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인&컴퍼니 이성용 대표 인터뷰

인재집약 산업에 한국 미래 달렸다

4호 (2008년 3월 Issue 1)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장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최근 세계 최대의 온라인 경매 회사인 이베이의 최고경영자
(CEO)가 바뀌었다. 여성 CEO로서 茨봉� 떨친 멕 휘트먼이 물러나고 3년전 영입해 전자상거래 사업을 총괄하고 있던 존 도너휴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같은 컨설팅 회사의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의 인연을 이어왔다는 사실이다.
 
이 회사가 바로 세계 최고의 컨설팅 회사로 명성을 쌓아온 베인 & 컴퍼니다. 최근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 출마했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역시 베인 & 컴퍼니의 CEO를 역임했다. 이처럼 많은 인재들의 산실인 베인 & 컴퍼니는 2003년 컨설턴트들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맥킨지를 누르고 미국 1위 컨설팅 회사로 뽑히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이번 호 트렌드 리더는 바로 베인 & 컴퍼니의 이성용 한국 대표다. 이 대표는 최근 베인 & 컴퍼니의 세계 24개국 36개 지사의 컨설턴트 중 불과 8명으로 이뤄지는 글로벌 이사회의 멤버로 뽑혀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베인 & 컴퍼니 이사회에 한국인이 입성한 것은 그가 최초이며 아시아인 출신 중에도 처음이다.
 
미국, 한국, 다시 세계
이성용 대표의 뿌리는 한국이지만 그를 성장시킨 나라는 미국이다. 1962년생인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중, 고등학교를 마친 후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 우주공학과를 졸업, 미 국방부에서 근무했다. 군인 신분을 벗어나 컨설턴트의 꿈을 가지고 하버드대 MBA를 마친 후 역시 세계적 컨설팅 회사의 하나인 AT 커니의 한국 지사로 발령받은 것이 1995년. 그는 인생의 최고 역동기인 소년기부터 30대 중반까지를 미국에서 보낸 셈이다. 한국에서 5년을 보낸 후 2000년 베인 & 컴퍼니에 파트너로 입사, 이제는 당당한 글로벌 이사회의 멤버로 진입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육사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눈이 나빠 우주항공사를 포기하고 펜타곤(미국 국방부)에 들어갔는데 냉전 체제가 무너졌지요. 군사 분야보다 민간 회사에서 일 하는 것이 장래에 훨씬 유용하다고 생각해 진로를 바꿨습니다.”
그는 이제 어느덧 경력 18년의 베테랑 컨설턴트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 대기업을 두루 경험한 덕분에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세계인으로서 누구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한국의 현실과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됐다. 그런 그가 보는 미래와 그 미래를 대비할 한국 기업들의 장단점, 그리고 향후 전략은 어떤 것일까.
 
3년 앞은 내다보고 가라
우선 미래 예측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물어봤다.
“현실적으로 3년 정도가 소비자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이 되면 오늘날처럼 워낙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선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죠.”
 
그러면서 그는 2000년 교보자동차보험을 컨설팅했을 때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이 회사는 국내 최초로 온라인으로 보험 상품을 팔겠다는 계획을 세우며 출범했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금융상품을 인터넷으로 판 적이 없었다. 이런 새로운 시도에 대해 과연 한국 소비자가 어떻게 반응할 지 의구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계로 눈을 돌리자 트렌드가 드러났다. 영국 ‘다이렉트 라인’이나 미국 ‘프로그레시브’ 등 보험회사들은 이미 온라인 보험사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변화를 주시하고, 그로부터 트렌드의 필연성을 인식할 수 있었기에 그는 3년 앞을 예측할 수 있었다. 교보 자동차보험은 국내 최초의 온라인 보험사로서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하지만 왜 3년일까? 장기 예측을 하고 계획을 수립하려면 10년, 20년 정도는 내다봐야 하는 것 아닐까?
“제품 사이클의 변화가 플래닝 사이클(plannig cycle)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예전에는 제품 하나 출시하면 5∼10년씩 걸렸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과거 자동차를 하나 출시하는 데 7년 정도 걸렸지만 지금은 기껏해야 2년 반 정도입니다. 핸드폰은 더 빨라서 6∼9개월 정도입니다. 이렇게 제품 사이클이 빨라질 때는 생산 등 모든 분야의 플래닝 사이클이 빨라져야 경쟁자보다 한 박자 앞서나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3년을 예측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지속적으로 소비자 동향을 조사하고, 산업별 특성에 따른 새로운 데이타들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하며, 체계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감시해야 한다. 이런 정보들을 바탕으로 미래 전략을 수립하고 지속적으로 수정해 나가야만 미래 예측이 가능하다.
   
바로 이 부분에서 국내 기업들이 아직 많은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세계적 대기업은 미래 예측 조사 기능을 담당하는 전담 부서를 두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플래닝만을 전담하는 부서가 그다지 많지 않죠.”
 
물론 한국 기업의 변화가 워낙 급박했던 탓에 한국 기업에는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조직들이 많다.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기민하게 실행하는 인재들도 풍부하다. 하지만 앉아서 미래를 예측하고 플래닝에 전념하는 팀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장기적 기획과 입안에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고 이 대표는 지적했다. 특히 국내 사업 비중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심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영을 염두에 둔다면 반드시 이 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이성용 대표의 진단이다.
 
전략실 안에 미래 예측 부서를 두자
이성용 대표는 후버 댐과 유로터널 건설로 유명한 미국 벡텔(Bechtel)과 같은 글로벌 건설회사, 세계적인 정유·가스 회사, 자동차 회사 등은 이미 훌륭한 예측 기법들을 발전시켜왔다고 밝혔다. 미래 경영 환경에 영향을 미칠 요인들을 미리 조사해 플래닝에 반영하는 노하우 역시 나날이 진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경쟁자들이 20년 후 어떤 자동차를 만들지에 대한 정보까지 서로 알고 있습니다. 20년 전에는 이것이 가능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서로 생산 정보를 나누는 데다 생산 기지도 비슷한 지역에 두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경쟁자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미래 예측의 단서를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하지만 모든 분야가 이렇게 발전해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 분야의 경우엔 미국이 모든 것을 주도하던 시기와는 달리 금융의 축이 세계 여러 곳으로 분산되면서 경쟁자의 상황을 알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산업 분야 별로 미래 예측을 하는 조건들은 다 다르지만 미래 예측 과학화의 필요성이나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 점에 있어서도 한국 기업들이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략을 세울 때 그 기본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항들입니다. 여기에 새로운 사실과 정보들이 들어오면서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와 섞이는 거죠. 그런데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정보 수집과 전략 수립을 모두 따로따로 합니다. 해당 부서 안에서 각자가 수집한 정보만이 돌아다닌다는 거죠. 전략과 정보가 따로 놀지 않도록 매칭시켜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대표는 이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은 전략실 안에 미래 예측 부서를 두는 것이라고 권고했다. 전략 수립을 위해 주기적으로 변화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공유해야 정보 수집과 전략 수립이 유기적으로 어울려 효과적으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적으로서의 중국, 친구로서의 중국
세계 경제의 새로운 에너지원이자 한국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적, 지리적 관계를 갖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견해를 물어봤다. 이 대표는 중국은 적이자 친구라고 단언했다.
“생산 비용 면에서 중국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에게 적이죠.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는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저비용으로 누렸던 경쟁력이 중국 때문에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종종 한국산 제품의 브랜드와 품질이 중국산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세계 시장에서 보면 메이드 인 코리아나 메이드 인 차이나의 브랜드 파워는 똑같이 약합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과연 어떤 측면에서 한국의 친구일까?
“중국과 동반 성장할 수 있는 협력(coo-peration)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한국은 중국에 비해 연구개발(R&D)이 강하기 때문에 이 점을 살려야 합니다. 공장은 중국에 있고 R&D 기지는 한국에 두거나, 직접 생산은 중국에서 하되 금융 부분은 한국에서 전담하는 식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서로의 강점을 잘 살리는 협력 체계를 갖추면 미래를 위한 동반 성장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디자인 강국인 이탈리아의 경우 디자인 분야는 본국에서 하지만 제조 기지는 북유럽, 중국, 남아프리카 등지에 둬 윈윈 모델을 만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미국 통(通)이면서도 이 대표는 중국 전문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지난 몇 십 년간 한국에선 미국 중심의 경제 구조를 운영하다 보니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막상 중국 전문가는 많지 않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중국청같은 기구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거대한 중국 전체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한국과 연관이 가장 많은 성 하나를 특화시켜서 자매 결연을 맺거나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유망 성장산업은 금융, 의학, 엔터테인먼트
모든 미래를 다 예측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모든 산업에 다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미래를 예측한 후 한국만이 강점을 지닐 수 있는 유망 성장산업을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이 대표는 한국의 유망 성장 산업과 관련, 이미 우리가 갖고 있는 인적 자산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여야 한다며 금융, 의학,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제시했다.
금융은 인건비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전형적인 인재 집약적 산업이다. 한국은 과도한 교육열이 늘 사회 문제지만 덕분에 훌륭한 인력들이 넘친다. 이 때문에 한국이 금융 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의학은 인재가 중요한 지식 산업이면서도 한국인만이 갖고 있는 식습관이나 문화의 영향으로 발달할 여지가 크다고 조언했다.
“한국인의 특수한 식습관은 위암 분야에서 한국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환자가 많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한국 의사들은 위암을 수술할 기회가 가장 많습니다. 성형수술, 노화방지 분야도 한국이 상당한 강점을 가지고 있죠. 이제 아시아인들도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기 때문에 한국 의료계에 대단히 좋은 기회입니다.”
 
한류라는 이름으로 부상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분야도 잘 살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댄스 음악의 경우 한국 내에선 지나친 장르 편중을 우려하지만 아직 아시아에서 충분히 통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점도 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 포인트가 있는 한류가 필요합니다. 한국 음식하면 아직도 대표 상품이 떠오르기 보다는 애매하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그간 한류 상품들이 대부분 단발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큰 인기를 모은 대장금의 경우 대장금 2, 대장금 3 등이 시리즈로 나와 음식 분야의 한류 코드를 만들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겁니다. CJ가 햇반이라는 상품으로 지속적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것처럼 한류를 대중적으로 더 넓게 전파하려는 시도가 없다면 한류는 소수 매니아만 즐기는 대상으로 전락할 겁니다.”
 
아시아에서만 통하는 상품을 발굴하라
이성용 대표는 ‘아시아로의 부의 이동’ 이란 글로벌 메가 트렌드도 한국이 준비하기에 따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시아에 위치한 한국은 이 지역 선발 주자 중 하나이며, 아시아에서만 통하는 제품을 통해 강점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에서 한국 화장품이 굉장히 인기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처럼 하얀 얼굴을 가지고 싶다는 이유로 베트남인들이 구입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아시안인데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의 얼굴이 비교적 희니까 한국 미인들을 더 선호하고, 여기서 새로운 시장이 발생하는 겁니다.”
 
골프채의 경우도 비슷하다. 아시아 골프채 시장은 전 세계의 5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중 대부분을 일본이 장악하고 있다.
“키 크고 힘 좋은 유럽이나 미국인이 휘두르는 골프채는 아시아인들의 체형에 맞지 않습니다. 골프용품 전체로 보면 유럽이나 미국이 강하지만 골프채 시장만큼은 일본이 확실히 주도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통하는 상품, 서비스, 문화를 최적화하는 전략을 수립하면 한국이 미래 성장의 훌륭한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 대표를 인터뷰하면서 내내 ‘관점(point of view)’이 갖는 힘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견해 중 일부는 나와 다르다. 예컨대 트렌드 예측가로서 나는 3년 이상의 미래를 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가 세계를 하나의 덩어리로서 관찰하고 주시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 대표의 관점은 그야말로 글로벌하고, 새로운 변화와 미래의 기회도 전 세계라는 단위에서 찾으려 한다는 점이 뚜렷이 드러났다.
폭넓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보다 앞서 갈 수 있다. 이성용 대표의 폭넓은 시야와 비전이 앞으로도 계속 한국과 한국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기를 기대해본다.

김경훈 소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 1994년 국내 최초의 트렌드 분석서 ‘한국인 트렌드’를 펴냈다. 중장기적 흐름에 영향을 주는 미래 트렌드에 대한 추적 및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트렌드 맵(trend map)을 구축 중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5호 Fake Data for AI 2022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