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다베니 다트머스대 교수
“역동적이고 불확실한 환경 변화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폭풍의 눈이 돼라. 파괴를 주도해 경쟁 우위로 활용하면 불확실성을 통제하고 산업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
‘초경쟁(Hypercompetition)’ 개념의 주창자인 리처드 다베니 다트머스대 교수는 11일 서울 쉐라톤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동아비즈니스포럼 2013’의 오후 A세션 기조 강연자로 나서 “불확실한 미래에 어떻게 대응하고 적응할까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있다면 스스로 어떻게 하면 불확실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베니 교수는 1994년 <하이퍼컴피티션: 초경쟁 시대 경쟁우위를 선점하는 7가지 전략 (Hypercompetition: Managing the Dynamics of Strategic Maneuvering)>을 출간하며 현대 경쟁 사회의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는 양상과 이에 따라 진화해야 할 기업들의 대응 전략을 날카롭게 분석, 학계와 업계 모두에 충격을 줬다. 특히 ‘5-Forces’ 모델 등 경영 전략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역동적인 환경에 맞는 전략 패러다임의 수정을 촉구했다. 다베니 교수의 포럼 기조 강연 및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과의 토론 내용을 정리한다.
<기조 강연>
초경쟁이란 기업의 경쟁우위가 지속되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는 상황을 뜻한다. 치열한 경쟁, 급격하고 잦은 기술 변화, 세계화 등 다양한 요인이 기존의 경쟁우위를 파괴하고 새로운 경쟁우위를 만들어 내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초경쟁은 또한 경쟁을 더 심화시킬수록 상대방의 경쟁 우위를 무력화시키거나 파괴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 유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전략 이론에서 말하는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는 말 그대로 상당 기간 지속되다가 경쟁자로부터 느린 반격을 받게 되고, 이에 따라 기존 경쟁 우위가 서서히 줄어든다. 하지만 초경쟁 상황에선 기술이 급격하게 변하고, 제품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혁신은 점점 더 빠르게 일어나며, 인터넷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경쟁우위 지속시간이 굉장히 짧아진다. 이는 차별화된 제품이나 지식/노하우 등 기존 전략 이론에서 대표적으로 꼽는 전통적인 경쟁우위들이 빠르게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입 장벽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쉽게 부서질 수 있고 더 이상 풍부한 재원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초경쟁 상황에선 제품 포지셔닝, 지식, 진입장벽, 재원 등 전통적인 경쟁 우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전통적인 경쟁 우위가 사라진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우위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다.(그림1)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유통업체 시어스를 예로 들어보겠다. 시어스는 의류, 신발, 가구, 가전, 공구, 전기제품 등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제품 라인을 판매하는 유통업체다. 19세기 말에 설립된 시어스는 거의 90년간 미국 유통업계를 선도했던 기업이다. 브랜드, 신뢰도, 서비스 수준, 시장 규모 등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경쟁 우위들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우선 고가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에 직면했다. 백화점 업계의 경쟁 격화로 메이시가 페데레이티드에 인수(현재의 메이시스)되는 등 각 도시 주요 백화점들 간 통폐합이 활발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메이시스 같은 하이엔드 백화점 업체들은 특히 의류, 패션 쪽에서 강점을 더하며 시어스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시어스는 저가 시장에서도 경쟁 위협에 직면했다. 월마트, K마트 같은 할인마트에서 그동안 시어스가 판매해 왔던 주방용품, 소형 가전제품 등 가정용품을 훨씬 싼 값에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시어스가 강점을 가졌던 남성 고객 대상 분야에서 역시 경쟁이 생겨났다. 홈디포, 로우스 같은 주택 개량/개선용품 전문 대형 체인이 만들어지면서 굉장히 다양한 제품을 저가로 출시했다. 이 밖에도 가구, 정원관리 용품 등 특정 카테고리 킬러들이 속속 등장하며 훨씬 다양한 제품을 시어스보다 낮은 가격에 팔았다. 여성 대상 시장 역시 경쟁이 격화됐다. 시어스는 원래 카탈로그 판매로 크게 성공한 업체였는데 전문 카탈로그 판매 업체들이 등장하며 시어스의 여성 고객들을 빼앗아 갔다. 이처럼 고가, 저가, 남성, 여성 시장 각 분야에서 다양한 유통 대안들이 등장하면서 시어스는 전방위적 공격을 받게 됐고 거의 한 세기 동안 지속됐던 시어스의 경쟁 우위는 급격하게 사라져갔다.
어떤 기업이든 다양한 대체 제품들이 등장하면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특정 산업에서 선도기업이라 하더라도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3M, 보잉, 포드, IBM 등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원제: Build to last)>에 등장하는 18개 비전기업들의 주가를 1990년부터 2004년까지 15년간 추적해 본 결과, 그중 약 3분의 1인 7개 기업은 계속해서 주가가 올랐지만 절반가량인 8개 기업은 상승세를 지속하지 못하고 떨어졌다. <초우량 기업의 조건(원제: In search of excellence>에 언급된 기업들 60개의 성과를 보더라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난 25년간의 성과를 살펴볼 때 여전히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은 전체의 약 3분의 1에 불과하다. 글로벌 선도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가 이럴진대, 최고로 분류되지 않은 나머지 일반적인 99.9% 기업들의 경우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미국 럭셔리 자동차 캐딜락은 수십 년간 최고 품질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이러한 명성은 독일 자동차 메르세데스에 넘어갔고, 메르세데스는 렉서스에 또다시 명품 자동차의 타이틀을 넘겨줘야 했다. 캐딜락에서 메르세데스로 넘어간 건 15∼20년 정도 걸렸지만 메르세데스에서 도요타로 넘어간 건 7년 정도 걸렸다. 브랜드라는 경쟁우위의 지속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결론은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쟁우위를 지속하려고 노력할수록 현 상태에 안주하려는 노력으로밖에 비춰질 수 없으며 이는 결국 경쟁에서 남들보다 뒤처짐으로써 스스로의 역량을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정태적 분석틀은 동태적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
전통적인 전략 모델 중 하나인 SWOT(Strength, Weakness, Opportunities, Threats) 분석은 여전히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SWOT 분석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강점을 경쟁우위로 삼아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기회 영역은 종종 경쟁자들이 약한 곳일 경우가 많다. 따라서 SWOT 분석은 자신의 강점을 경쟁자의 약점에 적용하는 전략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춘추시대의 전략가이자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孫武)라면 이 같은 방법, 즉 적의 강점이 아니라 약점을 공략하는 방법으론 궁극적인 승리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테니스를 예로 들어 보자. A와 B 두 선수 모두 동일한 강점과 똑같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둘 다 포핸드는 강하지만 백핸드 기술은 부족하다고 치자. 또한, A는 SWOT 분석이라는 전략적 툴을 잘 알고 B는 이에 대해 모른다고 가정하자. 만약 A가 자신의 강점인 포핸드를 사용해 상대방의 약점인 백핸드를 공격하면 경쟁자의 실수를 유발해 그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단 한 번의 게임에서만 유효한 전략이다.
문제는 현실에 속한 기업들은 단 하나의 게임이 아니라 수많은 게임을 치르며 경쟁한다는 점이다. 제품의 종류도 다양하고 경쟁하는 지역도 다르다. 이렇게 동시 다발적으로 다양한 게임이 진행되는 현실 상황을 고려한다면 단 하나의 게임만을 고려해 만들어진 모델인 SWOT 분석을 그대로 적용한다는 건 적절치 않다.
예를 들어 300번의 게임을 할 때마다 A가 B를 향해 매번 SWOT 분석에 따른 전략(포핸드)을 취한다고 가정하자. 300번의 게임이 끝날 때까지 B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B는 과거 자신의 약점이었던 백핸드를 강점으로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이뤄진 300번의 학습을 통해서 말이다. 이건 SWOT 분석 같은 전략 없이 단순히 상대방의 공격에 응대하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B의 강점은 1개(포핸드)에서 2개(포핸드, 백핸드)로 늘어나게 된다. 반면 A의 강점은 여전히 1개에 머물러 있다. 물론 A는 그동안 상당한 시장점유율을 획득해 시장 선도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했겠지만 말이다.
이젠 300번의 게임이 끝난 후 이어서 100번의 게임을 또다시 한다고 가정하자. 만약 B가 A의 약점인 백핸드를 공략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면 B도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순 있겠지만 100번의 게임이 끝날 때 즈음엔 A 역시 자신의 약점이었던 백핸드 역량을 개발해 장점으로 바꿔놓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A와 B 두 회사의 역량이 또다시 동일(둘 다 포핸드와 백핸드가 강함)해진다는 뜻이다. 이는 결론적으로 SWOT 분석에 따른 전략적 선택으로는 B가 A를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B에게 필요한 건 첫 번째 게임은 물론 100번의 게임이 끝난 후에도 A를 이길 수 있는 대안이다. 그게 뭘까? 한 가지 방법은 공을 왼쪽으로도 치고 오른쪽으로도 보내고, 백핸드와 포핸드를 자유자재로 조합해 상대방이 갈피를 못 잡고 뛰어다니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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