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모든 비즈니스의 기반이다. 특히 불황기에는 고객의 중요성이 호황기보다 훨씬 더 높아진다. 호황기에는 남들이 고객을 빼앗아 가더라도 쉽게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 하지만 불황기에 고객을 뺏기는 것은 ‘사망 선고’와 같다. 불황기에는 고객들이 지갑을 닫고 잘 움직이지 않으며, 기업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자금을 마련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객관계관리(CRM)는 불황기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핵심 기능이다. CRM은 고객과 기업의 관계 유지 및 강화를 통해 지속적인 매출 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다만 불황기에는 기업이 한정된 마케팅 비용 안에서 고객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불황기의 CRM은 새로운 고객의 확보보다는 기존 고객과의 관계 유지·강화와 이들로부터 더 많은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또 기존의 CRM 데이터를 창의적 시각에서 재해석하거나, 기존에는 CRM의 대상이 아니었던 부분을 분석하는 방안도 바람직하다.
다음은 위기 상황에서 뛰어난 고객 관리 전략을 세워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한 기업의 사례들이다. 각각의 사례를 자세히 검토해 불황 극복의 인사이트(insight)를 얻기 바란다.
기존 고객과의 관계 유지·강화
타사와 고객을 공유하라 가전제품 양판점 전자랜드는 2006년, 6개월 또는 1년 이상 구매 실적이 없는 ‘휴면 고객’의 재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DM(Direct Mail)을 보내기 시작했다. DM은 고객이 전자랜드 매장을 방문하면 사은품이나 가격 할인 등 혜택을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혜택만으로는 고객이 ‘차별화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심하던 전자랜드는 매장 방문 고객 대부분이 주로 개인 차량을 이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고객들에게 가전제품 할인 이외에 자동차 정비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전략을 생각해냈다. 업종 간 고객 공유는 시장 잠식(cannibalization)이 없고, 공통 고객군(30∼40대 남성 또는 20∼30대 고객)을 쉽게 끌어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추가 비용 지출도 거의 없었다.
전자랜드는 자동차 정비 업체인 스피드메이트와 공동 프로모션 계약을 맺고, 고객들에게 보내는 DM에 계절이 반영된 다양한 서비스(에어컨 정비, 황사 대비 에어컨 살균 세척, 냉각수 주입)를 더해 성공적으로 고객 유입을 늘릴 수 있었다. 스피드메이트도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신규 고객 유입 채널을 확보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우수 고객 기반을 늘려라 불황기에 우수 고객을 찾아 이들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기존의 우수 고객에 충성도가 높은 새로운 고객 기반을 더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패밀리레스토랑 TGIF는 2005년, 우수 고객 관리 프로그램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VIP 고객을 대상으로 한 ‘케이준(Cajun) 클럽’ 프로그램의 매력도와 고객 호응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객 데이터 분석을 하던 TGIF는 케이준 클럽 회원이 되기를 원하지만 실적이 약간 밑도는 고객군이 있음을 알아냈다. 회사는 이들 고객을 ‘워너비(Wannabe)’라고 이름 붙였다. 담당 팀은 워너비 고객들을 케이준 회원에 편입시키면 여러 가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았다.
첫째, 워너비 고객들은 사업 경쟁에 필요한 최소 임계치(critical mass)를 채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당시 패밀리레스토랑 업계는 극심한 경쟁을 치르고 있었고, 일정 수익을 얻기 위한 최소 고객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중이었다.
둘째, 워너비 고객의 ‘포섭’은 그들 자체는 물론 ‘조금만 더 충성도를 높이면 특별 회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높여 일반 고객들의 매출도 늘리는 효과가 있었다. 실제로 개선된 프로그램을 통해 워너비 고객은 14%, 일반 고객은 5%의 1인당 거래 금액 증가가 있었다.
물론 TGIF는 신규 케이준 클럽 회원이 된 워너비 고객들에게 기존 회원들보다 조금 적은 혜택을 제공했다. 이는 기존 고객들의 반발과 이탈을 막기 위한 당연한 조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