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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MZ세대가 추구하는 ‘갓생’의 의미

‘자기 개발’보다 ‘갓생 살기’ 원하는 세대
MZ의 잠재력 믿고 칭찬-피드백 빠르게

이경민 | 339호 (2022년 0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MZ세대들이 추구하는 개인의 변화, 일명 ‘갓생’은 과거의 자기 개발과는 다르다. ‘아침형 인간’과 ‘미라클 모닝’의 차이에서 볼 수 있듯이 MZ세대들의 루틴과 리추얼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자기 개발의 모습도 있지만 그보다 자신을 단단하게 지켜내고자 하는 자기 돌봄의 성격이 더 크다. 조직은 성장을 원하는 그들의 내적인 힘을 신뢰하고, 빠른 칭찬과 피드백, 확실한 가이드로 그들의 불안감을 낮추고 일의 몰입을 증진시켜야 한다. MZ세대도 지나친 생산성 추구에 따른 자기 착취와 번아웃을 조심하고 조직에서의 생산성을 좀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갓생’을 추구하는 MZ세대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습관 만들기를 도와주는 여러 앱이나 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이 유행하고 있다. 미라클 모닝처럼 1∼2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서 아침 기상을 SNS로 인증하는 방법도 있고 ‘오하운(오늘 하루 운동)’처럼 매일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앱이나 커뮤니티 모임들도 있다. 과거에도 남들보다 먼저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아침형 인간’이라는 용어가 있었다. 그리고 매일 운동하는 사람들은 2030세대뿐 아니라 건강을 생각하는 거의 모든 세대에 분포해 있다. 그럼에도 최근의 MZ세대의 습관 만들기가 기존의 그것과 다른 점은 아침 기상이나 운동처럼 쉽게 성취할 수 있는 일들로 구성된 ‘루틴 형성’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리추얼(ritual)이라고도 하고, 일상력(日常力)이라고도 부르는 이러한 습관들은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기, 침구 정리하기, 양치질 3분 하기, 아침 식사하기 같은 사소하지만 유익한 일련의 행동들을 말한다. 너무 익숙하고 사소해 다른 세대들에게는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런 행동들을 MZ세대는 앱을 활용해 활동 여부를 체크하고 기록하며 주변에 인증하거나 스스로에게 동기부여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신을 뜻하는 영어 ‘갓(God)’과 인생의 한자 ‘생(生)’을 합친 ‘갓생산다’라는 신조어가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미라클 모닝이나 오하운, 혹은 바른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 또는 자신이 세운 어떤 계획들(공부, 자기 계발, 명상, 독서 등)을 온전히 수행해 내는 하루를 ‘갓생’이라는 말로 압축해 표현한다. 현실 생활에 집중하면서 세운 계획을 실천해 나가는 성실하고 생산적인 삶을 의미한다. SNS나 유튜브 등에 ‘갓생’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수많은 게시물을 찾아볼 수 있다. 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음을 브이로그로 기록한 게시물도 있고, 내일부터 갓생을 살겠다는 다짐을 올린 게시물도 있다. 이처럼 MZ세대가 바른 생활 습관, 타의 모범이 되는 바람직한 삶(갓생)에 대한 노력에 더욱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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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형 인간’과 ‘미라클 모닝’의 차이

첫째, 과거보다 개인이 혼자 관리해야 하는 시간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모두가 일정한 외부의 리듬에 따라 사는 것이 당연했다. 정해진 시간에 학생은 등교하고, 직장인은 출근했다. 직장인의 경우 한 번 출근하면 몇 시에 집으로 돌아올지 가늠하기 힘든 야근이 일상적이었다. 그런 일과 속에서 개인은 아침저녁 여분의 시간과 주말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주말조차 회사의 일정(회식, 야유회, 출장, 비상근무 등)으로 채워지면 남은 시간은 다음 일을 하기 위해 조용히 재충전하기 위해 썼다. 사실상 마땅히 개인이 활용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더욱 격렬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광고 문구가 직장인들의 마음의 소리인 듯 번아웃이 만연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새 재택근무와 52시간제, 비대면 근무를 돕는 업무 환경의 변화 등으로 늘어난 유연근무 환경은 개인들이 운용할 시간의 양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더 이상 동일한 시간에 출근하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날 필요가 없어지고, 야근과 회식으로 이어지던 저녁 시간은 상당 부분 개인에게로 귀속됐다. 종일 혼자 일하며 주어진 하루 시간을 자기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높아진 자유도 속에서 자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고자 하는 개인의 노력이 바른 생활 습관에 대한 관심과 리추얼, 루틴, 일상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2020년 2월 이후 현재까지 개인으로서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상황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불확실한 하루하루와 그로 인한 불안감, 무기력감을 이겨 내기 위해 하루의 삶에 일정한 틀(frame)을 잡고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한 욕구가 MZ세대에서 성실한 생활을 추구(갓생 살기)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한국 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를 통해 실시한 2021년 2분기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대에서 우울 평균 점수와 우울 위험군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30대 우울 위험군 비율은 각각 24.3%, 22.6%로 50∼60대(각각 13.5%)에 비해 약 1.5배 이상 높게 나와 젊은 층이 코로나19로 인해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더욱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우울감, 무기력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일상의 힘을 회복하고자 하는 리추얼로 나타나고 있다.

셋째, 작은 성취를 통해 자존감을 높이고 싶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불안감과 무기력감은 MZ세대에게는 비단 현재의 코로나 사태만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과거 세대보다 취직, 승진, 자가 주택 마련, 결혼, 출산 등으로 이어지는 성인기 삶의 성취 지표들을 이루는 시기가 늦춰지거나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는 세대적 현실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기에 소확성(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이라는 신조어에서 느껴지듯 크고 어려운 성공보다는 매일의 삶에서 이루기 쉬운 작은 성취들을 함으로써 자존감을 높이고 싶은 욕구가 좋은 습관 만들기에 대한 관심에 반영돼 있다.

과거 새해 결심이나 좋은 습관 들이기의 목적은 자기 개발의 성격이 강했다. 그에 비해 지금의 루틴과 리추얼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자기 개발의 모습도 있지만 일정 부분 자신을 단단하게 지켜내고자 하는 자기 돌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일례로 1993년 일본인 의사 사이쇼 히로시의 책 이후 2000년대 초 한국에서 유행했던 ‘아침형 인간’은 남보다 일찍 일어난 새벽 시간을 이용해 독서, 공부, 운동 등 성공을 위해 노력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사이쇼 히로시는 성공하려면 아침잠을 줄여서 남들보다 하루를 더 길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했다. 이에 비해 2016년 미국인 할 엘로드는 20살에 죽을 뻔한 교통사고를 겪고 난 이후 여러 삶의 굴곡을 거치면서 자신을 돌보기 위해 고안한 개념을 바탕으로 책 『미라클 모닝』을 썼다. 이 책을 기반으로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를 기억하고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면서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갖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루틴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6시 이전에 일어나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기, 3페이지씩 글쓰기, 명상하기 등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활동들을 통해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보듬는 시간을 갖는 것이 미라클 모닝의 목적이다. 이처럼 그동안 다른 세대의 자기 개발이 오랜 시간 인내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이뤄 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지금의 MZ세대는 언뜻 사소해 보이는 리추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계획대로 수행해 냄으로써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이를 통해 일상의 자신감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빠른 피드백과 칭찬이 효과적

그렇다면 이렇게 바른 생활과 일상력을 추구하는 MZ세대를 조직은 어떻게 인식하고 대해야 할까?

첫째, 성장을 원하는 그들의 내적인 힘을 신뢰해야 한다. 재택근무가 시작되던 초기, 외부 감시가 없다면 구성원들이 일을 느슨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생산성의 후퇴 없이 인재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면서 재택근무는 코로나 시국이 종료된 이후에도 여러 형태로 기업의 근무 환경에 더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개인으로서는 오히려 일과 삶의 경계가 사라져 하루 종일 일을 하는 과몰입이 더 문제가 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워라밸, 혹은 욜로(YOLO)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존의 편견과 달리 MZ세대는 성장을 위해 하루를 세밀히 계획하고 매일을 성실히 살아가고자 하는 성장 지향적인 존재들이다. 과거보다 높아진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한 미래를 헤쳐 나가기 위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들에게 조직은 깊은 신뢰를 보여야 한다.

업무적인 면에서 자율성을 높일 수 있는 근무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시간마다 업무일지를 쓰게 하기보다 명확한 근무 지시와 측정 가능한 업무평가제도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일을 관리할 수 있도록 위임해 줘야 한다. 신입 사원에게 단독으로 일을 맡길 수 있는 시기가 언제쯤이라고 생각하는지 팀장이나 임원들에게 물어보면 대략 3∼4년 후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입 사원들은 입사 후 당장 자신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 주어지기를 기대한다. 성장에 대한 그들의 내적인 욕구와 힘을 신뢰하고, 신입 사원들에게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설명한 후 그 한계 내에서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업무를 부여한다면 1년 후 조직에 실망해 떠나는 이직 비율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이 MZ세대를 신뢰할 때 그들은 더 큰 애정과 충성심, 그리고 개인의 성장을 통해 조직에 기여할 것이다.

둘째, 빠른 피드백과 칭찬이 필요하다. MZ세대들은 오랜 기간 인내해 이뤄 내는 거대한 목표보다는 하루하루 일상에서 성취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특성이 있다. 이를 고려해 10년 후 승진이나 20년 후 임원 되기 같은 장기적이고 거대한 피드백보다는 오늘 한 일에 대해 관리자가 분명하게 알아주고 과오를 정확히 언급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MZ세대가 사용하는 습관 만들기 앱이 그들에게 주는 피드백의 주기(period)를 생각해 보라. 아침에 루틴을 일정대로 다 수행했을 때 앱의 화면은 기다릴 필요 없이 즉각적인 인정을 제시한다. “OO님, 참 잘 하셨어요. 아침 루틴을 모두 수행하셨네요.” 또는 일정 기간 목표를 채웠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얼마나 많은 성취를 해냈는지 언급하고 보상해 준다. “연속 10일째 목표를 채우셨네요. OO를 드립니다” 등. 화면의 번쩍이는 화려한 메달이나 트로피를 볼 때 가상의 보상이긴 하지만 뇌의 도파민은 실제의 보상과 마찬가지로 확실히 분비된다. 조직에서도 MZ세대에게 보다 자주, 빠르게 피드백해 줘야 한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의 고생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MZ세대다. 그 일이 어떤 결과를 낳기 전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종일 분투했음을 리더가 알아주고 직접 언급해 준다면 도파민 분비를 통한 만족감과 성취동기가 크게 높아질 것이다. 한국 사람의 정서상 얼굴을 보고 말로 직접 칭찬하는 것이 어렵다면 포스트잇에 “수고했어요. 일을 꼼꼼히 마무리해 줘 감사합니다” 같은 짤막한 글을 적어 구성원의 자리에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그 구성원은 오래도록 기억할 소중한 하루, 그리고 ‘갓생’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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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가이드를 확실하게 줘야 한다. MZ세대는 일상도 세분화해 이뤄야 할 단계들로 나누고 하나하나 체크하고 인증한다. 어린 시절부터 쉼 없이 공부하고 다양한 스펙을 쌓으며 엄청난 경쟁 속에서 자신을 증명해 조직에 입사한 그들에게 생산성과 능력은 삶의 중요한 지표이다. 어깨 넘어 배우기보다 확실한 매뉴얼을 받기를 원하고 맨땅에 헤딩하기보다는 미리 검색하고 확인해 실패를 최소화하길 원한다. 그렇기에 과거처럼 두루뭉술한 업무 분장보다는 팀장이 각 구성원의 성장 욕구와 업무 능력 등을 깊이 파악해 각 개인에게 적합하고 세부적인 업무 가이드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일을 하기 전에 전체 업무의 목표가 무엇이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팀 전체가 일을 어떻게 나눌 것이며, 각 일을 수행하는 단계들과 결과물은 어떻게 공유되고 측정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가 명확할수록 MZ세대는 일에 몰입하기 쉬울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자신이 하는 노력이 어떤 방식으로 조직에 기여하고 생산성을 나타낼 것인지, 그에 대한 보상과 인정은 어떤 형태로 주어질 것인지 MZ세대가 분명하게 인지할수록 조직에 대한 불안감이나 무기력감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MZ세대는 개인적인 삶에서 갓생을 살기 원한다. 이들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조직에서도 갓생을 살 수 있도록 조직이 도울 수 있다면 조직에 대한 그들의 만족감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습관 만들기 앱처럼 자주 그들을 트랙킹하고, 칭찬하고, 좀 더 높은 성취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 그래서 각 개인이 자신의 성장 욕구로 스스로 발돋움해 노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대, 조직과 리더들이 관심 가져야 할 조직문화의 방향일 것이다.

MZ세대를 위한 조언

마지막으로 매일의 삶에서 일상력을 키우고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살기를 원하는 MZ세대도 다음과 같은 조언을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나친 생산성의 추구는 불안의 다른 모습일 수 있으며 종국에는 번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 교수는 현대사회를 ‘피로 사회’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자기 긍정을 통해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곧 ‘자기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매일의 삶을 기록하고 더 나은 습관을 가진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매우 바람직하고 성실한 삶의 태도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지나칠 때, 혹은 그런 노력이 생각처럼 이어지지 않을 때 자신을 가혹하게 비난하고 몰아붙인다면 이는 다시 고려해 봐야 할 문제가 된다. 생산적이지 않으면 나는 가치가 없는 것인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지 못한다면 오늘은 실패한 것인지, 이런 사고방식이 이어진다면 나는 어디까지 나를 발전시키고자 하는지 찬찬히 들여다보자. 그리고 내가 지금 자기 착취와 번아웃으로 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매일 성장하지 않아도, 때론 세웠던 계획을 전혀 이뤄 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좀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며 가장 많이 말한 내용이 ‘호전과 악화(wax and wane)’가 반복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한 번에 직선으로 낫는 병은 없다. 오늘은 좀 나은 듯 보여도 내일 또다시 나빠지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면서 병은 차츰 나아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매일 성공하고 매일 생산적으로만 사는 사람은 없다. 조금씩 실패하고 전혀 나아지지 않는 듯 보이다가 어느 새 훌쩍 좋아지는 것이 성장의 곡선이다. 그러므로 나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천천히 나를 기다려주자. 겨울의 나무처럼 어떤 상황에서는 그저 버티는 것만으로 성장을 하고 있는 시기도 있다.

이와 더불어 조직 내 생산성은 개인의 삶에서 보다 좀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개인의 삶과 달리 조직의 환경에서는 매일의 루틴과 업무가 쌓여서 결과로 드러나는 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단기간에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시간들이 쌓여서 주변의 평판, 전문적 실력,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내공으로 천천히 드러날 것이다. 그동안 개인의 삶을 30일, 100일, 6개월 혹은 1년 정도의 호흡으로 바라봤다면, 그리고 그런 시간의 단위에서 무언가 보상과 성장을 경험했다면 조직에서의 나의 커리어는 훨씬 더 긴 호흡이 필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즉각적인 인정, 보상, 성장 혹은 승진이 없다 할지라도, 관리자도 동료들도 나의 일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지금의 시간들이 쌓여서 결국에는 나의 결과물이 될 것임을 믿는 긴 호흡이 조직에서 쉽게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나의 길을 추구하는 힘이 될 것이다.

이경민 마인드루트리더십랩 대표 kmlee@mindroute.co.kr
필자는 정신과 전문의 출신의 조직 및 리더십 개발 컨설턴트다.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Bethesda Mindfulness Center의 ‘Mindfulness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용인병원 진료과장과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메디컬 디렉터를 역임한 후 기업 조직 건강 진단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 임원 코칭과 조직문화 진단, 조직 내 갈등 관리 및 소통 등 조직 내 상존하는 다양한 문제를 정신의학적 분석을 통해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DBR mini box :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본 트랜스포메이션


집단지성 막는 내부 관점을 경계해야

개인 뿐 아니라 조직 역시, 변화를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경쟁력을 높인다. 하지만 조직이 진정한 변화를 하지 못하고 좌절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편향성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 개개인이 가진 편향성이 조직의 변화를 막는 방해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극복하고 변화에 탄력적인 조직으로 바꾸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1. 혁신의 적은 개인의 손실회피성

개인과 조직 혁신의 가장 무서운 적은 ‘손실회피성(loss aversion)’과 그 자손인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라는 인간의 심리적 편향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회사 경영진은 변화에 소극적으로 적응하려는 직원들을 능력 부재나 현실 안주주의자 등으로만 탓하는 실수를 범하게 한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10만 원을 잃고 뒷면이 나오면 ( )원을 따는 도박이 있다. 당신은 과연 ( ) 안에 얼마를 넣으면 이 도박에 응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행동경제학에서 인간의 손실회피성을 측정할 때 자주 이용하는 질문이다. 당신이 대부분의 사람과 같다면 20만 원 이상이라고 답할 것이다. 즉, 최소한 이득이 손해보다 2배 이상이 돼야 도박에 응한다는 것이다. 이득보다 손실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심리가 바로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손실회피성’이다. 그리고 이런 손실회피성에서 기인하는 인간의 심리적 편향이 ‘현상 유지 편향’이다. 현상을 변화시키면 이득이 생길 수도 있고 손실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구성원들은 이득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려고 한다.

2. 손해 보지 않으려다 손해 보는 매몰비용의 오류

‘이미 엎질러진 물을 보고 후회해도 소용없다’라는 말의 경제학적 의미는 이미 지출한 비용에 대해서는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투자 계획에서 중요한 사항은 향후에 기대되는 수입과 비용이지 과거에 지출된 비용, 즉 매몰 비용(sunk-cost)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과거에 지출된 비용에 신경 쓰고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매몰비용의 오류’라고 한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보자.

“비행기 제조 회사의 사장인 당신은 평범한 레이더에는 포착되지 않는 비행기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위해 1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900억 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경쟁사에서 당신 회사에서 만들려고 했던 비행기를 이미 시판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경쟁사가 만든 비행기는 당신 회사가 만들고 있는 비행기보다 더 빠르고 경제적이다.”

당신이 위와 같은 상황이라면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나머지 100억 원을 투자하겠는가? 실험 결과 무려 82%의 사람이 나머지 1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답했다. 경쟁자가 훨씬 더 뛰어난 성능을 가진 비행기를 출시했는데도 말이다. 프로젝트 결정권자나 담당자 입장에서 이런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지는 이유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특히 의사결정 과정에서 책임이 큰 직책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프로젝트를 접고 난 뒤에 실패가 확정돼 책임 추궁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거나 회사에 확정적인 손실을 끼치기를 꺼리는 손실회피성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로 인해 회사의 손실은 더 커지게 된다.

3. 집단지성 막는 내부 관점

회사가 제품을 개발하거나 사업을 실시할 때 이에 대한 시장 조사를 하고 수요 예측을 하기 마련이다. 담당 부서는 이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업을 계획하고 안건으로 올린다. 그런데 담당 부서가 제출한 프로젝트는 내부 관점 오류에 함몰될 개연성이 존재한다. 내부 관점이란 해당 과업에 관계된 자들의 시각에서 대상을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이 외부 관점이다. 내부 관점은 문제를 고려할 때 특정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가까이 있는 정보만 이용하고, 편협하고 특별하게 제공된 정보를 토대로 예측한다. 이런 식의 입수 정보에는 논리적 오류가 있는 견해도 포함된다.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내부 관점의 위험성을 자신이 겪은 실례를 통해 생생히 묘사한다. 카너먼은 경력이 풍부한 교사, 심리학 전공자, 교육학과 학과장으로 구성된 팀을 꾸려 판단 및 의사결정 관련 커리큘럼 개발과 교과서 집필 과제를 맡게 됐다. 팀이 가동된 지 1년가량이 지난 시점에 그는 완성된 초안을 교육부에 제출할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팀원들에게 추정해보라 청했다. 내부 팀원들은 약 2년이라는 추정치를 내놨다. 그는 외부 관점이 궁금했다. 외부 전문가는 “유사한 작업을 했던 팀들 중 40%는 완성을 못했고 끝내더라도 7년 안에 마친 팀은 하나도 없었다”고 답했다.

사람들이 내부 관점을 맹신하는 이유 중 하나는 통제력에 대한 환상이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통제력을 가졌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 확률을 실제보다 높게 본다. 따라서 프로젝트를 객관적으로 심사할 수 있는 회의 환경이 매우 필수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 회의장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회사의 최고경영자만이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외부 관점을 취합하고 집단지성을 이끌어 내야 할 회의장이 토론이 아닌 의견의 일방통행, 경영진의 의견 전달의 장으로 변하기 일쑤다. 집단지성의 장이 아닌 ‘집단사고’의 장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집단사고(group thinking)’란 사회심리학자인 어빙 제니스(Irving Janis)가 명명한 것으로 토론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 것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 의견이 일치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는 구성원들의 의견 표출이 지양되며 권위적인 리더십이 발휘되는 문화에서는 집단사고의 발현 확률이 매우 높다고 분석한다. 회사 최고경영자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조직문화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행여 의견을 개진하다가 잘못하면 큰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즉 손실회피성으로 인해 회의에 참석한 직원들은 입을 닫아 버린다. 그 결과 최고경영자의 의견이 조직의 의사결정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흔히 회자되는 ‘오너 리스크’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4. 행동경제학적 제언

그렇다면 조직 차원에서 인간의 인지적 오류와 편향을 극복하고 조직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왜 혁신이 필요한지 당위성을 제공하면서 합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한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이유가 없는 부탁은 무시하기 일쑤인 사람에게조차 특정한 이유를 들어 부탁을 하면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가 딱히 설득적이지 않은 경우에도 그랬다. 따라서 혁신을 얘기하면서 청사진만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다. 대신 현명한 피드백을 줘야 한다. 특히 혁신 과정의 초기에는 지금까지 이룬 성과에 대해 공유해야 한다. 커피를 마시면 한 개씩 도장을 찍어주고 열 개를 찍으면 무료 커피 한 잔을 제공하는 카드의 경우보다 열두 개의 도장을 찍어야 하지만 미리 두 개의 도장을 찍어 주는 경우에 사람들은 더 열심히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이른바 ‘마중물 효과’라 불리는 이 현상은 초기에 이룬 성취를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또 목표했던 혁신을 어느 정도 이뤘을 경우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피드백을 줌으로써 구성원들에게 성취감을 줘야 한다. 산 정상에 거의 다다르면 억지로라도 힘을 내는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둘째, 구성원들이 일에 대한 도전 의식을 가질 수 있는 인센티브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의도하지 않거나 예상하지 못한 실패에 대한 엄격한 책임 추궁은 구성원들의 손실회피성을 오히려 부채질할 뿐이다. ‘도전’이 아닌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도박’ 의식을 심어준다. ‘결과 편향’과 ‘사후 확신 편향’에 근거한 사후 평가는 학습된 무기력만 조장할 수 있다. 따라서 시스템적으로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징벌적 패널티를 받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직원들의 손실회피성을 역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대부분 회사는 연말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라는 성과급을 준다. 연초에 성과를 정해놓고 연말에 이를 달성하면 직원들에게 주는 식이다. 그런데 지급 시기를 조정해 회사에 더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예 연초에 성과를 정할 때 미리 성과급을 지급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연말에 환수하는 방식이다. 성과급을 연말에 지급하면 직원들에게 ‘이익’이라는 사고가 활성화되지만 연초에 지급하면 ‘손실’이라는 사고가 활성화된다. 직원들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연초에 받았던 성과급을 뱉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손실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다. 따라서 연초에 성과급을 미리 지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는 현장 실험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2012년 행동경제학자 존 리스트 교수팀은 시카고 인근의 교사 15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실험 결과 학기 초에 성과급을 선지급받은 교사들의 학생들이 연말에 성과급을 지급받은 교사들의 학생들보다 유의미한 수준으로 더 높은 수준의 성적 향상을 보였다. 전자의 학생들의 성적은 10%나 높아졌지만 후자의 학생들의 성적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건전한 소통과 회의 문화의 조성은 정확한 사업에 대한 예측과 집단사고를 방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활발하고 개탄 없는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고 말로 하기는 쉽지만 실제 행동에 옮기려면 인간의 심리적 편향상 쉽지만은 않은 문제다. 회의가 집단사고가 아닌 집단지성을 발전시키고, 외부 관점을 수용하기 위해서 행동경제학자나 심리학자들이 제시하는 사항은 다음의 몇 가지로 축약된다. 회의의 리더는 자신의 견해를 먼저 보여서는 안 된다. 회의 리더는 많은 경우 구성원을 평가하거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을 텐데 이런 리더가 먼저 발언한다면 인간의 손실회피성으로 인해 그의 의견에 동조하려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회의 시작 전에 참가자들이 각자 의견을 미리 써서 제출하고, 회의에서 이에 대해 토론하는 방법도 대안이다. 이 방법이 중요한 이유는 다수의 의견에 휩쓸려 사장될지도 모르는 의견들이 취합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동조 심리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다.

회의 참가자들 중 ‘악마의 대변인’이라는 악역을 배정해 상정된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토록 하는 대안도 있다. 이와 관련해 심리학자인 게리 클라인은 판단을 내리기 전에 ‘사전 부검(premortem)’이라는 절차를 제안한다. 이는 논의되는 프로젝트가 성공이 아닌 실패했다고 가정하고, 실패할 수 있는 원인에 대해 토론해보도록 하는 절차다. 사업을 결정할 때 흔히 매몰될 수 있는 ‘과신’과 ‘낙관주의’를 경계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외부 관점을 더욱 보강하는 차원에서 조직 내부가 아닌 외부 전문가에게 조직의 의사결정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반박하도록 하는 것도 집단사고를 방지하는 대안이다.


안기정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akjakj@si.re.kr
안기정 연구위원은 일본 교토대학 경제학과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토교통부 플랫폼운송사업심의회 위원, 서울특별시 물가대책위원회 위원, 서울특별시 버스정책위원회 위원, ㈔모빌리티&플랫폼협회 비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 이경민 | - 마인드루트 대표 / 정신과 전문의
    - 기업정신건강 진단 및 관계/갈등 치료 전문가
    - 대한우울조울병 학회 정회원 및 학회지 편집위원
    - 前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前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Medical Director, 前 용인정신병원 WHO 협력기관 Research coordinator
    -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및 석사
    - 미국 Bethesda Mindfulness Center 'Mindfulness 전문가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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