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LG경제硏 공동 프로페셔널 설문조사

C학점의 프로들 “아! 머리 쓰는 건 싫어”

1호 (2008년 1월)

김남국·문권모·하정민·정임수기자 march@donga.com
김현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한상엽 선임연구원 hkkim@lgeri.com
설문조사 협조=인크루트(www.incruit.co.kr)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LG경제연구원은 한국 프로페셔널의 실태와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2007년 12월 9일부터 20일까지 직장에서 전문 직무를 갖고 있는 전문가 50명과 일반 직장인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다. 전문가 조사는 DBR과 LG경제연구원이, 일반인 조사는 DBR과 인크루트가 공동으로 진행했다. 전문가 조사는 주관식 문항 중심의 심층 설문과 인터뷰 방식으로, 일반 직장인 설문은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특히 전문가 설문에는 미국과 영국, 일본, 인도 출신의 외국인 11명도 참가해 객관성을 더했다. DBR은 설문을 설계한 LG경제연구원의 김현기 책임연구원, 한상엽 선임연구원과 함께 설문 결과를 분석했다.


‘끈기와 투지는 있지만, 개인기와 창의성은 부족하다.’ 한국 축구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LG경제연구원이 ‘한국형 프로페셔널리즘’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요약한 문장이다.
 
한국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한국에서도 ‘프로페셔널리즘’이 급부상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 안타깝게도 한국의 프로들은 몸으로 때우는 ‘일반 역량’에서 해외 프로들을 능가했지만, 주로 머리를 활용해야 하는 ‘전문 역량’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 대상 조사에서 글로벌 프로페셔널의 수준을 100점으로 했을 때 한국 프로의 일반역량은 114점으로 우월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전문역량은 76점에 불과했다. 일반 역량은 A플러스를 받았지만 전문 역량은 C학점 수준으로 낙제를 겨우 면한 것이다.

 
한국 프로가 좋은 점수를 받은 일반 역량에는 끈기와 근성, 대인관계, 성실성, 추진력 등이 포함돼있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측면에서 한국 프로는 글로벌 프로를 압도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 한국은 이런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중공업과 제조업 중심으로 원가 우위를 달성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전문역량이 문제다. 특히 한국 직장인들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전문역량의 구성 항목에는 글로벌 감각, 의사소통 능력, 창의성, 도덕성, 논리적 사고, 리더십 등이 포함돼있다. 이는 모두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적 경쟁력이다. 문제는 이런 경쟁력이 강화돼야 한국 경제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이고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창의력 같은 소프트 경쟁력을 바탕으로 산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천성현 AT커니 이사는 “일반 역량은 프로페셔널이 기본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라며 “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경제구도가 고도화될수록 전문 역량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직장 문화에 대한 강력한 비판도 제기됐다. 일반인 설문에서 응답자의 50.7%, 즉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한국 기업에서는 프로 인재들이 제대로 인정받고 살아남기 어렵다’고 답했다. ‘한국 직장이 프로를 키워준다’는 응답은 고작 21.0%에 불과했다. 프로가 성장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 ‘실력이나 전문성보다는 사내 정치에 정통해야 하는 기업 문화(22.9%)’,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재를 육성하지 못하는 근시안적 경영 관행(17.9%)’, ‘튀는 인재를 억누르는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14.5%)’등이 꼽혔다.
 
한국 프로 문화에 대한 견해를 묻는 주관식 설문에서는 더욱 적나라한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학연, 지연 등에 묻혀 진정한 프로가 성장하기 어렵다”거나 “다양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 탓에 프로들이 싹을 틔울 수 없다”, “학력위주의 풍토가 개선돼야 한다”, “ 실적주의는 요원하며 학교나 학원도 프로보다는 평균인을 양성하고 있다”는 쓴 소리가 이어졌다. 한 응답자는 “한국의 프로페셔널은 죽었다”며 극언을 퍼붓기도 했다.
 
어떤 응답자는 “한국 대기업에서 업무 관련 자격증이나 학위를 받을 경우 오히려 상사들은 자신의 자리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이를 경계한다”며 “말로는 인재양성을 부르짖지만 상급자들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창의적·전문적 아이디어에 기본적으로 반감을 갖고 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다른 응답자는 “정말 최악이다. 창의, 도전, 혁신은 웬만한 기업에서 통하지 않는다. 그저 상사의 말대로 움직여주길 바란다. 눈치, 아부, 일방적 비판 같은 단어밖에 생각이 안 난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행동하는 것 같다”며 생생하게 증언했다.
 
DBR은 LG경제연구원은 이번 설문 결과에 대한 집중 분석을 토대로 한국 프로페셔널 문화의 발전과 진화를 위해 5가지 핵심 이슈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으며 해결책도 함께 모색했다.
Question 1 한국형 프로는 우물 안 개구리인가?

 

국내 프로페셔널의 역량 중 전문가 설문에서 가장 혹독한 평가를 받은 것은 ‘글로벌 감각’이다. 50명의 전문가들은 한국 프로들의 글로벌 감각에 ‘F학점’인 51점(글로벌 프로 수준=100) 이란 낙제점을 줬다. 또 ‘국내와 글로벌 프로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란 질문에 대해 ‘글로벌 감각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28.9%로 가장 많았다. 세부적으로는 ‘해외 근무 및 글로벌 인재들과의 접촉을 통해 국내 인재들을 글로벌 환경·문화에 노출시켜야 한다’는 응답이 18.1%, ‘어학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10.8%였다.

글로벌 감각은 단순히 어학 능력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글로벌 인재는 뛰어난 어학 능력과 함께 다문화에 대한 적응력과 포용력, 즉 글로벌 마인드(global mind)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프랑스 로레알 본사에서 근무하는 마케팅전문가 김종하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내에서는 자신감이 과다하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주눅 들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다른 문화를 가진 국가에 대한 열린 마음이 부족하고, 선진국과 개도국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도 문제로 지적된다. 조병렬 GE코리아 이사는 “많은 한국인들은 미국과 유럽에 대해서는 상대적인 열등의식을, 동남아 및 중동에 대해서는 비현실적인 우월의식을 드러낸다”며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필수 요소인 외국 문화에 대한 개방적 의식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인간관계 등 업무 외적 측면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거나, 효과적인 조직관리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강조했다.
 
Solution 1 영어로 생각하고 한지역 전문가가 되라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출신으로 UN 수장 자리에 오른 반기문 사무총장. 그가 사무총장이 됐을 때 많은 언론들은 그를 ‘충주의 영어 신동’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막상 뉴스를 통해 반 총장을 접한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발음이 다소 투박했기 때문이다. 반 총장은 난해한 단어 구사나 유창한 발음으로 승부하기보다 비교적 간단한 영어단어로 조리있게 말을 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다소 더듬거리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논리적으로 구사하는 것이 한국인에게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본이다.
 
뛰어난 어학 능력이라고 하면 흔히 원어민 수준의 발음과 완벽한 문법을 떠올린다. 하지만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어학 능력은 이와 다르다. 영어로 말하는 것과 영어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슈다. 아무리 영어가 유창해도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회화가 영어 축에 끼기나 하냐?”는 도올 김용옥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중요한 것은 영어로 사고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법이다. 외국계 기업에서 13년째 일하고 있는 한 직장인은 영어로 말할 때 핵심을 잘 살리고 반드시 이유와 대안을 제시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가 왜 일을 하는가?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 이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대안은 무엇인가?(Why, How, What if, What's next)를 끊임없이 반문하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항상 긍정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Why not’도 빼놓지 마라”고 조언했다.
 
또 진정한 글로벌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다문화주의의 가치를 이해하고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다른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언어 습득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해외 학위나 유창한 외국어 능력이 글로벌 마인드를 키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몇 년씩 외국에서 공부하다 와도 글로벌 마인드를 전혀 갖추지 못한 사람이 있는 반면 순수 국내파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많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동참할 수 있는 적응력과 전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실력이다.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인재가 되려면 해외에서의 활동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지, 외국인들과의 접촉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지 않는지, 근무지 이동과 출장을 기꺼이 받아들이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 국제 관련 정보를 자주 습득하고 글로벌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주한 외국 기업협회나 상공회의소의 모임에도 참여하는 게 좋다.
 
휴잇어소시에이츠 윤언철 컨설턴트는“정확한 목표를 세워 지역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며 “누구든 한 지역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몇 년씩 걸리기 때문에 글로벌화를 하겠다고 미주, 유럽, 동남아를 모두 섭렵하겠다는 무모한 욕심을 갖기 보다는 한 지역을 타깃으로 삼고, 한 지역 전문가로 거듭나는 것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충고했다.
Question 2 인화가 조직 문제의 만병통치약?
한국 기업에서 꼭 갖춰야 할 능력이 무엇인지를 묻는 전문가 설문에서 응답자의 42%(21명)가 “조직 내 인화력과 대인 관계 능력을 꼽았다.인적 네트워크인 ‘학연’과 ‘지연’을 꼽은 사람도 9명(18%)이었다. 인화는 조직원 사이의 화합을 기반으로 협동과 시너지 효과를 끌어내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계약에 기반한 인간관계를 형성해온 외국인들에게는 인화를 강조하는 한국 문화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 외국인 전문가는 “동료를 경쟁자로만 보지 않고 서로 돕는다는 점에서 한국의 직장내 인간관계가 부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인화를 강조하는 조직문화에는 단점이 존재한다. 일반 직장인들이 한국 직장에서 프로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지적한 것은 ‘사내 정치’(22.9%)였다.많은 직장인들이 학벌과 연줄에 휘둘리며, 객관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큰 불만과 좌절을 드러낸 것이다.
 
전문가들은 보다 심도 깊은 문제점도 짚어냈다. 우선 인화의 그늘에는 의존성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이정숙 SGI 대표는 “원만한 인간관계만을 내세우는 조직에서 직원들은 직장을 학교나 가정의 연장으로 인식하고 남에게 의존하기 쉽다”며 “이런 의존성은 ‘내가 안 해도 누가 해주겠지, 실수해도 봐 주겠지, 이 정도면 괜찮을 거야’란 생각을 부른다”고 설명했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전무는 “프로페셔널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지식과 역량으로 타인에게 가치를 주는 사람”이라며 “이에 반해 공무원이나 일반 봉급생활자는 개인이 아닌 조직의 힘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Solution 2 건강한 개인주의로 명확히 커뮤니케이션하라
동료와 적대감을 갖거나 경쟁의식이 너무 강할 경우 조직의 효율성은 떨어진다. 동료와의 유대감이 팀워크를 높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인화를 강조하는 것이 자칫 불필요한 온정주의나 이기주의를 낳아 조직 운영의 장애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엄밀히 말하면 동료는 동료일 뿐 친구나 가족은 아니다.
 
외국인 전문가들은 한국인 특유의 친화력과 동료와의 높은 유대관계가 프로페셔널이 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 가디언 지의 전 한국 특파원이자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즈 사장인 마이클 브린은 “팀워크 측면에서는 한국인이 서양인보다 낫지만 종종 한국인들은 회사가 아니라 동료에게 충성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달리 말하면 한국인들이 동료와의 경쟁에 덜 신경쓰고 있으며 유대관계 자체에 집착한다는 의미다.
 
인화로 인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개인주의를 장려해야 한다. 친한 동료나 상사에 의존하는 성향을 버리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조직 차원에서 건전한 개인주의를 장려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검토해볼 수 있는 대안의 하나는 ‘동료 평가(peer review)’다. 동료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동료다. 학자들의 논문심사 시 동료 평가 방식이 활용되고 있는데 마치 벌거벗은 느낌이 들 정도로 가혹한 평가가 이어진다. 따라서 사내 정치로 인한 인사 잡음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어도비 시스템즈에서 근무하는 김효린씨는 “미국 회사에서는 상사는 속여도 동료는 못 속인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어도비의 동료 평가는 철저하다. 어떤 직원은 ‘몇 월 며칠에 동료에게 이런 요청을 했는데, 약속과 달리 하루 늦었다’는 식으로 쓴다. 동료 평가서를 쓰는데 2~3일이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화를 강조하는 조직에서는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미 친구나 형제처럼 친해진 동료나 상사끼리 서로를 비판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왓슨와이어트의 박종규 컨설턴트는“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과 달리 대화에서 표면상 주고받는 사실과 속에 담긴 의미가 큰 차이가 나곤 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상사가 지각한 부하에게 속으론 ‘제발 지각 좀 하지 마라’고 생각하면서도‘요즘 야근을 많이 해서 힘든가 보군’이라고 간접적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실제 전문가 설문 결과, 한국 프로의 언어 표현 능력 점수는 57점에 불과했다. 지나치게 인간관계에 기대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경우 역효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업무와 관련한 대화를 할 때에는 간결·명확하고 사실 지향적이어야 한다.
 
국내의 대형 전자기업에 근무하는 미국인 직원은 “글로벌 기업에서는 한국 기업보다 관리자와 직원 간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돼있다”며 “한국 기업의 리더들이 좀 더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면 불필요한 업무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Question 3 생각하고 고민하는 창의적 인재가 없다?
“한국의 프로들은 상당히 지식수준이 높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인재들에 비해 다면적 사고 능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틀을 깨는 새로운 방법보다 종래의 방식을 더 선호하게 됩니다.” (딜로이트컨설팅 컨설턴트)
 
전문가 설문 조사 결과, 한국 프로페셔널들은 글로벌 인재보다 전문성과 지식수준(95점)은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창의성과 혁신성(61점), 논리적 사고(80점) 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아는 것(정보와 지식)이 많아도 이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지혜)로 심화시키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된다. 하지만 한국 특유의 소위 ‘SS문화(시키면 시키는 대로)’, ‘KK문화(까라면 까는 거지)’는 위계를 중시하고 상명하복의 강압적 분위기를 만들어 창의적 아이디어를 말살한다.
일반인 설문에서도 이런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지적됐다. “요즘의 한국 회사는 30~50년 전의 일본 기업과 사정이 비슷합니다. 사장의 결정은 곧 ‘신의 명령’이죠. 이는 직원들이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0대 후반 일본인 전자회사 직원)
 

무조건적인 상명하복이 조직의 창의력을 저하시킨다는 것은 군대에 대한 연구에서도 잘 드러난다. 빅터 데이비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저서 ‘살육과 문명’에서 “미국 해군은 군복도 제대로 입지 않는 괴짜들에게 최대의 자율성을 보장해 일본군의 암호 해독에 성공, 미드웨이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상관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는 일본군은 죽음을 향해 맹목적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었다”고 설명했다.
 
Solution 3 생각을 바꾸면 스님에게도 빗을 판다. 
한 기업에서 영업부 지원자들에게 ‘스님에게 빗을 팔라’는 황당한 시험문제를 냈다. 문제를 본 대부분의 응시자들이 불가능하다며 포기했다. 1주일 후 한 응시자가 나타나 "제가 1000개를 팔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면접관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는 자신의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유명한 스님이 계신 암자에 들어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이 먼 곳까지 오는 신도들을 위해 부처님의 뜻을 담아 선물을 하나씩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이 빗에 스님의 필체로 ‘선을 쌓는 빗’이라는 뜻의 ‘적선소’를 새겨 선물하십시오. 그러면 더 많은 불자님들이 이 곳을 찾지 않겠습니까.” 스님이 매우 좋은 생각이라며 두 말 않고 빗을 샀다.
 
생각의 틀을 바꾸면 얼마든지 스님에게도 빗을 팔 수 있다.세계적 컨설팅 업체 BCG는 2006년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들이 꼽은 경영의 최우선 순위 목표가 혁신(40%)이었으나 혁신 성과에 대해서는 약 50%가 만족 못한다는 답을 내놨다고 밝혔다. 글로벌 CEO들이 혁신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은 것은 ‘창의적 기업문화의 부족(48%)’이었다. 혁신 전략 수립과 투자보다 창의적 사고가 더 중요하며 글로벌 기업들이 그만큼 창의적 인재에 목말라있다는 의미다. 이번 조사에서도 나타났듯 한국형 프로들이 조직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인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안타까운 결과다.
 
창의적 문제해결 방법론인 트리즈(TRIZ)를 개발한 러시아 과학자 알츠 슐러는 “창의성은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다. 누구나 노력을 하면 창의성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창의성 이론으로 유명한 하버드경영대학원의 테레사 아마빌 교수도 “창의성은 창의적 유형의 사람에게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며 보통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창의적 일을 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SK경제연구원의 허진 연구원은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 우선 다양한 경험을 쌓으라고 조언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먼저 갖춰야 한다. 철학 예술 스포츠 등 교양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경험도 도움이 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도전정신도 필요하다. 1990년 3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생활용품업체 한국P&G(옛 서통P&G)에 영업사원으로 들어간 황진선씨는 P&G의 샴푸와 기저귀를 들고 은평구와 서대문구의 작은 슈퍼마켓을 훑고 다녔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여자가 찾아와서…”란 비아냥도 숱하게 들어야 했다. 영업 ‘맨’은 있어도 영업 ‘우먼’은 전무하던 시절, 그는 “여자가 무슨 영업이냐”, “밥이나 한 끼 먹자”는 치근거림에 숱하게 직면했다. 재수 없다며 소금을 뿌리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여성들이 아무도 영업직을 눈여겨보지 않던 시절, 그는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이제 P&G의 글로벌 매니저 자리에까지 올랐다. 남들과 다른 생각, 다른 사람과 차별화하려는 치열한 노력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프로를 키우는 근본 바탕이다.
 
또 기업들도 공정한 인사 시스템을 구축하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수용하며 실패를 무릅쓴 혁신적인 시도를 장려하는 조직 문화를 갖춰야 한다. 원가 통제 중심의 사고방식으로는 21세기 무한 경쟁 시대에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Question 4 윤리문제 충분히 해결됐나?
한 때 부정부패가 한국 경제의 건전한 성장을 가로막기도 했지만 경제 구조가 선진화하고 글로벌 스탠더드가 도입되면서 윤리 문제는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추세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 아직도 도덕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 프로들이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 설문에서도덕성 및 윤리의식’과 관련, 글로벌 프로를 100점으로 가정했을 때 한국 프로는 72점 수준이라는 다소‘가혹한’ 평가가 내려진 것이다.
 
한국 프로들의 윤리의식이 글로벌 프로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은 결과만을 중시하는 기업문화 때문으로 풀이된다.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단기 목표에 집착하는 기업들이 많고 사전에 철저한 준비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과만을 강조하는 문화가 남아있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한 한국인 컨설턴트는 “한국 기업에서 잘 버티려면 업무 처리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합리성에 둔감해져야 한다”며 “이런 조건에서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낸다는 것이 한국 프로의 장점(?)”이라고 꼬집었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과장급 직원도 “한국 인재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제는 단기성과 보다는 장기적 성장 기반을 다지는 쪽으로 목표가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영학에서도 청렴(integrity)이 중요 이슈가 된 지 오래다. 피터 드러커는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란 책을 통해 “정직한 품성과 도덕성에 기반한 자기 절제 능력을 갖춘 경영자만이 오랫동안 존경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Solution 4 프로의 세계, 청렴은 경쟁력이다. 
도덕성을 강조하는 게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과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청렴 의무만 강조하다보면 비용 부담이 생길 수 있으며 각종 계약을 따는데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프로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기 때문에 비열한 방법으로라도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과 달리 도덕성에 문제가 생기면 사업에서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실제 상당수 한국 기업들이 도덕성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이로 인해 실추된 기업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야 했다. 해외 기업도 마찬가지다. 월드컴이나 엔론은 도덕성 문제로 파산하고 말았고 씨티그룹이나 JP모건 등도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보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직접적인 회사 책임이 없는 경우에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실제 지난 2005년 BP의 텍사스 공장 폭발사고가 발생했는데 BP는 이 사고에 책임이 없었다. 하지만 시장에서 BP의 전반적인 안전관리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이 회사 시가총액이 20%나 증발했고 최고경영자(CEO)도 조기 퇴직했다.
 
선도적 기업들은 이미 철저하게 윤리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GE는 회사 간부가 규정을 어겼을 때 가차 없이 처벌할 뿐만 아니라 도덕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잘못된 문화를 형성했을 경우에도 심각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 제프 이멜트 GE 회장은 시무식과 종무식 때 고위 간부들에게 청렴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상업적 이유 때문에 청렴의 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는 변명도 절대 용납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GE 조직원들은 청렴의무를 ‘ 한 번만 위반해도 해고된다(One strike and you are out)’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창의적 아이디어로 카드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현대카드도 ‘무관용 정책(zero tolerance)’으로 유명하다. 고객정보 보호와 접대, 성희롱 등 세 가지 사안에서 위반이 발생하면 그날 곧바로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나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도 청렴 의무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아무리 은밀한 방법을 동원했다 하더라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을 했을 경우 동료들 사이에서 나쁜 평판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직장 내에서 문제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이직 시 평판 조회(레퍼런스 체크)에서 결정적으로 불리한 요소가 된다. 많은 기업들은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더라도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인재는 채용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낮은 윤리의식이 품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자질은 변할 수 있지만 품성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에 직장생활에서 두고두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실제 상당수 연예계 및 스포츠계 스타들이 한 때 뛰어난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부와 명성을 쌓은 후 무절제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투철한 직업윤리(work ethic)와 도덕성이 필수적이다.
 

Question 5 자기 개발을 위한 노력은 충분한가?
직장인들의 자기 개발 노력에 대한 회사 차원의 배려나 재정적 지원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도 프로 인재를 키우지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중 63.9%는 회사 차원에서 ‘자기 계발과 관련된 지원이 충분치 못하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프로 인재를 키워내지 못하는 기업 문화만을 탓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직장인들의 개인적인 노력도 충분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자기 개발에 어느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느냐?’는 질문에 ‘하루 2시간 이상’이라는 응답은 14. 2%에 불과했으며, ‘1시간 미만’이라는 응답이 43.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전혀 시간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도 6.3%였다.
 
개인적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은 지난달 말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성인의 평생학습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 25~64세 성인의 직업관련 평생학습(학원 및 직장연수기관 교육) 참여율은 10.5%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8%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특히 참여율이 40%에 이르는 덴마크, 스웨덴, 미국 등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었다.
이번 설문에서는 자기 계발을 위해 ‘관련 서적 등을 통한 독학’과 같은 소극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응답(55.1%)이 가장 많았다. ‘선배의 조언이나 회사의 직무 교육’을 꼽은 경우가 14.1%였다.‘학원 강의를 수강(7.8%)하거나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12.7%)하고 있다’는 적극적인 응답자는 20.5%에 불과했다.
 
solution 5 구체적 목표 수립… 전략적으로 자기계발을
잡코리아 설문조사 결과, 사원~부장급 직장인의 80%이상은 자기개발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고용 시장에 경쟁 체제가 속속 도입되고 있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역량 강화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직장인들은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존경받는 기업들은 확고한 비전과 목표, 전략을 갖고 있다. 프로가 되려면 개인도 비전과 목표 등을 정확히 설정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근본적인 비전이나 미션이 무엇인지(例: 세계 최고의 요리사), 이를 위해 5년 후, 혹은 10년 후 구체적인 목표가 무엇인지(例: 특급호텔 조리장), 어떤 전략으로 이를 달성할 것인지(例: 프랑스 요리에 특화, 요리에 미적 요소 가미 등)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 몇 가지 외국어나 실무지식을 배우다 중도에 포기하면서 시간과 비용만 낭비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된다.
 
이런 비전과 목표, 전략을 수립할 때에는 냉철하게 스스로를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경쟁자가 얼마나 역량을 갖고 있는지, 이들에 비해 나의 역량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등에 대해 냉철하게 돌아보며 전략을 세워야 한다.
 
현실에 대해서는 이처럼 냉철하게 분석해야 하지만 수립한 비전과 목표에 대해서는 확실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대한 신념이 없으면 결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신념을 갖기 위해 비전과 목표를 달성한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해 자주 상상해보는 게 좋다.
 
전략을 실천하기 위한 세부 전술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골프 실력을 늘리겠다’는 식의 막연한 전술이 아니라 ‘매일 골프연습장에서 반드시 2시간 이상 연습하겠다’거나 ‘드라이버 비거리를 10야드 이상 늘리겠다’는 식의 매우 구체적인 전술을 설정해서 실천해야 한다. 실행과정에서는 사소한 일에도 너그러워서는 안 된다. 목표의 80%, 혹은 90%에 도달했다고 만족해서는 안 된다. 프로의 공통점은 지시하거나 통제하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또 스스로 매일 매일 개선해야 한다.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은 때로 혁신을 방해하는 ‘핵심 경직성(core rigidities)’이 될 수 있다. 어제까지 성공을 보장해줬던 개인의 역량이 언제라도 나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해서 만족하는 순간 치열한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끝없이 스스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며 개선하려는 노력을 가진 사람만이 성공하는 프로가 될 수 있다.
 
세계적인 자기계발 전문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목표를 세우고 실천에 옮기는 습관을 갖게 되면 2년 안에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며 “성공하는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 아이디어를 실행하지만 실패하는 사람은 아이디어의 문제점만 지적하며 실천하지 않을 구실만 찾는다”고 강조했다.
 
한국 최초의 경영 전문 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창간 첫 스페셜 리포트 주제를 ‘한국의 프로페셔널’로 정했습니다.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전문성과 창의적 능력을 갖춘 인재가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 경제의 도약을 위해서는 각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프로페셔널 육성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입니다. DBR의 비전 중 하나도 ‘한국형 프로페셔널 100만 명 육성 지원’입니다. 하지만 LG경제연구원과 함께 스페셜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았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각 분야에서 진정한 프로페셔널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도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에 따라 DBR과 LG경제연구원은 사상 처음으로 전문가와 일반인 대상의 한국형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심층면접(in-depth interview)과 설문조사를 실시해 한국 프로들이 처한 현실을 분석했습니다. 또 한국형 프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세계무대에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자랑스러운 한국인 프로페셔널의 성공 노하우도 분석했습니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형 프로페셔널리즘 연구에 이번 DBR과 LG경제연구원 공동 리서치가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