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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웹 3.0 시대, 기업의 대응 전략

승진-보상제도 등 차별화 절실
비전 추구형 위계 조직만 살아남아

김은환 | 348호 (2022년 0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스마트 콘트랙트에 기반한 분산형 자율조직(DAO)이 해묵은 주식회사라는 틀을 깨뜨리고 기업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성 기업이 DAO 대비 경쟁력을 지니려면 위계 구조의 최상층을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비전 집단으로 충원해야 한다. DAO 시대에도 위계 조직은 응집력, 실행력, 추진력을 위한 제도로서 건재할 것이다. 다만 앞으로의 위계 조직은 과거와 달리 목적과 비전 지향형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성과 평가에 기반한 승진, 강제 배분 상대평가 등 전통적 위계 조직에서 당연시되던 속성들의 근본적인 개선이 요구된다.



웹 3.0은 대기업 시대의
‘칙술루브 충돌체’가 될 것인가

기업은 산업혁명 이후 최초로 등장했다. 이후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산업혁명 초기는 발명가 제임스 와트나 토머스 에디슨으로 대표되는 고전적 혁신 기업가의 시대였다. 이후 20세기 초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벨트가 등장하면서 수직 통합과 다각화로 대표되는 거대 다국적 기업이 등장했다. 20세기 말에는 디지털 혁명이 본격화됐고 21세기 들어 유니콘, 데카콘이 떠오르며 혁신 기업가 시대의 재래에 대한 기대가 고조됐다.

웹 2.0 시대를 주도한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플랫폼 기업들은 기존의 오프라인 거대 기업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보였다. 오프라인 세계에서 통용되던 규모의 경제는 네트워크의 경제로 전환됐고 이는 오히려 더욱 증폭된 규모의 경제로 귀결됐다. 플랫폼 기업들은 마치 공룡을 몰아낼 날렵한 포유류 같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월드와이드웹(www, world wide web)은 대기업을 소멸시킬 만한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편 최근 부상 중인 웹 3.0의 디지털 네트워크가 공룡을 멸종시킨 칙술루브 충돌체1 역할을 할 것이라는 주장이 되살아나고 있다. 블록체인에 의한 분산형 네트워크 시대가 위계 조직인 기업을 근본적으로 불필요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정보기술(IT)의 선지자로 불리는 미래학자 조지 길더는 저서 『구글의 종말』2 에서 블록체인 시대를 맞아 데이터의 집중은 해체되고 구글의 시대는 끝날 것이라고 단언한다. 혹자는 스마트 콘트랙트에 기반한 분산형 자율조직(DAO,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이 낡은 위계 구조를 깨뜨리고 기업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주장한다.3

과연 이번에는 진짜일까. 블록체인 기반 분산 네트워크가 데이터 독점을 무너뜨리고 탈중앙화된 수평 조직에 산업의 헤게모니를 넘길까. 블록체인과 기업 조직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탐색하고 대기업의 미래를 합리적으로 전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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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기술은 어떻게 진화해왔나

블록체인은 한마디로 네트워크 기술이다. 특히 수평적 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신뢰는 흔히 인간의 마음과 의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기술적 요인도 매우 중요하다. 최초의 문자로 알려진 원시 부족의 결승문자나 수메르의 쐐기문자는 모두 계약 조건을 기록하는 동시에 위변조를 방지하기 위한 신뢰의 기술이었다.

수메르 토큰은 곡식이나 물건 등의 수를 세기 위한 작은 점토 조각들로 계약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사용됐다. 이 토큰들을 토기 항아리 안에 넣고 밀봉한 후 항아리 표면에 이를 묘사한 무늬를 새겼다. 혹 계약 내용에 대한 이견이 생기면 항아리를 깨뜨려 안에 있던 내용물과 표면 무늬와의 일치를 따졌는데 항아리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내용물을 위조할 수 없기 때문에 원 계약의 확인이 가능했다. 내부 토큰과 표면 무늬라는 체크 시스템은 복식부기의 원시적 형태이자 도장, 서명, 대체 불가 토큰(NFT, Non-fungible Token) 등 오늘날 계약 보장 기술의 원조 격이다.

고고학자들은 고대 수메르 토큰이 왕이나 정부가 아닌 수평적 약속으로 계약의 신뢰성을 유지하려는 시도였다고 평가한다. 항아리를 깨뜨려 계약의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으니 분쟁이 생겼을 때 권력에 의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발적 협력에 기반한 계약의 신뢰성은 견고하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 비잔틴 장군 문제다. 비잔틴 장군들은 하나의 성을 공략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지니고 있다. 단, 비잔틴 군대에는 총사령관이 없고 독립된 세력으로서 장군들은 연합군으로 움직인다. 힘을 합쳐 성을 점령하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만 장군들은 다른 유혹을 느낀다. 소수의 장군이 공동작전에서 발을 빼면 열심히 싸운 장군의 부대가 피해를 입어 세력 판도가 바뀐다. 성을 함락시킨다는 공동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지만 몇몇 장군이 사적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꼼수의 가능성 때문에 장군들은 연합 공격을 주저하게 된다.

결국 상호 간의 신뢰 부족이 성을 함락시킨다는 공동의 목표 달성을 좌절시킨다. 장군의 수가 적다면 상호 감시, 집단 압력 등의 방법을 적용할 수 있겠지만 장군 수가 늘어나고 지리적,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한계에 부딪힌다. 다수가 협력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극소수에 대한 불신이 전체의 협력을 와해시킨다. 믿을 수 있는 친구, 동맹의 범위를 벗어나 익명의 수많은 타인으로 협력 범위가 넓어지는 순간, 비잔틴 장군 문제는 어김없이 파괴력을 발휘한다.

블록체인은 이 문제를 극복한 궁극의 ‘신뢰의 기술’이다. 고도의 IT를 반도체 회로 못지않게 정교하게 재구성한 결과, 비잔틴 장군 문제라는 난제가 해결됐다. 수백만의 노드를 연결시키는 네트워크 기술, 비대칭키를 이용한 첨단 암호기술이 결합돼 나온 솔루션이었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인물이 설계한 비트코인이 최초의 성공 사례다. 블록체인은 가상 화폐, 스마트 콘트랙트, NFT 등으로 활용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그 핵심은 중앙 인증기관 없이 평등한 참가자의 수평적 네트워크만으로 완전한 합의와 신뢰를 구현하는 것이다.

네트워크는 위계 구조를 대체할 것인가

블록체인에 의해 연결된 네트워크는 중앙 권력을 불필요하게 만든다. 과거 지역 공동체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계’라는 사금융 체제는 은행 기능을 대신했다. 기껏해야 십여 명이 참가하던 계가 블록체인의 높은 신뢰성을 바탕으로 수백, 수천만 명 규모로 확장되고 있다. 스마트 콘트랙트를 활용한 분산 금융(DeFi, Decentralized Finance)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분산 금융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게 되면 중앙은행을 포함한 모든 은행이 불필요해진다.

블록체인으로 인한 변화는 금융제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중앙집중형 체제로는 정부와 기업이 있다. 현재 디지털 가상 국가를 찾아보긴 어렵지만 기업의 경우, 무시할 수 없는 변화가 감지된다. 최근 스마트 콘트랙트를 기반으로 한 DAO가 주목받고 있다.4

스마트 콘트랙트는 블록체인을 통해 계약 이행을 보장하는 기술이다. 계약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는 계약이 불이행될 수 있다는 치명적 리스크로 늘 골치를 앓아왔다. 지금까지는 공권력으로 계약의 강행을 보장하는 동시에 계약 주체들을 기업으로 통합해 경영자가 직접 통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올리버 하트는 기업이란 불완전한 계약 조문에 명시되지 않은 돌발 상황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특정하기 위한 제도적 솔루션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5

스마트 콘트랙트로 계약 이행을 자동화할 수 있다면 기업 조직은 박물관의 유물이 되는 걸까. 당장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 콘트랙트가 계약 이행의 완전무결한 보장책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게임 콘텐츠 등 디지털 재화에 국한된 이야기이며 오프라인 산업에 적용되기에는 무리다.6 그러나 실물 NFT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스마트 콘트랙트의 영역은 점차 확장될 전망이다. 경영자의 지시 대신 코드로 돌아가는 조직인 DAO가 주식회사의 미래라는 주장이 허풍만은 아니다. 또한 최근의 경영 환경은 조직에서 시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restructuring), 관리 계층의 축소(delayering), 비핵심 업무의 외주화 및 비정규화, 이에 따른 기업 가치사슬의 분화는 조직에서 시장으로 중심이 이동하는 추세를 보여준다. 블록체인은 이런 움직임이 한 단계 고도화되는 소위 ‘특이점(Singularity)’을 가속화할 수 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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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네트워크는 정말 위계 구조를 대체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위계의 역사와 본질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기업의 위계 구조가 갖는 특수성에 주목해야 한다. 정부, 군대와 기업의 위계 구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위계 구조의 출발은 군대와 정부였다. 성서 출애굽기에서도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국가와 군대를 다스리는 원리로써 위계 구조는 그 역사가 오래됐다.8 흥미로운 점은 기업의 위계 구조가 산업혁명 이후, 그것도 20세기 전반인 2차 산업혁명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최초의 강력한 왕권과 행정 조직이 등장한 것은 수천 년 전이지만 기업 위계의 역사는 100년이 채 안 됐다. 기업의 위계는 왜 이렇게 늦게 등장했을까.

“권력은 나눌 수 없다”라는 말처럼 국가 권력은 자신의 곁에 또 다른 권력을 용납하지 않았다. 권력을 위해 꼭 필요한 군대마저도 위협으로 여겼다. 부를 보유한 경제 권력 역시 지속적인 감시와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전제군주 국가에서는 상업이나 농업 부호 가문의 재산을 몰수하고 권리를 박탈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공권력에 도전할 만한 또 다른 대체 권력의 싹을 자르려는 정치 행위였다. 이런 탄압은 재산권을 심각하게 위협했고 이는 경제 발전의 근본적인 인센티브를 억제했다. 이후 산업혁명을 계기로 시작된 근대적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이라는 민간 권력이 용인돼야만 했다.

그렇다면 증기기관, 철도, 백열전구, 화학,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에서 전대미문의 혁신을 주도한 기업가들은 왜 권력 집중의 원리인 위계 구조를 받아들였을까. 혁신에는 강한 추진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혁신의 구상과 실현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혁신은 혼자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서 구상할 수 있다. 제약 조건은 아예 잊어버린 채 말도 안 되는 현실 왜곡과 난센스를 즐겨야 한다. 그러나 막상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고 이를 현실화할 때가 되면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진다. 기존의 질서와 충돌하고 만다. 마차와 자동차의 교통 시스템이 양립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고래기름을 태우던 가스등 체제와 백열전구 체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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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질서는 오랜 기간 현실에 뿌리내리고 수많은 개선 과정을 거쳤기에 현실 적합성이 높다. 그러나 새로운 질서는 기업가의 머릿속에서만 작동할 뿐 현실과 마찰을 일으킨다. 이런 마찰을 해결하려면 강력한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이는 비전을 꿈꾸는 것과는 다른 능력이다. 참신한 발상보다는 고도의 집중력, 주어진 여건에서 일정 시간 내에 목적을 달성하는 문제 해결력, 난관에도 좌절하지 않는 추진력이 필요하다. 바로 이 단계에서 일사불란한 중앙집권적 위계 구조가 필수불가결한 장치로 등장하는 것이다.

새로운 위계 구조,
일론 머스크의 비전과 실행력

이런 맥락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의 행보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열광한 SF 소설의 세계관을 비즈니스로 끌고 들어온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현실 버전처럼 보인다. 그러나 괴팍한 몽상가 캐릭터는 그의 한쪽 면일 뿐이다. 또 다른 면에서 그는 놀라운 집중력과 추진력으로 전기자동차 양산, 자동차 배터리 및 왕복 우주선 개발에 성공했다. 많은 스타트업이 기발한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양산 단계에서 좌초하는 반면 그는 집요한 경영자로서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여 단기간에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을 성취해가고 있다. 머스크가 진정 경이로운 점은 화성 정착이나 지구환경 보호라는 웅대한 비전이 아닌 테슬라 자동차 양산에 성공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또 인터넷 스타트업 경영자가 전통 제조업, 그리고 국가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진 우주 사업에서 연이어 성공을 거둔 점도 놀랍다.

물론 머스크의 조직은 과거 관료적인 위계 구조와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강력한 비전으로 무장해 공동의 목표에 매진하도록 압박한다는 점에서 일사불란한 위계 구조임은 분명하다. 머스크는 스스로 주당 100시간씩 일한다고 이야기하며 직원들에게도 그런 헌신을 암묵적으로 강요한다. 수평적인 소통과 자유로운 의견 개진은 회사의 전략 목표와 과업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만 권장된다. 직원들이 이런 머스크의 독단적인 행보를 뒤따르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머스크가 미래에 대한 독창적인 비전과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위계 구조가 유지되는 근간은 혁신에 대한 정보 비대칭성이다. 즉 혁신가는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경로 개척자(path-finder)가 된다. 이것이 권위의 원천이다. 머스크는 초기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대단히 믿음을 주는 경영자라고는 볼 수 없다. 그의 행보는 때때로 위태로워 보였고 실언이나 돌발 행동으로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상상을 초월한 비전과 이를 구현할 전략 대안을 동시에 제시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경영자다. 이런 머스크의 리더십은 기성 대기업이 벤치마킹해야 할 좋은 예다.

블록체인을 필두로 한 정보기술의 발달은 시장의 거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업 조직의 존재감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업무 외주화, 인력 비정규화는 일상적인 주변 업무에서 시작돼 점차 기간 업무, 중간관리자로 번져가고 있다. 그러나 특이점이 오더라도 기성 기업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다만 존재 이유를 창출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블록체인과 스마트 콘트랙트가 없앨 수 없는 거래 비용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혁신 기업가가 일으키는 산업과 기술의 혼돈이다. 머스크가 전기자동차와 지하 터널, 스타링크로 빚어내는 의도적 혼돈은 일상의 모든 질서를 뒤흔든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불확실성을 일으키며 기존 방식을 답습하는 플레이어들을 파괴하고 있다. 머스크의 화성 정착 사업이 스마트 콘트랙트로 진행된다면 그 혼돈과 불확실성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도적 혼돈은 머스크 혼자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며 혁신 주체들이 조직화될 때 가능하다. 테슬라와 관련 기업들이 발휘하는 위계의 위력이 그 방증이다.

현재 세계 경제가 당면한 최대의 불확실성은 자연재해도, 기후변화도 아니다. 혼돈의 원천은 바로 인간이 만들어내는 기술발 체제 변화에 있다. 인터넷과 플랫폼 경제로 촉발된 세계 경제의 변화는 인공지능,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예상하기 어려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종래의 리스크와는 차원이 다른, 시스템 전체를 뒤바꿀 파괴력을 잠재한다. 이런 혼돈을 생성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장치로서 위계 구조는 필수적이다. 비전을 보유한 혁신가와 이를 추종하는 일사불란한 위계 조직은 앞으로도 강력한 제도로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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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의 사업과 화성 정착 비전

머스크의 사업은 다양한 분야에 흩어져 있고 해당 분야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는 게임 체인저가 되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그의 사업들이 갖는 진정한 목적에 대한 많은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가 공식적으로 완전히 인정하진 않았지만 그의 사업들은 화성 정착이라는 더 큰 비전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그 시너지가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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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추구형 위계 조직으로의 진화

웹 3.0 시대, 기성 기업이 DAO에 비교 우위를 지니려면 ‘꿈꾸는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위계 구조의 최상층을 비전 집단으로 충원하고 이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모든 경영자가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처럼 꿈에 사로잡힌 편집광이 돼야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노동을 대체한다면 블록체인은 경영을 대체할 것이다. 성실하고 근면하지만 독창적 비전이 없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경영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경영의 종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은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다. 위계 구조는 여전히 응집력, 실행력, 추진력을 위한 제도다. 다만 앞으로의 위계 조직은 과거와 달리 목적과 비전 지향형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적 위계 조직에서 당연시되던 속성들의 근본적인 개선이 요구된다.

1. 승진 제도의 변화

우선 승진에 대한 제도와 관념이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기업에서 승진은 성과 평가에 기반했다. 이는 ‘피터의 원리’, 즉 조직 구성원이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 가장 무능해진다는 역설을 자초한다.9 기술 혁명 시대에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선임자가 승진해 상사가 된다는 관념 자체를 버리고 지위(status)로서의 직책도 철폐돼야 한다. 최근 삼성전자는 직급과 관계없이 호칭을 ‘프로’ ‘님’으로 통일하는 동시에 승진자의 사내 발표를 중단했다. 과거 지향적인 연공 마인드의 굴레에서 벗어나 조직의 위계를 탈바꿈하려는 유의미한 시도로 평가된다.

조직 내 리더는 경험과 연공이 아닌 새로운 아이디어나 변화 이니셔티브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반복되는 과업을 탈피해 혁신적 과업을 설계하고 제안하는 인물이 프로젝트 리더를 맡는 임시 조직(adhocracy) 방식의 운영이 필요하다. 이는 곧 대기업의 리더와 독립적인 벤처 사업가의 경계가 흐려짐을 의미한다.

구글의 ‘80대20 룰’은 혁신 제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구글은 직원들에게 80퍼센트는 회사의 공식 업무, 20퍼센트는 자신이 발굴하고 기획하는 새로운 업무로 비중을 할애할 것을 권장한다. 앞으로 80퍼센트의 공식 업무 비중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공식적으로 사업화된 회사의 프로젝트들은 일상 업무로 자리 잡으면서 외주화되거나 인공지능 혹은 DAO의 영역으로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참신하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기획할 수 없는 리더는 더 이상 위계 조직에서 상사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경영진의 지시를 실행하는 수동적 존재로서의 대기업 간부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2. 보상 제도 개선

강제 배분 상대평가에 따른 보상 차별화 역시 개선 대상이다. 매년 10% 하위자를 강제 배분해 해고하던 제너럴일렉트릭의 악명 높은 ‘바이탈 곡선(Vital Curve)’은 꽤 오래전에 폐지됐다.10 삼성전자 역시 유서 깊은 강제 배분 상대평가를 최근 폐지했다. 내부 경쟁을 촉진해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원리는 목적과 비전 중심 조직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함께 일하는 동료 간 상대평가에 따라 보상을 차별화하면 비전 공유를 통한 시너지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혁신은 장기전이다. 단기적 성과에 과도한 금전적 인센티브를 연계하면 진정한 혁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에 자리 잡은 성과주의 보상은 거의 불문율이 됐다. 성과에 따른 격차를 키우는 것이 더욱 진보적이고 선진적인 것이라는 믿음이 고착화됐다. 그러나 비전 추구형 위계 조직에서는 금전적 보상이 최우선의 가치가 아니다. 미국 미시간대의 조직 전문가 로버트 퀸은 목적 중심 경영이라는 화두를 제시하며 선한 목적이 진정한 비즈니스 경쟁력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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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물류의 우버’로 주목받는 플렉스포트(Flexport)의 경영자 라이언 피터슨은 비영리단체의 물류를 파격적 할인가로 전담하는 자회사를 만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일 당시에는 중국 우한에 마스크를 수송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더리움과 스마트 콘트랙트의 창시자 비탈리크 부테린도 돈 버는 일에는 관심 없다며 자신의 사업을 위해 주식회사가 아닌 비영리재단을 선택했다. 이처럼 혁신의 목적은 다양해지고 있으며 혁신가들은 이윤보다 비전에 주목한다. 조직은 이윤에, 구성원들은 금전적 보상에 매진하는 회사는 비전 추구형 위계 조직으로 변신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3. 협력 우위 확보

기존의 위계 조직은 내부 결속을 중시하며 외부와의 엄격한 방화벽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경영 환경에서 혁신의 아이디어와 자원을 전부 조직 내에서 조달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경쟁 우위보다 협력 우위(collaborative advantage)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조직의 경계는 철의 장막이 아닌 내외의 아이디어, 정보, 노하우가 소통되고 융합되는 창조적 공간이 돼야 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위한 경계선 조직을 만들고 외부와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후지필름과 네슬레가 좋은 예다. 후지필름은 자사와 시너지를 낼 의향이 있다면 누구와도 협력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노베이션 허브라는 기구를 만들고 회사의 주요 기술을 외부 파트너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네슬레는 혁신적 사업 아이디어 경쟁을 벌이는 내용의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상어 수조(Shark Tank)’에서 모티브를 따와 회사의 공식 이벤트로 만들었다. 직원은 물론 외부 지원자들이 혁신 아이디어를 경합하고 선정되면 액셀러레이터를 통해 다양한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11

위계 조직은 더 이상 비밀스러운 결사체가 아니다. 과거에는 기업 노하우를 대외에 숨기는 것이 경쟁력에 도움이 됐다. 그러나 지식의 본질은 결합할수록 가치가 더욱 커지는 ‘연결과 시너지’에 있다. 신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등장하는 미래 산업 판도에서 특정 기술을 독점해 지속가능한 우위를 만들겠다는 것은 오판이다. 현재 보유한 기술의 노후화는 급속도로 진행되는 반면 외부로부터 받아들여야 할 기술은 무수히 개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대안은 개방과 연결이다. 시너지를 촉진하는 풍토와 분위기, 시스템을 갖춘 기업이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결국 누가 더 잘 협력하느냐가 앞으로 경쟁의 관건이 될 것이다.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 회장은 “중소기업처럼 움직이는 대기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시점에도 유효한 말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단순히 스타트업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닌 스타트업처럼 꿈꾸는 대기업이 돼야 한다. 꿈이 일으키는 혼돈이 없다면 블록체인은 비효율적인 위계 조직을 네트워크로 해체해버릴 것이다. 조직이 비전에 몰입하지 않는다면 구태의연한 위계 구조를 만들어 부조리한 상명하복의 관행을 따를 이유가 없다.

위계 조직은 분권화된 수평 조직과 비교했을 때 인간 본성과 맞지 않는 낡고 거추장스러운 제도다. 그럼에도 위계 조직이 지닌 위력과 가치가 있다면 확률조차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을 돌파하기 위한 최후의 중장비라는 점이다. 기업의 꿈은 조금씩 펼쳐지면서 현실이 되고 그 과정은 온갖 불확실성과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과정을 믿음과 공감으로 떠받쳐 줄 비전형 위계 구조는 혁신의 최전선에서 살아남을 것이 분명하다. 인간의 기술이 신의 경지에 이르러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하지 않는 이상 위계 조직은 건재할 것이다.


김은환 경영 컨설턴트•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장 serikeh@gmail.com
필자는 경영과학과 조직이론을 전공한 후 삼성경제연구소(현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25년간 근무했다. 근무 중 삼성그룹의 인사, 조직, 전략 분야의 획기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현재 삼성 계열사 전체가 사용하고 있는 조직 문화 진단 툴을 설계하기도 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작가 및 컨설턴트로서 저술 활동과 기업 및 공공 조직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2019년에는 저서 『기업 진화의 비밀』로 정진기언론문화상 경제•경영 도서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격변기를 맞아 기업과 전략의 변화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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