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 보스턴 레드삭스

“테러당한 보스턴에 용기를 주자” 레드삭스 털보들, 의지로 우승 일구다

158호 (2014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HR

 보스턴 레드삭스는 무려 86년 동안 이어온밤비노의 저주를 깬 뒤 또 다른저주에 시달려야 했다. 바로 자만감이다. 밤비노의 저주를 깬 선수들은 기강이 해이해졌다. 팀의 리더가 돼야 할 고참 선수들이 거짓말을 하고 경기에서 빠지거나 경기 도중 라커룸에 들어가서 치킨과 맥주를 먹기도 했다. 공정하지 않아 보이는 연봉 격차도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선수들은 사분오열했고 당연히 팀의 성적도 뚝 떨어졌다. 레드삭스는 해이해진 선수들의 기강을 바로 잡을 새 감독으로 권위적인 바비 밸런타인을 선택했다. 하지만 밸런타인 감독은 구단 수뇌부의 악수(惡手)였다. 그는 오히려 선수들과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구단은 이후 선수들과 잘 융합하고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존 패럴 감독을 영입했다. ‘인격자벤 셰링턴 단장도 서서히 자신의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2013 4월 보스턴 테러가 발생하자 선수들은 시민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뭉치기 시작했다. 또 선수들도 서로 격려하면서 팀의 성공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레드삭스는스타선수가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의 사기가 한껏 높아져 2013 시즌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다.

 

  1보스턴 레드삭스

 

 

미국 프로야구 구단인빨간 양말보스턴 레드삭스는 과거 메이저리그의 명문 팀이었다. 그러나 1920, 레드삭스의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Harry Frazee)가 새로운 홈구장인 팬웨이 파크를 건설하면서 금융권에서 융자받은 자금을 갚기 위해전설의 홈런왕베이브 루스를 125000달러에 뉴욕 양키스에 넘긴 뒤, 레드삭스는 86년 동안밤비노의 저주라는 지긋지긋한 악령에 시달려야 했다. 밤비노는 루스의 애칭이다. 레드삭스는 1918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2004년까지 월드시리즈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진짜 밤비노의 저주 때문일까? 레드삭스는 1946, 1967, 1975, 1986년 시즌에 월드시리즈에 올랐으나 모두 34패를 기록하며한 끗차이로 패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2002년 시즌이 끝난 뒤 레드삭스의 구단주 존 헨리는 차기 단장으로 누가 올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을 때 예일대와 샌디에이고대 로스쿨 출신의 서른도 안 된풋내기테오 엡스타인을 내부에서 승진시켜 전격 단장에 기용한다. 젊은 단장 엡스타인은 변화를 주도했다. 그는 통계자료를 이용해 선수의 재능을 평가하는 방법인 세이버매트릭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타선부터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레드삭스는 2004년 필라델피아 필리즈의 감독 테리 프랑코나와우승 청부사인 선발 투수 커트 실링, 마무리 투수 키스 폴크를 데려오는 등 감독과 선수진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엡스타인 단장은 2004 7월 팀의 상징과도 같은슈퍼 스타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시카고 컵스에 보내고 내야수 올랜도 카브레라와 덕 민케비치를 데려왔다. 레드삭스는 가르시아파라와 2003시즌부터 연봉 협상에서 마찰을 빚었다. 트레이드의 반향은 엄청났다. 데뷔 당시 신인왕을 차지했으며 ‘4할의 타율을 기록할 만한 유일한 우타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던 가르시아파라의 트레이드는 팬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는 2004시즌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개막전부터 출장하지는 못했지만 데뷔 이후 성적을 감안했을 때 향후 좋은 성적이 기대됐다. 야구 전문가들은 이번 트레이드가 레드삭스의 일방적인 패배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엡스타인 단장의비즈니스적인 결단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레드삭스는 승승장구하며 98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만나 역전승을 거뒀다. 이후 월드시리즈에서 난적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40으로 이기고 86년 만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밤비노의 저주를 깬 것이다. 레드삭스는 2005, 2006년 성적이 다소 부진했지만 2008, 2009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10년에도 올스타전 이후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아메리칸리그 전체 5위를 기록, 서부지구 우승팀인 텍사스 레인저스보다 단 1승이 부족했을 뿐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우승 이후 나락으로 떨어진 레드삭스

2011년에도 레드삭스의 성적은 나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레드삭스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거포 1루수 애드리언 곤잘레스를 영입했고 자유계약시장 최대어로 손꼽히던질주 본능의 외야수 칼 크로포드마저 영입하며 거액을 투자했다. 타석을 대폭 보강했다. 그 결과 미국의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의 전문가 45명 전원이 레드삭스의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예상했으며 43명은 월드시리즈 진출, 33명은 월드시리즈 우승을 예상했다. 2011년 시즌 레드삭스는 개막 이후 6연패를 기록했으나 타선의 힘으로 곧 부진에서 벗어나 지구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삐걱거리는 투수진에도 불구하고 8월 말까지 리그 1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9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몰락이 일어났다. 9월이 되자 레드삭스의 삐걱거리던 마운드는 완전히 붕괴되며 한 달 동안 성적은 720패에 그쳤다. 시즌 결과 9072, 레드삭스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3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레스삭스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팀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핵심 선발투수들인 조시 베켓-존 레스터-존 래키가 경기 도중 라커룸(유니폼을 갈아입는 장소)에 들어가 치킨과 맥주를 먹으며 비디오 게임을 했다는 사실이 적발됐다. 밤비노의 저주를 깬 주요 선수들은 이미 기강이 해이해져 있었다.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들은 자신이 등판하지 않는 경기에서도 덕아웃(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감독, 선수, 코치들이 대기하는 장소)에 앉아 팀을 응원했다. 이것은 팀의 화합을 위한 일종의 불문율처럼 지켜지고 있다. 이들은 불문율을 깨고 지고 있는 경기에서 라커룸에서 웃고 떠들고 했다. 심지어 이들은 개인성적마저 처참했는데 9 15경기에서 고작 2승만을 거뒀을 뿐이었다. 베테랑 투수 팀 웨이크필드도 레드삭스의 추락보다 본인의 개인 통산 200승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등판 경기가 없는 날에는 경기장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9월 몰락의 가장 큰 책임이 투수진에게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선발 투수들의 이런 개인주의적인 경향은 팀의 분위기를 완전히 망쳤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2012시즌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꼴찌를 기록했으나 팀의 사기를 끌어올려 다음 시즌에서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팀의 중심을 잡아야 할베테랑이라는 것이다. 2번의 우승과 자유계약시장에서 받은 높은 몸값은 승리에 대한 동기부여를 떨어뜨렸고 팀원의 몸값 격차는 최저 연봉을 받는 선수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겨줬다. 팀의 사기는 저하됐다. 그 결과 선수들은 투수 그룹과 타자 그룹으로 나뉘었고 이들 사이에서도 연봉이 높은 선수와 낮은 선수의 파벌, 외부 영입 선수와 내부 육성 선수들로 갈라져 단합된 모습을 완전히 상실했다. 2011시즌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타자 자코비 엘스버리는 훈련과 경기에만 집중한다는 이유로 팀에서 따돌림 당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리더십을 잃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됐다. 사실 프랑코나 감독은 구단이 선수를 휘어잡을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은 것에 크게 실망하고 있었다.

 

레드삭스 구단은 이후 단장, 감독, 주장, 고참 선수 등을 바꾸는 등 대대적인 인적 쇄신 작업에 착수했다. 2004년부터 호흡을 맞추며 밤비노의 저주를 깨는 데 성공했던 테오 엡스타인 단장과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함께 물러났다. 이들의 빈자리에는 부단장 벤 셰링턴이 단장으로 승진해 올랐고 2002년 이후 메이저리그를 떠나 일본 리그에서 감독을 하고 있던 바비 밸런타인 감독을 새로 영입했다. 투수진 최고참이었던 웨이크필드, 주장 제이슨 베리텍, 우익수 J.D 드루 등이 은퇴했다. 구단은 밸런타인 감독이 일본에서 감독을 하며 오랫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떠나 있었지만 권위적이며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태해진 선수들을 휘어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권위적인 밸런타인 감독은 선수들과 불협화음이 잦았다. 그는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팀의 간판 선수 중 하나인 케빈 유킬리스를 지목해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경기에 나설 준비가 돼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당사자인 유킬리스는 발끈하고 나섰다. 선수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들은 힘을 모아 감독에게 대항했다. 결국 밸런타인 감독은 유킬리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고 체면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감독에게 이긴 선수들은 여전히 기고만장했다. 5월 치킨-맥주 사건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투수 베켓이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등판을 거르고 등판일이 아니었던 선발 투수 클레이 벅홀츠와 함께 골프를 치러간 것이 발각됐다. 팀 성적이 부진한 가운데 벌어진 이 사건은 팬과 선수의 사기를 더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6월 말, 감독과의 불화설이 돌았던 케빈 유킬리스가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됐다. 그는 2011년 엉망인 팀의 분위기를 다잡아보려 노력했던 선수였고 레드삭스에서 데뷔해서 팀을 이끌던터줏대감이었다. 그를 따르던 후배 선수들이 많았고 팀의 분위기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특히 유킬리스와 친분이 있었던 더스틴 페드로이아는 덕아웃에서 바비 밸런타인 감독과 설전을 벌이는 모습이 방송 중계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감독과 선수의 불협화음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723일 토론토와의 홈경기. 선발투수 존 레스터는 컨디션 난조에 2회까지 무려 9점을 내줬다. 하지만 밸런타인 감독은 덕아웃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투수를 교체하지 않았다. 결국 레스터는 5회 투런홈런을 맞고 나서야 마운드를 내려올 수 있었다. 감독의 이런 결정은 선수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주전 1루수 애드리안 곤잘레스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선수들에게 밸런타인 감독에 대한 험담을 늘어 놓았다. 감독과 선수들의 갈등은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구단 수뇌부는 철저하게 밸런타인 감독 편을 들었다. 사장 루치노가 청문회를 열었고 8월 말 곤잘레스, 베켓, 칼 크로포드, 닉 푼토 등은 LA 다저스에 트레이드됐다. 감독과 대립각을 세우던 유킬리스와 곤잘레스가 다른 팀으로 옮기고 팀의 리더 페드로이아도 밸런타인 감독에게 머리를 숙였다.

 

시즌 말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주전 마무리 투수 앤드루 베일리가 부상에서 복귀하자 밸런타인 감독은 그동안 마무리 투수를 맡았던 알프레도 아세베스를 셋업맨으로 역할을 바꿨다. 일종의 강등 조치였다. 그러자 아세베스가 불만을 품고 무단으로 경기장을 떠났다. 대형 사고였다. 밸런타인의 대응도 볼 만했다. 아세베스가 구단의 자체 징계를 마친 뒤에도 계속해서 패전처리 투수로 등판시켰다. 보복을 단행한 것이다. 레드삭스가 선수들의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은 분명했지만 문제는 밸런타인 감독에게채찍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밸런타인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레드삭스 구단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연이은 패배가 이어지자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코치진이 나를 배신했다고 말했고 결국 해임을 당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홈구장인 펜웨이파크의 개장 100주년이었던 2012시즌 최종 성적이 6993,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꼴찌를 기록했다.

 

2보스턴 레스삭스의 시즌별 승수

 

 

사기를 올리는 조용한 리더십

벤 셰링턴 단장은 대학 시절 야구 선수로 활동했으나 어깨 부상으로 스태프로 전향한 사람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쏟아내는천재형은 아니었지만 통찰력과 이해력이 뛰어났다. 그를 가장 돋보이게 한 것은인성이었다. 그는 레드삭스에서 오랜 기간 동안 절제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성실한 자세로 업무를 맡아왔다. 평가가 좋았다. 레드삭스에서는 주로 선수 스카우트, 선수 육성 등 인적 자원과 관련된 분야를 담당했다. 많은 레드삭스 소속 선수들을 드래프트할 때 관여했고 유망주 육성팀의 책임자를 맡기도 했다. 그래서 현재 레드삭스의 주요 선수들이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쭉 지켜봤다. 셰링턴 단장은 크게 주목받는 선수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도 뛰어났다. 자신이 직접 스카우터로 활동했기 때문에 유망주를 발굴하기 위해 쥐꼬리만한 돈을 받으면서 한참 동안 시골길을 운전해야 하는 스카우터들의 고충도 잘 알고 있었다. 또 야구 행정을 바닥부터 배웠기 때문에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밤비노의 저주를 깬 테오 엡스타인 전 단장은 유망주를 발굴하고 선수 트레이드를 통해 팀 전력을 보강하는 데 매우 능했다.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선수 계약을 맺을 때 기존 선수들에게는 시장가보다 낮은 연봉을 제시했다. 하지만 외부 선수를 영입할 때는 지나치게 비싼 금액을 계약서에 제시했다. 그 결과 기존 선수들은 자신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조치는 기존 선수들의 사기를 꺾었다. 게다가 거액을 받는 조시 베켓 같은 선수들이 성실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자 기존 선수들은 파벌까지 형성했고 감독에게 항명하기도 했다.셰링턴이 단장에 취임했을 때 한정된 구단 예산을 가지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2012시즌을 앞둔 겨울 전임 단장인 엡스타인은 몸값이 비싼 애드리안 곤잘레스(7년 동안 15400만 달러)와 칼 크로포드(7년 동안 14200만 달러)를 영입해 구단 선수들의 연봉 총액을 늘렸기 때문이다. 운신의 폭이 좁은 상태에서 셰링턴 단장이 취임 초에 단행한 몇 가지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셰링턴 단장은 전임자에 비해 지나치게 조용한 성격으로 외부에는 그의 활동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구단주가 권위적인 밸런타인 감독을 영입했을 때도 별다른 이견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레드삭스의 문제점을 꿰뚫고 있었다. 다만 적절한 기회를 찾고 있었다. 레드삭스에 곧 자금의 숨통이 트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방송중계권(최대 연간 32000만 달러) 계약을 앞둔 LA 다저스가 1루수를 보강하려고 레드삭스의 애드리언 곤잘레스를 영입하려 했다. 215000만 달러로 LA 다저스를 매입한 새 구단주는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원했다.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셰링턴 단장은 8월 말 몸값이 비싼 애드리안 곤잘레스와 함께 칼 크로포드와 조시 베켓을 다저스에 넘겼다. 게다가 26000만 달러에 달하는 4명의 잔여 연봉도 함께 떠넘겼다. 26000만 달러 중 레드삭스가 부담하는 금액은 11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게다가 제임스 로니와 알렌 웹스터, 루비 데 라 로사 등 알짜배기 유망주까지 받아냈다. 이번 트레이드로 레드삭스는 여윳돈을 확보했고 셰링턴 등 레드삭스의 수뇌부는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레드삭스는 2012시즌 실패에서 단순히 성적이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셰링턴 단장은 팀의 사기가 선수들의 기량과 능력만큼이나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밸런타인 감독의 퇴임 이후 분위기 쇄신에 초점을 맞추고 선수를 영입하기 시작했다. 먼저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기간이 1년 남았던 존 패럴 감독을 내야수 마이크 아빌레스를 주고 데려왔다. 패럴은 능력이 특출한 감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팀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적절한 리더였다. 패럴은 테리 프랑코나 감독 시절 레드삭스의 투수코치(2007∼2010)를 담당했다. 그는 당시 투수들에게 컷 패스트볼의 기술을 전수했다. 하지만 그를 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원만한 성격과 성실함으로 선수들에게 인기가 많았다.전임 감독인 바비 밸런타인은지략가로 명성이 높았지만 그를 영입할 당시 구단이 기대했던권위카리스마는 이후독선아집으로 바뀌었고, 팀의 분위기는 험악해졌으며, 성적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반면덕장패럴 감독은 전술적인 면에서는 무난한 정도였지만 팀 사기를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후 레드삭스는 다저스와 트레이드에서 아낀 돈의 절반 정도(12600만 달러)를 외야수 셰인 빅토리노(3 3900), 선발투수 라이언 뎀스터(2 2650), 유격수 스티븐 드류(1 950), 좌익수 자니 곰스(2 1000), 1루수 마이크 나폴리(1 500), 마무리 우에하라 코지(1 450), 포수 데이브 로스(2 620) 등 선수 7명을 영입하는 데 사용했다. 이들은 모두 팀 동료들과 트러블을 일으킨 적이 없을 정도로 인성이 좋다고 평가를 받았다. 오히려 팀의 분위기를 활기차게 바꾸는 선수들이었다.

 

패럴은 능력이 특출한 감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팀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적절한 리더였다. 그는 원만한 성격과 성실함으로 선수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셰링턴 단장은 선수 영입에서 확고한 투자원칙을 세웠다. 특급 스타 선수를 영입해서 팀의 성적이 갑작스럽게 올라가는 것을 꾀하는 것보다는 중간보다 약간 뛰어난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선수들을 여럿 영입하는 것이다. 일부 선수들에게 구단의 전체를 맡기는 시스템은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선수 한두 명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구단의 성적은 하향세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선수 한두 명에게 구단의 사기가 달린 것이다. 대체로스타선수들의 경우 자존심이 강하고 다른 선수와 융합하지 못해 팀의 분위기를 흐릴 때가 많다. 오히려 중간 정도의 실력을 갖췄지만 성격이 좋아서 팀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선수들이 결과적으로는 더 유용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중급 정도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 중 공격적인 자세로 경기에 임하는 사람들을 골랐다.

 

셰링턴 단장 등 구단 관계자들은 선수를 영입할 때 평가 사항을 하나 추가했다. 이들은 선수를 영입할 때이 선수는 어떤 타입의 성격이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해당 선수가 팀의 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꼼꼼하게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 영입된 선수가 팀의 사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를 중점적으로 분석했다. 2012년 겨울이 끝나고 스프링캠프가 시작되자 코치진은 선수들을 압박하기보다는 자율적인 훈련을 강조했다. 선수들도 바뀌고 있었다. 스타 선수들이 빠졌지만 팀의 사기를 올릴 수 있는 원만한 성격의 선수들이 대거 영입됐다. 선수들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만한 연봉 문제도 대부분 해결됐다. 레드삭스의 선수들은 첫날부터 팀 동료들에게 서로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선수들은 타격과 타석에서 인내심을 갖는 방법을 공유했다. 팀 리더인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는 신인 유격수 호세 이글레시아스와 함께 훈련하면서 스윙을 교정해줬다. 서로를 돕는 분위기는 시즌에 들어가면서 더 빛을 발했다.

 

비극이 팀을 하나로 만들다

레드삭스의 반전 계기는 보스턴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에서 비롯됐다. 2013 415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열린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결승점에서 두 차례 폭발이 발생했다. 3명이 숨지고 260여 명이 부상을 당한 대형 참사였다. 피의자는 체첸공화국 이민가정 출신의 차르나예프 형제였다. 보스턴마라톤대회는 세계 4대 마라톤 대회 중 하나로 보스턴의 자존심이다. 보스턴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고 도시는 비통함에 잠겼다. 레드삭스 선수들은 사고 당일 다음날의 원정경기를 떠나기 직전 테러 소식을 접했다. 레드삭스 선수들은흔들리지 않는 강한 보스턴을 선언했다. 우익수 자니 곰스는 ‘boston strong 617’이라고 적힌 유니폼을 덕아웃에 걸기로 했다. 617은 테러가 발생한 보스턴마라톤대회 결승점의 숫자명 주소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에서는 양팀 선수들 모두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로 팔에 검은색 띠를 착용했다. 레드삭스는 420일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첫 홈경기에서 경기 시작 전 희생자들을 기리는 행사를 가졌다. 선수단을 대표해서 마이크를 잡은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4번 타자 데이비드 오티즈는이곳은 우리의 도시이고 그 누구도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못한다. 굳건히 버티자라고 말했다.

 

레드삭스 선수들에게는 공동의 목표가 하나 생겼다. 목표는 바로 보스턴 시민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테러로 침체된 분위기의 시민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는 레드삭스의 우승이 필요했다. 선수들이 시민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방법도 우승이 유일했다. 이런 강력한 동기부여 덕에 레드삭스 선수들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경기장에는 다른 팀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서 연습하는 선수가 늘기 시작했다. 또 선수들은 상대편 투수에 대해 물어보고 아는 정보가 있으면 서로 알려줬다. 동료들이 타석에서 맥없이 아웃을 당하더라도 덕아웃에 들어오면베테랑데이비드 오티즈를 중심으로 한 선수들이 서로 주먹을 맞부딪히며 용기를 북돋아줬다. “잘 해보자고, 더 잘하자!” 이전에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후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던 외야수 자니 곰스를 따라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하는 선수들이 나타났다. 곰스는 레드삭스 이적 이전부터 수염을 길렀는데 괴상한 모습으로 유명했다. 마이크 나폴리와 더스틴 페드로이아가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했고 이후 팀 전체로 퍼졌다. 선수들은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수염을 길렀다. 그런데 수염이라는 공통 분모는 기존 선수와 신참 선수를 연결하는 연결고리가 됐다. 게다가 수염은 점차승리의 부적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경기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마다 레드삭스의 털복숭이 타자들이 연이어 타석에 들어서면서 상대 투수를 박살냈다. 덥수룩한 턱수염은 시민에게 감동을 주는 하나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사실 선수들이 턱수염을 기른 이유는 팀의 우승 때문이었다. 턱수염은 팀에서 한 명만 튀지 않고 전체가 하나가 되도록 만들었다. 개인만 튀려는 자만과 허영을 누그러뜨렸다. 턱수염을 기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일부 선수도 팀의 동질감을 위해서 수염을 길렀다. 턱수염은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일종의표현이었다. 선수들은 턱수염을 매개로 강한 연대감을 가지기 시작했다.팬은 대부분 수염을 재미있는 요소로 봤다. 관중석에서는 어린이들이 가짜 수염을 붙이는 모습도 연출됐다. 선수들은 동료의 수염을 가지고 장난을 치거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못생긴 턱수염을 보면서 웃었다. 어린이들은 산타클로스와 비슷한 턱수염에 열광했다. 이런 유쾌한근무환경은 선수들이 자신의 재능 이상을 경기장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촉매제가 됐다.

 

레드삭스 선수들이 타석에서 자신감을 갖도록 서로 격려한 행동은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레드삭스는 후반기로 갈수록 더 강한 팀으로 거듭났다. 2013시즌 레드삭스는 589개의 볼넷을 얻어내며 팀 볼넷 3위를 기록했다. 타자들은 상대편 투수가 타석당 평균 4.03개의 공(메이저리그 평균은 3.5개 정도)을 던지게 만들었다. 레드삭스의 타자가 투수가 던진 초구를 건드리는 비율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낮았다. 볼넷과 초구를 치지 않는 것은 레드삭스 선수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공동 전략이다. 레드삭스에는 뛰어난 타자가 없기 때문에 볼넷 등으로 출루를 많이 하고 상대편 투수가 공을 많이 던지는 상황을 만들어 투수가 일찍 지치게 만들려는 것이다. 레드삭스 선수들은 투수를 상대할 때 안타를 치지 못할 것 같으면 볼넷으로 나가서 다음 타자에게 기회를 넘겼다. 혼자 좋은 성적을 내기보다는 팀의 성적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매 타석 쉽게 아웃을 당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상대 선발투수의 투구 수를 증가시켰다. 좋은 선발투수라고 해도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선 5회나 6회쯤에 교체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일찍 지쳐서다. 승부수는 구원투수들마저 지칠 무렵인 경기 후반에 띄웠다. 레드삭스는 역전승을 거두는 사례가 많아졌다. 그 결과 2013시즌에서 팀 홈런이 6(178)밖에 되지 않았던 레드삭스의 팀 득점은 1(853득점)를 차지할 수 있었다.

 

3시즌별 득실점

 

 

좋은 팀 분위기와 보스턴마라톤테러로 인한 강한 동기부여는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하게 해줬다. 팀의 리더인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는 전반기 시즌에 엄지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으나 팀의 우승을 위해 투혼을 발휘하며 시즌 끝까지 동료들과 함께 뛰는 것을 선택했다. 스위치 타자 셰인 빅토리노는 공에 맞아 생긴 옆구리 통증으로 인해 좌타석에서는 배트를 휘두를 수도 없는 상태에서도 출장을 감행했다. 그는 레드삭스가 월드시리즈에 올라가게 만든 결정적인 동점 만루홈런을 쳐냈다.

 

물론 레드삭스가 2013년 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선수들의 노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구단 경영진은 이전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대체 가능한 선수들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또 선수들의 부상 방지를 위해 건강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패럴 감독 이하 코치진은 기존 선수들과 새로 영입한 선수들을 효율적으로 기용했다. 셰링턴 단장이 영입한 두터운 선수층을 활용해서 패럴 감독은 상대투수나 타자들의 컨디션에 따라 적절하게 선수를 기용했다. 선수들은 조용하지만 사기를 올려주는 셰링턴 단장과 패럴 감독의 리더십을 믿고 신뢰했다. 그래서 레드삭스의 선수들은 팀의 승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자신에게 손해가 발생해도 양보했다.

 

보통 메이저리그에서 경기에 출장하는 시간을 다른 선수와 나눠 갖는다 것은 해당 선수의 몸값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타 선수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선수도 경기에 출장하는 시간을 다른 선수와 나눠 갖지 않으려고 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좌투수와 우투수를 상대하는 타자가 따로 있는데 이들은 서로 더 많이 경기에 출장하겠다고 싸우기가 일쑤다. 선수들이 감독에게 불만을 품을 때도 많다. 하지만 패럴 감독이 이끄는 레드삭스에서는 출장 시간을 나눠 가지는 선수들이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감독과 선수, 선수와 선수가 교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상대투수가 좌투수일 때 출전하는 외야수 자니 곰스와 상대 투수가 우투수일 때 나오는 외야수 대니얼 나바는 대화를 통해 출장 경기를 함께 정했다. 출장 경기의 기준은 단연 팀의 승리였다. 자신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다른 선수에게 출장 기회를 양보했다. 선수들은 서로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은 팀의 승리라는 공동의 목적과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선수들, 패럴 감독의 조용한 리더십 덕분이다.

 

그 결과 레드삭스에는 특출한 타자는 없었지만 모두 평균 이상의 성적을 내줬다. 또 주전으로 나갈 수 있는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한두 명이 슬럼프를 겪더라도 컨디션이 좋은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타석에 들어가서 팀의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 결과 같은 지구에 소속된 5팀 중 4팀이 81승 이상을 기록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월드시리즈에서 난적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6차전까지 이어졌으나 명승부를 보여 마침내 2013시즌에서 우승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1991시즌의 미네소타 트윈스에 이어 두 번째로 이전 시즌(전년)에서 지구 최하위의 성적을 기록했으나 다음 시즌에 바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팀이 됐다.

 

4시즌별 순위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성공 요인 및 시사점

국내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 히딩크 감독, 김성근 감독 등 스포츠 감독의 리더십은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 구단과 관련된 선수들의 스카우트 전략과 동기부여 등 구단의 단장에 대한 성공 사례와 리더십은 좀처럼 접하기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철저하게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의벤 셰링턴단장의 감성 리더십은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미국 프로 스포츠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통해서 간간히 프로 스포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벤 셰링턴의 성공 사례연구는 전 세계의 뛰어난 선수들을 어떻게 모아서 동기부여하고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프로 스포츠 구단과 내부 조직을 소재로 한 영화로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애니 기븐 선데이’(1999년 작품), 톰 크루즈 주연의제리 맥과이어’(1996),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머니볼’(2011),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드래프트 데이’(2014)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 프로야구의 신화적 존재인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빌리 빈 단장의 성공 스토리를 영화화한머니볼은 이번 사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머니볼은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다시 쓰며 세계적인 유명 인사로 떠오른 빌리 빈 단장의 성공 실화를 담아낸 작품으로 제작 당시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단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빌리 빈은 메이저리그 최하위 팀이었던 오클랜드 애슬래틱스를 다섯 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며 기적의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 낸 인물이다. 그는 오로지 경기 데이터 분석 자료만을 바탕으로 선수들의 재능을 평가하고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거두는 선수 트레이드로 140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20연승이라는 최대 이변이자 혁신을 만들어 내 야구계의스티브 잡스로 불리고 있다. 이런 활약 덕분에 그는 2007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 선정 최고의 메이저리그 단장을 비롯, 미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파워 엘리트 30, 10년간 모든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가장 우수한 단장 10인으로 꼽히는 등 능력을 인정받으며 세계적인 유명 인사로 거듭났다. 이후 빌리 빈의 독보적인 성공 신화는 2003년 유명 작가 마이클 루이스에 의해 <머니볼>이라는 책으로 출간됐고 수년간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머니볼>은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의 지혜를 다룬 이야기다. 빌리 빈은 선수를 출전시키거나 스카우트를 할 때 타자의 경우 출루율과 장타율을, 투수를 뽑을 때는 평균자책점과 이닝당 출루허용률을 중시하는 등 선수들의 인지도나 명성이 아닌 철저한 성과 측정과 빅데이터를 활용했다. 이른바머니볼 이론으로 뛰어난 성과를 거둔 것이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는 테요 엡스타인 단장의 후임으로 사상 최고의 연봉을 제시하며 빌리 빈을 스카우트하려고 했으나 빌리 빈은 의리를 강조하며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에 잔류했다.

 

감성 리더십에서 길을 찾다

대내외에 문제가 산적한 보스턴 레드삭스는 무명에 가까운 벤 셰링턴을 단장으로 앉혔다. 그러나 무명의 벤 셰링턴은 대내외의 우려와는 달리 개성이 강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내부 조직을 정비하고, 선수들을 단결시키고, 시너지를 극대화해서 2013년 마침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동시에 그의 용병술과 선수들에 대한 동기부여 등 벤 셰링턴의 조용하지만 뛰어난 리더십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됐다. 벤 셰링턴을 비롯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영진은 이른바감성 리더십’을 통해 성적 효율성(Efficiency)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상호 존중, 신뢰, 즐거움, 열정 등 소프트한 감성 에너지가 넘치는 조직을 구축했고 최고의 성과를 달성했다. 말하자면 팀의 사기와 기운을 한껏 끌어올린 것이다.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감성지수(EQ)의 창시자인 다니엘 골먼은 감정을 배제한 지성만을 중시해오던 통념을 깨고, 인간의 감성은 본래 지성보다 강하며, 조직의 리더와 관리자들에게 감성능력을 훈련시키는 것이 성공적인 기업 운영의 관건이라고 역설하며감성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최근 들어 감성 리더십은 조직관리, 동기부여, 정부 정책, 정당 공약 홍보는 물론 조직원의 원활한 소통까지 사회 모든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데 이는 결국 개인의 자존감을 높이고 능력을 인정해서 개인과 조직의 성과를 올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감성 리더십이 발현되는 기업의 특징

감성 리더십이 발현되는 기업들은 첫째, 경영진과 구성원의 존중과 신뢰로 가득한 기업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며 존중과 신뢰의 기업 문화를 단지 선언적인 의미가 아니라 조직 운영 전반에 하나의 규범화된 문화로 정착시키고 있다. 둘째, 구성원들이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와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높으며 스스로가 꼭 필요한 존재라고 느낀다. 셋째, 모든 구성원들이 마치 가족과 같이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강한 팀 정신과 끈끈한 동료애를 보인다. 또 전문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서로를 돕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 넷째, 구성원들이 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경영진이 앞장서서 조직 내 공정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구성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거나 차별 대우 혹은 이용을 당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다섯째, CEO를 비롯한 경영진이 폭넓은 지식과 전문성은 물론 구성원들의 헌신과 몰입을 이끌 수 있는 감성 지능이 뛰어나다. 감성 리더십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첫째, 자신의 감정을 알고 이를 조절하는 자기 통제가 전제 조건이며, 둘째,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신뢰와 존중을 표현해 조직 내 모든 구성원들과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하고, 셋째, 조직 구성원에 대한 맞춤형 배려로 감동을 선사할 수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직원 간 우호적 관계를 구축해 긍정적 집단 감성을 형성해야 한다.

 

이현우 야구 칼럼니스트 hwl0501@naver.com

유효상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hsryou@sookmyung.ac.kr

 

이현우 야구 칼럼니스트는 공주대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현재 메이저리그 전문 커뮤니티 MLBNATION를 운영하고 있으며 네이버 라디오에서 MLB 관련 프로그램의 패널 및 방송편집을 담당하고 있다. 유효상 교수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한국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물산 인력개발팀장, 동양글로벌㈜ 기획실장, 일진창업투자㈜ 대표이사, 인터벤처㈜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론스타, 그 불편한 진실> <시몬느 스토리>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1호 Diversity in Talent Management 2022년 0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