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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비서 넘어 대리인으로’ 에이전틱 커머스의 미래

정채상,정리=김윤진 | 441호 (2026년 5월 Issue 2)
한국선 AI 결제보다 상품 추천에 큰 기회
신뢰 쌓여야 에이전트에 지갑 넘겨
Article at a Glance

에이전틱 커머스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AI는 아직 사람을 대신해 구매를 완결하는 대리인(agent)이라기보다 정보를 모으고 비교해주는 비서(assistant) 단계에 머물러 있다. 상품 발견(discovery)과 결제(payment)는 하나의 과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뚜렷이 구분되는 두 개의 전쟁이다. 오픈AI의 ACP, 구글의 AP2와 UCP, 페이팔과 카드사들의 결제 인프라 경쟁 역시 모두 에이전틱 커머스의 일부로 보여도 실제로는 ‘상품을 찾아주는 언어’와 ‘결제를 승인하는 언어’로 서로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특히 오픈AI가 Instant Checkout을 접고 ACP를 상품 발견 중심으로 재정의한 사례는 소비자들이 AI 추천을 점차 수용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결제 권한까지 넘기는 데는 불안과 저항을 느낀다는 점을 보여준다. AI가 곧바로 대리인으로 점프하려 한 시도들이 대체로 미미한 성과에 그친 것은 신뢰를 축적하는 비서의 역할이 선행돼야 한다는 시사점을 준다. AI 대리 구매의 비전이 실현되려면 대리인이 작동할 수 있는 영역과 비서에 머물러야 하는 영역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AI, 아직까진 대리인 아닌 ‘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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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화 추천해 줘.” 이 한마디에 챗GPT는 모델을 비교하고, 발볼 크기에 맞는 제품을 골라주고, 최저가까지 찾아준다.

그런데 결제는? “이 링크에서 직접 구매하세요.” 비서의 역할은 거기에서 멈춘다. 지난 20년간 전자상거래는 단순했다. 쇼핑몰이 진열해 놓은 상품을 소비자가 검색해 비교한 뒤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했다. 플랫폼은 그 중간에서 트래픽과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성장했다. 그런데 2025년 이후부터 이 흐름이 달라질 조짐이 나타났다. 검색창에 키워드를 두드리는 대신에 “출장 가방 하나 사 줘, 기내 반입 되는 걸로”라고 한마디 던지면 AI가 나머지를 다 처리해주는 세계, 이른바 ‘의도 경제(Intention Economy)’가 출현한 것이다.

2025년 하반기부터 실리콘밸리에서는 의도 경제의 비전이 구체적인 제품과 프로토콜로 구현되기 시작했다. 오픈AI는 챗GPT 안에서 바로 상품을 결제할 수 있게 해주는 ‘인스턴트 체크아웃(Instant Checkout)’을 내놓았고, 구글은 AI가 소매 사이트에 들어가 대신 주문을 해주는 Buy for Me(바이 포 미) 기능을 선보였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AI 에이전트 전용 결제 인프라를 공개했고, 페이팔(PayPal)은 모든 AI 플랫폼에 자사 결제 버튼을 심겠다고 선언했다. 업계는 이 모든 것을 ‘에이전틱 커머스(Agentic Commerce)’라는 한 단어로 묶어서 부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흘렀다. 현실은 어떠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AI는 아직까지 ‘비서’에 머물러 있다. ‘대리인’으로 진화하려던 시도 대부분은 기대에 못 미쳤거나 조용히 축소됐다. 현재 AI가 쇼핑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두 가지다. 비서는 정보를 모으고 비교해서 추천해주지만 결제 버튼을 누르는 것은 사람의 몫으로 남겨둔다. 반면 대리인은 사람의 위임을 받아 발견부터 결제까지 스스로 실행한다. “이 세 개 중 B가 가격 대비 리뷰가 좋습니다”라고 알려주는 것이 비서라면 “세제가 떨어졌으니 지난번 구매하신 제품으로 다시 주문해놨습니다”라고 결제 완료를 보고하는 것이 대리인이다.

이 구분은 단순한 용어 차이에서 오지 않는다. 프로토콜 설계, 규제, 소비자 수용도, 비즈니스 모델 등 에이전틱 커머스의 모든 핵심 쟁점이 이 경계선 위에 걸려 있다. 비서로서 신뢰를 쌓아야만 대리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바로 지난 6개월간 시장이 보여준 교훈이다.

이 글은 비서와 대리인이라는 두 가지 잣대를 염두에 두고 최근 6개월 동안 목격한 에이전틱 커머스의 현주소를 점검한다. 그리고 상품의 발견과 결제가 왜 뚜렷이 구분되는 별개의 전쟁인지, 한국의 현실은 왜 미국과 다른지 짚어본다.


1. 프로토콜 전쟁의 서막-
비서의 언어와 대리인의 언어

프로토콜 전쟁이 한창이라지만 가까이서 보면 모두가 같은 전장에서 싸우고 있지는 않다. 누구는 온라인 상점의 문을 두드리면서 길을 만들고 있고, 누구는 은행의 도장을 받아 결제를 승인받고자 하며, 누구는 ‘결제 버튼이 놓일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프로토콜을 논의할 때는 ACP, AP2, UCP, MCP 등 다양한 약어가 등장하지만 사실 이 복잡한 경쟁을 이해하기 위해 기억해야 할 단어는 두 가지면 충분하다. 바로 ‘비서의 언어’와 ‘대리인의 언어’다. AI 에이전트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려면 에이전트와 쇼핑몰이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공통된 언어가 필요하다. 1990년대 웹 브라우저가 HTML이라는 표준 언어를 통해 어떤 서버의 페이지든 표시할 수 있게 됐듯이 AI 에이전트에도 표준 프로토콜이 필요한 셈이다. 지금 이 ‘AI 에이전트 시대의 HTML’ 표준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1) ACP:
에이전트가 상점과 대화하는 언어

2025년 4월 오픈AI와 결제 인프라 회사인 스트라이프(Stripe)가 공동 발표한 ACP (Agent Commerce Protocol)는 에이전트가 온라인 상점에 “이 상품 있나요?” “가격이 얼마인가요?” “주문할게요”라고 말하기 위한 표준 언어다. 특정 상점이 ACP를 지원하면 어떤 AI 에이전트든 해당 상점과 거래할 수 있다.

원래 ACP는 비서나 대리인 모두 쓸 수 있는 언어였다. AI가 상품 정보를 조회해서 사용자에게 보여주는 역할(비서)도, AI가 직접 주문을 넣는 역할(대리인)도 같은 프로토콜 위에서 작동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ACP의 실질적인 역할이 바뀌고 있다. 2026년 3월 24일, 오픈AI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자체 결제 기능인 Instant Checkout을 포기하고 “ACP의 역할을 상품 발견으로 한정한다”고 선언했다. 즉 에이전트가 상품을 조회하고 보여주는 비서 역할은 계속해서 수행하겠지만 결제를 하는 대리인 역할은 기존 결제(체크아웃) 시스템에서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현재 타깃, 세포라, 노드스트롬, 웨이페어 등 주요 소매업체들이 ACP를 통해 챗GPT에 상품 데이터를 노출만 할 뿐 결제는 자체 웹사이트에서 마무리하고 있다. ACP가 결제까지 수행해주는 대리인의 언어에서 벗어나 상품을 발견만 해주는 비서의 언어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2) AP2:
대리인의 경계선을 설정하는 도구

한편 2025년 5월 구글이 발표한 AP2(Agent- to-Agent Payment Protocol)는 다르다. ACP가 상점의 상품을 조회하는 것에 집중한다면 AP2는 실제 주문에 대해 금융기관의 결제 승인을 받는 것에 집중한다.

AP2 프로토콜의 가장 독특한 개념은 위임장(Mandate)이다. 이는 사용자가 AI 에이전트에 사전에 행동 권한을 설정해놓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월 10만 원까지, 생필품 카테고리에서, A마트와 B마트에서만 구매해도 좋다”와 같은 조건을 걸어 두는 식이다. 금액 한도, 카테고리, 가맹점 제한, 기간 등 이 매개변수들은 비서와 대리인의 경계선을 설계한다. “여기까지는 (대리인으로서) 알아서 해도 돼. 그 이상은 (비서로서) 반드시 나한테 물어봐”라는 규칙을 코드로 명시해놓는 식이다.

현재 마스터카드, 비자, 페이팔 등 60개 이상의 기업이 AP2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지만 아직 소비자가 직접 쓸 수 있는 실제 제품은 등장하지 않았다. 여전히 개발자들의 탐색 단계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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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UCP:
발견과 결제를 한 그릇에 담겠다는 야심

2026년 1월 구글은 한 단계 더 나아가 UCP (Universal Commerce Protocol)를 발표했다. AP2가 결제라는 관문만 다뤘다면 UCP는 상품 검색→장바구니 구성→결제(체크아웃)에 이르는 전체 쇼핑 여정을 하나의 프로토콜로 통합하려는 시도다. 여기에도 쇼피파이, 월마트, 엣시, 타깃, 웨이페어 등 20개 이상의 파트너가 참여를 선언했다. ACP에 대한 구글의 대항마인 셈이다.

세일즈포스(Salesforce)와 스트라이프도 UCP 구현을 확인하면서 단순히 구상 단계를 벗어나 실제 적용도 시작되고 있다. 실제로 엣시와 웨이페어에서는 구글 AI 모드와 제미나이 앱을 통한 UCP 결제가 작동한다. 2026년 3월 24일에는 패션 브랜드 ‘갭’이 자사 상품을 구글 제미나이 안에서 직접 쇼핑할 수 있게 하면서 메이저 패션 기업 최초의 ‘에이전틱 결제’ 사례가 나왔다. 갭의 CTO인 스벤 게르예츠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ACP와 UCP의 차이를 이렇게 정리했다. “UCP는 상점이 쇼핑 경험 전반을 통제할 수 있도록 설계됐고, ACP는 상품 발견을 위해 설계됐다.”

구글은 UCP와 별개로 ‘Buy for Me’ 기능도 선보였다. 구글 검색의 AI 모드에서 상품을 추천한 뒤 AI 에이전트가 소매 사이트에 접속해 소비자 대신 실제 구매까지 대행해주는 기능이다. 다만 현재 방식은 완전한 자동화와는 거리가 있다. AI가 결제 직전까지 진행해주더라도 최종 결제 전에 사용자가 가격·주소·주문 내역을 직접 확인하고 승인해야 한다. 결국 이 기능은 완전한 대리인 단계라기보다는 대리인의 형태를 띠지만 여전히 어깨너머로 사람이 끄덕여줘야 움직이는 ‘강화된 비서’에 가깝다.

4) 결제 인프라의 실용주의자들 - 페이팔, 카드사

프로토콜 전쟁 한복판에서 실용적인 전략을 취하는 플레이어들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페이팔이다. 현재 세 개의 프로토콜 모두에 참여하는 유일한 회사인 페이팔의 전략은 명쾌하다. “어떤 프로토콜이 표준이 되든 AI가 결제하는 곳이면 어디든 페이팔 버튼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즉 어떤 프로토콜이 살아남는지와 관계없이 그 위에서 결제가 일어나는 순간의 접점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을 뒷받침하는 기반은 4억 개 이상의 계정과 수천만 가맹점이다. 페이팔은 ACP 서버를 구축해 이들 가맹점 카탈로그를 챗GPT에 노출하고 기존 가맹점이 추가 개발 없이도 AI 플랫폼에서 결제까지 성사시킬 수 있게 했다. 또한 Store Sync(스토어 싱크) 기능을 통해 한 번 연동해 놓으면 챗GPT, 코파일럿, 퍼플렉시티, 구글 등 여러 AI 플랫폼에 동시에 상품을 노출할 수 있도록 했다. 페이팔은 2026년 1월에는 멀티채널 오케스트레이션 기업 심비오를 인수해 이 역량을 강화했고 같은 달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 체크아웃의 결제 처리까지 맡았다.

카드사들도 조용하지만 중요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비자는 ‘에이전틱 레디(Agentic Ready)’ 프로그램을 통해 은행들의 에이전트 결제 테스트를 지원하고 있고, 2026년 연말까지 수백만 건의 에이전트 구매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26년 3월에는 바클레이스, HSBC UK, 스페인 산탄데르 등 유럽 21개 은행으로 확장했고 산탄데르와 함께 중남미 5개국에서도 시범 거래를 마쳤다. 마스터카드 역시 산탄데르와 유럽 최초 AI 에이전트 실거래를 완료했으며 이후 미국에서 시작해 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 한국까지 에이전트 페이(Agent Pay) 시범 운영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서 마스터카드의 ‘베리파이어블 인텐트(Verifiable Intent)’ 프레임워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AI 거래에 암호학적 인증을 적용해 ‘이 거래가 정말 사용자의 의도에 따른 것인지’를 증명하는 구조를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프레임워크에는 사용자 인증, 권한 위임 기록, 거래 서명, 로그 및 추적 가능성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처럼 오픈AI가 프로토콜을 만들고 구글이 대항마를 내놓는 동안에도 카드를 실제로 긁는 순간은 여전히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결제망 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에이전틱 커머스의 ‘도로’를 누가 설계하든 ‘통행료’는 카드 네트워크가 걷는 양상이다.

스트라이프는 이 판에서 조금 다른 위치를 차지한다. 프로토콜 경쟁에 참여하면서도 동시에 카드 네트워크 위에서 작동하는 인프라 허브로서 자리를 굳히고 있다. 대표적인 기술이 셰어드 페이먼트 토큰(SPT, Shared Payment Tokens)이다. 이 토큰은 AI 에이전트가 사용자의 결제 수단을 대신 사용하되 실제 카드번호를 노출하지 않는 구조를 채택한다. 동시에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토큰 시스템과도 연동한다. 또한 어펌(Affirm), 클라르나(Klarna) 같은 후불 결제(Buy Now Pay Later) 서비스까지 연결하면서 결제 옵션을 확장하고 있다. 즉 스트라이프의 포지션은 경쟁이 아니라 프로토콜을 만들면서 동시에 카드 네트워크의 결제 체계 위에서 작동하고 기존 금융 인프라를 연결하는 보완적 허브에 가깝다.

결국 이 같은 결제 인프라 경쟁의 승부를 가르는 것은 누가 더 완성도 높은 API를 제공하고, 누가 더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표준 생태계를 구축하느냐다.

5) 한국은?
내재화와 개방의 공존

한국 시장은 이 흐름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필자가 뱅크샐러드에서 근무하던 시기, 마이데이터 연동을 직접 설계하면서 본 풍경이 있다. 단 한 건의 오거래만 발생해도 책임이 발급사에 있는지, PG에 있는지, 마이데이터 사업자에 있는지가 회의에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은 이미 결제와 본인 인증, 그 둘 사이의 책임 구조까지 슈퍼앱 안에 깊숙이 짜여 있기 때문에 외부 프로토콜이 들어올 자리도 좁고, 필요성도 적다. 따라서 미국처럼 구조적으로 분산돼 있고 쇼핑, 결제, 계정 등의 서비스가 다 별개로 존재하는 시장과는 다르다. 미국은 서비스 간 연결이 핵심이기 때문에 외부 프로토콜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모든 서비스가 플랫폼 내부에 통합된 한국에서의 새로운 프로토콜은 시장을 재편하는 표준이라기보다 기존 시스템 위에 선택적으로 얹히는 ‘보조 기술’이다.

이런 배경 위에서 한국 기업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카오페이와 토스페이먼츠는 MCP(Model Context Protocol)를 결제 환경에 적용해 보고 있고, NHN KCP는 한국 PG사 최초로 구글 AP2 프로토콜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카카오는 2026년 3월 ‘카나나 인 카카오톡’을 정식 출시하고, ‘카카오툴즈’로 올리브영·무신사·현대백화점 등 외부 파트너를 연동했다. 아직은 탐색 단계지만 미국과는 다른 방식의 프로토콜 수용이 시작됐다. 즉 외부 프로토콜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기존 내재화된 구조 위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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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우 외부 프로토콜을 도입하기보다는 기존 플랫폼 중심으로 AI 탐색·연동 기능을 얹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진은 ‘카나나 인 카카오톡’ 화면


현주소 점검-
대리인으로 뛴 자는 실패했다

2025년 말 베인앤드컴퍼니가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는 에이전틱 커머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72%의 소비자가 AI를 어떤 형태로든 써봤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AI에 결제까지 맡기는 것이 “편안하다”고 답한 비율은 24%에 불과했다. 실제로 AI를 통해 무언가를 구매해 본 사람은 10%에 그쳤다.1 ‘72% → 24% → 10%’의 숫자는 사용에서 신뢰로, 신뢰에서 행동으로 넘어갈 때마다 급격한 낙차가 발생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두 번의 낙차가 곧 비서(정보 제공)에서 대리인(행동 수행)으로 넘어가는 거리다. 지난 6개월 동안 많은 기업이 이 거리를 단숨에 뛰어넘으려 했지만 대리인으로 곧장 점프한 시도는 대부분 실패했다. AI 결제를 밀어붙인 시도들이 기대에 못 미친 것이다. 이 낙차는 생각보다 느리게 좁혀진다. 다음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이유가 드러난다.

1) Instant Checkout:
비서로서도 자리 못 잡았는데

2025년 9월 오픈AI가 야심 차게 발표한 ‘인스턴트 체크아웃’은 챗GPT 안에서 상품을 발견하면 바로 결제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었다. 소비자가 대화 한 번으로 쇼핑의 시작과 끝을 해결할 수 있게 한다는 야심 찬 비전을 담은 기술이다. 하지만 그다음 해인 올해 3월 24일 오픈AI는 이 기능의 폐기를 선언했다. “초기 버전이 우리가 목표로 하는 수준의 유연성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였다.

실패는 숫자에서 먼저 드러났다. 현실은 냉정했다. 쇼피파이의 수백만 상점 중 실제로 온보딩(챗GPT 결제 기능에 실제로 연결해서 쓸 수 있게 됨)한 것은 약 30개에 불과했다. 월마트는 약 20만 개 상품을 챗GPT에 노출했지만 챗GPT 내에서 직접 판매가 이뤄진 상품의 전환율은 자사 웹사이트 대비 3분의 1에 그쳤다. 문제는 거래를 가능케 하는 기본 기능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멀티아이템 장바구니가 잘 구현되지 않았고, 로열티 멤버십도 연동되지 않았으며, 재고·가격·배송 정보 등도 부정확했다. 가트너의 애널리스트 밥 헤투는 “오픈AI가 거래 활성화의 난이도를 과소평가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서비스가 실패한 근본적인 원인은 기술이 아니었다. 소비자는 이미 본인의 계정이 있는 익숙한 사이트에서 결제를 하고 싶어 했다. 챗GPT는 비서로서, 즉 상품을 찾아주고 비교해주는 도구로서 아직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갑자기 스스로 대리인이 되길 자처하면서 ‘선을 넘은 것’이 독이 된 것이었다. “이 물건 어때?”라고 물어보는 단계에서 “대리 대신 사 줘”로 넘기 위해선 쌓아야 할 신뢰감이 필요한데 그 과정을 성급히 건너뛰려 한 셈이다.

이 같은 시도가 성급했음을 깨달은 챗GPT는 포지셔닝을 ‘결제 도구’에서 ‘상품 발견 도구’로 바꾸기 시작했다. 비주얼 상품 브라우징, 이미지 업로드 검색, 대화형 필터링 등 발견 기능을 모든 사용자(Free, Go, Plus, Pro)에게 개방하고 결제는 각 상점의 자체 체크아웃으로 연결했다. 같은 날 월마트는 자체 AI 어시스턴트 ‘스파키(Sparky)’를 챗GPT 내 인앱으로 통합했다. 상품의 발견은 챗GPT에서 시작하되 계정 연동·로열티·결제는 월마트 자체 환경에서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쇼피파이도 이날 ‘Agentic Storefronts(에이전틱 스토어프론트)’를 정식 출시해 수백만 쇼피파이 가맹점들의 상품을 챗GPT에 자동 노출시켰고 ‘Agentic Plan(에이전틱 플랜)’을 통해 쇼피파이 가맹이 안 된 상점들도 쇼피파이 카탈로그에 상품을 등록하면 챗GPT나 제미나이, 코파일럿 등에서 검색될 수 있게 했다. 오픈AI가 결제에서 물러나면서 쇼피파이 같은 커머스 플랫폼이 상품 카탈로그 연결의 중심이 됐다.

2) Perplexity:
발표는 화려, 실사용은 데모 수준

퍼플렉시티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2024년 11월 Pro 구독자 대상 원클릭 쇼핑 ‘Buy with Pro(바이 위드 프로)’를 출시하고 2025년 11월에는 페이팔과 벤모(Venmo) 결제를 연동해서 AI가 추천한 상품을 결제까지 이어준다는 ‘Instant Buy(인스턴트 바이)’ 기능을 발표했다. 야심 차고 화려한 발표였으나 실제로는 미국 한정, 일부 가맹점의 일부 상품에서만 작동했고 해당 가맹점이 아니면 외부 사이트로 다시 연결됐다. 거래 건수나 총거래액 같은 실적 수치는 퍼플렉시티도, 페이팔도 공개하지 않았으며 사용자 리뷰에서 쇼핑 기능에 대한 언급 자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성과가 없었다. 즉 실제로 쓸 수 있는 기능이라기보다는 보여주기 기능에 가까웠다.

퍼플렉시티의 코멧(Comet) 브라우저가 시도한 아마존 대리 구매는 더 극적인 좌절을 맞았다. 코멧은 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가서 대신 장을 보고 결제까지 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아마존이 플랫폼 통제권을 순순히 넘길 리 없었다. 아마존은 2025년 11월 퍼플렉시티를 제소했고 2026년 3월 9일 연방 판사는 코멧의 아마존 접근을 금지하는 예비적 금지 명령을 내렸다. 퍼플렉시티는 이에 4월 1일 연방항소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 사건은 ‘AI 에이전트가 플랫폼에 접근할 권한이 있는가’라는 화두를 전면에 던졌다. 즉 기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플랫폼 통제의 벽이 존재함을 보인 것이다. 홍보용 발표는 빠르고 화려했지만 실사용은 데모 수준으로 제한적이었다. ‘발견은 AI가, 결제는 익숙한 곳에서’라는 소비자 행동의 벽을 넘지 못한 또 다른 사례로 남았다.

3) 소비자의 벽:
눈은 열렸지만 지갑은 닫혀 있다

“AI가 쇼핑의 눈을 대체했다”는 말이 업계에 돌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72→24→10’의 낙차는 그 말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AI는 ‘보는 단계’에 들어왔지만 ‘결정하고 결제하는 단계’까지는 넘어오지 못했다. AI가 추천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다. AI가 “이게 좋아요”라고 말해도 소비자는 상품 페이지에 들어가 사진을 보고, 리뷰를 읽고, 다른 사이트와 가격을 비교한 다음에 결제 버튼을 누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검색과 AI 추천은 게임의 규칙이 다르다. 검색은 사용자에게 여러 결과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다지선다’다. 1페이지 안에 들기만 해도 클릭될 가능성이 있고, 클릭이 모임으로써 새로운 랭킹의 규칙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AI 추천은 다르다. “이 세 개를 추천합니다.” 즉 단답형이다. 따라서 사용자의 반응을 받는 피드백 루프를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이 차이는 겉으로는 작아 보이지만 광고 시장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다.

무엇을 사느냐에 따라서도 소비자 반응은 달라진다. 모건스탠리는 AI 추천 구매에서 식료품과 생필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향후 5년간 식료품이 에이전틱 커머스의 최대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성인의 약 23%가 지난 한 달 안에 AI로 무언가를 구매했다는 조사 결과도 함께 내놓았다.2 세제, 생수, 휴지 같은 일상적 카테고리가 지배적이었다. 비교가 필요 없고 실패해도 손해가 적은 상품에 대해서는 AI 에이전트의 대리 구매에 대한 저항이 낮기 때문이다. 반면 패션, 인테리어, 럭셔리 같은 ‘취향’이 담긴 고관여 제품 카테고리에서는 여전히 소비자가 직접 고르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했다. 에이전틱 커머스가 카테고리별로 다른 속도로 전개될 것이라는 점을 엿볼 수 있다.

구글의 Buy for Me가 “최종 결제 전 사용자 확인·승인 필수”라는 안전장치를 둔 것도 이 이유에서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완전 자동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소비자 신뢰가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대리인의 외피를 쓰되 실질적으로는 비서처럼 작동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현 단계에서의 현실적 타협점이다.

4) 한국은?
기회는 결제가 아니라 발견에 있다


한국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미국에서 AI 결제가 약속하는 핵심 가치는 “복잡한 결제를 쉽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가치가 이미 달성돼 있다. 간편결제 이용률 79%, 연간 시장 규모 403조 원. 네이버페이(51.5%), 카카오페이(25.1%), 토스페이(13.2%)로 지문조차 필요 없이 결제가 끝나곤 한다. 미국 소비자가 카드번호 재입력 때문에 55%가 장바구니를 이탈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에이전트가 대행할 결제 마찰 자체가 적다.

그러나 ‘발견’의 마찰은 다르다. 소비자 행동을 분석하는 챌린저스의 2026 구매 행동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가 SNS에서 상품을 발견해도 바로 구매하는 비율은 4.7%에 불과하고 78.4%는 쇼핑몰에서 다시 확인한 뒤 구매한다.3 한국 소비자는 결제는 쉽게 하지만 물건은 매우 꼼꼼하게 비교해보고 고른다. 결제 대행이 아니라 발견을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에서 AI 비서가 잡아야 할 진짜 기회다. 네이버가 쇼핑 AI 에이전트를 도입한 뒤 추천 상품 클릭률이 4% 증가했고 구매 전환율이 1.6배 상승했다고 한다. AI 추천 블록의 클릭 전환율은 일반 검색 대비 50%가량 높고 거래액은 매 분기 직전 분기 대비 50% 안팎으로 성장한다. 한국 소비자는 쇼핑 10번 중 평균 2.7번 생성형 AI를 활용한다는 자체 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에서 앞으로 AI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결제가 아니라 발견에 있다.


발견과 결제, 두 개의 다른 전쟁

1) ‘에이전틱 커머스’라는 한 단어의 함정

‘에이전틱 커머스’라는 말은 발견과 결제를 한 덩어리로 묶는다. 그러나 이 둘은 역사도, 플레이어도, 규제도, 인센티브 구조도 전혀 다른 영역이다. 필자가 구글에서 근무하며 관찰한 것 중 하나는 서로 다른 팀이 각자의 과제를 밀어붙이면서 충돌이 일어나는 풍경이었다. Google Shopping(상품 검색), Google Pay(결제 수단), AP2(에이전트 결제 프로토콜), UCP(통합 커머스 프로토콜), Buy for Me(AI 대리 구매) 등의 제품과 서비스들은 바깥에서는 하나의 큰 그림이다. 하지만 안에서는 전부 다른 팀이, 다른 시기에, 다른 동기로 만든 것이다. 발견과 결제는 빅테크 내부에서도 늘 별개의 영역이었다. UCP는 이 둘을 묶으려는 시도이긴 하지만 묶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다. 빅테크는 지난 10년 넘게 ‘발견 → 구매 전환’의 간극을 풀지 못했다. 구글, 메타, 핀터레스트 등이 지난 10여 년간 발견과 구매를 한 화면에 묶으려 했지만, 소비자는 둘을 분리하는 습관을 좀처럼 바꾸지 않았다.

AI 에이전트는 이 오래된 문제에 대한 가장 최근의 시도다. 대화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발견과 구매 사이의 마찰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픈AI Instant Checkout의 실패가 보여주듯 인터페이스가 바뀌어도 소비자의 행동 패턴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빅테크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메타는 에이전틱 AI 스타트업 마누스(Manus)를 20억 달러에 인수하고 ‘에이전틱 쇼핑 도구’의 등장을 예고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코파일럿 체크아웃으로 대화 안에서 구매 완결을 시도하고 있다.

2) 진짜 싸움:
결제 수수료 3%가 아니라 ‘발견의 대가’ 5~15%

카드 네트워크가 걷는 통행료는 거래액의 약 3%다. 이 구조는 에이전트 시대에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큰돈은 통행료가 아니라 ‘도로 입구의 간판’에 붙어 있다. 쇼핑몰이 지금 네이버나 구글에 내는 광고비는 매출의 5~15%에 달한다. 검색 광고, 쇼핑 광고, 키워드 비딩 등 이 비용은 모두 소비자가 자기 상품을 ‘발견’하게 만드는 대가다. 즉 사람들이 내 상품을 보게 만들어 고객을 데려오는 ‘비용’이다. AI가 발견을 장악하면 이 비용이 AI 플랫폼에 대한 수수료로 전환될 것이다. 결제 수수료 3%보다 ‘발견의 대가’가 훨씬 큰돈이 된다.

쇼핑몰 입장에서 진짜 두려운 시나리오는 세 가지다. 첫째, 브랜드 노출이 AI 알고리즘 손에 결정된다. 광고비를 내면 검색 상위권에 오르던 시대와 달리 AI가 “이 세 개를 추천합니다”라고 말하면 그 순위에 못 든 브랜드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다. 둘째, 가격 비교가 자동화되면서 마진이 깎인다. AI 에이전트가 실시간으로 최저가를 찾으면 가격 경쟁이 극단으로 치닫게 될 위험이 있다. 셋째, 고객 데이터가 쇼핑몰의 손을 떠나 AI 플랫폼에 쌓인다. 고객이 어떤 상품을 탐색했는지, 무엇을 비교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쇼핑몰이 아니라 AI 플랫폼에 누적된다.

이는 결제 수수료 몇 %를 누가 가져가냐의 문제가 아니다. 고객과의 관계 자체를 누가 중개하는지의 문제다. 자칫 고객 관계를 잃는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네이버 키워드 광고에 매출의 10%를 쓰는 쇼핑몰이 챗GPT의 추천 수수료에 15%를 내야 하는 미래를 상상해보라. 발견의 대가는 결제 수수료보다 크고, 그래서 더 치열한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다.

데이터도 같은 방향성을 보인다. 94개 이커머스 브랜드를 대상으로 마케팅 스타트업 비지빌리티 랩스(Visibility Labs)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챗GPT에서 유입된 트래픽의 전환율은 1.81%로 비브랜드 오가닉 검색(브랜드 이름 없이 검색엔진에서 자연스럽게 유입된 트래픽, 1.39%)보다 약 31% 높았다. 물론 절대 볼륨은 아직 극히 작다. 전체 오가닉 매출 대비 챗GPT 기여분은 1.48%에 불과하다.4 발견의 질은 높지만 아직 규모가 따라오지는 않는 단계다.

이 방향을 뒷받침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2026년 초 오픈AI는 챗GPT에서 광고 테스트를 시작했다. 미국의 무료(Free) 및 저가(Go) 요금제 사용자에게는 응답에 ‘Sponsored’ 라벨과 함께 광고를 노출하고, 유료 플랜(Plus, Pro, Business, Enterprise, Education) 사용자에게는 광고를 보이지 않았다. 지난 3월에는 캐나다·호주·뉴질랜드로 파일럿을 확대했다. Instant Checkout 실패 후 오픈AI의 수익 모델이 ‘커머스 수수료’에서 ‘광고’로 이동했다는 신호다. 결국 에이전틱 커머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거래 수수료가 아니라 발견과 추천의 대가를 광고로 받는 것, 구글 검색 광고의 AI 버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3) 닫힌 생태계의 두 얼굴 - 아마존, 쿠팡, 네이버

이 구도에서 쇼핑몰과 플랫폼의 전략은 갈린다. 발견을 연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AI 플랫폼에 상품을 노출하면 분명한 이점이 있다. 더 많은 채널에서 매출이 일어나기 때문에 새로운 유입이 생긴다. 그러나 고객 관계와 데이터가 빠져나간다. 결제까지 여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인센티브가 약하다. 자기 사이트에서의 전환율이 이미 높고 잘 팔리는데 왜 AI 에이전트에 결제까지 넘겨야 하는가? 아마존과 쿠팡은 둘 다 닫혀 있다. 그러나 닫는 이유가 다르다. 같은 닫힌 전략이지만 한쪽은 ‘대리인 실험실’로, 다른 쪽은 ‘백오피스 자동화’로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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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은 닫혀 있지만 닫힌 생태계 안에서 가장 공격적이다. 현재 아마존은 가장 전형적인 폐쇄형 전략을 취하고 있다. ACP에도, UCP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외부 AI 에이전트의 사이트 접근을 적극 차단하면서도 자체 Alexa+(알렉사 플러스)에서는 가장 공격적인 에이전틱 커머스를 실행한다. Alexa+의 ‘자동 구매(Automatic Buying)’ 기능은 사용자가 설정한 목표 가격에 상품이 도달하면 확인 절차 없이 자동으로 결제를 해준다. 위시리스트와 장바구니의 상품도 실시간으로 가격을 추적한다. Alexa+는 Grubhub(그럽허브), 우버 이츠(Uber Eats)와 연동한 음식 주문, 익스피디아(Expedia)와의 여행 예약 파트너십까지 확장하고 있다. 초기 데이터에 따르면 Alexa+ 사용자는 기존 Alexa 대비 쇼핑 활동이 3배 증가했다. 2억5000만 명의 프라임 멤버십 회원이라는 광활한 수요 풀 위에서 아마존은 현재 자체 대리인을 키우는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다. 개방형 프로토콜은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있지만 동시에 폐쇄형 생태계 안에서는 가장 앞서 나가는 역설적인 모습이다.

한편 아마존은 2026년 2월 오픈AI에 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회사 포레스터(Forrester)는 이를 “가장 인기 있는 답변 엔진과 가장 인기 있는 마켓플레이스의 결합”이라고 평가하면서 구글 검색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5 오픈AI가 결제를 과감히 포기하고 발견에 집중하기로 방향을 틀면서 결국 가장 큰 마켓플레이스와 손을 잡게 된 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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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그림은 다르다. ACP에도 UCP에도 참여하지 않고 외부 AI 에이전트 접근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아마존과 비슷하다. 그러나 아마존과 달리 쿠팡은 고객 접점에서 AI 대리인을 실험하지 않고 있다. 엔비디아와 ‘AI 팩토리’를 구축해 AI를 내부 물류 최적화, 즉 풀필먼트 센터 스케줄링, 배송 경로 최적화, 수요 예측에 집중 투입할 뿐 AI 에이전트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엔비디아 Dynamo 1.0의 런치 파트너로 선정돼 데이터 처리 용량을 최대 30배 늘리게 됐다. 3년간 30억 달러 이상을 AI와 로보틱스에 투자했고 초기 신규 개발 코드의 약 50%를 AI로 작성하고 있다. 쿠팡에 AI는 아직까지 고객 접점이 아니라w 백오피스의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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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는 아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네이버 쇼핑은 쿠팡과 근본적으로 구조가 다르다. 자체 재고를 보유한 직매입 모델이 아니라 100% 외부 판매자 기반의 중개 플랫폼이다. 스마트스토어, 브랜드스토어, 가격비교 카탈로그로 구성된 개방형 마켓플레이스에서 네이버의 역할은 ‘발견’을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네이버의 AI 전략은 발견에 집중하고 있다. 2026년 2월 베타 출시한 쇼핑 AI 에이전트는 자체 커머스 특화 LLM ‘쇼핑 인텔리전스’를 기반으로 예컨대 ‘소파’를 검색하면 소재·기능·예산별 구매 가이드를 제시해준다. 초기 성과는 고무적이다. 클릭률 4% 증가, 구매 전환율 1.6배 상승 등 숫자 지표가 개선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네이버는 쇼핑 AI 에이전트의 활동 범위를 상반기 내 뷰티·식품으로 확대하고 장바구니 담기까지 지원하는 ‘풀케어 에이전트’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네이버는 독립 AI 서비스(클로바X, 큐)를 2026년 4월 9일부로 종료하고 기존 서비스에 AI 에이전트를 전면 통합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상반기 중 출시 예정인 ‘AI 탭’은 질문에서 탐색, 실행까지 이어지는 통합 AI 에이전트다. 쇼핑·플레이스·지도 등 네이버 서비스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게 특징이다. 최수연 대표는 2026년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연내 전 서비스에 AI 에이전트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기업의 AI에 발견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AI를 별도 제품이 아닌 기존 플랫폼의 경쟁력 강화 수단으로 쓰겠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쿠팡이나 네이버 같은 플랫폼 입장에서는 ‘발견만 외부에 열고 결제는 우리에게’가 가장 이상적인 그림일 수 있다. AI가 고객을 데려오고 결제는 자사 사이트에서 일어나면 고객 데이터는 지키면서 매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것은 원하는 그림이 아니라 차선책이다. 발견을 열고 외부의 AI에 상품을 노출하게 되면 “결제도 AI에서 하자”라며 결제마저 빼앗길 압력이 생긴다. 하지만 발견을 외부에 닫으면 AI 시대의 노출에서 소외된다. 아예 고객의 눈에서 사라지면서 AI 시대에서 존재감 자체가 줄어들 위험이 있다. 그래서 모든 플랫폼이 딜레마에 빠진 채 차선책을 두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 생태계에서의 체급(크기)과 교섭력에 따라 최적의 답은 달라지게 된다. 쿠팡(총 거래액 55조 원)과 네이버(총 거래액 50조3000억 원)는 현재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약 43%를 차지한다. 이들은 자체 고객 기반과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발견을 닫아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중위권 플랫폼(11번가, G마켓, SSG)들의 거래액은 전년 대비 16~30%씩 급감했다. AI가 발견을 장악하는 시대에 자체 AI를 만들 체력이 없는 플랫폼들의 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4) 대리인이 먼저 열리는 곳, 비서에 머무는 곳

‘AI가 알아서 물건을 고르고 결제까지 해주는 세계’인 에이전틱 커머스의 비전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리인이 작동할 수 있는 영역과 비서에 머물러야 하는 영역은 뚜렷이 다르다.

① 대리인이 먼저 열리는 곳

대리인이 먼저 작동할 수 있는 곳은 상품 비교가 필요 없고 이미 신뢰가 구축돼 있는 거래다. 두 가지 영역이 대표적이다. 첫째, B2B 구매다. 사무용품, 원자재, SaaS 구독 등 반복적이고 규격화된 조달에서는 에이전트가 ‘지난달과 같은 조건으로 재주문’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구매 담당자가 매번 제품과 서비스를 비교할 필요가 없고 승인 프로세스도 정해져 있다. 기업 구매에는 감정이 없다. 규격·가격·납기만 맞으면 되기 때문에 대리인이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는 자리다.

둘째, 생필품·소모품의 반복 구매도 여기에 해당된다. “지난번 산 세제 다 떨어졌으니 같은 거 시켜 줘” 같은 작업도 자동화되기 쉽다. 상품 간 비교가 크게 필요 없고, 가격 민감도가 낮고, 신뢰가 이미 축적돼 있는 카테고리이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Subscribe & Save(서브스크라이브 앤드 세이브)가 오래전부터 이 영역을 공략해왔지만 AI 에이전트는 여기에 유연성을 더해주고 있다. 정기 구독처럼 기계적으로 배송하는 것이 아니라 “세제 거의 다 썼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같은 브랜드 대용량이 할인 중이에요. 주문할까요?”처럼 맥락을 이해한 대리 구매까지 가능해진다.

② 비서에 머무는 곳

한편 AI가 비서에 머물러야 하는 영역은 비교와 탐색이 본질인 곳이다. 패션, 가전, 가구처럼 취향을 따지고, 스펙을 비교하고, 리뷰를 확인하고, 가격을 견줘야 하는 쇼핑이 여기에 해당된다. 쇼핑의 ‘과정’ 자체가 가치 있게 여겨질 경우 대리인이 자리를 꿰차기 어렵다. 소비자 과반이 AI에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조차 불편해 하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하물며 취향을 넘겨줄 리 없다. 쇼핑몰 역시 이 영역을 AI에 의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비교가 자동화되면 마진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도 안 원하고, 쇼핑몰도 안 원하기 때문에 이런 영역에서는 에이전트의 활동이 쉽지 않다.

AP2의 핵심 개념인 위임장의 의미가 여기서 선명해진다. 위임장은 비서에서 대리인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을 설계하는 도구다. 금액 한도, 카테고리, 가맹점 제한 등의 매개변수들은 ‘여기까지는 대리인의 영역, 그 이상은 비서의 영역’이라고 정의 내려준다. 에이전틱 커머스의 미래는 모든 쇼핑이 자동화되는 모습이 아니다. 자동화할 수 있는 영역과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 명확히 나뉘는 것이다.

③ 한국은 여는 게 과제, 미국은 묶는 게 과제

미국과 한국은 출발점이 다르다. 미국의 과제는 발견과 결제를 어떻게 묶을 것인가이다. 미국에서 발견과 결제는 원래 분리돼 있다. 구글에서 검색하고, 아마존에서 사고, 비자로 결제한다. 각각이 다른 회사, 다른 시스템, 다른 경험이다. ACP, AP2, UCP 같은 프로토콜들이 이 분절된 경험을 AI 에이전트로 이어 붙이려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과제는 이미 묶여 있는 것을 에이전트에 열 것인가이다. 쿠팡에서 발견하고, 쿠팡에서 사는 것은 그야말로 닫힌 생태계다. 네이버 쇼핑에서 검색하고, 네이버페이로 결제하는 것은 개방형 플랫폼 위의 통합 경험이다. 카카오톡에서 추천받고, 카카오페이로 결제하는 것은 메신저 기반의 커머스 진입이다. 각각 형태는 다르지만 발견과 결제가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완결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자연히 이 두 생태계의 AI 접근법은 뚜렷이 갈린다. 네이버는 자사 서비스 안에서 AI 에이전트를 키우고 있다. 쇼핑 AI 에이전트, 건강 에이전트, AI 탭 등 모두가 네이버 플랫폼 내부에서 작동하는 ‘온서비스 AI’다. 카카오는 외부 파트너를 카카오톡 안으로 끌어와 ‘AI 에이전트 포털’을 만들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카카오툴즈는 자체 MCP를 기반으로 올리브영, 무신사, 현대백화점, 마이리얼트립 등 외부 서비스를 카카오톡 대화창 안에서 호출한다. 닫기만 하는 것도, 열기만 하는 것도 아닌 혼합 전략이 한국의 플랫폼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6개월간 시장이 가르쳐준 교훈

AI 에이전트는 아직 비서에 머물러 있다. 비서에서 대리인으로의 전환은 많은 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먼 길이다. 그 전환에 대비하려면 두 가지가 같이 자라야 한다.

· 신뢰. 비서로서 수십 번, 수백 번 정확한 추천을 해주는 경험이 누적돼야 한 번쯤 결제를 맡겨볼 마음이 생긴다. 신뢰는 순서대로 쌓인다.

· 비즈니스 모델의 이동. 카드 수수료 3%보다 큰 돈인 ‘발견의 대가’ 5~15%가 AI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흐름을 읽어야 한다.

이 둘은 AI 에이전트 시대를 당장 열기 위한 밑작업이 아니다. 비서로서 신뢰가 충분히 쌓였을 때 대리인으로 넘어갈 수 있는 다리를 미리 놓아두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향후 3년에는 누가 승기를 잡을까. 미국의 경우 발견(discovery)은 AI 플랫폼이 가져가는 흐름이 보이고, 결제(payment)는 카드 네트워크가 통행료를 가져가고 있다. 그 사이에서 가장 무거운 숙제를 떠안는 쪽은 중간 지점들, 즉 자체 AI를 만들 체력도, 외부 AI에 직접 통합할 자원도 넉넉지 않은 중견 플랫폼과 브랜드다. 한국의 경우 발견과 결제가 이미 한 생태계 안에 묶여 있어 외부 AI가 끼어들 자리가 좁기 때문에 자체 카탈로그 위에서 AI를 키우는 쪽이 일단 유리한 위치에 설 것으로 보인다.

이커머스나 브랜드 현장의 의사결정자에게 지금 책상 위에 올라와야 할 과제는 유형별로 다르다.

1. 브랜드사(제조사·D2C)
- AI 추천에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

• 카탈로그 데이터를 ACP/UCP 표준 형식으로 정제한다. 모델명·재고·가격이 AI가 읽을 수 있는 구조로 정돈돼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 비교 가능한 메타데이터를 정비한다. 발볼·치수·용도 같은 속성이다. AI는 본질적으로 비교를 잘하는 도구이므로 비교에 쓸 수 있는 데이터가 없으면 추천에서 조용히 누락된다.

• 챗GPT·제미나이 등에서 우리 카테고리 키워드의 추천 톱 3에 우리 브랜드가 노출되는지 정기적으로 측정한다. 특히 해외 AI 추천에서 누락되면 K뷰티·K패션·K푸드는 즉시 사라질 것이다.

2. 플랫폼사(이커머스·리테일러)
- 외부 AI에 어디까지 열 것인가

• 개방과 폐쇄의 손익을 숫자로 추정한 뒤 결정한다. AI 트래픽 유입과 고객 데이터·재구매 이탈을 같은 단위로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 부분 개방을 설계한다. 발견(노출)은 외부 AI에 열되 결제와 고객 식별은 자사에 묶는 식의 차등 정책이 현실적인 타협점이다.

• 자체 AI 투자 우선순위를 정한다. 일상 카테고리(생필품)부터 시작할지, 취향 카테고리(패션)부터 시작할지 등 카테고리별로 대리인이 열리는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3. 결제·핀테크
- 위임과 인증을 어떤 순서로 깔 것인가

• 위임장(Mandate) 표준에 대응할 모델을 수립한다. AP2/UCP의 한도·카테고리·가맹점 제한을 자사의 인증·승인 체계에 매핑하는 작업이다.

• AI 거래 전용 인증 흐름을 분리한다. 마스터카드의 Verifiable Intent 같은 프레임워크를 채택하고 일반 거래와 다른 이상 탐지 룰을 운영한다.

• 토큰 인프라를 연동한다. 스트라이프 SPT, 비자·마스터카드 토큰을 AI 컨텍스트에서 카드번호 노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둬야 다음 단계가 열린다.

위 항목들에 답이 비어 있다면 빈칸을 채우는 것이 해야 할 일들이다. 비서에서 대리인까지의 거리는 멀다. 그러나 비서는 이미 일하고 있고, 그 길의 첫 페이지는 지금 쓰이기 시작했다.
  • 정채상

    KAIST 경영대학 겸임교수

    정채상 엔지니어는 KAIST 경영대학 겸임교수로서 AI·추천 시스템에 대해 강의하고 있으며 IT 서비스 및 컨설팅 업체 이음테크의 기술 고문을 맡고 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구글 본사에서 13년간 검색과 모바일 플랫폼을 만들었다. 이후 뱅크샐러드와 인이지에서 엔지니어링 리더로 일했다. 한국과 실리콘밸리를 오가며 발견과 결제 관련 비즈니스를 모두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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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김윤진truth311@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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