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 Border M&A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서석윤(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최근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가장 활발한 곳은 아시아태평양(Asia Pacific) 지역이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이 지역의 성장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들의 성장이 두드러졌고 그중 많은 국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속한다. M&A는 성장을 전제하지 않고는 발생할 수 없는 이벤트다.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성장 잠재력이 큰 국가가 포진해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성공적인 M&A를 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지닌 몇 안 되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의 M&A 건수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해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이 지역은 리스크도 상당히 크다. 북미나 남미, 유럽 등 다른 경제권과 비교해보면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다른 경제권은 간단히 말해 하나의 단일 시장으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언어가 같거나 비슷하고 한 나라였다가 쪼개지거나 다시 합쳐지는 역사를 거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동일한 문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속하는 국가들은 완전히 다르다. 인도와 중국이 전혀 다르고 한국과 일본을 함께 묶을 수 없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을 하나의 시장으로 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다. 문화적으로도 다르고 국가별로 경제 정책이 제각각이며 경제발전 정도나 기업의 규모나 수준 등이 천차만별이다. 이 지역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고 동일한 전략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 지역에서 M&A를 추진할 때 염두에 둬야 할 가장 큰 특징이다. 액센츄어는 이 지역에서 진행된 M&A의 특징을 살펴보고 성공요인을 분석하기 위해 2002년 6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일어난 550여 건의 M&A 가운데 50건의 대형 M&A를 분석했다. 분석대상 국가는 한국, 일본, 중국,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홍콩 등 11개국이다. 조사방법은 다음과 같다. M&A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2년이 지난 후 운영 성과를 분석했다.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으로는 총주주수익률(Total Return to Shareholders·TRS, 일정 기간의 주가 시세차익과 배당수익률을 더해 산출한 주식의 가치창출 측정지표)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다우존스지수를 사용했다. 2년간 인수기업의 TRS와 주가지수를 비교해 어떤 기업이 좋은 성과를 냈는지 분석했다. 결과부터 소개하자면 이 지역 주요국에서 일어난 기업 M&A 중 51%는 수익을 거뒀고 나머지 49%는 손실을 기록했다. M&A를 통해 크게 성공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20% 이상 손실을 낸 기업도 전체의 30%나 됐다. 이들 기업의 성패를 가른 요인은 무엇일까? 왜 어떤 기업은 M&A를 통해 더 큰 부가가치를 얻어 성공가도를 달리고 다른 기업은 대규모 적자로 인수기업마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일까? 지역과 기업 규모, 그리고 타이밍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요 11개국에서 일어난 50건의 대형 M&A 가운데 20% 이상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성공한 M&A가 전체의 35%에 달했다. 이어 0∼20% 정도 수익을 낸 경우가 16%로 플러스 수익을 낸 사례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M&A 이후 기업이 손실을 낸 경우가 나머지 절반을 차지했는데 20% 이상 손실을 낸 경우가 30%, 0∼20% 사이의 손실을 낸 기업이 19%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가별 분포였다.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견고한 소비자시장을 토대로 M&A에서도 좋은 성과를 보였다. 대표적인 곳이 필리핀인데 분석기간 동안 필리핀에서 이뤄진 M&A 가운데 절반 이상이 20%가 넘는 TRS를 기록했다. 손익분기점을 넘겨 이익을 낸 10%를 더하면 필리핀에서 인수합병을 한 10개 기업 중에 7개 기업이 성공한 셈이다.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인 말레이시아 역시 전체 M&A 기업의 절반이 20% 이상 TRS를 기록한 것은 물론 전체 기업의 66%가 안정적인 수익을 냈다. 태국과 싱가포르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일본이나 호주 등에서는 M&A를 통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M&A 이후 TRS가 20% 이상 떨어진 곳이 절반이 넘었고 전체 M&A 사례 가운데 72%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며 실패한 것으로 집계됐다. 호주 역시 52%가 수익을 내지 못하는 가치 파괴(value-destroying) 상태였다. 인도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국가에서 M&A가 실패한 이유는 이 지역에서의 M&A가 주로 거액이 오고가는 대규모 거래였던 데다 일본과 호주 등 선진국의 장기 불황이 겹쳤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M&A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성장(growth)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분석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는 또 다른 성공 요인은 ‘기업 규모(firm size)’다. 규모가 작은 M&A일수록 지속적으로 이익을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결과, 5억 달러(약 5300억 원) 이하의 M&A 수익률이 가장 높고 20억 달러(약 2조 원) 규모 이상의 M&A 수익률이 가장 낮았다. 20억 달러 이상의 대규모 M&A에서는 수익을 내기보다는 오히려 적자를 내는 사례가 많았다는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거래 규모가 작을수록 좋다는 식의 절대적 규모보다는 인수기업 대비 피인수기업의 크기를 나타내는 상대적 규모를 봐야 한다는 점이다. 피인수기업 규모가 크면 클수록 내부를 속속들이 파악하기 어렵다.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결합 후 어떻게 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어떤 부문을 떼어내고 어떤 부문을 살려야 하는지 등 운영 전략을 수립하기도 훨씬 복잡해진다. 양사를 결합하고 하나의 기업으로 통합하는 작업에 비용이 많이 소요되며 기간도 오래 걸린다. 인수 대상 기업을 물색할 때는 충분히 관리 가능한 규모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성공적인 M&A를 위해서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특히 속한 산업의 업황이나 전반적인 시장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연도별 경제성장률과 TRS를 토대로 M&A 성공률을 분석한 결과 2002년과 2005년, 2006년, 2011년의 M&A 성과가 가장 좋았다. 이들 기간은 모두 세계 경제가 상승세를 보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시장 환경이 무르익고 업계가 호황을 보여 정점을 향해 올라가는 상황이야말로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다. M&A로 인해 마케팅이나 시장 확대, 해외 진출 등 다른 전략이 다소 주춤하더라도 시장 상황이 나쁘지 않다면 만회할 여지가 충분하다. 반대로 시장이 하락하거나 경기가 불황에서 막 빠져나와 회복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M&A를 시도한다면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
다만 경기가 나쁠 때는 잠재력을 가졌더라도 일시적인 유동성 경색에 처해 매물로 나오는 기업이 많아 인수대상 찾기가 용이할 수 있다. 이럴 때는 주식 교환이나 채권 발행 등이 아닌 현금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형태의 M&A를 추진하면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 바꿔 말하면 현금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라면 M&A를 시도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말과 같다. 보유한 현금이 충분하지 않은데 채권이나 전환사채(CB) 등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으로 M&A에 나선다면 매출이 조금만 부진하더라도 M&A 후폭풍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밖에도 현금 M&A는 기존 주주가 쉽게 지분을 정리하고 나갈 수 있도록(exit) 하기 때문에 기업 지배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이렇게 되면 인수기업이 리더십을 갖고 기업 운영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데 지배구조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아 갈등이 빚어진다면 양사 통합과 시너지 창출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번 분석에서 싱가포르의 경우 현금을 동원한 M&A의 수익률(TRS 중앙값)은 43.9%인 데 비해 다른 자산을 활용한 M&A 수익률은 6.3%에 그쳤다. 홍콩에서도 현금 M&A는 17.8%의 수익률을 보였지만 다른 자산 M&A 수익률은 -4.6%를 보이며 현금을 통한 M&A의 상대적 우위를 확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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