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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5. 트렌드 전문가 윤덕환 마크로밀엠브레인 이사 인터뷰

‘진정성’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힙스터, 기존 타기팅 방식 버리고 감정 흔들어야

고승연 | 243호 (2018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한국의 힙스터는 미국의 힙스터보다 더 규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확실한 것은 새로운 트렌드 세터로서의 힙스터 등장이 ‘욜로족 현상’과 강하게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굳이 저축하고, 절약하고, 투자하지 않는다. 친목 활동과 무리 짓기의 양식도 변하고 있다. ‘목적 중심’으로 끝없이 모이고 흩어진다. 타인이 궁금하긴 하지만 엿볼 뿐이지 굳이 피곤하게 관계를 만들어 상호작용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일시적으로, 단기적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지점에 비즈니스 기회가 존재할 수 있다. 힙스터적 삶이 ‘힙한 것’으로 점점 사람들에게 퍼져나갈수록 기업들 역시 기존 타기팅 방식을 버리고, 그들의 ‘감정’을 흔드는 방식으로 마케팅 전략을 바꿔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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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혹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사람들은 ‘뭔가 멋지고 트렌디한 것’을 보면 ‘쿨하다’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많은 이가 ‘쿨’이라는 단어 대신 ‘힙’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특히 블로그와 SNS상에서는 ‘여기 힙하다’ ‘이 스타일 완전 힙하네’ ‘취향이 힙하네’라는 표현이 훨씬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주 유명하지는 않지만 ‘힙스터’라 불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뮤지션도 존재하고, 그들만의 패션과 그들만의 성지, 그들이 모여 사는 곳,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기호품이 따로 있다. 수년 전부터 이 규정하기 어려운 ‘힙한 집단’, 즉 힙스터에 대해 설명하는 책과 논문이 나오기 시작했고, 얼마 전부터는 이들을 분석하는 언론의 분석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1  그뿐 아니라 많은 잡지와 인터넷 매체, 신문 등에서도 힙스터 추천 가게와 제품을 알려주는 기사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현재 포털사이트에서 ‘힙스터’로 검색을 하면 ‘힙스터가 알려주는’ ‘힙스터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힙스터가 추천하는’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정보기사를 볼 수 있다. 이 중에는 심지어 꼭 혼자서 가야만 하는 ‘해외 여행지’도 있다.

우리 사회에 점점 커지고 있는 ‘힙스터 집단’의 존재감과 이들에 대한 문화계의 관심에 비해 경영계의 관심은 크지 않았다. 기존 하위문화집단 중 대표 격인 ‘덕후(한국적 오타쿠)’는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나 가수, 연예인 등에 대해 팬으로서 활동하는 것)’을 통해 어마어마한 소비를 하지만2  힙스터는 그 자체로 엄청난 소비집단이 아니며, 그 취향조차 또한 쉽게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힙스터들이 일제히 특정한 취향을 소비한 후, 비즈니스와 연결되고 크게 유행하면 일제히 떠나기 때문에 ‘화전민적 소비행태’를 보인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음식이든, 기호품이든, 지역이든, 스타일이든, 뮤지션이나 작가든 다수의 ‘일반인’ 사이에서 유행하고 ‘비즈니스’와 ‘대중적 소비’로 연결되는 순간 ‘힙하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때 힙플레이스로 불렸던 많은 곳은 현재 많은 이가 찾게 되면서 대부분 ‘힙하지 않은 곳’이 됐다. 현재 진짜 힙한 곳은 사실 보통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들 사이에서만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2018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트렌드세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비즈니스를 고민하고, 마케팅을 고민하는 경영자들이 이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힙스터는 그 자체로 ‘사는(living)’ 방식이지만3  그들처럼 살 수 없는 ‘현실주의자 힙스터’나 ‘힙스터 추종자’들은 힙한 취향을 ‘사는(buying)’ 방식으로 그들을 따라 한다. 바로 이 지점에 ‘대량 소비’가 존재하며 기업들은 미리 힙스터들의 취향을 읽고 그들을 쫓아 따라오는 힙스터 추종자와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을 길목에서 맞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힙스터, 특히 한국에서의 힙스터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을까? 그들의 취향과 소비의 심리학은 무엇일까? 나아가 그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의 마음은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을까? DBR은 이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 국내 최고 트렌드 전문가로 꼽히는 마크로밀엠브레인의 윤덕한 이사(심리학 박사)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윤 이사와의 일문일답.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집단, 한국의 ‘힙스터’는 어떤 사람들인가?

자료를 찾아보니 미국의 힙스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도 있다. 미국에는 아주 전형적인 스타일이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더 규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트렌드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좀 더 큰 틀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힙스터 현상’은 트렌드 분석가들이 말하는 ‘욜로족(YOLO) 현상’4 과 아주 밀접하다. 우선 힙스터들은 사회 주류의 시선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지금 당장의 만족감과 자기감정과 취향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근데 이건 사실 ‘욜로’를 설명하는 근간이기도 하다. 욜로현상은 계속 확산되고 있고,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건 ‘감정에 기반한 현상’이기 때문에 쉽게 이성에 따라 돌아오고 바뀌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지금 당장 느끼는 감정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졌는데, 이게 파생현상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이 미래를 보고 투자하거나 미래를 보고 미리 아껴서 사다가 놓는 ‘저장 욕구’가 줄어든다. 냉장고가 안 팔리고 편의점이 잘되는 것, 이게 욜로 트렌드가 만들어내는 재미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 사람들의 의식 변화와 새로운 세계관은 힙스터의 세계관과 일맥상통한다. 힙스터가 왜 주류적인 질서, 주류의 삶을 거부하게 됐을까? 왜 적극적으로 주류를 싫어하게 됐고, 자신들의 취향이 주류가 되는 순간 떠나는 것일까? 장기적인 전망 자체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그렇다. 미국에서도 힙스터가 갑자기 부상하는 계기가 사실은 2008년 경제위기인데, 한국은 계층이 고착화되고 저성장 시대로 들어선 지 꽤 오래되면서 욜로와 힙스터가 부상하게 된 거다. 10년 정도 바짝 노력해서 집을 사기는커녕 전셋집 구하는 것도 어려워지면서, 오히려 욜로에 집중하게 된다. 힙스터가 ‘오늘 나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다소 비싸지만 ‘공정무역을 한 커피’와 돈이 좀 들지만 복고적인 아날로그 기기 등을 선택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내가 주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장기적인 전망도 긍정적이고 주류사회의 느낌을 내가 가까이 접할 수 있다거나 무언가 통제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이런 ‘지금 당장의 취향’에 집중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욜로와 힙스터가 특히 한국에서는 같은 정서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는 게 새로우면서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요새 트렌드 연구자들의 고민이 이런 지점에 있다. 앞으로 어떤 유행이 올까, 어떤 트렌드가 대세가 될까를 연구하고 예측해야 해야 하는데 ‘정말 대유행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고 있다는 것이다. 딱 하나가 있다면 ‘1인 체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냥 1인 가구가 늘어난다는 ‘솔로 이코노미’와는 좀 다른 개념이다. TV에 나오는 ‘혼자 사는 사람’의 일상을 다룬 예능과도 다르다. 그렇게 넓은 집에서 여유 있게 혼자의 삶을 즐기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흔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 혼자 밥 먹고, 영화 보고, 술 마시고, 전문적인 정보를 찾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사람들, 즉 무리에서 적극적으로 떨어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고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건 그동안 한국 사회가 강요해왔던 어떤 억압이나 의무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와 맞닿아 있다. 가장으로서의 역할, 회사에서 조직원으로서의 역할, 조직 내 선배로서의 역할 등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역할을 해야 하고 남과 싫든 좋든 굉장히 많은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사실은 큰 스트레스였다. 이런 역할 과잉에 대한 부담에서 사람들이 벗어나려고 하는데, 그게 사실 ‘힙스터적인 삶’과 매우 유사하다.

1인 체제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의 특성이 힙스터와 겹치기는 하는데, 그들도 무리를 짓지 않나?

맞다. 그런데 그게 예전의 친목집단 형성과는 다른 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생물학자, 진화심리학자, 뇌과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어차피 인간의 뇌는 ‘사회적 뇌’로 진화해왔다. 그래서 역할의 부담, 관계 맺고 상호작용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것의 스트레스에서는 벗어나고 피하고 싶은데, 남과 전혀 교류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욕구를 해결해주는 수단이 스마트폰이고 소셜미디어다. 힙스터도 끊임없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하고 남의 취향을 본다. 타인의 삶이 사실 궁금한 거다. 그들이 구성하는 커뮤니티와 모임의 방식도 예전과는 다르다. ‘목적 중심’이다. 자신들의 ‘힙한 취향’에 맞는 강연과 공연에서 만나 그날 즐겁게 그것에 대해 토론하고 교류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굳이 매번 약속을 잡아 만나서 친목을 도모하지는 않는다. SNS상에서야 교류하겠지만 오프라인 모임 자체를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트레바리 등으로 대표되는 독서모임도 마찬가지다. 보통 술자리로 이어지고 거기에서 친구가 되기보다는 계속 ‘주제’와 ‘목적’ 중심으로 모였다가 흩어졌다가를 반복한다. 애초에 친했던 사람, 편했던 사람들이 연 커피숍과 빵집, 레스토랑을 찾아다니기는 하는데, 지연과 혈연과 학연, 직장에서의 인연을 가지고 송년회하고 신년모임하고 동창회하는 기존 방식과는 다른 관계 맺기를 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주류적인 삶의 방식’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그렇게 송년회에서 술 마시고, 신년회하고, 조찬모임에서 비즈니스로 엮이고, 또다시 좋은 관계를 위해 약속 잡고 만나는 것. 그거 별로 힙하다는 느낌이 아니다. 그냥 기존 한국 사회의 삶의 방식 그 자체다. 그러니 힙스터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다른 방식으로 무리 짓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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