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HR전략

공룡보다 카멜레온 조직역량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한다

223호 (2017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세계관은 뷰카(VUCA)로 잘 설명할 수 있다.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영어 앞글자를 딴 표현이다.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업들이 갖춰야 할 네 가지 조직역량은 ▶ 빛의 속도로 방향을 바꾸는 능력 ▶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능력 ▶ 소프트웨어를 통해 하드웨어의 가치를 높이는 능력 ▶ 조직 안팎의 역량을 모두 활용하는 능력 등을 꼽을 수 있다.



최근 신성장 동력으로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한국의 대응 능력이 국가 차원에서부터 다른 선도 국가들에 비해 취약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스위스 최대 은행 UBS는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 국가들이 4차 산업혁명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는지 순위를 매겼다. 노동시장 유연성, 기술 수준, 사회간접자본, 교육 시스템, 법적 보호 등 5개 요소에 대한 가중평균 분석 결과 스위스가 1위를 차지했다. 싱가포르, 네덜란드, 핀란드, 미국 등이 상위권에 랭크된 가운데 일본과 대만은 각각 12위와 16위를 차지했는데 한국은 25위에 그쳤다.

한편 국내 한 기술평가 전문기관은 몇 년 전 중국과 한국의 기술격차, 즉 중국 기술력이 한국 수준에 이르는 데까지 예상 소요 기간을 분석한 바 있다. 2008년과 2014년 시점을 기준으로 비교할 때 전자산업은 양국 격차가 3.4년에서 1.8년으로, 기계산업은 3.4년에서 1.7년으로, 석유화학산업은 1.9년에서 0.4년으로 각각 좁혀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기준으로 실시한 또 다른 조사 역시 눈길을 끈다. 세계 주요 10대 연구기술 분야를 선도하는 나라를 분야별로 5개씩 선정한 결과 중국은 8개, 한국은 3개 분야에 포함됐고 그나마 2개는 한국이 중국보다 순위가 뒤처져 있었다.1 이러다 보니 최근에는 한국 5대 주력 산업 중 아직 경쟁력이 남아 있는 산업은 반도체 하나뿐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4차 산업혁명 문턱의 불안한 한국호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국내 기업 100개사 약 4만 명을 대상으로 2015년 6월부터 9개월에 걸쳐 기업문화 진단을 실시했다. 맥킨지가 발표한 보고서는 77%에 달하는 국내 기업의 조직건강도는 글로벌 하위권에 속했다. 또한 상습적 야근, 비효율적 회의, 상명하복식 지시 등 후진적 기업문화가 심각한 폐단으로 지적됐다.

이런 현상을 가져오는 근본 원인으로 비과학적인 업무 프로세스, 비합리적인 평가 시스템, 리더십 역량 부족 등이 꼽힌다. 이 조사는 맥킨지가 개발한 조직건강도(OHI·Organizational Health Index) 모델에 기반해 리더십, 업무 시스템, 혁신 분위기, 책임 소재 등 조직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제반사항을 정량화한 뒤 글로벌 1800개사의 평균과 비교한 것이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우리 경제와 기업이 20세기 산업사회 모델을 뛰어넘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생존하는 기업의 조직역량

4차 산업혁명은 직업혁명이 핵심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로봇 기술 등의 발전으로 직업과 노동의 미래가 극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일하는 방식, 인재상, 채용 브랜드 등과 관련해 변화 모습과 대응 방안은 앞선 원고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2 그런데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경영자들의 고민이 너무 인재, 직무, 인사제도에만 집중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경영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조직역량(organization capability)이 개인 차원의 역량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이스라엘 헤브루대 교수는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과 구별되는 능력을 ‘조직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기업 전체 수준까지 확대한 것이 조직역량이다. 개인 차원의 ‘역량(competency)’은 ‘(인재가) 우수한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로 동기(motivation), 특성(traits), 자기인식, 지식, 스킬’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3 그런데 조직 내 개인들의 역량을 모두 합한 것이 조직역량과 같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조직역량은 개인 역량 외에도 조직원 공통의 성공 경험, 체계적인 일처리 방식, 효율적 관행과 제도, 프로세스와 문화 등이 모두 작용하기 때문이다.

조직역량은 자산이자 부채이기도 하다. 한때는 조직의 성공을 가져왔던 강점이 상황 변화에 따라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의미다. 조직역량이 부채로 작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코닥(Kodak)이다. 흔히 코닥의 실패가 디지털에 대응을 못해서라고 하는데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 회사는 1975년에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최근까지도 디지털카메라 제조업체에 센서(CCD)를 제공했으며, 관련 특허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오히려 이 회사의 실패는 탁월한 아날로그 필름 관련 기술 및 상품화 역량이 ‘부채’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조직역량은 무조건 크고 많은 것이 능사가 아니다. 외부 환경, 회사 전략에 따라 최적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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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역량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전략을 잘 짜는 것, 남보다 매력적인 브랜드를 만드는 것, 적은 비용으로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 우수한 인재를 내부적으로 잘 키우고 활용하는 것 등이 모두 조직역량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직역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조직역량을 최고 수준으로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시도에는 위험이 따르기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블루오션 전략에서 얘기하는 ‘전략 캔버스(Strategy Canvas)’ 개념을 생각해보면 쉽다. 스마트한 기업들은 몇 가지 조직역량은 ‘세계적 수준’으로 가져가되 다른 조직역량은 평균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수준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고객니즈 대응능력, 의사결정 스피드, 물류운영 역량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들처럼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회사는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방대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조합 덕분에 과거에 중요하게 여겨졌던 많은 조직역량들이 대체(代替)될 것이다.

예를 들어 마켓 리서치, 재무 분석, 신제품 개발, 지속적 품질 개선 등의 조직역량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평준화돼 차별화 포인트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구성원들의 일하는 방식, 조직 분위기 등은 쉽게 알고리즘화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조직역량으로 차별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비디오 대여업으로 시작해 10여 년 만에 세계 영화 및 콘텐츠 시장을 뒤바꾼 넷플릭스는 핵심 가치와 행동강령을 담은 기업문화 지침서를 인터넷에 일찌감치 공개해버렸다. 왜일까? 공개하더라도 다른 기업들이 쉽사리 따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이런 조직역량은 특성상 매우 동적(dynamic)이다.



불확실하고, 복잡하고, 모호하고 변화 많은 세상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떤 조직역량이 필요한지 알려면 이 시대의 특징을 먼저 알아야 하는데, 이를 가장 잘 정리한 개념이 바로 뷰카(VUCA)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공산권이 무너지고 냉전 시대가 끝나면서 과거의 양극적인 질서도 함께 무너지자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과거의 흑백논리적인 세계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복잡한 시대라는 의미에서 이런 개념으로 정리해 쓰게 됐다.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영어 앞 글자를 딴 이 표현은 군사, 정치, 국제관계를 넘어 여러 분야에 적용됐고, 급기야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세계관으로 자리 잡았다. 뷰카 세계의 특성과 각 상황하에서 개인 차원의 대응 전략은 <그림 1>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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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기업들이 갖춰야 할 네 가지 조직역량을 살펴보자.

1. 빛의 속도로 방향을 바꾸는 능력

세계경제포럼(WEB)의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책에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에서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로 바뀐다”고 썼다.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사치앤사치(Saatchi & Saatchi)社의 전(前) CEO 케빈 로버츠(Kevin Roberts)는 한술 더 떴다. “마케팅은 죽었다. 마케팅의 역할도 달라졌다. 이제 더 이상 새롭다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중략) 이제는 스피드와 속도가 모든 것이다. 마케팅이 할 일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그 변화를 따르도록 하는 것뿐이다.”4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속도’를 강조했다. 빨라야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빠르다’의 의미에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살아남는 기업들에 요구되는 것은 주어진 일을 짧은 시간에 한다는 의미에서의 속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을 바꾸는 속도다. 스포츠로 비유를 한다면 100미터를 0.1초 더 빨리 뛰는 차원이 아니라 미식축구 공격수가 태클을 거는 수비수를 따돌리기 위해 재빠르게 방향을 바꿔 뛰는 것과 같은 기민함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기민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경영 방식이 린스타트업(Lean Startup)이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사업가 에릭 리스(Eric Ries)가 자신의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고안한 이 경영 방식에는 사실 새로울 것이 별로 없다. 도요타가 수십 년간 축적한 린 경영(Lean Management) 기법,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의 하나인 애자일(Agile) 방법론, 새로운 아이디어를 혁신적으로 활용하는 디자인 전략(Design Thinking) 등을 접목한 것이다. 하지만 린스타트업만의 고유한 개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방향전환(Pivot)’이다.

방향전환은 당초 예측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확인하고 재빨리 방향을 바꿔 새로운 시도를 하는 능력이다. 복잡하고, 변동성이 높고,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완벽한 계획이란 것이 어차피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타당한 아이디어를 빨리 시도한 후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에릭 리스는 본인의 저서에서 10가지 방향전환 유형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유튜브는 애초에 온라인 데이트 매칭 사이트로 출시했으나 반응이 시원치 않아서 사이트 기능의 일부였던 동영상 공유를 핵심 서비스로 바꿔 개발했고 오늘날의 성공을 거뒀다. 유튜브를 인수한 구글에서도 ‘출시 후 개선(launch & interate)’ 방식으로 신규 서비스를 도입해 왔다.



캘리포니아의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탄생한 이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 대열에 세계적인 공룡기업들이 동참하고 있다. GE의 패스트웍스(Fast Works)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12년
에릭 리스의 도움으로 GE 사정에 맞게 수정한 이 방법론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거대 기업의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최고경영진의 강력한 후원하에 500여 개 이상의 신규 프로젝트에 적용돼 신제품 개발 사이클을 30% 이상 단축하고 고객 대응 속도를 4배 이상 개선하는 등 GE를 이전보다 훨씬 기민한 조직으로 만들고 있다.5

2.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능력

4차 산업혁명은 그전까지의 산업혁명에서 이뤄낸 모든 지식, 기술, 성과를 연결, 융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다. 이런 부가가치는 기존 비즈니스를 기존 방식으로 열심히 한다고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다른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보자. 아마존(Amazon)은 원래 인터넷으로 책을 파는 회사였다. 하지만 아마존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책에서 다른 상품으로 확대했고 상품에서 물류로, 물류에서 웹서비스로 새로운 시도를 지속했다. 2016년 1분기 기준 아마존 전사 수익의 67%가 웹서비스에서 나왔다. 자동차 제조업체 포드社는 이동성(mobility) 분야의 디자인, 연구개발, 투자를 전담할 자회사 ‘포드스마트모빌리티(Ford Smart Mobility)’를 실리콘밸리에 세웠다. 구글은 2015년에 지배구조를 아예 바꾸고 자율운행차, 인공지능 등 사내 벤처 확산에 나섰다. 화학 및 소비재 전문기업인 3M은 최근 5년 이내에 출시된 제품으로부터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벌어들인 지 오래다.

하지만 매 분기 눈앞의 이익에 목을 매는 상황에서 회사가 망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애플 아이폰 같은 제품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까?

심지어 아이폰이 2010년 한국에 수입됐을 때 이것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말이다. 핸드폰, 인터넷, MP3 기술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한국 대기업도 마음만 먹으면 금방 만들 수 있는 것이었으니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했다. 하지만 아이폰은 지난 10년간 세상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바꾸어놓았다. 결국 끊임 없이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기업만이 기회를 갖는 것이다. 아마존의 CEO 제프 베저스는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파벳의 에릭 슈밋 회장도 “우리 목표는 주어진 시간 안에 세계 어떤 기업보다 많은 안타를 치는 것”이라고 전했다.

조직 안에서 끊임 없이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호기심이 필요하다. 21세기에는 지식을 머리에 구겨넣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구글 검색만 해도 어마어마한 정보를 몇 분 만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르면 쿼라(Quora) 같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서 물어보면 된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도구와 플랫폼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정보나 지식은 이미 희소한 자원이 아니다. 희소한 것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하는 사람의 관심과 열정이다. 그런데 그 열정은 호기심에서 나온다. 세계 5대 기초과학 연구소로 꼽히는 이스라엘 와이즈만(Weizmann) 연구소를 10년 이상 이끌고 있는 다니엘 자이프만 소장은 “변화에 가장 잘 준비된 자는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일단 조직 안에 새로운 시도와 호기심의 불씨를 지핀 다음에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방법에 대한 노력도 필요하다. 비즈니스, 기술, 유행 등 관련한 세계적 트렌드를 추적하는 전문 기업 ‘트렌드헌터(Trendhunter)’ 창립자 제리미 구체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어제처럼 일하지 마라(Better and Faster)>에서 기회를 창조하는 6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결합(Convergence), 이탈(Divergence), 순환(Cyclicality), 방향재설정(Redirection), 단순화(Reduction), 가속화(Acceleration)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이탈’ 전략과 관련한 페이스북의 사례를 보자. 주류 소셜미디어가 상대방이 나를 팔로(Follow)할 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할 때 페이스북은 반대로 상대방이 내 콘텐츠를 볼 수 있을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역발상을 통해 당시 이슈였던 개인정보 노출에 대한 이슈를 해결하면서 서비스의 매력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3. 소프트웨어를 통해 하드웨어의 가치를 높이는 능력

21세기는 디지털의 시대다. 디지털화의 핵심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하드웨어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정보통신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모든 산업의 디지털화가 중요하다. 하드웨어 중심의 산업일수록 디지털화를 통해 얻을 것이 더 많다. 이런 변화의 선봉에 선 기업이 GE다. 지난 2011년 캐피털 사업 대부분을 매각하고 본업인 제조업에 집중한다는 전략을 발표하면서 디지털화를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삼았다. 이멜트 회장은 “우리는 디지털 제조업(Digital Industrial)을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경쟁자는 구글과 같은 기업들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즉, 소프트웨어 회사로의 변신은 하드웨어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반대로 하드웨어의 경쟁력을 증폭시키겠다는 의미다.

이런 능력을 갖추려면 우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대한 통념을 깨야 한다. 과거에는 하드웨어가 중심이고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를 보완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디지털화가 진전할수록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경계가 흐려진다. 기존에 하드웨어로 해결되던 부분이 소프트웨어로 대체되고, 하나의 제품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며,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이 소프트웨어로 인해 창출된다. 디지털 기술의 활용 전략을 다룬 최신 저서에 따르면6 전 세계 매출액 5억 달러 이상의 기업 391개 대상 조사 결과, 디지털 역량이 높고 리더십이 뛰어난 기업의 매출 지표는 업계 평균보다 9% 높았고, 이익률은 20%나 높았다. 반면 디지털 역량이 부족하고 리더십도 떨어지는 기업의 매출지표는 평균보다 4%, 이익률은 26% 낮아 부진했다.

소프트웨어로 하드웨어의 가치를 높이는 사례는 국내에도 있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철강 기업 포스코는 ‘인공지능 기반 도금량 제어 자동화 솔루션’을 최근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7 자동차 강판 생산의 핵심 기술인 용융아연도금(CGL·Continuous Galvanizing Line)을 인공지능을 통해 정밀하게 제어함으로써 도금량 편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로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라 품질 편차가 발생하던 문제를 해결했다. 이를 통해 품질 향상, 원가 절감, 생산성 등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한국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아직 갈 길이 멀다. 2014년 기준 한국 소프트웨어 시장은 109억 달러로 전 세계 시장의 1%에 불과하며,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명목 GDP는 21조8000억 원으로 전체 GDP의 1.5%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무역 강국으로 반도체는 1위, 자동차는 5위를 달리고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17, 18위에 머물러 있다.

4. 조직 안팎의 역량을 모두 활용하는 능력

디지털과 융합을 통해 민첩하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데 기반이 되는 조직 역량이 바로 협업 능력이다. 명확한 목표를 공유하고, 상호 신뢰와 진실성 있는 소통이 이뤄지는 협업(collaboration)은 전반적인 조직 역량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런 협업은 조직 내 다양한 아이디어와 자원들이 자연스레 연결돼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돕는다.

세계적인 디자인 컨설팅 기업 겐슬러(Gensler)는 글로벌 기업 지식 노동자들이 매일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집중(Focus)’ ‘관계형성(Socialize)’ ‘협업(Collaborate)’ ‘학습(Learn)’ 등 네 가지로 유형화한 바 있다. 직장인들이 출근해서 하루 동안 쓰는 시간을 모두 기록해서 분류해보면 이 네 가지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사 대상 기업을 고성과 기업군과 일반 기업군으로 나누어 각 유형별로 쓰는 시간을 측정해봤더니 고성과 기업군의 직원들은 일반기업군 대비 협업을 위해 23%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8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협업은 기업 내부뿐 아니라 외부 주체들과의 협력까지도 적극 포용해야 한다. 시장은 항상 새로운 가치를 원하고 토털 솔루션을 기대하는데 모든 것을 내부 역량만으로 해결하려고 하다가는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고객, 협력사, 정부/기관은 물론 스타트업 기업과의 협업이 특히 중요해진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 기업은 새로운 사업 콘셉트를 포착하고 초기 상품화하는 데 강점을 가진 반면 대기업들은 가능성이 있는 초기 사업 모델을 완성해 수익에 이르도록 하는 데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협업이 가장 앞서 있는 곳은 실리콘밸리다. 기업 간의 다양한 커뮤니티, 콘퍼런스, 네트워크 등을 통해 기술, 아이디어, 인력의 교류가 활발하다. 여기에 대학 및 연구소, 벤처캐피털 등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스타트업 기업들은 엔지니어 중심의 조직 특성으로 인한 조직관리, 마케팅, 자금조달 측면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실리콘밸리 안의 활발한 인재 이동은 암묵적 지식과 노하우의 확산을 촉진한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마그네틱전송기술(MST)을 보유한 루프페이를 인수해 ‘삼성페이’를 성공적으로 상용화한 것이 좋은 사례다.



제언: 미래형 조직역량 육성 전략

이건희 회장 와병 전인 2014년, 삼성에서는 ‘마하경영’이 화두였다. 제트기가 음속(1마하=초속 340m)을 돌파하려면 엔진은 물론 설계 단계에서부터 재질과 소재·부품을 모두 바꿔야 하듯 삼성 역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살아남으려면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비행기의 다른 부분은 그대로 둔 채 엔진만 초음속으로 바꾸면 엔진을 켜는 순간 비행기가 산산조각 난다는 얘기다. 조직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복잡계 시스템이기 때문에 모두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조직역량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설명한 ‘민첩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디지털을 잘 활용하는’ 조직이 되는 것은 어떤 한두 가지만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조직으로 거듭나려면 하드웨어, 운영체계, 소프트웨어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이런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변화 없이 4차 산업혁명에서 살아남는 것은 더 어렵다. 미래의 조직역량을 키우기 위해 경영진과 HR이 할 수 있는 기반 작업에는 무엇이 있을까?

① 비전과 가치에 대한 공감대 형성: 불확실성이 높은 변화의 시기일수록 변하지 않는 목표와 추구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역설적인 진리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모든 것이 달라지는 환경에서 중심을 잡아줄 무엇인가가 없다면 어떤 조직이라도 공중분해되고 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전과 가치에 대한 공감대 형성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한다. 스마트폰 사업 시작 5년 만에 세계 3위에 등극한 중국 화웨이(Huawei)는 속도전의 명수로 자신의 문화를 ‘늑대처럼 민첩하게 움직여 생존하고, 거북이처럼 목표에 집착한다’고 표현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직원들의 이동이 빈번해지고 처음 손발을 맞춰보는 직원들이 협업을 할 일도 많아진다. 이들을 묶어줄 공통분모가 없다면 조직역량이 발휘되지 못한다.

② 조직과 예산의 제약 극복: 전통적인 대기업에서 경영자가 조직을 운영하고 통제하는 핵심은 조직, 예산, 임원 인사다. 이 세 가지만 결정하면 나머지는 따라온다. 그만큼 이 결정이 갖는 무게는 대단하다. 문제는 조직과 예산을 가지고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통 조직과 예산은 1년에 한 번 바꾸고, 준비에 2, 3개월이 족히 걸린다. 한 번 하고 나면 남은 1년간은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10년에 한 번 정도 세상이 바뀔 때는 이것이 효율적이었다. 1년에 서너 번 세상이 바뀐다면 얘기가 다르다. 과거의 방식하에서는 조직과 예산을 바꿔주기 전에는 구성원들이 일을 하지 못한다. 이 제약을 풀어야 한다.

③ 팀으로 일하는 구조 만들기: 전통적인 위계 조직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도, 틀을 깨는 협업, 기민한 적응과는 거리가 멀다. 위계조직은 원래 대량 생산, 반복 업무, 안정적 통제, 생산성 극대화 등의 원칙하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존 조직을 모두 없앨 수도 없다. 전통적인 기업들은 우선 팀 중심의 일하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우선 신사업 발굴과 추진을 위한 별도 조직을 신설하는 방법이 있다. 만약 조직 전반적으로 변화의 움직임을 확산하려 한다면 기존 조직 구성원들의 시간의 일정 부분을 새로운 프로젝트팀에 할애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좀 더 과감한 방법은 조직 계층 구조 자체를 수술해서 단계를 줄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규모의 경제보다 속도에 집착하도록 해야 한다.

④ 핵심급 외부 인재 영입: 전통적 산업에서 성공적이었던 기업이 4차 산업혁명 환경에 맞도록 바뀌려면 사업, 조직, 문화가 모두 변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에 최적화된 기업의 내부 역량과 경험만으로는 어렵다. 이럴 때는 핵심급 인력을 과감하게 영입해 변화를 촉진하는 것도 방법이다. GE가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려고 할 때 시스코시스템즈(Cisco Systems)의 빌 루 부사장을 영입한 것이 좋은 예다. 이멜트 회장은 2008년부터 디지털 기업으로의 전환을 준비했지만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은 루 부사장이 디지털 사업조직을 맡은 후였다. 네이버는
2006년 초특급 개발자 약 40명을 보유한 ‘첫눈’을 350억 원에 인수했는데 이 팀이 일본에 건너가 시행착오를 거친 후 만들어낸 것이 라인(LINE)이었다.

⑤ 미래 역량 중심의 인적 쇄신: 외부에서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를 모셔오더라도 기존 구성원들이 변화를 거부하면 혁신은 실패하고 만다. 과거 사업, 방식, 가치에 연연하는 직원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조직의 미래를 리드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리더가 돼서는 안 된다. 직원들은 진부화된 지식과 경험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스킬을 쌓고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인적 구성 및 예산 배분에 있어서 새로운 사업에 우선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조직의 핵심적인 변화 방향에 대해서는 집중적인 교육을 실시한다. GE는 새로운 경영/업무 방식인 패스트웍스(Fast Works)를 정착시키기 위해 짧은 기간에 4만 명의 직원을 교육했다. 이런 인적 쇄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지시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일을 추진, 관리할 수 있는 능력과 동기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⑥ 조직의 다양성 높이기: 지금까지는 조직에서 사람을 뽑을 때 시키는 대로 일을 잘하는 성실한 인재를 제일 좋아했다. 하지만 그런 인재만으로는 망하기 쉽다. 조직 차원에서 창의, 혁신이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생각’의 다양성이다. 인재의 유형으로 볼 때 둥글둥글한(well-rounded) 인재뿐 아니라 모나고 튀는 인재(pointed talents)가 많이 필요하다. 이런 튀는 인재들이 입사하고 싶은 회사가 되려면 조직의 포용력(inclusiveness)이 높아야 한다. 192개 국가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75개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2013년 연구에 따르면 포용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기업군이 그렇지 못한 기업군 대비 시장점유율 및 신규 시장 개척에서 현저한 우위를 보였다.9

⑦ 팀 리더 동기부여 역량 강화: 새로운 시도를 위한 직원들의 노력과 시도들은 팀 레벨에서 이뤄진다. 회사가 아무리 크고 대단해도 성과를 위한 행동은 개인들이 팀 안에서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팀원들의 행동은 팀 리더의 제약을 받는다. <포천> 1000대 기업 50개 이상의 120만 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85%의 조직에서 직원 동기 수준이 입사 6개월 후에 급격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10 조직 전체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려면 중간관리자들의 동기부여 역량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글은 수백 개 팀에 대한 성과 분석을 통해 높은 성과를 낸 팀의 리더들이 그렇지 못한 팀의 리더들과 차별화되는 행동 특성 8개를 도출했는데 그중 6개가 직간접적으로 구성원 동기부여와 관련한 것이었다.11

⑧ 조직역량 지표 별도 관리: 대부분 대기업 및 중견기업의 경영활동은 핵심성과지표(KPI·key performance index)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KPI는 조직 성과관리의 중심축이고, 임원 보상을 좌우하며 그로 인해 조직 구성원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KPI는 속성상 단기적이다. 그리고 주로 재무 또는 운영 지표 성격을 띤다. 그러다 보니 투자, 모험, 인내심이 필요한 조직역량 강화에 힘을 쏟기보다는 있는 역량을 소진시켜서라도 눈앞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만 매몰될 수 있다. 이래서야 닭을 잡아서 알을 꺼내는 격이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조직역량을 정하고 현 수준을 진단 후 3∼5년 목표로 꾸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조직역량에 대한 지표는 경영진의 장기 인센티브에 철저히 연계한다.

⑨ 제도와 프로세스 단순화하기. 조직은 제한된 사람과 자원을 가지고 운영이 된다. 변화와 혁신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려면 일은 끝없이 늘어난다. 자원은 그대로인데 일만 늘어나면 조직이 견디지 못하거나 우선순위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먼저 조직 내에 만성화된 관행, 제도, 프로세스 등을 없애거나 단순화해서 여유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블루오션 전략 캔버스와 함께 쓰이는 도구로 ERRC 그리드(Grid)를 강조하는 것도 동일하다. 먼저 ‘없애기(Eliminate)’ ‘줄이기(Reduce)’ 실행 후 ‘확대하기(Raise)’ 및 ‘새로 만들기(Create)’ 하는 것이 순서다. 형식에 치우친 보고, 결론 없는 회의, 시대에 뒤떨어진 프로세스 등이 모두 수술 대상이다.



김성남 인사조직 전문 칼럼니스트 hotdog.kevin@gmail.com

필자는 글로벌 소비재 기업의 인재 및 조직 담당 임원이다. 듀폰코리아, 머서컨설팅, 타워스왓슨, SK C&C 등의 기업에서 근무한 바 있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과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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