이상의 불상사는 막을 수 있다. 모든 성희롱 피해자가 가해자의 해임이나 형사 처벌같이 중한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시정요구가 묵살되면 폭발할 수 있다.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일이 어려워진다. 징계 처분, 민사소송, 심지어 형사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기업은 당사자들의 입장이 충돌할 때는 관계 법규와 내부 기준에 맞게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피해라도 정식 절차를 따라야 한다. 만일 피해가 정말로 가볍거나 오해의 산물이라면 징계위원회나 외부에서 그렇게 결정할 일이다. 때로는 회사가 개입해 중재하려고 하는데 섣부른 중재 시도는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지난해 모 중학교 교장이 여교사가 같은 여성 교무부장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하자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알리고 화해를 종용했다는 이유로 징계처분을 받은 사례도 있다.

가해자 엄벌주의는 최악의 해법이다

무조건적으로 가해자를 처벌하려고 하는 방식도 경계해야 한다. 일련의 미투 사건으로 성 비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다 보니 일부 기업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엄벌주의로 흐르기도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형식적인 조사 후에 행위자를 해임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정의롭지도 않을뿐더러 기업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우선, 행위보다 징계가 과하다고 해고 또는 징계의 무효 확인 소송이나 노동위원회로 구제 신청 등이 제기될 수 있다. 해고의 경우 해당자가 승소하면 복직 시까지 기간에 대한 월급까지 배상해야 한다. 최근 한 금융 공기업에서 모 직원이 비정규직 여직원을 상대로 “한번 안아보자”는 등 성희롱성 발언을 했거나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 해고라고 판정했고, 서울행정법원도 징계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사내 규정을 넘어서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3년 전 한 글로벌 은행에서도 직원이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자 가해자로 지목된 상급 직원을 빠르게 해임해 논란을 빚었다. 해임당한 직원은 무고를 주장하며 회사를 상대로 해임 취소와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여전히 법적 소송은 진행 중이기에 누가 진실인지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회사가 진상 규명을 철저하게 하지 않고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을 빠르게 해임해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다고 비판한다. 회사로 복귀한 해당 직원과 주변 직원들이 회사에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생각해보라. 직원 간의 반목, 냉소주의, 그리고 보신주의가 나타날 것이 명백하다.

성희롱 사건은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과 다르지 않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기인하는 권력 차이, 그리고 인식의 문제다. 성희롱 사건 자체를 그저 불미스러운 일, 추문 등 다른 조직 내 이슈들과 다르게 치부하면 해결책은 더욱더 현실에서 멀어진다. 근본 원인을 해결할 생각 없이 행위자에 대한 엄벌만 고집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고 회사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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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담당자 선발 기준은 ‘전문성’

초기 대응에 이어 성희롱 사건을 잘 대처한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의 차이점 두 번째는 성희롱 사건을 처리하는 담당자들의 전문성이다. 사건이 악화되는 경우 보통 사건을 처리하는 담당자들의 업무 방식이 서투른 경우가 많다. 피해자를 조사하면서 수치심을 줄 정도로 캐묻고 피해를 의심하는 발언으로 제2차 피해를 가하기도 한다. 비밀 관리도 못 해서 당사자들의 신원을 유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편안한 조사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은 다반사다. 조사를 너무 짧게 하거나 반대로 너무 길게 해서 피해자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반면 대처를 잘하는 기관은 보통 잘 훈련된 내부 감사 담당자나 외부 전문가가 사건을 처리한다. 좋은 내부 감사 담당자는 객관성을 유지하고 조사 기법을 충분히 습득한 사람을 일컫는다. 이들은 당사자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객관적 정보를 충분히 수집한다. 관련자들은 이들과의 접촉을 통해 안정감을 찾고 회사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

안타깝게도 대기업이라 해도 감사 담당자가 이 정도의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묻는다. 관련 사건 전문가가 없이 조사팀을 꾸릴 경우 어느 직원이 주도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정답은 없지만 두 가지 필수 조건은 말할 수 있다. 우선, 성폭력 사건은 회사 내 발생하는 다른 내부 문제보다 훨씬 더 민감한 사안이다. 특히 피해자를 조사할 때는 함께 공감하고 피해자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법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고 생각해 법무팀 직원이 육하원칙에 맞춰 딱딱하게 물어보면 피해자는 오히려 입을 닫을 수 있다. 그렇기에 조사 직원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과거 소비자나 고객을 대상으로 업무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직원이 적합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일정 기간의 경력이다. 성희롱 피해자가 젊은 여성인 경우가 많다는 이유로 연차가 어린 직원에게 조사를 맡기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적어도 회사 조직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 사안의 영향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직원이 맡아야 한다.

전문가를 직접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에서 회계 감사 기법은 가르쳐도 피해자 면접과 가해자 신문 기법을 교육하는 사적 기관은 없다. 모 기업에서는 지속적으로 내부 감사 요원 교육을 하고, 경찰 수사 교관과 범죄심리학 교수를 초청해 2주간의 감사 전문가 과정을 진행하기도 했다. 나름 감사 분야가 세다고 자부해왔지만 달라진 시대 상황에 따라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심지어 법적 소송까지 생기자 기획한 조치다.

이 과정은 먼저 범죄심리, 피해자와 참고인에 대한 면접 기법 및 피혐의자에 대한 신문 기법(리드 신문 기법), 조사 과정의 법과 윤리적 고려사항 등 이론을 배우고, 기업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실전 연습을 통해 익히도록 한다. 조사 요원들은 다른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피혐의자 역할을 하는 연극배우를 대상으로 실제처럼 조사를 진행하게 되는데, 소통 과정에서 평소 자신도 모르게 저질렀던 수많은 오류를 깨닫게 돼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불행하게도 이 같은 사례는 극히 예외적이다. 앞으로 민감한 사내 이슈에 정교하게 대응하려면 체계적인 감사 요원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또 수사기관 출신자를 감사 요원으로 채용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나을 때가 많다. 보통 법무법인의 변호사나 전문위원들이 외부 감사 요원 역할을 한다. 이들은 수사기관이나 학계 등에서 적극적 청취 기법, 신문 기법, 위기협상 기술 등 각종 기술과 관련 법규를 익혀 실체적 진실에 쉽고 안전하게 접근한다. 또한, 말 그대로 외부인이므로 회사 내 인간관계나 업적 평가 등에서 자유로워 객관적인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사실 내부 감사 요원들은 이런 기존의 사내 관계로 인해 공정한 조사, 비밀 조사를 하기 어렵다. 피혐의자와 친한 관계에 있을 때 힘들고, 특히 고위직일 경우 자칫하면 감사 요원 자신이 향후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까지 든다. 회사 규모가 크지 않은 곳, 그래서 감사조직 자체가 없는 곳이라면 성희롱을 포함한 민감한 사내 비위를 조사하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해보라.

기업에서는 보통 성희롱 사건이라면 여성 담당자를 두고, 사건이 생기면 조사를 맡기기도 한다. 피해자가 원하면 여직원을 배정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여성이라고 해서 반드시 성 인지 감수성이 뛰어날 거라고 믿어선 안 된다. 경찰서 여성 청소년계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조사할 때 오히려 여성 수사관이 “나도 여자지만 뭐 그 정도로 이러냐”식의 언행을 해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가끔 여성 활동가나 사회복지 전문가를 부르는 사례도 있으나 전문성은 별론으로 해도 중립성에 대한 시비가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대처의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큰 차이는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성희롱 피해자를 별거 아닌 일로 문제를 일으킨 사람으로 보는 회사에서는 피해자를 존중하지 않고 심지어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 특히 가해자가 대표나 임원일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렇게 하면 기업주가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피해자를 공론의 장으로 문제를 끌어낸 용기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는 회사는 다르다. 사건을 보다 원만하게 정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회사 내부의 잘못된 권력 구조와 문화까지 개선할 수 있다.

성폭력 문제 해결 능력은 기업 역량 수준

근래 들어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처벌이 강화됨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계에서는 보통 가해자와 피해자의 불평등한 권력 차이를 성희롱이나 다른 성범죄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남성보다 여성이, 상사보다 부하가, 나이가 어릴수록, 신분이 불안할수록 피해당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실증 증거를 제시한다. 그러나 성희롱을 나쁜 행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즉 행위에 대한 부정적 정의가 약해서 그렇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실무에서 보면 가해자들이 행위가 잘못이라는 인식이 미약하거나 아예 없는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성희롱이란 용어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이 30년도 안 됐다는 것을 상기하자. 아직도 많은 남녀 가해자는 성희롱을 남에게 고통을 주는 심각한 비행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지속적인 교육과 이슈화를 통해 인식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 한 성희롱이 획기적으로 감소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성희롱 사건을 잘 대처하지 못한 기업은 대부분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된다. 가해자는 사과 정도면 끝날 일로 회사를 떠나야 하거나 민•형사 소송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장기간의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일도 흔하다. 당사자뿐 아니라 관련자들 간의 반목과 불신이 깊어지기도 한다. 회사는 내부적으로 인재를 잃고, 피해자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한다. 회사 평판이 더욱 추락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떤 기업은 성희롱 사건이 일어나도 잘 수습해서 마무리만 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 더 많은 문제가 수면 아래 잠복해 있을 수 있다. 모두 쉬쉬하는 사이 성희롱으로 인해 근로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퇴사율은 올라가고, 생산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탁종연 법무법인 민 (民) 기업위기관리센터장, 범죄학 박사 crim2@lawmin.net
필자는 지난 30여 년간 경찰, 범죄학자, 법무법인의 전문위원으로서 다양한 범죄 사건을 다뤘다. 최근에는 기업위기관리센터에서 사기, 횡령, 배임, 영업 비밀 유출, 사내 폭력 등 여러 기업의 위기 요인을 발굴, 예방, 처리하는 방법을 컨설팅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9호 Smart Hiring 2020년 1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