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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Trend in Japan

‘70세 정년시대’를 준비하는 일본 기업들

이지평 | 302호 (2020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일본에선 고령화 직원의 생산성을 높이고 조직과 함께 성장하는 인재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특히 2021년 4월부터 정년이 70세로 연장되면서 일본 기업들은 이에 따른 성과평가제도, 교육제도, 근무제도 등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의 오랜 자랑이었던 종신고용제를 폐지하고 직무별 전문성을 토대로 나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투입될 수 있는 잡(job)형 고용제, 40∼50대부터 고령 근로자로서의 커리어를 준비하는 각종 교육제도, 고령화 직원의 숙련된 노하우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근무환경 조성 등 다양한 방식을 실험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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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인구고령화와 함께 종업원들이 7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기업의 노력 의무를 규정한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안이 지난 3월31일에 일본 국회를 통과했다. 내년 4월부터 일본에서 기업에 고용된 직원들은 70세까지 정년을 보장받는다.

이로써 일본 기업들은 고령 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사실, 일본 기업의 평균 연령은 그동안 계속 높아져 왔다. 도쿄 상공 리서치 조사 기준에 따르면 상장기업 1841개사(3월 결산 기준 기업)의 종업원 평균 연령은 2010년 39.5세에서 2019년에는 41.4세로 계속 높아졌다. 2024년에는 일본에서 50세 이상의 인구가 사상 최초로 절반을 넘을 전망이어서 고령자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일본 기업으로서는 이를 위한 새로운 경영 시스템을 선행적으로 구축하지 못할 경우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 기업들도 최근 직원 고령화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저성장 기조는 장기화하고 디지털 전환 속도는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이라는 글로벌 트렌드를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령 직원들이 조직 내에서 자신의 업무 몰입도를 높이고 새로운 업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고령화를 일찍 겪고 있는 일본 기업에서 일부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종업원 고령화와 함께 ‘잡(job)형’
고용제도로의 혁신 모색

미국과 유럽 등 각국에서는 근로자의 연령으로 직원을 차별하는 것이 금지돼 있지만 일본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그동안 종신고용제, 연공서열, 신입사원 일괄 채용 등의 관행이 어느 정도 유지돼 왔기 때문에 종업원이 일정 연령에 달하면 퇴사하도록 유도하는 제도가 필요했다. 저출산 인구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그동안 유지됐던 ‘일본식 고용 관행’을 전반적으로 개혁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일본 경단련(經團聯, 경제단체연합회)의 나카니시 히로아키 회장은 연초 기자회견에서 고용제도의 전반적인 혁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본 기업들은 호봉제나 정기승급제도 등을 없애고 수시 채용을 통해 필요한 스킬을 가진 근로자를 기동적으로 채용해 업무 내용이나 실적에 따라서 보수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개혁을 멤버십(membership) 고용에서 잡(job)형 고용으로의 혁신이라고 부르고 있다. 기존의 멤버십 고용은 업무의 내용이 종합적이고 순환 근무도 많고 전문성에 관한 규정도 애매했다. 또한 평가가 어려워 시간, 연공으로 임금을 지불하는 관행이 강하다.

반면, ‘잡형’ 고용은 미국과 유럽처럼 업무의 범위를 한정적•전문적으로 정하고 직무에 따라서 임금을 지불한다. 다른 기업으로의 재취업이 용이하고 고용의 유연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같은 업무를 한다면 실질 임금 수준은 동결되기 때문에 일본 기업으로서는 오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 고령자를 지속적으로 고용해도 부담이 줄어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의 여파로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시간으로 근로자의 성과나 보수를 관리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시대가 됐다. 이에 따라 ‘잡형’ 고용제도로의 개혁을 추진하는 일본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세이도는 올해 1월부터 관리직을 대상으로 직무정의서상에 직원의 직무를 명시하고 달성 수준에 따라 성과를 평가하는 ‘잡형’ 고용제도를 도입했다. 또한 8000명의 평사원에 대해서도 2021년 1월부터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아울러 사무실 근무자의 50%에 해당하는 인력이 재택근무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할 것도 결정했다. 잡형 고용은 성과로 업무를 평가하기 쉽기 때문에 재택근무 시대에 적합한 것으로 판단된 데 따른 결정이다. 그 외에도 후지쓰는 2020년에 과장급 이상 약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잡형’ 고용제도를 우선 도입하고 대상 범위를 점차 확대할 방침이며, NTT도 성과연동형 평가 제도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다만 ‘잡형’ 고용제도가 확산되려면 특정 분야에 전문화된 인력이 필요에 따라 여러 기업을 옮겨 다닐 수 있는 등 고용시장 및 근무 여건이 유연, 성숙될 필요가 있다. 근로자가 전직할 때 학력이나 자격증, 전문 직종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 수준이 결정될 수 있는 연봉 기준, 자유롭고 유동적인 고용 환경, 근로자들의 평생 학습 여건 및 마인드의 혁신 등이 필요하다. 또한 기업 내 근무 환경이 보다 표준화돼 전문성을 가진 외부 인력이 쉽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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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 실력주의 인사 평가와 커리어 비전 활용

물론 일본 기업의 전반적인 고용제도 개혁의 성공 여부를 속단하기가 어려운 시점이다. 그러나 일본 노동 시장이나 평생교육 환경의 한계를 기업 차원에서 극복하고 고령자를 잘 활용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음료 기업인 산토리는 지난 2013년, 65세 정년제를 도입한 데 이어 올 4월1일부로 65세 이상 근로자의 연장 근로 제도를 도입하는 등 고령자 활용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기업은 일찍 근로자의 육성, 평가, 직무자격 제도를 체계적으로 도입해 인재 육성에 주력해 왔다. 고령자를 포함한 인력을 ‘고용해야 할 부담’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창출하는 인재로 육성해 고령자도 실력에 맞는 직무와 보수를 받게 하는 것이다.

산토리 인사제도의 기반이 되는 것은 ‘직능자격제도’와 ‘자격•역할제도’이다. 직능자격제도는 직무 수행 능력에 따라 직능 자격을 직원에게 적용하는 것이며, 비즈니스 전문가를 지향해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다. 아직 관리자급이 아닌 직원들에게 자신의 전문성을 길러 연공서열이나 나이가 아닌 자신의 실력으로 평가받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기반이 된다.

이를 위해 연 4번에 걸쳐 상사와 부하가 미팅을 가지면서 성과와 함께 연초 목표 대비의 미비점, 부족한 부분의 능력 개발 포인트 등을 논의한다. 또한 간부들에게는 통상적인 목표와 별도로 난도가 높고 의욕적인 도전과제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더불어 45∼50세 직원을 대상으로 ‘커리어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정년을 맞기 전에 직원들이 일찍 고령기를 대비한 준비에 나서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워크숍을 통해 직원들이 자신과 환경 변화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스스로 커리어 비전과 행동 계획을 작성하고 다른 직원들과 공유한다.

사실 많은 일본 기업이 고령자의 연장 고용제도를 도입하면서 일괄적으로 임금 수준을 삭감해 근로자의 동기부여를 약화시켜 사무실만 지키는 고령 근로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 산토리는 이러한 일반적인 고령근무자 제도의 폐해를 극복하고 선제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토제작소, 고령자 활용해 365일 프레스 가공

제조업계에서 고령자를 고용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근로자의 체력 및 건강 문제가 생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현장에서 고령자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들이 일하기 쉽도록 환경을 바꿔줘야 한다. 이동 과정 및 작업에서 신체적 부담을 낮춰주고, 안전장치를 강화하고, 표시 글자를 확대하는 방안을 예로 들 수 있다. 초기엔 이러한 노력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겠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고령 근로자를 활용하는 이점이 비용보다 클 수 있다.

일본에서 고령자의 활용에 있어 최고 평가를 받고 있는 기업 가운데는 기후현의 가토제작소가 있다. 이 회사는 전기전자, 자동차, 항공기 등의 대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첨단 금속 프레스 가공을 하는 직원 115명 규모의 중소기업이다.

가토제작소는 첨단 가공 기술을 인정받았고 이후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주문에 대응하기 위해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했다. 그러나 적당한 인재를 찾기가 어려웠고 이에 2001년 4월부터 고령자를 활용해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근무 환경을 정비했다. 이에 힘입어 1년 365일 운영 가능한 공장 가동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가토제작소는 ‘정년은 또 하나의 신규 졸업생’이라는 광고를 통해 60세 이상 고령자 15명을 채용했다. 이후 이 고령자 활용 체제가 성공을 거둬 현재 115명의 직원 중 52명이 60세 이상의 고령자다. 고령 근로자의 60% 이상은 외부 기업 출신자이며 대기업 등에서 경력을 축적한 인재도 많다. 심지어 80세를 넘는 종업원도 근무하고 있다. 이들의 성과가 좋아 평일에도 고령 직원들이 일하는 경우도 있다. 이 사례는 기존 근로자를 정년 이후 재고용하는 제도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가토제작소는 고령 근로자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현장 작업 보행 환경의 높이를 통일했다. 높이 차이로 인해 고령자가 넘어질 가능성을 줄였다. 생산 개수를 알리는 신호도 알기 쉽게 하고 작업대도 각 종업원의 신장에 맞게 조절할 수 있게 했다. 표시 문자를 크게 하고 각종 제품 및 작업 설명 매뉴얼 등에 그림이나 삽화를 활용해 고령자들이 쉽게 식별할 수 있게 도왔다.

가토제작소는 공장 환경 개선을 위해 3000만 엔(약 3억33000만 원)가량을 지출했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이를 통해 회사가 누린 성과는 훨씬 컸다. 공장의 가동률이 향상되는 동시에 인건비가 절감됐기 때문이다. 고령 근로자의 경우 인사평가를 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임금을 지불하고 있다. 현역 정규 직원 1.3명 정도의 인건비로 파트타임 고령자 15명을 고용할 수 있었다. 기존 인력보다 낮은 보수를 지급하고 있지만 연령 제한도, 해고도 없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부각됐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임자문위원 jplee@lgeri.com
필자는 1963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 호세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으로 건너와 1988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대통령 자문 기구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의 남북 대외협력 전문위원회 위원, 산업자원부 제조업 공동화 대책회의 위원, 미래부 미래성장동력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는 일본을 닮아가는가』 『일본식 파워경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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