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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Sloan Management Review

점진적 학습엔 ‘신병 훈련소’ 공간을,
전환적 학습엔 ‘놀이터’를 만들어줘야

잔피에로 페트리글리에리(Gianpiero Petriglieri) | 301호 (2020년 7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학습하지 않으면 경력은 꼬이고, 기업은 쇠퇴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개인의 학습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학습에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존에 알고 행하던 것들을 개선하고, 전문 지식을 넓히고, 조직의 권력 구조와 문화를 강화하는 점진적 학습이 있고, 완전히 새로운 일의 방식을 시도하며, 조직 구조와 문화를 전복시키는 전환적 학습이 있다. 이 두 가지 학습에 요구되는 공간을 모두 제공하지 않고는 기업이 직원들의 학습을 지원한다고 말할 수 없다. 점진적 학습에는 전문가가 최적의 방법을 훈련하고 계획하는 신병 훈련소가, 전환적 학습에는 변화를 상상하고 경험해볼 있는 놀이터가 필요하다.



편집자주
이 글은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SMR) 2020년 겨울 호에 실린 ‘Learning for a Living’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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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시간도 예정을 초과했고, 차도 대기 중이었지만 기조 연설가는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그는 대형 강당을 구석까지 빽빽이 채운 기업 임원, 야심만만한 사업가, 경영학도들의 질문 공세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청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기술과 더불어 사는 시대에 대비해야 합니다. 당신이 기술 관련 업계에 종사하든, 아니든 말이죠.” 진행자가 마지막 질문을 받겠다고 하자 한 여성이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대비하는 게 최선일까요?” 그러자 연사가 주저 없이 말한다. “학습에 능해야 합니다. 학습이 멈추는 순간 곧 죽음이 시작되니까요.”

학습의 필요성은 기업 수련회, 전문 콘퍼런스 같은 곳에서 오랜 기간 다뤄 온 주제다. 그런데 기술이 기업과 사회에 무서운 속도로 변화를 몰고 오면서 이런 학습이 이전보다 더 절실해졌다.1 학습이 더이상 클리셰가 아니라 필수라는 데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리더가 수긍한다. 배우지 않으면 경력은 꼬이고, 기업은 쇠퇴한다. 유능한 인재들은 그 조직에 계속 머무르든, 아니든 그들의 발전에 투자해주겠다는 고용주에게 몰려든다.2 그리고 기업들은 실제로 인력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입한다. 2018년 한 해 기업이 직원들의 학습과 개발 프로그램에 들인 비용이 2000억 달러가 넘는다고 추산한 자료도 있었다.3

이런 그럴듯한 발언과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 학습은 여전히 복잡한 문제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학습에 노골적으로 반대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양가적인 태도를 보인다. 배우길 원하지만 우리가 배울 내용을 싫어하게 되진 않을까 걱정한다. 또 학습의 대가가 너무 크진 않을지, 아니면 학습으로 이전까지 소중히 여기던 아이디어를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닐지 불안해한다.4 내가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멘토 한 분은 성인이 돼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면 조금 수치스러운 기분이 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다가 내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면 어쩌겠는가?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주위에서 쉽게 습득할 수 없다면? 필자는 지난 20년간 성인의 학습에 대해 연구하고, 기업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운영하고, 전 세계에서 젊고 유능한 인재와 임원 수천 명을 교육하고 코칭했다. 그러고 멘토의 말에 지혜가 담겨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진짜 새로운 것, 진짜 중요한 것은 절대 쉽게 배워지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조직이 말만 그럴듯하게 할 뿐 학습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5 기업들과 일을 하다 보면 이런 불평을 반복해서 듣게 된다.

“제 상사는 교육 같은 데 관심이 없어요.”
“배움에 대한 욕구를 억제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껴요.”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삼으라지만 정말 실패해도 된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가 학습을 원하고 회사도 이를 필요로 할지라도 학습은 힘든 일이다. 학습을 위한 공간을 얻기도 어렵다. 문제의 원인 중 하나는 우리가 학습이 직장에서 저절로 일어나거나 일하면서 자연스레 얻게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배우는 것도 하나의 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게다가 역설적이게도 학습은 수치심이란 감정이 가장 환영을 받지 못하는 성공적인 경력과 조직일수록 더 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이런 학습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또 우리는 개인으로서 학습이라는 일, 특히 경력과 조직을 완전히 바꿀 만한 학습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 두 가지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학습에 여러 유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학습에는 한 가지 이상의 유형이 있고, 유형별로 별도의 공간을 필요로 하며, 각기 다른 방식의 접근법을 요한다.

학습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앤드루와 샌드라(가명)는 업무를 충분히 빨리 배우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앤드루는 유능한 제품 관리자였지만 고과 평가 때마다 승진하려면 일을 위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충고를 들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이 고위 리더로 발돋움할 수 있게 도와주지 않는 회사가 원망스러웠다. 샌드라는 존경받는 임원이었지만 상사인 회사 CEO와 마찰이 있었다. 그녀가 관할 부서의 디지털 개편을 빨리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덕분에 두 사람 모두 그간 검증된 탄탄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상사에게 애자일하지 않은(경영진 말을 빌리자면 “자기 방식만 고집하는”) 인물로 여겨졌다. 앤드루와 샌드라 모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고, 강좌도 듣고, 조언도 구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도 궁지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필자가 앤드루와 만났을 때, 그는 사실상 변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금방 인정했다. 그는 스스로 일하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유형이었다. 앤드루는 자신이 문제해결사라는 데 자부심을 느꼈고, 그 역할에 대해 오랫동안 보상을 받아왔다. 그래서 어떤 문제를 팀원들에게 넘기면 자기 자신이 무안할 정도로 쓸모없게 느껴졌다. 그가 일을 위임하는 법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주변에서 인정받고, 스스로도 미덕으로 여겼던 독립적인 성향에 위협이 됐기 때문이다.

샌드라에게는 학습이 또 다른 형태의 위협이었다. 그녀는 성과를 발판으로 회사에서 가장 큰 부서의 수장이 됐고, 거기서 조직 수익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녀의 상사는 “배를 뒤흔들라”고 지시하면서, 동시에 안정적으로 배를 운행해야 한다며 압박감을 줬다. 그녀가 관할하는 부서의 실적에 생계가 달린 수천 명의 관계자와 동료도 마찬가지로 그녀를 압박했다. 샌드라의 위치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무모하게 느껴졌다.

앤드루와 샌드라의 얘기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타인의 신뢰를 얻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면 나를 끌어당기는 습관과 나를 밀어붙이는 주변의 기대가 상충하는 상황이 익숙할 것이다. 자부심과 두려움만 우리를 공격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결점이 드러나거나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데서 오는 수치심도 우리를 힘들게 한다. 우리의 정체성과 맡은 책무가 중요할수록 여기에 의문을 품으려는 마음의 여지는 줄어든다. 오히려 반대로 수치심을 일으킬 만한 상황을 막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실적과 조직의 요구에 집중하면서 우리 안의 자부심과 두려움을 키운다.

그렇기에 앤드루와 샌드라의 상사가 그랬듯이 관리자 입장에선 직원들이 부족한 역량을 충분히 학습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릴 만하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매일 무언가를 배운다. 하지만 이런 학습은 대부분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수행하고 있는 것들을 개선하는 정도다. 우리의 기존 정체성과 책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식을 넓히고, 역량을 갈고 닦는다. 앤드루와 샌드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기면 하루도 안 돼 해결해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손을 대면 프로세스가 수정됐고, 지역이 재정비됐다. 상사들은 두 사람에게 계속해서 또 다른 미션을 지시했고, 그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경쟁력을 높였고, 전문 지식을 넓혔으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의 역량이 나아질 때마다, 그들은 점점 더 틀에 갇혔다.

개인의 전문 지식을 넓히는 학습도 물론 유용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점진적 학습은 타인과 세상,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면 이 학습에만 속도가 붙지 않는 게 아니라 다른 유형의 학습 기회까지 잃게 된다. 즉, 학자들이 전환적(transformative)이라 부르는 학습, 개인적인 성장과 혁신적인 도약의 발판이 되고 개인의 시각과 관계를 변화시킬 만한 학습 기회마저 잃게 된다는 의미다.6 두 학습 유형 모두 우리의 발전을 돕는다. 그러나 우리가 점진적 학습 공간만 마련하고 전환적 학습을 피한다면 좌절이 따르고, 변화는 정체되며, 교육에 대한 투자 효과도 떨어지게 될 것이다.

학습 공간 마련하기

학습을 위해 필요한 공간과 그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은 학습의 유형에 따라 다르다. 점진적 학습을 위해서는 더 집중할 수 있고, 덜 산만하며, 우리의 직장을 닮은 보다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어떤 일을 하는 최선의 방법을 훈련하고, 피드백을 구하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일종의 신병 훈련소여야 한다.7 반면 전환적 학습을 위해서는 익숙하지만 개방된 공간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기존 습관과 그것을 육성하는 문화를 확대해 보고, 이들을 면밀히 살핀 다음 새로운 일의 방식을 상상하고 시도할 수 있는 일종의 놀이터가 필요하다.8

신병 훈련소에는 우리가 업무를 하면서 겪는 제약들이 똑같이 반영돼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실전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을 우리가 더 효율적으로 마스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이 데이터 분석으로 통찰력을 얻는 것이든, 아니면 좋은 피드백을 도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든 이 공간은 업무의 훈련과 개선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반면 놀이터에서는 실험을 장려할 수 있도록 대부분의 제약을 없애야 한다. 때로는 매일의 일상에서 한 발 떨어져 봐야 현실을 더 깊숙이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병 훈련소는 학습에 따르는 수치심을 이용하고 증폭해서 개인이 무언가를 원한다는 사실을 감출 수 있게 도와준다. 반면 놀이터는 그런 수치심을 드러내고 맞서야 불안감을 줄이면서,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요구하고 쟁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앤드루와 샌드라에겐 그런 공간이 필요했지만 주위에 없었다. 두 사람은 모두 통찰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앤드루는 자신이 걸려든 재능의 덫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미래의 리더로 주목받게 한 덕목이 오히려 발전의 걸림돌이 돼 버렸다.9 샌드라도 과거의 공적이 미래를 가로막는 성공한 임원의 저주를 두려워하고 있었다.10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게 있었다.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행동 방식 대신 새로운 학습 방식을 터득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두 사람은 더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찾는 데 집중했다. 목적 달성을 도와줄 자원도 많았다. 다만 그들에게 없었던 것은 큰 위험 부담 없이 변화를 시도해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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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는 이런 상황이 종종 문제가 된다. 임원 교육이나 경영진 연수 프로그램같이 학습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때도 점진적 학습 위주로만 구성된다. 신병 훈련소는 성과 중심의 사고방식에 부응하면서 직장에 적응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게다가 신병 훈련식 학습은 폭넓은 기술을 습득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변화를 이끌거나 촉발하는 데는 효과적이지 않다. 새로운 업무 방식으로 전환하려면 리더십 개발 워크숍이나 전략 수련회처럼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긴장을 풀 수 있는 공간, 조직 안팎의 현상에 의문을 품고 다른 방향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좀 더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

많은 조직이 직원의 학습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이 두 가지 학습 공간을 모두 제공해야 정말 약속을 지켰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조직에서는 직원들이 그곳을 떠난 뒤에도 가치를 인정하고 충성심을 유지한다. 조직에 적응하는 법, 자신이 바라는 모습에 가까워지는 법, 성과를 내고 발전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정체성 작업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공간은 폭넓은 비전과 그 비전을 자신의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는 자유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학습에 여러 유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점진적 학습과 전환적 학습 공간을 모두 마련하는 조직이라고 해서 전부 효율성과 변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학습은 궁극적으로 훈련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11 따라서 우리는 그런 주어진 공간의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즉, 전문가와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

실행에 옮기기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글과 같은 기사를 읽고 성공하는 법, 리더가 되는 법, 변화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는 관리자를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보통은 자신에게 부족한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배우거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배운다고들 한다. 그 말에 딴지를 걸진 않겠다. 하지만 전문 멘토를 곁에 두고, 직장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도 우리는 늘 그렇게 많이 배우진 못하고, 변화는 여전히 어렵다. 이 또한 대다수의 사람이 인정하는 바다. 그런 전문가와 경험을 학습 공간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신병 훈련소에서도 극적인 전환이 일어날 수 있고 놀이터에서도 ‘적응’ 능력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중복된 혜택은 어떤 식으로든 우연히 일어난다. 두 공간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런 만큼 두 공간을 필요로 하는 업무 유형도 다르다.

계획적인 훈련을 통한 점진적 학습. 주로 점진적 학습이 이뤄지는 신병 훈련소에서는 기존 권력구조가 강화된다. 개인의 습관을 조직의 규범에 끼워 맞추고, 전문가나 조직 내 권위자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상태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전문가는 중추적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개념적 모델을 만들고, 스스로 롤모델이 되고, 훈련을 지도하고, 우리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먼저, 신병 훈련소의 학생들은 학계 연구나 기업 벤치마킹 사례를 통해 과거를 배우고, 이로부터 교훈을 도출한다. 그리고 우리의 커리어 계획이나 기업 전략과 관련해 리더들이 제시하고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그린다. 이렇게 과거와 미래를 결합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이상적인 상태를 정의한다. 그런 다음 현재를 돌아보고 이 이상적인 상태와의 간극, 즉 역량의 차이를 계획적인 훈련을 통해 채우려 한다.

신병 훈련소에서는 우리의 경험을 돌아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는 우리가 그 경험을 왜 했는지, 이상적인 상태는 누가 정하고 그것이 왜 이상적인지,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별로 캐묻지 않는다. 점진적 학습을 함에 있어 이런 질문이 비효율적이고 부적절하며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성찰적 참여를 통한 전환적 학습. 주로 전환적 학습이 이뤄지는 놀이터에서는 성찰적 참여가 기본이 된다.12 이곳에서는 기존의 권력구조가 전복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럴 것으로 기대된다. 놀이터에서는 전문가가 주변으로 빠지고, 우리의 경험이 전방이나 중심에 배치된다.

놀이터는 탐색을 위한 명확한 틀을 제공하지만 그 틀은 대개 한 가지 방식으로 채우기에는 너무 넓다. 이런 틀은 무엇이 돼야 하는지를 규정하지 않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만 대략적으로 보여준다. 이 틀은 어떤 방식의 혁신을 추구해야 할지, 혹은 무엇을 포함해야 할지 등의 세부 내용 없이 단순히 혁신이나 통합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요구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기 때문에 점진적 학습의 렌즈로 보면 다소 추상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전환적 학습이라는 렌즈로 보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 때문에 그만큼 자유롭다.

어떤 이상적인 모델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때그때 현재의 경험에서 배우는 능력은 과거가 방해가 되거나 미래가 불확실할 때 필요하다. 전환적 학습에서도 전문가가 어느 정도의 역할을 맡긴 하지만 그건 보조적인 역할일 뿐이다. 그들은 우리의 참여를 독려하고 조용히 성찰을 지도한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주의를 기울이고, 대화를 하고, 해석을 토대로 실험을 전개해야 한다.

경험을 통해 배우는 이런 식의 학습 방식은 앞서 설명한 계획된 훈련에 비해 낯설다. 이에 지금부터는 필자가 스타(Star)라고 칭하는 한 기술 회사의 임원들을 통해 그 과정을 세부적으로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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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적 학습 실천하기

필자는 스타의 임원들을 회사의 전략을 변경하기 위해 기획된 워크숍에서 만났다. 공식적인 학습 공간을 통해 만난 것이다. 회사가 변하려면 리더들부터 먼저 변해야 한다는 워크숍의 전환적 취지는 모두에게 분명했고, 조직이 지향하는 새로운 방향과도 일치했다. 회사가 물심양면으로 변화를 도우려 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임원들은 하나같이 회사가 기대했던 만큼 빨리 변하지는 않는다고 여겼다. 그들은 초조했고, 어떤 식의 변화가 필요할지 함께 논의하길 원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기에 앞서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정작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속도를 늦추고 왜 기존 방식대로 행동했는지를 파악하는 일에는 소홀했다.

왜 관심이 없는지에 대한 이유는 참석자들을 몇 개 그룹으로 나눠 간단한 훈련 하나를 시키자 분명해졌다. 그룹별로 폐쇄된 공간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는 기계 장치를 만드는 미션이었다. 다들 뛰어난 능력자들에, 동원할 수 있는 자원도 풍부했다. 유일한 압박 요소라면 다른 팀 동료들과 경쟁한다는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은 압박감을 덜기 위해 모든 게 그저 훈련일 뿐 복잡한 현실과 무관하다는 식으로 생각해 버렸다. 이런 경향은 훈련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 즉 협력 활동을 하면서 든 생각, 기분, 행동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말하고, 해석하고, 따르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뻔한 방어기제라는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직장 생활에서 이보다 더 현실적이고 중요한 일은 없다.

경험을 눈여겨봐라. 전환적 학습이라는 작업은 아주 단순한 형태로 시작하지만 단계를 밟으면서 아주 급진적으로 변한다. 현재 당신의 경험, 내부의 흥얼거림이나 주위의 웅성거림에 귀를 기울여라. 당신의 관심이 어디로 흐르는지 주의 깊게 살펴라. 어떤 것들을 쉽게 보고, 쉽게 행하는가? 또 어떤 것들은 놓치고, 빼먹는가? 과거와 미래는 잠깐 접어 두자. 다시 말해, 만약에(what-if)라는 생각의 고리를 멈춰라. 현재의 상황을 가능한 세세히 알아차리는 데만 당신의 뇌를 활용하라.

스타의 워크숍에서 한 팀은 가용 자원이 많다는 데 주목해 미션에 접근했다. 이 팀은 두 가지 장치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고, 둘 다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필요한 자원이 그룹 내에 분배됐고, 두 아이디어 모두 시제품으로 만들어졌다. 팀은 둘 중 더 단순한 쪽을 테스트하기로 결정했고, 결과적으로는 그 아이디어로 경쟁에서 최종 우승했다. 그러자 아주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팀원 중 그 누구도 우승을 자축하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꺼낸 물건을 다시 원래 폐쇄된 공간에 집어넣은 다음, 좀 더 복잡한 두 번째 장치를 가지고 물건을 꺼내는 일에 착수했다. 분위기는 분주한 동시에 다소 딱딱했다. 팀원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우리가 대화를 시도하기 전까지는 모두 하던 일을 계속했다.

목소리를 내라. 당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대해 물어라. 주변을 둘러보는 것부터 시작하되 당신 안의 직감도 간과하면 안 된다. 무언가를 논의하는 동안에도 그 장소와 그 순간에 벌어지는 다양한 경험을 눈여겨보고 계속해서 귀를 기울여라. 사람들이 보는 것과 감지하는 것에 어떤 패턴은 없는가? 판단은 보류하라. 열린 마음과 호기심으로 접근하면 그런 경험의 패턴에서 더 쉽고 유익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워크숍 참여자들이 각자 생각한 것들을 공유하기 시작하자 대부분의 팀원이 합의에 이르는 듯 보였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두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들은 둘 다 시제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리고 일단 두 아이디어가 모두 시제품으로 만들어지자 우승작이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도 둘 다 테스트까지 해야만 했다. 팀원 여럿이 이런 상황에 대해 복합적인 심경을 토로했다. 자신들의 창의성에는 자부심을 느꼈지만 모든 일을 두 번씩 해야 하는 것은 불필요한 데다 피곤하다고 느꼈다. 어차피 ‘2등 작품’에는 트로피도 없었다. 경영진 한 명은 자신들의 작업 방식이 비효율적인 것 같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의견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걸 느꼈을까요?” 이 질문을 토대로 그들은 해석 단계에 접어들었다.

해석하라. 당신과 다른 이들이 왜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지 자문하라.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었고, 일어났어야 했는지, 또 다음으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계속 유보하라. 당신이 경험한 것들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만 집중하라. 데이터를 살피고 그 이유를 계속 생각하라. “자원이 부족했어/ 시간이 없었어/ 우리 방식이 원래 그렇잖아.” 같은 일상적인 변명에 이의를 제기하는 해석을 하라. 당신은 현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데 어떻게 일조했는가?

팀원들은 왜 자신들이 불필요한 작업을 계속하면서 당시에 가졌던 의문들을 묵살했는지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찾은 첫 번째 해석은 ‘자부심’이었다. 나름 그럴듯하지만 불완전한 해석이었다. 팀원이었던 임원 한 명도 자부심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들의 창의력이 이미 충분히 입증됐고 첫 번째 장치로 이미 미션에 성공했는데도 왜 테스트를 계속하려 했을까? 두 번째 시제품을 지지했던 사람이 이런 의견을 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팀원 중에 수치심을 느낀 사람이 있었을 테니까요.” 이렇게 해서 그 팀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작업을 계속했던 주된 원인이 밝혀졌다. 다른 팀원들, 혹은 스스로에게 수치심을 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소유하라. 외부 요인 위주의 해석을 접어 둘 경우 우리는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때 마침내 과거와 미래, 개인의 관계, 문화를 대화에 끌어들일 때가 온다. 과거의 이력과 미래에 대한 포부는 현재 일어나는 상황에 어떤 해석을 더해줄 수 있을까?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조직문화와 더불어 당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어떤 말을 해줄까? 이런 관점들을 서로 연결해 보라. 경험을 개인적, 관계적, 문화적 표현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보면 변화에 저항하는 원인이나 변화를 위한 방안들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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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여러 임원도 인정했듯이 아이디어가 없거나 효과적이지 않은 아이디어만 내는 것은 일상 업무에서나, 워크숍에서나 난감한 일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성공한 기술 기업의 고위 리더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런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 싫은 만큼 다른 이들을 그런 상황에 내몰고 싶지 않았다. 아이디어를 그냥 패스하는 것은 ‘그 아이디어를 죽이는 것’으로 간주됐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디어의 채택 여부는 그들에게 실존적인 위협이었다.

회사 직원들도 일상 업무에서 비슷한 기분을 느끼며 비슷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창의력, 근면성, 동료애에 강한 자부심을 가졌다. 스타의 문화는 ‘남을 배려하면서 포기를 모르는 행동가’를 가치 있게 여겼다. 이런 특징에 부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뛰어나고 유능하다는 데 안심했다. 그러나 이는 부단한 노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기존 방식을 멈추고 변해야 한다는 주변의 요구는 기회처럼 느껴지지 않고 능력에 대한 비난처럼 느껴졌다.

이 글을 읽으면서 혹시 스타라는 회사가 본인이 다니는 직장의 가명이 아닐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비밀 하나를 알려주겠다. 필자는 이런 패턴을 많은 조직에서 두루 목격해 왔다. 이런 패턴은 중견 기업과 스타트업, 앞길이 창창한 사원들과 C급 경영진, 남성과 여성 할 것 없이 어떤 집단에서나 똑같이 나타났다. 직원들의 과도한 업무량이 눈에 띄어 따져 물으면 관리자들은 대개 이런 대답을 한다. “저희는 누구에게나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만드는 것은 작업자들을 위한 공평한 놀이터가 아니라 조직의 결함을 가리기 위해 산더미처럼 두텁게 쌓아 올린 격무일 뿐이다. 학습을 통해 그런 결함을 채운다는 생각이 수치심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격무는 학습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아니라 사실상 학습이 실종된 결과로 나타나는 일종의 방어기제다.

실험하라. 전환적 학습에는 자유가 따라온다. 개인의 경험을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고, 해석하고, 소유하면, 그런 경험을 바꾸는 방법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일단 사람들에게 공개한 몇 가지 그럴듯한 가설이 있다면 이제는 실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그것을 테스트하고,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를 설득하고, 가설을 조정해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은 새로운 경험을 끌어내고 결론을 도출하는 작은 실험들을 통해 완수될 수 있다.

스타의 경영진은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격무를 막는 사소한 방법들과 격무라는 대용품 없이 프로젝트를 승인하고 성공을 이끄는 방법을 찾고 제시하려 했다. 워크숍을 하고 몇 달이 흐른 뒤 임원 한 명이 필자에게 말했다. “저는 제 자신과 동료들에게 계속 묻습니다. ‘우리는 정말 이 일이 필요해서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부끄러움을 피하려고 하는 건가?’” 이 질문을 가지고 반추해 보니 의무감으로 하는 활동들과 사업부의 전략적 목표를 진전시키려 하는 활동을 가려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또 타당하지 않은 일, 더 정확히 말해 과거 조직문화의 관점에서만 타당한 일을 중단한 직원들을 공적으로 치하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는 자부심을 포기하지 않고도, 격무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그의 직원들도 이 새로운 모토를 아주 고맙게 여긴다.

학습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필자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싶다고 말하고 진심으로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러나 명확한 지표가 없는 한 경험을 통해 배우기는 힘들다. 그들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또 학습의 진전 정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또 평가받는지) 배우고 싶어 하며, 그렇게 배운 것을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계획을 원한다. 이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응이며, 조직에 적응하는 방법을 육성하는 점진적 학습과도 양립할 수 있다. 점진적 학습은 우리를 틀에 끼워 맞춘다. 하지만 전환적 학습은 우리를 부적응자로 만든다. 이는 책임감 있게 현상의 전복을 유도한다. 그래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현상 유지의 공모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고, 현상 유지의 포로가 되지 않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수치심이 학습과 리더십을 저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습할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용기도 생긴다.

전환적 학습이 점진적 학습을 능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점진적 학습을 위한 기반이 된다. 전환적 학습은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고 창조하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점진적 학습은 그것을 추구하는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 두 학습을 동시에 수행할 수는 없지만 시간을 들여 둘 다 이행하는 것이 낫다.

일단 경험을 통해 두 가지 업무 방식, 즉 계획적 훈련과 성찰적 참여를 모두 마스터하기 시작하면 수치심이 줄고 더 큰 용기가 생긴다. 두 유형의 학습 기회를 주기적으로 마련하는 사람들, 특히 주변의 압박을 받으며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종래에는 공식적인 학습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에게는 모든 공간이 학습 공간이 된다.

이런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행하면 집중력과 호기심, 상상력을 개발할 수 있다. 이는 현재의 리더십과 미래의 전문성을 키우는 덕목이다. 그리고 개인의 학습을 스스로 챙길 정도로 용감한 사람들은 대개 다른 이들의 학습도 챙길 줄 안다. 이는 모든 조직이 필요로 하고 모든 직원이 추구할 만한 리더의 모습이다.


번역 |김성아 dazzlingkim@gmail.com

잔피에로 페트리글리에리(Gianpiero Petriglieri)는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의 조직행동학 부교수로 직장 내 리더십과 학습 분야의 전문가다. 이 글에 의견이 있는 분은 http://sloanreview.mit.edu/x/61209에 접속해 남겨 주시기 바란다.
  • 잔피에로 페트리글리에리(Gianpiero Petriglieri) |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의 조직행동학 부교수로 직장 내 리더십과 학습 분야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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