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빈이 성공한 이유

60호 (2010년 7월 Issue 1)

미국 프로야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은 통계를 이용한 과학적 야구 분석 기법인 세이버 매트릭스를 통해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이다. 누구나 타율이 높은 타자를 선호할 때 그는 득점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지표는 타율이 아닌 출루율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그는 타율이 높고 체격 조건이 좋은 비싼 타자가 아니라 다소 뚱뚱하고 발이 느리더라도 선구안이 좋아 볼넷을 고를 수 있는, 즉 출루율이 높은 선수들을 발굴해 만년 하위 팀이던 오클랜드를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명문 팀으로 올려놨다. 그것도 뉴욕 양키스의 3분의 1에 불과한 연봉으로.
 
왜 출루율이 타율보다 더 중요할까. 10년 동안 타율 3할을 기록한 S급 타자가 있다. 하지만 이 선수는 대부분의 안타를 2아웃 이후, 즉 누상에 주자가 없을 때 친다고 가정하자. 타율 자체는 높을지 몰라도 이 선수가 치는 안타가 득점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낮다. 타율 3할 타자와 2할 7푼 타자를 비교할 때 언뜻 보면 3할 타자가 훨씬 우수한 인재로 보인다. 하지만 2할 7푼 타자의 출루율이나 득점권 타율이 3할 타자보다 더 높다면 그는 겉으로 보이는 지표보다 팀에 훨씬 많은 도움을 주는 우수 인재인 셈이다.
 
빈은 이 공식을 투수에도 대입했다. 누구나 구속이 빠르고 방어율이 낮은 투수를 선호할 때 볼넷 허용 비율이 낮고, 땅볼과 뜬공 비율이 높은 선수를 집중 발굴해 재미를 봤다. 또한 그는 이렇게 발굴한 저평가 유망주들이 스타가 되면 부자 구단에 비싸게 팔았다. 대표적 예가 ‘커브의 달인’ 배리 지토다. 지토는 사이영 상까지 받으며 메이저리그를 평정했던 2002년 오클랜드로부터 불과 50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반면 2007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7년간 1억 26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계약을 체결했다. 오클랜드는 당연히 막대한 이적료 수입을 얻었다.
 
선수 시절 무명에 불과했던 빌리 빈이 메이저리그를 쥐락펴락 하는 거물로 변신한 건 단순히 세이버 매트릭스의 개념을 처음 사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가장 큰 성과는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 동안 불문율처럼 통하던 천편일률적인 우수 선수의 평가지표를 새롭게 정의하고, 자신의 조직에 최적화한 인재상을 정립했다는 점이다. 모든 구단이 뉴욕 양키스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처럼 해당 포지션별 최고 선수로 선수단을 구성할 수는 없다. 겉으로 드러난 학력과 경력이 대단치 않더라도 해당 조직의 문화나 핵심 가치에 부합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인재다.
 
문제는 이런 인재를 가려낼 수 있는 평가지표를 갖추고 있느냐다. 안타깝게도 한국 기업의 현실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명문대 졸업, 토익 900점 이상, 학점 4.0 이상이라는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직원을 선발하는 기업이 아직 많다. 비슷한 배경에 유사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 모이면 창의적 아이디어가 잘 나오지 않는다. 심할 경우 ‘집단 사고(group think)’의 폐해에 빠져 조직 전체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같은 동네에서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해외유학이나 여행 경험까지 유사한 직원들끼리는 서로에게 자극제가 되기 어렵다.
 
소형 정밀모터 분야의 세계 1 위 기업인 일본전산은 밥을 빨리 먹고, 목소리가 크고, 화장실 청소를 잘하는 사람을 순서대로 뽑는다. 세계 최초로 100만분의 1g짜리 톱니바퀴를 만든 일본의 주켄공업 역시 이력서를 빨리 쓰는 순으로 사람을 뽑는다. 그러다 보니 주켄 직원 중에는 중학교 졸업자, 폭주족, 불량배 등 일반 기업이 질색할 직원도 적지 않다. 패밀리 레스토랑 업계의 소리 없는 강자 매드포갈릭 역시 ‘말 빠른 사람이 열정적 인재’라는 기준을 마련했다. 남들이 보기엔 우수 인재가 아닐지 몰라도 이들 기업은 명문대 졸업자가 대부분인 기업보다 훨씬 우수한 성과를 냈다.
 
현대 기업은 극심한 대내외 환경 변화에 직면해 있다. 때문에 우수 인재의 정의도 시시각각 변한다. 당연히 우수 인재를 뽑는 기준도 유연해져야 한다. 불과 몇 백 년 전만 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인의 기준은 밀로의 비너스 상처럼 몸매는 풍만하며 얼굴은 희고 둥근 여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네킹처럼 마른 몸매, V라인의 가늘고 작은 얼굴을 가져야 미인으로 인정받는다. V라인이 대세인 시대에 밀로의 비너스를 찾고 있는 건 아닌지, V라인을 발굴할 만한 기준은 가지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18호 Dynamic Workspaces 2021년 04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