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의 도전과 미래

특별함 원하는 ‘멋부리는 수컷’에게 특별한 경험을

200호 (2016년 5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럭셔리 시장을 이끈 원동력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하게 성장한 이머징마켓이다. 또 이와 더불어 진행된 럭셔리 지주회사의 등장과 럭셔리 마케팅 기법의 체계화로 작은 가족형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럭셔리 브랜드들의 지주회사들은 작은 브랜드를 인수해 핵심 비즈니스에 집중하고 과감하게 외부 인재를 수혈하는 등의 전략을 도입해 초대형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럭셔리 기업들은 현재 이머징마켓의 성장 둔화와 지주회사 시스템 경영의 한계로 인해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섰다. 럭셔리의 미래는 럭셔리의 과거와 현재에서 찾을 수 있다. ‘남성’ ‘특별한 경험’ ‘니치 브랜드를 기억하라.  

 

 

럭셔리 산업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LVMH, 리슈몽(Richemont), 케링( PPR) 등 이른바 3대 럭셔리 지주회사들은 지난해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1  하지만 지난 30년간의 눈부신 성장이 앞으로 30년 또는 그 이상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패션산업을 중심으로 한 럭셔리 산업의 과거와 현재 속에서 미래를 전망해본다.

 

럭셔리의 성장을 이끈 원동력

 

이머징마켓의 성장

198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하게 성장한 럭셔리 산업의 가장 큰 원동력은 이머징마켓이다. 이머징마켓 소비자, 특히 중국의 경제성장은 럭셔리 브랜드들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 예를 들어 2015 LVMH그룹은 매출의 39%, 케링그룹은 36.8%를 각각 중국을 포함한 이머징마켓에서 올렸다.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들의 고민은 이머징마켓에서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LVMH 2015년 현재 운영 중인 3860개 매장 가운데 951개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에 있고 276개는 중미, 남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기타 지역에 있다. LVMH그룹 매출에서 아시아와 기타 이머징마켓의 비중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수치다.

 

신흥시장, 특히 아시아의 소비자들은 럭셔리 시장의 가장 큰 고객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패션, 보석류, 시계, 고급 주류 등 모든 제품군에서 럭셔리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럭셔리 지주회사의 등장과 체계적인 경영기법 도입

이머징마켓의 성장과 더불어 지난 20여 년간 럭셔리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던 또 다른 원동력은 럭셔리 지주회사의 등장과 럭셔리 마케팅 기법의 체계화다. 1980년대 초반, 대부분의 럭셔리 브랜드들은 창업주와 가족들의 소유이거나 작은 비상장 법인의 소유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디오르, 루이비통, 구찌, 바셰론 콘스탄틴, 생로랑 등 주요 럭셔리 브랜드의 소유권이 전문적인 지주회사들에 인수됐다. 소규모 기업이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작은 브랜드들이 체계적인 경영전략과 마케팅 기법에 힘입어 앞다퉈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LVMH그룹의 모태가 된 디오르를 잠시 살펴보자. 창업주인 크리스찬 디오르는 1947년 사업가인 마르셀 부삭(Marcel Boussac)의 투자를 받아 창업한 후 1957년까지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1957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제너럴 매니저를 맡은 자크 루에(Jacques Rouët)는 한때 디오르하우스의 폐쇄를 고려했으나 곧 방년 21세에 불과한 신진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을 수석 디자이너로 승진시켜 브랜드의 전성시대를 맞게 된다. 디오르의 실소유주였던 부삭의 다른 사업들이 파산한 뒤 이 브랜드의 운명은 윌롯(Willott)그룹에 넘겨졌고 1984년에는 마침내 베르나르 아르노 LVMH그룹의 회장에게 인수되기에 이른다. 아르노 회장은 청년 시절 부동산 개발로 큰돈을 번 사업가다. 럭셔리 산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 브랜드 인수 이후 무분별하게 남발됐던 라이선스를 거두는 등 럭셔리 마케팅의 성공 공식에 맞는 경영 전략을 펼쳐나가기 시작한다. 아르노 체제하에서 디오르는 패션은 물론 화장품, 향수 비즈니스 등에 골고루 집중했고 능력 위주의 인사로 비()프랑스인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채용하는 등의 혁신을 단행했다. 1989년부터 1996년까지는 디오르 역사상 첫 비프랑스인인 이탈리아인 지안프랑코 페레가, 1996년부터 2011년까지는 영국 출신의 존 갈리아노가 이 유서 깊은 프랑스 브랜드의 디자인 사령탑을 맡게 된다.

 

디오르의 역사를 나열한 것은 이것이 주요 럭셔리 패션 지주회사들의 경영 방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LVMH, 리슈몽, 케링 등 럭셔리 브랜드의 지주회사들은 작은 브랜드들을 인수해 1) 핵심 비즈니스에 집중 2) 단기적인 이익을 올릴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브랜드의 과다 노출을 발생시키는 액세서리 사업 및 라이선스 프로그램 축소 3) 능력 위주의 인사와 과감한 외부 인재 영입 등을 성공 공식으로 주입시켰다.

 

 

럭셔리 산업이 직면한 도전과제

 

이머징마켓 성장 둔화

지난 30여 년 동안 급격하게 성장한 럭셔리 산업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장세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산업은 필연적으로 성숙기를 맞는다. 기존 성공 전략이 영원한 성공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럭셔리 산업도 이머징마켓 성장의 둔화, 지주회사 중심의 시스템 경영이라는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2014 725 LVMH의 주가는 7.2%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날 케링은 3.7%포인트, 리슈몽은 3% 하락했다.2 이는 홍콩의 민주화 요구 시위와 중국의 부패척결 드라이브로 LVMH의 홍콩 및 중국 시장 매출이 줄어든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 럭셔리 산업의대장주 LVMH의 실적 부진은 케링과 리슈몽의 주가하락으로 이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일시적 실적 감소를 겪은 럭셔리 지주회사들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중국 소비자들의 소비 감소라는 타격한 방으로 휘청거리는 모습은 투자자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줬다. 이머징마켓뿐 아니라 서유럽과 일본에서도 럭셔리 브랜드들은 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고령화라는 화두는 소비 시장에 가장 근원적인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리적 확장은 여전히 럭셔리 브랜드들의 지향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희소성 보호를 위해 무차별적인 확장이 아닌 선별된 입지에 이상적인 숫자의 매장만 개설하는 이 회사들의 유통 전략을 상기해본다면 과거만큼의 성장세를 기록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주회사 시스템 경영의 한계

럭셔리 지주회사의 등장은 창업주와 그 가족들이 주로 경영해온 럭셔리 브랜드들의 효율성과 규모를 크게 향상시켰다.

 

이들이 채택한 체계적인 경영 시스템은 오늘날 럭셔리 브랜드들을 소규모 공방에서 거대 브랜드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체계적인(systematic)’ 경영은 관료화와 획일화를 낳기도 했다. 럭셔리 산업은 다른 제조업처럼 시스템화가 생산성의 향상으로 나타나는 산업이 아니다. 체계적인 경영은 역으로 획일적인 사고, 디자인, 마케팅을 낳을 수 있다. 브랜드를 만든 창업주는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이에 반해 럭셔리 지주회사의 관리자는 브랜드의 본질적인 아이덴티티에 집중하기보다는 매출과 이익의 성장에 집중하기 쉽다.

 

럭셔리 지주회사들이 거의 유사한 시장과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여러 브랜드를 한 포트폴리오에 넣고 운영하다보니 로고를 가려놓고 보면 어느 브랜드의 제품인지 확실히 알기 어려운자기복제형마케팅 캠페인이 양산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브랜드 간 인적 교류와 정보 교류는 이런 부작용을 부채질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단적인 예로 린제이 윅슨, 마르체 베르호프, 엠마 크루거 등 요즘 잘나가는 톱 모델들은 LVMH 계열의 서로 다른 패션 브랜드 무대에 얼굴을 내비친다. 그만큼 차별화된 쇼를 선보이기 어렵다는 증거다. 같은 성공 공식과 리더십을 따르는 시스템화된 마케팅은 이처럼 브랜드 간 유사성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음을 무시하기 어렵다.

 

또 럭셔리 지주회사들은 인수한 브랜드의 성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들이 지나치게 빠르게 성장하면서 럭셔리 브랜드들의 접근성이을 넘어버렸다. 소유자가 많아진 럭셔리 브랜드는 신비감을 잃게 됐다. 샤넬, 에르메스 등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면서도 대중화의 함정을 피한 사례들이 대부분 창업자 가족 소유 브랜드라는 점 역시 럭셔리 지주회사 경영의 한계를 반증하는 예라 할 만하다.

 

 

 

럭셔리의 미래

 

남성 럭셔리 시장의 성장

럭셔리 산업 전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개인용 럭셔리 제품(패션, 시계, 가죽류, 보석) 2015 1% 성장에 그쳤다. 전 세계 매출 규모는 약 2530억 유로다. 2013 7%, 2014 3%(각 전년 대비) 성장과 비교해보면 하락세가 완연함을 느낄 수 있다.3 성장세의 견인차 역할을 이머징마켓에 오로지 기대기는 어려워진 때 새로운 소비층은 오히려 기존 성숙한(mature) 시장 내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브랜드로선 다행스럽게도 성숙한 시장 내에서도 새롭게 발굴할 만한 성장의불씨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씨 중 하나가 남성 시장이다. 한국의 백화점들은 보통 1층부터 4층 전부를 여성들에게 내주고 남성들에게는 한 층만 겨우 할애하고 있다. 최근 들어 남성 층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패셔니스타 남성들로선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대중의 입에 오르내린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이란 용어는 남성이 자신의 용모를 꾸미는 데 대한 본능적 관심을 제도화, 가시화했다.4

 

그루밍과 패션에 신경을 쓰는 남성들이 GQ 같은 전문 패션 잡지에서만 활동하는 소수 집단이 아니라 세계 대도시, 젊은 소비자라는 주류 계층으로 확산된 것이다. ‘멋 부리는 수컷의 등장은 초혼 연령의 상승, 결혼율 하락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초혼 연령의 상승은 남성들이 패션에 투자하는 시간과 돈을 증가시켰다. 2015년 한국 남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32.6세로 1990년의 27.8세에 비해 4.8세나 상승했다.5 결혼을 늦추게 된 남성들은 보다 많은 돈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비단 패션뿐 아니라 자동차 등 전체 럭셔리 산업군으로 확산됐다. 이에 따라 남성 고객의 구매 비중은 라이프스타일 관련 산업군에서 뚜렷한 성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베인앤드컴퍼니의 2014년 보고서에서도 럭셔리 핸드백 및 액세서리 시장에서 앞으로 가장 핵심적인 소비자로 부상할 집단을남성으로 지목했다.

 

LVMH의 후계자인 앙트완 아르노(Antoine Arnault) 2012년부터 남성 구두 메이커인 벨루티 (Berluti) CEO를 맡게 된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남성 시장 확대에 대비한 경영 교육이 이뤄지는 장이 됐기 때문이다. 1895년 알렉산드로 벨루티에 의해 설립된 이 브랜드는 글귀가 쓰여 있는 독특한 구두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LVMH는 이 브랜드를 1993년에 인수했으나 적극적인 브랜드 확장은 2012년 앙트완 아르노의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뒤부터 이뤄지고 있다. 벨루티는 기존 구두 및 핸드백 등 가죽 제품에서 최근 남성복으로도 활발히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앙트완 아르노는 2013년 인수한 이탈리아의 고급 옷감 및 의류 브랜드 로로피아나의 CEO를 겸하면서 LVMH그룹이 남성 시장을 본격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남성들은 과거 자동차, 시계, 오디오, 카메라 등 이른바 4대 남성 취미 제품들을 위해 서슴없이 지갑을 여는 모습에서 막강한 구매력, 그리고 여성을 능가하는 수집본능을 보여준 바 있다. 럭셔리 기업들은 이런 남성들의 구매력을 취미에 국한된 영역에서 퍼스널 럭셔리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특별한 경험을 입혀라

서울 성북동에 2011년 문을 연빌라델꼬레아(Villa Del Corea)’. 상시 판매되는 제품이 없고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특별한 남성 패션 매장이다.

 

기존의 백화점 및 부티크들과는 완전히 다른 콘셉트인 이 매장에는 이탈리아의 유명 남성복 제작자들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한 명의 고객만을 위한 맞춤 옷과 구두, 타이 등을 만들어준다.

 

예약은 한 시간 단위로 하기 때문에 고객들은 여유롭게 제작자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취향과 신체적 특성에 대해 상담할 수 있다. 옷을 만드는 장인들 역시 옷이 아닌 몸에 맞춰 옷감을 재단하고 스타일을 제안한다.

 

 

빌라델꼬레아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고객에게 경험을 판매하는 곳이다. 고객들은 3대째 슈트를 만들고 있는 장인이 자신만을 위한 옷을 직접 만들어주고 상담까지 해주는 경험에서 기존의 기성복형 럭셔리 브랜드 양복을 살 때보다 더 특별한 느낌을 받게 된다.

 

럭셔리 산업은 앞으로 단순한 제품의 판매에서 이처럼 경험의 판매로 진화할 것이다. 이미 기존 럭셔리 브랜드의 대중성에 실망한 엘리트 소비자를 중심으로경험의 럭셔리를 근간으로 하는 니치 마켓이 형성되고 있다.

 

결국은 과거로의 회귀다. 고객과 제작자가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 옷을 만드는 과정은 럭셔리 산업의 태동기였던 19세기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옷뿐만 아니라 구두도 개인의 발 모양에 맞춰 제작됐고 시계까지 개인의 취향과 필요를 반영해 특별 제작됐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손목시계로 알려진 까르띠에 시계 역시 이런 니즈에서 제작됐다. 브랜드 창시자 루이 까르띠에가 친구이자 유럽 최초의 비행사였던 알베르토 산토스-뒤몽(Alberto Santos-Dumont)이 비행 중 쉽게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제작한 것이 발명의 단초가 된 것이다.

 

‘럭셔리 산업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대량 생산과 기업화가 급속히 진행된 2차 세계대전 후부터 이런 개인화된 서비스(personalized service)는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제작자와 소비자의 접촉이 사라지고 전문적인 판매원과 마케터가 전면에 나서게 됐다. 이 과정에서 럭셔리 소비자들은 자신의 쇼핑 경험이 대중 브랜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게 됐다.

 

미래의 럭셔리는 소비자들의 경험을 브랜드가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여겨야 한다. 개인화된 경험은 소비자들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며 무엇보다 브랜드 및 제작자와 소비자와의 애착(attachment)을 증대시켜 고객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또한 제작자와 소비자와의 교류는 개인의 기호에 맞춘 커스터마이제이션(customization)을 가능하게 한다는 큰 장점이 있다.

 

물론 소비자들에게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이다. 옷 제작자가 개인적으로 고객을 만나고 상담하는 것은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량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경험을 판매하고자 하는 브랜드는 소수의 핵심 고객을 여러 마켓에서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빌라델꼬레아에 오는 제작자들은 런던, 파리, 뉴욕, 모스크바, 홍콩을 순회 방문한다. 옷에 열정이 있는 부호들이 한 도시에 모여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는 소수의 VIP들을 모아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충분히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

 

니치(Niche) 브랜드들의 성장

럭셔리 지주회사의 등장은 인수 대상이 된 브랜드들의 눈부신 성장으로 이어졌다. 세계 주요 도시의 쇼핑 거리를 방문하면 이 브랜드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위용을 뽐내는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자신이 사랑하던애인을 대중에게 뺏긴 고객들은 자연스레 소규모 니치 브랜드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실제로 럭셔리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여러 럭셔리 산업 분야에서 소규모 니치 브랜드들이 부상하고 있다.

 

 

예컨대 1999년 스위스에서 탄생한 독립 시계브랜드 ‘F. P. Journe’은 프랑스 시계 제조공 프랑소와 폴 쥬른이 자신의 이름을 본뜬 브랜드다.6 이 브랜드는 시계의 무브먼트뿐만 아니라 모든 부품을 자체 생산한다. 또 공진을 이용한 무브먼트 등 다른 브랜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혁신적인 기술을 자랑해 시계 마니아들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 일년 생산량은 900여 개에 불과해 일년에 100만 개 이상을 생산하는 롤렉스나 5만 개를 생산하는 파텍 필립에 비해 극히 적은 규모다. 덕분에 진정한 마니아 시계로 불리게 됐다.

 

미리암 쉐퍼(Myriam Schaefer)는 발렌시아가의 대표적 핸드백인 시티백을 디자인한 동명의 디자이너가 창업한 핸드백 브랜드다. 미리암 쉐퍼는 화학 가공을 거치치 않은 가죽만을 소재로 하며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모든 제품에는 고유의 시리얼 넘버가 부여된다. 미리암 쉐퍼의 목표는 유행을 타지 않는, 2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핸드백을 만드는 것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최초로 구매하는 럭셔리 제품인 향수는 니치 브랜드들이 가장 활발하게 세를 확장하는 제품군에 속한다. 바이레도(Byredo)란 향수 브랜드는 캐나다인 아버지와 인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고 스웨덴에서 성장한 벤 고헴(Ben Gorham) 2006년에 창업했다. 어머니의 고향인 인도를 방문했을 때 경험한 강렬한 스파이스향에 매료된 그는 동서양을 잇는 독특한 향수들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한편 에드워드 그린(Edward Green) 1890년에 설립된 구두 메이커다. 60여 명의 장인이 일주일에 360켤레가량 생산하는 소규모 브랜드이지만 구두를 좋아하는 남성들에게는존롭과 더불어 최고의 브랜드로 여겨진다. 에드워드 그린은 3대째 가족 소유기업으로 남아 있으며 전통적인 생산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독립 브랜드의 공통점은 단기적 성장과 이익이 아니라 소규모의 개성이 강한 수제품을 만든다는 점이다. 독립 브랜드들은 럭셔리를 자신의 부와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소비자가 아닌 제품 자체의 미학을 즐기는하드코어소비자들을 주 소비층으로 삼는다. 이러한 독립 브랜드들의 성장은 대중화된 럭셔리 브랜드들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소비자들은 독립 브랜드들의 배타성과 희소성에 매력을 느낄 뿐만 아니라 독립 브랜드 제작자들의 제품에 대한 진정성과 비상업주의에 공감하고 있다.

 

니치 브랜드들은 급격한 성장으로 대중화된 기존 럭셔리 브랜드들에 대비되는 독특한 개성, 소량 생산, 제품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장인정신 등 럭셔리의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이 때문에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앞으로 이런 브랜드들이 다양한 럭셔리 카테고리에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니치 브랜드들의 직면한 과제는 지나친 상업화를 피해니치로서의 위상을 잘 지키는 것이지만 이들이 각광을 받으면 받을수록 메이저 럭셔리 지주회사 및 사모펀드의 입질이 시작된다. 영국의 사모펀드인 만자니타캐피털(Manzanita Capital)이 각각 독립 브랜드였던바이레도딥티크를 인수한 것이 그 예다. 니치 브랜드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따라서 선을 넘지 않는 성장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경험의 럭셔리’ ‘니치 브랜드를 럭셔리 산업 성장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요란한 디지털 교란 시대에 너무 한가한 전략이 아닐까 지적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럭셔리의 속성은 은밀함, 그리고 내밀함이다. ‘미래의 럭셔리를 찾는 길은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과 다르지 않다. 럭셔리의 근본 철학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곱씹는 브랜드가 장기적으로롱런하는 브랜드가 될 것이다.

 

 

생각해볼 문제

 

 

 

1 럭셔리 지주회사들이 대기업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인수한 독립 브랜드 각각 개성과 운영원칙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2 기존 대중적 럭셔리 브랜드에 지쳐 고객들이 찾게 되는 니치 브랜드 가운데는 설립 된지 10년 안팎의 신생 브랜드도 적지 않다. 전통성(heritage)이 럭셔리 브랜드의 주요 구성요소로 꼽혔던 기존 럭셔리 브랜드 성공 공식과 달리 전통성이 부족해도 충분히 럭셔리 고객들에게 각광을 받을 수 있다는 증거다. 이것이 국내 프리미엄 브랜드 입장에서 어떤 사업 기회로 작용할 수 있을까?

 

3 내가 또는 우리 회사가 럭셔리 브랜드를 기획한다면남성’ ‘경험’ ‘니치등의 화두를 조합해 시도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남명우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 mwnam@skku.edu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통계학 석사,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박사(마케팅) 학위를 각각 취득하고 프랑스 INSEAD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했다. 주 연구 분야는 브랜딩, 광고, 소비자 정보 처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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