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럭셔리는 없다”
상위 0.1% 고객의 맥락을 선점하라
Article at a Glance대중화와 가격 인상으로 성장을 거두던 럭셔리 산업의 성장 공식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럭셔리 지출을 줄이는 열망 구매자 대신 경기 변동과 상관 없이 럭셔리를 소비하는 0.1%의 톱티어 고객을 공략해야 한다. 그러나 톱티어 고객들은 럭셔리 브랜드의 반복된 커뮤니케이션에 피로감을 느끼고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연결, 친밀감, 우수성, 인식 등 럭셔리의 본질로 회귀하는 재집중 전략이 필요하다. 리세일 및 렌털 등 빠르게 성장하는 영역 또한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한편 럭셔리 업계에도 AI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는 AI 활용 여부를 투명하게 밝혀야 하나 고객과의 직접적인 접점에서는 AI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아야 럭셔리 브랜드만의 인간적인 가치를 지킬 수 있다. 아울러 AI 검색이 보편화됨에 따라 LLM에서 우리 브랜드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파악하고 관리해야 한다. 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경영 환경 가운데 럭셔리 기업의 리더들은 조직의 ‘우리다움’과 구성원의 ‘나다움’을 일치시켜 럭셔리 브랜드만의 독창성을 강점으로 발휘해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 급변하는 럭셔리 산업레베카 카프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
세계적인 혁신 전략가로 스타트업·도시 정책·성장 전략·조직 변화 분야를 연구한다. MIT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맥킨지앤드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했고 이후 전략 컨설팅 기업 ‘카프 스트래티지스’를 설립했다. K-뷰티 산업에도 관심이 많아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하버드경영대학원 MBA 수업에서도 주요 케이스 스터디로 다뤄 국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가격 주도 성장 한계 맞이해”빠르게 성장하는 리세일-렌털 주목하라맥킨지에 따르면 2010년부터 약 10년간 비럭셔리 시장이 럭셔리 시장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2019년 흥미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럭셔리 시장이 비럭셔리 시장의 성장 속도를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카르티에와 같은 고급 럭셔리 브랜드는 훨씬 더 큰 성장세를 보였다. 이처럼 럭셔리 산업이 빠르게 성장한 원인의 약 80%는 각 브랜드가 가격을 올린 데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맥킨지에 따르면 글로벌 개인 럭셔리 상품 시장은 2023년 이후 급격히 침체되며 하키 스틱 형태의 곡선을 그렸다. 특히 럭셔리 시장의 ‘큰손’이었던 중국 시장이 2023~2025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며 업계 전체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처럼 성장이 둔화된 럭셔리 업계에 리세일(resale)과 렌털(rental)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기존 럭셔리 업계에선 리세일과 렌털 비즈니스를 그리 우호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두 카테고리가 이커머스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다는 점은 사실이다. 따라서 두 채널에 참여하는 고객과 그들의 소비 행동을 잘 분석해야 한다. 고객이 제품을 다시 판매하거나 빌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제품을 어떻게 설계하고 품질을 유지해야 할까. 제품 수명 주기는 어떻게 변할까. 트렌드 변화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BCG(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중고 패션 시장의 시장 규모는 2022~2025년 약 1300억 달러에서 약 2200억 달러로 급증했다. 연평균 성장률(CAGR)은 15~20%에 달한다. 럭셔리 시장에 비해 매우 큰 성장세다. 2030년까지 중고 패션 시장의 빠른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신제품 시장의 성장률 대비 약 3배 수준이다.
럭셔리 리세일 시장은 동네의 중고품 가게와는 다르다. 우선 고급 디자이너 브랜드의 제품으로 라벨 없는 중고품과는 근원적인 가치에서 차이가 난다. 온라인에서 소매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되지만 여전히 높은 가치를 유지한다. 오히려 리세일 시장에서 최초 판매가보다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제품도 있다. 아울러 이베이와 같은 광범위한 플랫폼이 아닌 전문가의 큐레이션을 거친 플랫폼이나 부티크에서 주로 취급된다. 현재 이 시장에 침투하고자 하는 사업자들이 많은데 향후 5년 안에 소수의 업체로 통합될 가능성이 크다. 어떤 플랫폼이 최종 승자가 될지 그 흐름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또한 전문적인 절차를 거쳐 진품을 인증한다는 점도 럭셔리 리세일만의 특징이다. 최근에는 많은 플랫폼에서 AI를 도입하며 더욱 효율적으로 진품과 가품을 가려낼 수 있게 됐다. 전문가가 정밀 카메라를 통해 명품 가방의 봉제 상태를 촬영하면 AI가 기존 제품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품 여부를 분석하는 식이다. 따라서 품질이나 신뢰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발을 들이기 꺼렸던 고객도 안심하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편 렌털은 상대적으로 아직 영향력이 미비해 보지만 장기적으로는 리세일보다 더 큰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렌털은 고객이 고가의 디자이너 패션 아이템을 구독 및 일회성으로 빌리는 서비스로 FAAS(Fashion as a Service) 모델의 일환이다. 이처럼 대여가 소유를 대신하는 소비 방식은 영역 불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음악 시장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앨범을 직접 구매해 노래를 소유했지만 현재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음악을 빌려 들을 수 있는 권한을 구독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KT경제연구소에서 따르면 한국의 구독경제 시장 역시 2025년 기준 약 100조 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렌털 플랫폼의 기본적인 사업 전략은 대여 요금을 받는 동시에 제품을 감가상각해 매출 원가를 낮추는 것이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제품을 부담 없이 즐기고 싶은 마음으로 패션 렌털 플랫폼을 찾는다.
현재 미국에서 패션 렌털 업계를 선도하는 눌리(Nuuly) 역시 ‘규모의 경제’로 승부수를 띄울 수 있었다. 미국의 대형 패션 브랜드 어반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가 운영하는 플랫폼으로 한 달에 98달러를 내면 6개 제품을 빌릴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눌리는 모기업의 지원으로 시즌마다 대량의 신제품을 빠르고 저렴하게 공급받을 수 있었다. 어반아웃피터스는 눌리와의 거래로 재고를 줄인다. 또한 어반아웃피터스의 막대한 기존 고객이 곧 눌리의 잠재 고객이기에 시장에 원활하게 진입할 수 있었다. 2025년 눌리의 매출은 전년 대비 60% 상승했고 어반아웃피터스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한다.
반면 초기 패션 렌털 시장에서 두각을 보인 렌트더런웨이(Rent the Runway)가 현재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까닭 역시 규모 때문이다. 렌트더런웨이는 눌리보다 고급 시장을 지향했지만 비용 문제로 상품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눌리의 사례와 같이 든든한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면 확장을 꾀할 수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잠재적 파트너들은 플랫폼의 규모를 보고 협업을 타진하기에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렌털 모델은 제품 품질을 재고할 것을 요구한다. 렌털 모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30회 착용(30 wears)’ 개념이 유효해야 한다. 말 그대로 최소 30번 이상을 착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다양한 사람이 30번 넘게 착용하고 30번 넘게 세탁을 해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제품이 렌털 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리세일은 품질, 렌털은 트렌드…성장 전략에 제품 개발-생산 정렬해야리세일과 렌털 모델 모두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두 모델에는 명확한 차이점도 있다. 우선 고객 생애가치 측면에서 상반된 해석을 요구한다. 리세일 모델에서 고객은 제품과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애초에 제품을 ‘투자 자산’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제품을 되팔 수 있다는 전제로 제품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관리에 더욱 힘쓴다. 반면 렌털 모델에서는 단기적 관계가 강해진다. 고객은 제품을 소유하지 않고 한 달마다 교체한다.
트렌드를 수용하는 관점도 다르다. 리세일 모델은 유행을 타지 않는(timeless) 품질 중심의 디자인을, 렌털 모델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지속적인 스타일 업데이트를 요구한다. 따라서 우리 브랜드가 어떤 채널을 중심으로 성장을 이끌고자 하는지를 선택하고 이에 제품 개발과 생산 전략을 일치시켜야 할 것이다.
리셋(Reset) 이후 럭셔리 재성장 위한재집중(Re-focus) 전략:안태희 보스턴컨설팅그룹(BCG) MD파트너
국내 소비재·유통 분야의 전략 전문가로 2023년 BCG코리아의 매니징 디렉터 & 파트너로 합류했다. 커니코리아에서 부사장을 지냈으며 약 20년간 소비재·유통 부문 컨설팅을 이끌었다. 브랜딩·마케팅 전략, 해외 진출, 신사업 개발, M&A(인수합병), 디지털 전환 등 폭넓은 영역에서 자문을 수행했으며 패션·화장품·식음료·럭셔리·호텔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다. 최근에는 D2C(Direct-to-Consumer) 전략, 고물가 시대의 소비자 트렌드 분석, 수익성 중심 성장 전략, 수요 기반 성장 전략 등을 주제로 소비재 업계에 인사이트를 전하고 있다.
럭셔리 대중화 시대의 종말?“열망 구매자 많을수록 성과 감소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팬데믹을 기점으로 럭셔리 시장이 격동하고 있다. BCG에 따르면 글로벌 개인 럭셔리 제품 시장은 팬데믹 시기에 침체됐다가 2021~2023년 사이 크게 반등했다. 그러나 2024년 이후 2025년 6월 사이엔 감소세로 전환해 -2%의 성장률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매출 감소의 원인으로는 첫째, 지속적으로 럭셔리 시장의 성장을 견인해 온 ‘열망 구매자(aspirational shopper)’의 이탈을 꼽을 수 있다. 2013년에는 럭셔리를 선망하며 주로 엔트리 라인 제품을 구매하는 이들 고객이 전체 시장의 약 74%를 차지하는 ‘빅 바이어’, 즉 큰손이었다. 그러나 2024년 그 비중은 61%로 감소했다. 가장 큰 원인은 가격 상승일 것이다. 팬데믹 이후 회복기에 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가격을 대거 올렸는데 이후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상대적으로 가처분 소득에 제한이 있는 이들 고객이 빠르게 이탈한 것이다. 2025년 6월 기준 지난 12개월 동안 열망 구매자의 35%가 럭셔리 제품 소비를 축소 및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고 나머지 65%는 향후 12개월 동안 럭셔리 지출을 유지하거나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두 번째 요인은 중국 시장의 부진이다. 지난 약 10년 정도 중국이 글로벌 럭셔리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중국 거시경제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전체 럭셔리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2019년 33%에서 2024년 25%로 감소했다.
럭셔리의 ‘수요’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니즈’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중국 사회에서 명품은 여전히 성공의 상징으로 인식되며 향후 경제가 회복되면 럭셔리 소비 역시 다시 탄력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남아 있다.
반면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바로 Z세대의 부상이다. 전체 럭셔리 시장에서 Z세대의 점유율은 2019년 4%에 불과했지만 2024년에는 12%까지 늘었고 2030년에는 25%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Z세대의 70%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가 자신을 대변한다고 느꼈고, 80%는 향후 12개월 이내 럭셔리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밝히며 고객군 중 가장 강한 확신을 표했다.
고객 피라미드에서도 세그먼트별 상이한 반응이 나타난다. 특히 톱티어 고객(top-tier clients)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연간 약 7500만 원 이상을 럭셔리 제품에 소비하는 계층이다. 전체 고객 중 약 0.1%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개인 및 경험 럭셔리 시장에서 지출하는 비중은 2013년 약 12%에서 연간 약 9%씩 성장해 2024년 23%까지 늘어났다. 반면 열망 구매자는 하위 약 95%에 해당하는 고객군으로 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평균 소비액 기준 톱티어 고객과 20배가량 차이를 보이며 가격 인상, 금리 변동 등에 큰 변동성을 나타낸다.
럭셔리 시장에서 톱티어 고객의 영향력이 증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객군별 글로벌 GDP와 럭셔리 지출 사이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톱티어 고객의 경우 경기 변동과 상관없이 럭셔리 지출을 유지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반면 글로벌 GDP와 열망 구매자의 럭셔리 지출 사이 상관관계는 0.97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즉 이들 고객군은 경기 변동 흐름에 맞춰 럭셔리 지출 규모 또한 쉽게 조정했다.
열망 구매자를 중심으로 성장을 거두던 럭셔리 대중화 시대는 정점을 지났다. 실제로 2021~2024년 럭셔리 브랜드의 열망 구매자 비중과 성과를 분석한 결과 반비례 관계가 나타났다. 즉 열망 구매자 비중이 클수록 성장률이 떨어졌고 일부 브랜드에서는 역성장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 2025년 6월 기준 이들 고객에게 럭셔리 지출을 어디로 전환했는지 물었더니 ‘저축/투자’가 2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만 웰니스&웰빙 13%, 중고 럭셔리 13%, 파인다이닝 & 호스피탈리티 10% 등의 응답이 혼재하는 것으로 볼 때 차별화된 제품과 경험에 대한 욕망은 여전히 유효하며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형태의 소비로 이동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즉 경기적 요인으로 열망 구매자의 럭셔리 지출이 줄어들고 있지만 중장기적인 경기 사이클과 맞물리면 회복의 여지는 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반등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럭셔리 브랜드가 성장과 성공을 논할 때 던저야 할 질문은 ‘얼마나 많은 고객을 확보했는가’에서 ‘누가 우리의 고객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2026년에는 럭셔리 시장의 양극화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열망 고객의 25%는 향후 18개월간 럭셔리 지출을 줄일 것이며 40%는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톱티어 고객은 51%가 럭셔리 지출을 늘리겠다고 응답했으며 34%는 소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상위 0.1 % 최상위 고객,“럭셔리 경험, 피로하고 대우 못 받아”앞으로의 럭셔리 브랜드 전략은 톱티어 고객을 중심으로 재설계돼야 하며 이들 고객을 어떻게 식별하고 유인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2023년 기준 약 450억 원 이상을 보유한 전 세계 초고액순자산 보유자(UHNWI)는 85만 명 정도로 매년 약 10%씩 증가하고 있다. 15억 원가량을 보유한 고액순자산 보유자(HNWI)는 약 85만7000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지닌 부는 북미에 약 46%, 아시아에 약 25%, 유럽에 약 24%가 분포한다. 한편 한국에서 20억~300억 원대의 순자산을 보유한 자산가는 약 30만 명 규모로 추정된다.
특히 정통 럭셔리(true luxury) 시장에서 톱티어 고객이 차지하는 지출 비중은 약 37%에 해당한다. 요트나 제트기 소비자의 100%는 톱티어 고객이고 디자인, 예술 작품, 와인, 웰니스 등에서도 이들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건강이 곧 부(health as wealth)라는 인식이 확대됨에 따라 향후 18개월간 톱티어 고객의 웰니스, 건강관리 분야의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디자인, 예술 등도 성장하는 카테고리로 부상하고 있다. 주얼리, 시계 등은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것을 보이며 신발, 의류, 와인은 지난 18개월 동안 성장세가 둔화됐으나 향후 지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패션 분야에서는 품질 중심 소비, 조용한 럭셔리 등의 패턴이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톱티어 고객들은 소비 경험에서 네 가지 통점(pain point)을 느끼는 것으로 파악된다. 우선 이들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높은 기대치를 지닌 까다로운 고객임을 이해해야 한다. 첫 번째 통점은 과도한 커뮤니케이션이 꼽혔다. 이들은 럭셔리 브랜드로부터 매달 40~60개의 메시지를 받는 것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실제로 한 고객은 57개의 메일 중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메시지가 하나도 없었다고 지적했다.두 번째 통점은 혼잡하고 표준화된 매장 경험이다. 대부분의 명품 매장에 고객이 많고 응대 매뉴얼이 정해져 있어 조용하고 맞춤화된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톱티어 고객의 약 80%는 사적이고 친밀한 쇼핑 전용 공간을 원한다고 응답했다.
세 번째는 품질이다. 이들은 장인정신 등 럭셔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높은 완성도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데 럭셔리 브랜드에서 예전만큼 품질을 기대하기 어렵다라는 불평이 반복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럭셔리 수요가 폭증한 시기에 생산량을 늘리면서 품질에 편차가 생긴 영향으로 보인다.
마지막은 VIP로서의 대접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부 고객은 한 달에 9개 정도의 브랜드에서 쇼핑을 하는데 자신을 알아보고 만족스럽게 대우해주는 브랜드는 한두 개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럭셔리의 본질 회복 위한네 가지 재집중(re-focus) 전략연결(connection), 친밀감(intimacy), 우수성(excellence), 인식(recognition) 등 럭셔리의 본질로 회귀해야 할 시점이다. 1대1 커넥티드 서비스를 통해 개별 고객을 위한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이들 고객을 위한 전용 공간을 구축하고 비싼 가격을 납득시킬 수 있을 만큼 높은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 고객이 어느 국가의 어떤 매장을 방문해도 매장은 해당 고객을 인지하고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럭셔리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네 가지 재집중(re-focus) 전략을 제안한다. 우선 새로운 고객을 식별(new client identification)해야 한다. 누가 진짜 톱티어 고객인지 정확하게 인지하는 게 그 출발점이다. 전통적인 CRM 기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데이터를 세분화해 고객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단위로 VIP를 통합하는 접근도 필요하다. 둘째, 관계(relation)에 대한 재집중이다. 피상적인 논의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장 직원들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 고객의 히스토리를 기반으로 고객에게 꼭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안하며 어떤 매장을 방문하든 일관된 수준의 환대가 이뤄져야 한다.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제공하는 고객 맞춤형 콘텐츠도 고도화해야 한다. 셋째, 경험(experience)에 대한 재집중도 필요하다. 꼭 대형 이벤트를 기획할 필요는 없다. 구매 여정의 엔드투엔드(end-to-end), 즉 모든 순간이 개인 맞춤형으로 정교하게 큐레이팅된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실제 톱티어 고객 중심의 재집중 전략을 충실히 구현하는지 여부에 따라 브랜드의 승패도 갈리고 있다. 즉 고객의 양극화가 브랜드의 양극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에르메스, 브루넬로 쿠치넬리 등 지난 2~3년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둔 위너(winner) 브랜드는 톱티어 고객 기반이 견고하며 명확한 정체성으로 일관된 커뮤니케이션을 선보이고 개인화된 고객 경험 역시 고도화된 형태로 제공한다. 반면 역성장한 루저(loser) 브랜드는 대중적인 수요가 크고 포지셔닝도 확고하지 못하다. 제품 품질, 개인화된 경험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에르메스는 재집중 전략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브랜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선 현장 직원에게 매출을 강요하기보다는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맞춤화된 경험을 제공하는지를 중심으로 이들의 역량을 판단한다. 즉 판매자보다는 고객을 위한 개인 큐레이터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현장 직원에게 높은 자율성이 부과된다는 점 또한 개인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기반이 된다. 그러나 고객에게 먼저 연락을 취하는 등 피로감을 주는 행동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이벤트 역량도 독보적이다. 매년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 에페메르(Grand Palais Éphémère)에서 열리는 에르메스 후원의 승마 대회 ‘소 에르메스(Saut Hermès)’에선 세계 최고의 승마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는데 에르메스는 극소수의 VIP만을 초대해 이들에게 특별한 경험과 소속감을 선사한다. 에르메스의 톱티어 고객 확보 전략이나 높은 제품 품질은 워낙 잘 알려진 부분이다. 특히 품질을 엄격하게 통제하기 위해 한 명의 장인이 소수의 상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하고 장인의 서명을 남기는 것은 에르메스만의 독보적인 헤리티지를 구축하는 관행이다.
에르메스가 정적인 럭셔리의 대표 주자라고 한다면 미우미우는 역동적인 럭셔리의 대표 브랜드다. 특히 Z세대의 제품 및 콘텐츠 소비 패턴을 잘 이해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젊은 세대에 소구하고 바이럴을 일으키는 독창적인 마케팅이 돋보인다. 특히 폭발적인 이슈 메이킹에 성공한 뉴발란스와의 컬래버레이션 컬렉션은 미우미우만의 성장 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정통 럭셔리 브랜드보다 상대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또한 Z세대 공략의 성공 요인이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조용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럭셔리 브랜드로 불린다. 그만큼 압도적인 퀄러티를 자랑한다. 로고나 실루엣보다 재질, 완성도 등을 중시하는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에 수혜를 본 브랜드로도 꼽힌다. 한편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을 전체를 브랜드로 만든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이탈리아의 솔로메오라는 작은 마을에 장인의 작업실을 운영하는 동시에 문화 체험 공간을 만들어 고객들이 누릴 수 있는 각종 이벤트를 선사한다. 즉 지역을 기반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AI 활용,조용하고 투명해야 리스크 줄어마지막으로 최근 럭셔리 브랜드가 크게 고민하고 있는 AI 활용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AI 도입 목적을 조사한 결과 ‘고객 접점 관리’가 1순위로 나타났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크리에이티브 제작, 개인화된 추천 및 고객 서비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공급망 관리, 연구개발(R&D) 또한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일반적인 리테일, 소비재 산업에서 AI를 도입하려는 목적과 유사하다. 외적으로는 고객에게 편리함과 신선함을 제공하고 내부적으로는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럭셔리 산업에서는 AI 도입을 더욱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럭셔리 브랜드에서 AI를 전면에 드러내면 오히려 리스크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서적 연결과 맞춤형 경험 등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럭셔리 산업에서는 휴먼 터치(human touch)와 대비되는 AI 경험이 고객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하거나 브랜드만의 감성적인 가치를 저해할 수 있다. 자동화, 효율성으로 대변되는 AI의 이미지는 손수 제품을 만들어 선보이는 장인정신을 훼손할 여지도 있다.
이에 선도 브랜드들은 명확한 AI 활용 철칙을 세웠다. LVMH는 ‘조용한 기술(Quiet Technology)’을 강조한다. AI는 분명 필요한 기술이지만 고객을 응대하는 과정은 사람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AI는 고객을 더 잘 이해하도록 지원하는 조용한 도구다. 에르메스 역시 IT 서비스 자동화, 데이터 분석, 공급망 최적화 운영관리 측면에서 AI 활용을 한정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AI는 보조 도구일 뿐이며 장인 중심 모델을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다만 크리에이티브에 AI를 활용할 경우 그 사실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보그와 게스가 협업한 화보에서 AI로 이미지를 제작했는데 그 사실을 알아보기 어려운 작은 글씨로 기재하는 바람에 소비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은 사례가 있다. 반면 발렌티노와 반스가 협업한 캠페인에서는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명확하게 밝히며 대중의 호기심과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운영 관리 측면에서도 럭셔리 브랜드의 AI 활용은 남달라야 한다. 재고 관리를 예로 들자면 보통 리테일, 소비재 기업은 효율성을 위해 AI를 도입한다. 그러나 럭셔리 브랜드는 수량이 한정적이다. 따라서 수요를 정확히 예측해 소량의 제품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연구개발 영역에서는 소비자 조사, 아이디어 도출 단계에서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나 실제 콘셉트 디자인, 프로토타입 제작 및 고도화 등의 작업에서는 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로 도입이 제한적이다. 즉 AI가 ‘조용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하며 전방위적인 재집중 전략을 설계해야 고객과 브랜드가 양분화되는 시장에서 승리할 것이다.
제로클릭 시대,럭셔리 브랜드의 GEO 마케팅박세용 어센트 대표
제일기획, 라이코스, 네이트, 넥슨 등에서 광고 기획자, 서비스 기획자, 사업 개발 담당자, 브랜드 매니저로 활동했다. 소비자의 의도에 집중하는 인텐트 마케팅(Intent Marketing) 개념을 전파하며 검색 데이터에서 소비자 의도를 추출하는 AI 마케팅 분석 솔루션 ‘리스닝마인드’를 개발했다. 한국·일본·미국의 140여 개 기업이 상품 기획, 마케팅 전략, 콘텐츠 제작, SEO, 리서치 등에 리스닝마인드를 활용 중이다. 『인텐트 마케팅 혁명』의 대표 저자이자 『고객이 스스로 찾아오는 브랜드 검색 마케팅』의 대표 역자다.
클릭하지 않는 시대,“AI 업은 구글은 여전히 건재”구글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2023년 구글의 검색 시장 점유율은 92.9%로 정점을 찍고 2025년 3월에는 89.7%까지 하락하다 9월 90.4%까지 반등했다. 검색엔진 대신 AI에서 정보를 탐색하는 행동이 보편화되면서 구글이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심지어 가트너는 2026년까지 AI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검색량이 25%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구글 검색이 반등하고 있다. 생성형 AI 시대의 대표 주자인 챗GPT가 AI 서비스 시장에서 막강한 점유율을 지닌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글로벌 마케팅 에이전시인 에이치랩스에 따르면 구글의 AI 개요(AI Overview) 기능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색 키워드에 따라 적합한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예상되는 페이지를 나열하는 전통적인 검색과는 달리, AI 개요는 AI가 직접 페이지를 탐색하고 그 결과를 정리한 내용을 결과 페이지 상단에 보여준다. 이때 AI가 참고한 소스는 출처로 표기되며 기존의 검색 결과는 AI 개요란의 아래에 배치된다.
이때 브랜드는 소비자들이 검색엔진이 제공하는 검색 결과를 통해 노출되는 페이지를 더 이상 클릭하지 않는다는 데 위기감을 느낀다. 2025년 기준 검색 환경에서 이러한 ‘제로 클릭’이 발생하는 확률은 약 60%에 달한다. 다만 한 가지 짚어야 할 점은 AI 등장 이전에도 다양한 웹과 모바일의 기능이 추가되면서 제로클릭 현상이 심화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는 날씨가 궁금할 때 더 이상 날씨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는다. 날씨를 검색하면 바로 결과 페이지 상단에 내 지역의 날씨 정보가 뜬다. 본래 확산하던 제로클릭 경향이 AI로 인해 더욱 강해졌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검색 결과 상위를 차지한 페이지가 결국 AI 개요에도 인용된다는 것이다. AI 개요 답변의 76.1%는 상위 10개 페이지를 참조했다. 상위 11~100위는 9.5%, 100위 밖은 14.4%로 나타났다. 즉 검색 결과 상위에 노출되는 콘텐츠 전략이 AI 검색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이다.
검색 데이터-AI 결합해고객의 맥락과 상황을 선점해야다만 최적화 전략에는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검색 시대에 SEO(검색 엔진 최적화)에서는 검색 결과 상위를 차지해 웹페이지의 트래픽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최근 부상하는 GEO(생성형 엔진 최적화)는 사용자의 웹사이트 방문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AI가 생성한 답변에 우리 브랜드가 노출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아울러 우리 브랜드의 웹사이트에서 발행하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미디어, 리뷰 등을 통해 드러나는 브랜드에 관한 정보 역시 AI가 참고하는 중요한 소스로 기능한다. 즉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반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슈다.
아울러 AI가 초기 탐색-정보 탐색-경험 탐색-구매 확정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고객 여정을 붕괴시키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예컨대 결혼 예물을 준비한다면 ‘남자 예물 시계’를 검색해 괜찮은 제품 리스트를 확인하고(초기 탐색) 그중 특히 관심이 있는 일부 제품의 가격, 소재 등의 기본적인 정보를 추가로 검색한다. (정보 탐색) 이후 실제 구매자들의 후기를 살펴보고(경험 탐색) 매장 정보 등 구입을 위한 정보를 찾아 제품을 구매한다. (구매 확정) 그러나 AI 검색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한 페이지에 요약된다. 구매자의 성향, 구매력, 상황 등을 포괄해 제품 추천을 AI에 요청하면 AI가 제품군, 고객 반응, 후기, 구매처까지 전부 포함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브랜딩의 의미도 재고해야 한다. 특정 고객 세그먼트 대신 특정 구매 상황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AI 검색에서는 고객들이 맥락과 의도를 구체적으로 입력한다. 영국 조사 결과 사용자들이 구글에 입력하는 검색어는 3단어가량인 반면 챗GPT에 입력하는 프롬프트는 약 91단어에 달했다. “단백질 간식 추천” 대신 “내가 요즘에 운동을 시작했어. 퇴근하고 20분 거리에 있는 헬스장에 가는 길에서 손에 안 묻히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단백질 간식을 추천해 줘”라고 입력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AI는 어떻게 브랜드를 기억하고 답을 내놓을까? AI는 브랜드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상황, 감정, 행동과 엮인 하나의 좌표로 기억한다. 예컨대 늦은 시간까지 야근한 후 장거리 운전을 해서 귀가하는 상황을 AI에 입력하면 AI는 사용자의 피곤함, 절박함 등의 감정 및 상태를 인지하고 제품을 간편하게 즉시 구매하는 행동을 떠올린다. 그 결과 24시간 편의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에너지 음료 ‘레드불’을 추천한다. 레드불이 AI가 인지한 고객의 상태와 행동에 가장 가까운 브랜드로 매핑됐기 때문이다. 즉 AI는 웹페이지상의 다양한 정보를 기반으로 레드불에 관한 ‘잠재 의미 공간(Latent Semantic Space)’을 형성하고 그 영역이 고객의 의도와 가장 밀접할 때 레드불을 답변으로 내놓는다. ‘50대 화장품 추천’ ‘엄마 화장품 추천’이라는 검색어에 설화수가 노출되는 것 역시 설화수의 잠재 의미 공간이 고객의 의도에 가장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때 AI는 질문에 포함된 단어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관련 키워드를 추가로 추출해 탐색의 범위를 넓힌다. “요즘 서울에서 데이트하기 좋은 식당을 추천해 줘”라는 질문이 입력되면 최신성, 분위기, 가격 등 질문에 숨은 고객의 의도를 추론해 ‘2024년 최근 서울 인기 데이트 식당’ ‘서울에서 분위기 좋은 데이트 레스토랑 추천’ ‘서울에서 조용하고 프라이빗한 커플 식사 장소’ 등을 종합적으로 검색한다. 즉 우리 브랜드의 잠재적 의미 공간이 고객이 구매를 고려하는 포괄적인 상황과 근거리에 위치해야 한다.
AI 검색 시대 브랜드의 경쟁은 곧 특정 제품이나 카테고리를 떠올리거나 구매를 고려하는 상황, 즉 CEP(Category Entry Point)를 선점하는 게임이다. 피자 하면 콜라가 떠오르고, 콜라 하면 빨간색이 떠오른다. 피자의 느끼함을 가시고 싶은 상황에서 코카콜라가 CEP를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치킨과 함께 마실 맥주 브랜드를 묻는다면 고민이 길어진다. 사람마다 답변도 제각각일 것이다. 즉 아직 CEP를 차지한 브랜드가 뚜렷하지 않다는 신호다.
이때 검색 데이터와 AI를 결합해 CEP를 발굴할 수 있다. 고객 여정에 따라 소비자들이 어떤 검색 키워드를 입력하는지 살펴보고 AI를 통해 유사한 의도를 지닌 고객 클러스터로 묶어 그 페르소나를 파악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각 고객 클러스터가 AI에 질문할 프롬프트를 추출할 수도 있다.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AI에 특정 브랜드나 제품이 떠오르는 상황을 직접 물을 수도 있다. 예컨대 AI를 통해 바쉐론콘스탄틴 오버시즈의 CEP를 파악했더니 ‘여행’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 ‘세련된 디자인’ ‘듀얼 타임 기능’ 등의 답변이 도출됐다. 즉 잦은 해외 출장이나 여행으로 다양한 시간대를 오가는 상황이 이 제품이 차지한 CEP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바쉐론콘스탄틴 오버시즈 듀얼 타임 기능이 실제 여행자에게 어떤 장점이 있는지 설명해 줘”라는 예상 프롬프트도 찾아냈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이 질문에 담긴 고객의 맥락과 의도를 충실히 반영한 콘텐츠를 발행해야 한다.검색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브랜드가 현재 점유하고 있는 CEP와 새롭게 점유해야 할 CEP를 분석해야 한다. 이후 브랜드 채널, 미디어 등에 타깃 CEP에 부합하는 스토리텔링이 담긴 콘텐츠를 발행하고 브랜드와 CEP 사이 연결을 구축해야 한다. CEP를 완전하게 선점하기 위해선 소셜미디어, 커뮤니티에 노출되는 브랜드에 대한 반응까지 일관되게 관리해야 한다. AI에 브랜드와 CEP 사이 연결의 타당성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AI 검색 시대에 강력한 브랜드는 단순히 AI에 많이 노출되는 브랜드가 아니다. AI의 잠재 의미 공간에서 고객의 구매 상황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브랜드가 GEO가 선사하는 기회를 잡을 것이다.
AI는 럭셔리 브랜드를 어떻게 인식할까: AI 브랜드 인지도 관리 전략에티엔 고테롱 젤리피쉬코리아 대표
프랑스 앙스티튀 미느-텔레콤(Institut Mines-Telecom)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글로벌 퍼포먼스 마케팅 기업 ‘젤리피쉬그룹(Jellyfish Group)’의 한국 지사인 젤리피쉬코리아 대표로서 한국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구글,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기업과 야놀자, 무신사, 젠틀몬스터 등 국내 혁신 기업과 협력하며 데이터 분석·크리에이티브·테크 솔루션을 통합한 디지털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 대신 선택 내리는 AI,“LLM 알아야 마케팅 전략 설계 가능”그 어느 때보다도 검색이 중요한 때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검색 시장이 격렬하게 변하고 있다. 검색엔진뿐만 아니라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 나아가 챗GPT, 제미나이와 같은 생성형 AI 서비스까지 검색의 각 축을 맡고 있다. 과거에는 구글 검색 페이지 상위에 노출되기 위한 광고 입찰, 링크 구축 등의 작업에 집중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구글 검색 결과 최상단을 AI 개요가 차지하고 있다. 유료 광고는 전혀 보이지 않고 유기적(organic) 검색 결과는 스크롤을 쭉 내려야 나타난다.
최근에는 ‘AI 모드(AI Mode)’ 기능이 추가됐다. 구글에 검색해도 제미나이에 검색한 것처럼 대화형 검색 결과가 제공된다. 사용자는 대화 형식으로 추가 질문을 입력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AI 모드가 브랜드에 대한 정보와 소스뿐만 아니라 선택의 근거까지 제안한다는 것이다. ‘여성을 위한 카르티에 또는 롤렉스(Cartier or Rolex for women)’라는 질문을 입력했더니 AI 모드는 ‘당신이 풍성한 보석과 헤리티지를 원한다면 카르티에, 진보된 기계 공학 기술을 원한다면 롤렉스를 선택해야 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최근 오픈AI, 퍼플렉시티가 AI 전용 브라우저를 출시한 것 역시 사용자 대신 선택하고 행동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인 셈이다.
AI 검색과 발견(search & discovery)은 AI 개요와 같은 생성형 검색이나 챗GPT와 같은 대화형 AI 혹은 최근 빠르게 진보하고 있는 AI 에이전트를 통해 이뤄진다. 어떤 유형이든 LLM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LLM이 우리 제품의 카테고리와 브랜드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우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LLM은 구글의 제미나이다. 메타와 오픈AI가 그 뒤를 따른다. 한국에서는 챗GPT가 제미나이보다 많이 활용된다고 체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케터로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이 두 LLM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현명하다. 각 LLM이 학습에 사용하는 데이터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제미나이 훈련 데이터는 구글 맵스, 유튜브 등 주로 구글 생태계에 기반한다. 메타 또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자사가 운영하는 소셜미디어의 콘텐츠를 적극 활용한다. 반면 오픈AI는 브랜드 웹페이지부터 위키피디아, 레딧 등 다양한 공개 데이터를 수집한다. 다만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 사운드, 비디오 등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활용하는 다중 모델이라는 것은 공통점이다. 따라서 LLM 내에서 브랜드의 가시성(visibility)을 확보하기 위해선 모든 유형의 콘텐츠를 최적화해야 한다.
AI 관점에서 브랜드 분석하고AI 위한 콘텐츠 발행해야럭셔리 브랜드가 우선적으로 물어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LLM이 우리 브랜드와 경쟁 브랜드, 제품 카테고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미국 럭셔리 시장의 사례를 살펴보겠다. 각종 LLM에 상위 20개 럭셔리 패션 브랜드를 묻는 질문에 구찌, 펜디, 버버리 등의 다양한 브랜드가 항상 언급됐다. 그러나 평균 순위는 달랐다. 구찌, 루이뷔통, 샤넬이 상위 3위를 차지했고 디오르, 베르사체 등은 평균 약 8위로 나타났다. 생로랑은 제미나이에서 견고한 점유율을 보인 반면 메타에서는 존재감이 약했다. 생로랑의 마케터라면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하는 캠페인을 인스타그램에도 적극 추진하는 방안을 테스트해볼 수 있다. 한편 영국에서 뷰티 브랜드를 평가할 때 디오르는 AI 개요에서 60% 이상 언급되는 등 높은 LLM 언급률을 자랑했다. 그러나 디오르 웹페이지의 URL은 AI 개요에는 덜 노출됐다. 즉 사용자들이 디오르의 웹 페이지에 방문하고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카테고리 내에서 LLM의 브랜드 인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우리 브랜드가 대담성, 내구성, 우아함, 혁신성 등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LLM에서 구찌는 가장 높은 수준의 대담함을 지닌 브랜드로 인식된다. 다른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는 뜻이다. 한편 루이뷔통은 대담한 브랜드는 아니다. 오히려 내구성이 뛰어난 브랜드로 인식됐다. 내구성과 같은 기능적인 면은 LLM이 브랜드를 추천할 때 특히 중요한 특성이다. 브랜드에 대한 LLM의 인식은 실제 소비자들의 인식과 꽤 일치한다. 따라서 LLM의 평가를 역으로 전통적인 디지털 광고 입찰에 활용할 수도 있다. 한국의 한 프리미엄 아이웨어 브랜드와 LLM의 평가를 기준으로 구글 광고 키워드 입찰 전략을 짰는데 KPI 전반에 걸쳐 두 자릿수 개선을 이뤘다. 클릭당 비용(CPC)이 감소했고 클릭률, 전환율, 광고 지출 대비 수익률은 증가했다.
광고, 제품 상세 페이지 등의 콘텐츠를 LLM이 어떻게 인식할지도 신경 써야 한다. 체크 무늬로 상징되는 버버리와 같이 제품의 특징이 뚜렷한 브랜드의 콘텐츠는 사람과 AI 모두 그 브랜드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로로피아나와 같이 뚜렷한 개성보다는 제품 자체의 품질과 고급스러움으로 승부를 보는 브랜드의 경우 인간과 AI 모두 제품만 보고 어떤 브랜드인지 대번에 알아맞히기 어렵다. 다만 AI가 브랜드의 제품 및 콘텐츠에서 느껴지는 인상을 표현할 수는 있다. 로로피아나의 제품을 보고 로로피아나라는 브랜드를 떠올리지는 못해도 ‘엘리트 계층의 느낌이 나고 문화예술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답변을 내놓는 식이다. 즉 사람을 위한 콘텐츠뿐만 아니라 AI를 위한 콘텐츠도 만들어야 한다. 실제 콘텐츠를 발행하기 전 LLM의 반응을 테스트해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AI가 우리 브랜드를 보는 방식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브랜드 코드’를 개발해야 하고 모든 브랜드 자산에 꾸준히 활용해야 한다. 또한 고객 여정뿐만 아니라 AI의 경험, 즉 AIX(AI Experience)를 위한 디지털 여정을 설계해야 한다. 머지않아 AI 에이전트가 우리를 대신해 의사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AI가 어떤 정보 출처를 신뢰하고 영향력 있다고 평가하는지, 우리 제품 카테고리에서 어떤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우리 브랜드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등 AI의 정보 탐색 및 평가 과정을 세밀히 이해해야 하고 각 LLM의 학습 소스에 우리 브랜드의 지향성이 담긴 콘텐츠를 다양한 형식으로 배포해야 한다.
헤리티지와 나다움의 시너지- 변화하는 세대를 사로잡는 럭셔리 리더십문우리 포티파이(40FY) 대표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존스홉킨스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및 맥킨지앤드컴퍼니 컨설턴트로 근무하며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과 조직 문제를 다뤘다. 2020년 디지털 멘탈케어 스타트업 포티파이를 창업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직의 ‘우리다움’과 개인의 ‘나다움’을 연결하는 과학적 코칭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다수의 K-뷰티 대표 기업을 대상으로 리더십 코칭 및 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2023년 카르티에가 주최한 ‘카르티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Cartier Women’s Initiative)’ 동아시아 부문에서 1위를 수상했다.
개인주의-AI로 위기 맞은 럭셔리 조직,럭셔리만의 ‘독창성’으로 돌파하라럭셔리 업계의 도전은 외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 내부에도 여러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우선 인재 이탈이 증가하고 있다. 2024년 전 세계적으로 럭셔리 리테일 직원의 51%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전 30%에서 50% 이상 급증한 셈이다. 이는 럭셔리 기업이 강조하는 헤리티지가 만든 딜레마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통적인 장인 시스템과 글로벌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관성과 안정성을 중시하는 럭셔리 기업의 조직문화는 매일매일 혁신을 외치는 요즘의 경영환경과는 다소 괴리가 있어 보인다. AI 등 새로운 기술과 경험으로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에게 직장으로서 럭셔리 조직은 ‘여기서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두 번째는 조직과 브랜드를 바라보는 MZ세대의 태도다. 과거에는 브랜드와 개인의 정체성이 일치했다. 개인은 브랜드에 소속감을 느끼고 자신의 지위를 표현했다. 그러나 현재는 ‘대(大)에고(ego)’의 시대다. 개인의 자아가 너무 중요해졌다. 브랜드는 특별한 ‘나’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조직과 개인의 관계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조직 이전에 나라는 개인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한다. 실제로 갤럽 조사 결과 회사의 미션과 연결감을 느끼는 직원이 2019년 42%에서 2024년 27%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고용주에 대한 신뢰는 61%에서 47%, 5년 이상 근무할 의향은 54%였는데 31%로 감소했다. 더 이상 평생직장의 개념은 없다. 한 회사에 충성을 바쳐 안정성을 챙기겠다는 마음보다는 조직에서 성과를 내고 그 대가로 보상과 성장을 얻겠다는 가치관이 확산하고 있다.
세 번째는 AI의 등장이다. 대규모 럭셔리 브랜드의 78%가 AI의 도입을 전략적 우선순위로 여기고 있다. 다른 산업만큼 기민하지는 않지만 럭셔리 산업의 모든 가치사슬에 AI가 침투하기 시작했다. 리더들은 새로운 변화 가운데 전략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조직의 구심점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됐다.
럭셔리 조직이 마주한 과제를 돌파할 단서는 독창성(originality)에서 찾을 수 있다. 2024년 네이처를 통해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AI에 실제 강아지 이미지를 학습해 강아지 이미지를 생성하게 했고 이후 이 이미지를 학습시켜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게 하는 과정을 반복했더니 실제 강아지와는 거리가 먼 괴상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AI 모델이 붕괴된 것이다. 즉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이 창출하는 독창성이 보존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아마추어 바둑기사 켈린 펠린은 현존 최강의 AI 바둑 프로그램 카타고와의 15판 승부에서 14판 승을 거뒀다. AI라면 두지 않을 법한 수를 연구한 것이 묘책이었다. 아무리 AI의 성능이 향상된다고 할지라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엉뚱하고 창의적인 접근의 힘은 유효하다.
이는 오랜 기간 독창성을 지키기 위해 전념해 온 럭셔리 브랜드가 AI 시대에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개인과 조직 차원에서 독창성을 발현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예컨대 에르메스의 본질은 ‘개개인에 맞춘 장인정신’이다. 이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에르메스 핏(Herme`s Fit)은 고객 각자에게 꼭 어울리는 스카프를 추천해주는 AR(증강현실) 서비스다. 브랜드의 본질을 지키면서 첨단 기술을 활용한 신선한 방식으로 젊은 세대를 공략한 사례다.
한국 시장만의 고유성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1인당 명품 소비액은 세계 1위 수준이며 MZ세대가 새로운 럭셔리 소비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작지만 전 세계적인 트렌드를 빠르게 형성하고 반영하기에 많은 글로벌 브랜드에서 한국을 ‘트렌드 인큐베이터’로 활용한다. 예컨대 럭셔리 브랜드가 온라인 채널에 소극적이던 때 샤넬은 가장 처음으로 ‘카카오 선물하기’에 입점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피플 리터러시’ 발휘해나다움-우리다움 일치시켜야조직 관리 측면에서도 조직과 개인의 독창성을 발굴하고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이에 럭셔리 조직의 리더에게는 사람을 읽고 이해하는 ‘피플 리터러시(people literacy)’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사람들이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다비드상을 만들 수 있었는지 묻자 그는 “대리석 안에서 천사를 발견했고 그 천사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돌을 깎아냈을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마찬가지로 리더는 조직과 구성원 내면에 있는 고유한 독창성을 발견하고 이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선 개인의 독창성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행동이나 말, 역량, 기술과 같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에서 더 나아가 그의 가치와 신념, 본질까지 읽어내야 한다. 고객을 분석할 때 특정 고객이 어떤 제품을 어떻게 구매하는지뿐만 아니라 왜 구매하는지를 심층적으로 고민한다. 누군가는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을 만큼 가치 있는 자산에 투자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는 큰 성공을 거둔 자신을 축하하기 위해 럭셔리 제품을 찾는다. 전자에게는 ‘좋은 날을 기념할 만큼 특별한 제품’이라는 메시지, 후자에게는 ‘50년이 지나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제품’이라는 메시지가 효과적일 것이다.
이러한 왜(why)에 대한 분석과 소구는 구성원에게도 이뤄져야 한다. 리더는 각 팀원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성과를 거뒀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가 왜 이 회사에 다니며 이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하고 물어야 한다.
실제로 코칭을 진행한 한 리더는 성실하고 실적도 좋은 직원이 요즘 들어 기운이 없어 보인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작년에 고과도 잘 받았으니 올해도 좀 열심히 해보자”고 그를 격려했지만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리더는 그 직원이 왜 낙담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그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리더에게 권유했다. 그랬더니 그는 작년만큼 높은 성과를 내고 싶은데 기대만큼 실적이 나오지 않아 고민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에 리더는 그에게 필요한 솔루션을 제안할 수 있었다. 현재 실적은 중간 수준이지만 고객과의 높은 친밀감을 강점으로 재구매를 유도하면 원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더 나아가 리더는 그에게 왜 럭셔리 산업에서 일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사람들은 삶의 특별한 순간에 럭셔리 제품을 구입한다. 그 순간을 함께하는 게 큰 울림을 준다”고 답했다. 리더 역시 예물을 맞추러 온 신혼부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경험을 공유했다. 개인의 ‘나다움’을 읽어 효과적으로 동기를 부여한 사례다.
다만 위의 사례처럼 모든 직원이 성과에 대한 열의를 가진 것은 아니다. 몇몇 리더는 구성원들이 잘하거나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데 잘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팀원들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원하는지 잘 모르며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제안해도 썩 내키지 않아 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분명 좋은 리더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하는 점이 있다. 회사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곳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은 취미 생활이다. 구성원들은 조직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 국내 5000명의 리더를 대상으로 번아웃 실태를 조사한 결과, 조직의 목표에 기여하며 그로 인한 안정감, 인정, 소속감 등을 느낄 때 번아웃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구성원에게 몰입과 에너지를 선사하려면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조직의 우리다움을 뚜렷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조직이 좇는 목표에 개인이 어떤 장점을 발휘할 수 있을지 제안할 수 있다. 비전이 뚜렷할 때 창의적인 사람은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력이 강한 사람은 행동하며, 소통 역량이 뛰어난 이들은 이를 전파한다.
일전에 LVMH의 리더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프로그램 시작 전에는 럭셔리 기업의 리더는 보수적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리더들과 직접 프로그램을 진행하니 오히려 스타트업 직원들 같다는 인상을 느꼈다. 적극적이고 혁신적인 모습이 엿보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역시 지속적으로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조직의 원동력으로 강조해왔다는 점이다. 일례로 LVMH는 소속 브랜드들과 스타트업의 협업을 추진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 플랫폼 ‘라 메종 드 스타트업’을 구축했다. 이에 LVMH의 지향성과 임직원의 특성이 일치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MZ세대의 ‘3요(제가요? 이걸요? 왜요?)’라는 질문에서 이를 실천하기 위한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 ‘왜요?’는 조직이 나아가고자 하는 비전과 미션을 묻고 ‘이걸요?’는 조직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이 업무가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제가요?’는 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강점과 역할을 질문하는 것이다.한 구성원에게 조직 내 혁신 프로그램 참여를 독려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리더는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혁신적인 시도와 탁월함이다(왜요?)” “외부 인재와의 협업을 통해서 혁신을 시도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이걸요?)” “A 씨의 창의적인 생각과 추진력이 발휘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 A 씨의 포트폴리오에도 플러스가 될 것이다(제가요?)”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이 추구하는 ‘우리다움’과 그 안에서 일하는 구성원의 ‘나다움’이 일치하는 영역에서 조직과 구성원의 막강한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취재와 작성에는 동아 콘텐츠 크리에이터 과정 우수 수료생 윤상아(인하대 간호학과 졸업) 씨, 이동훈(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재학) 씨, 전수아(강원대 사회학과 재학)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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