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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이앤씨 사례로 본 안전사고 예방법

이규열 | 426호 (2025년 10월 Issue 1)
현장 자율에만 맡기면 위험…
본사 안전 점검 피드백 필수
참고 기사 : “‘4대 원칙’으로 안전 수칙 설계하고 중대재해 막는 ‘4중 방어막’ 전개해야”


“그룹의 모든 사업장에서 안전은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고 강건한 설비는 우리 사업 경쟁력의 근원임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올해 1월 2일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보낸 신년사 중 일부다. 포스코그룹은 2025년 중점적으로 추진할 첫 번째 과제로 안전을 꼽았다. 단기적인 성과보다 안전의 중요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관련 설비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굳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신년사 발표 보름 후인 1월 16일 50대 협력업체 직원 1명이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 추락해 사망했다. 이어 4월에는 경기도 광명시 신안산선 건설 붕괴 사고, 대구시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가 발생하며 각각 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7월에는 경남 의령군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60대 직원이 건설 기계에 끼어 숨졌다. 그달 29일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대표이사가 잇따른 산업재해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그로부터 엿새 후인 8월 4일 광명시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의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8일 동안 의식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포스코이앤씨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고만 해도 5건, 사망자는 4명에 달한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를 직접 겨냥해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강력하게 질타했으며 “건설면허 취소, 공공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 보고할 것”이라고 강력히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정 대표이사는 스스로 사의를 표했고 안전 분야 전문가인 송치영 포스코 안전특별진단 태스크포스(TF) 팀장 부사장이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포스코이앤씨가 유독 집중적인 비판을 받는 데 재계 일각에서는 “정권 초기마다 반복되는 포스코그룹 길들이기의 연장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형 건설사의 안전사고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강화가 시급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안전장치 없는 작업? 일상적 위반으로 자리 잡아선 안돼

산업 현장에서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미국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산업안전 분야의 선구자로 꼽힌다. 보험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7만5000건의 사고를 분석한 경험을 토대로 ‘하인리히의 법칙’ 을 비롯해 산업안전 분야의 초기 이론들을 제시했다. 그중 하나가 ‘도미노 이론(Domino’s Theory)’이다. 그는 재해가 발생하기까지 유전적 요인 및 사회적 환경(Ancestry and Social Environment)-개인적 결함(Personal Faults)-불안전한 행동과 상태(Unsafe Act and Condition)-사고(Accident)-상해(Injury) 등 5가지 단계가 연쇄적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3번째 단계인 ‘불안전한 행동과 상태’를 제거해야 사고로 이어지는 연쇄작용을 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단계에서 발생한 사고가 전체의 88%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불안전한 행동이란 안전조치를 불이행하거나 위험한 장소에 접근하는 등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 근로자의 행동을 뜻한다. 불안전한 상태는 작업장 환경, 기계설비, 작업 방법상의 결함 등 주로 물리적인 요인을 일컫는다. 산업안전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발생한 포스코이앤씨의 사고들 역시 주로 ‘불안전한 행동과 상태’에서 기인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1월 16일 발생한 김해 아파트 추락 사고에서 사망한 노동자 A 씨는 거푸집의 일종인 ‘갱폼’을 들어 올리다가 17층 높이에서 추락했다. 당시 경찰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A 씨는 작업에 필수인 안전 로프를 걸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관리자의 미흡한 감독과 근로자의 부주의한 판단, 즉 불안전 행동이 변을 부른 것이다. 이 사고에서는 ‘불안전한 상태’도 발견된다. 15층 높이에 추락 방지용 그물망이 설치돼 있었고 실제로 그는 이 그물망에 걸렸기에 잘 작동만 했으면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물망은 A 씨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고 결국 그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숨을 거뒀다. 사고를 막기 위해 설치한 그물망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8월 4일 경기 광명에서 발생한 사고에서도 이 같은 불안전 행동과 상태가 목격된다. 광명∼서울고속도로 연장 공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의 30대 근로자가 양수기 펌프를 점검하기 위해 공사 현장 지하 18m 지점에서 감전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 경찰에 따르면 그가 사고를 당할 당시 양수기에 전력을 공급하는 배전반의 차단기가 내려가 있지 않았다. 또한 현장 관계자들은 그가 절연 장갑이 아닌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한편 사고 직후 사진 분석 결과 그가 관리자와 함께 물속에서 작업을 했다는 포스코이앤씨 측의 해명과는 달리 관리자 없이 단독으로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각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주요 원인을 특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들을 미뤄볼 때 불안전 행동이 중대 사고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의 심리학자이자 사고가 발생하는 요인을 분석한 제임스 리즌은 그의 책 『휴먼 에러』를 통해서 사람의 실수가 시스템을 뚫고 사고로 연결되는 과정을 모델로 설명했다. 그는 우선 불안전 행동을 의도의 유무로 분류했다.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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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즌은 부주의에 의한 실수나 혹은 망각은 의도되지 않은 불안전 행동이라 판단했다. 이러한 행동들은 숙련기반오류(Skill-based error)로 자동화되고 습관화된 행동에서 주로 발생한다. 주의력 분산이나 집중력 부족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러한 오류는 가시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주로 근로자 개인만이 알아차릴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의도된 행동으로는 착오와 위반이 있다. 착오는 특정 상황에 맞는 규칙이나 절차를 잘못 적용하거나 작업이나 상황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생기는 규칙기반오류(Rule-based Error), 지식기반오류(Knowledge-based Error)다. 한편 위반은 사람의 실수(Error)로 규정되지 않는다. 이는 고의적인 사고로 규칙을 일상적으로 무시하거나 혹은 더 빠르게 작업해야 하는 특수적인 상황, 예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 등에서 비롯된 불안전 행동이다.

위 사고들에서는 근로자와 관리자의 여러 불안전 행동이 복합적·연쇄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가장 고질적이며 경계해야 하는 건 일상적인 위반 행동이다. 예컨대 높은 곳에서 작업하는 근로자가 ‘모두가 다 그렇게 한다’며 안전 고리를 체결하지 않는 식이다. 이는 부지불식간에 발생하는 다른 오류와 달리 작업자가 잠재적으로 문제 소지를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불안전 행동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은 일상적 위반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1) 구성원들이 규정이 잘못됐다고 판단하거나 2) 조직문화 자체에 위반이 만연하다는 점 등을 꼽았다. 따라서 일상적 위반을 예방하기 위해선 규정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 작업자들이 지키기에 어려움은 없는지, 실제 안전 예방 효과가 있을지 등을 따져보고 문제 소지가 있다면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 과정에 근로자를 참여시키는 것도 효과적이다.


“안전이 최우선” 구호 아닌 실천돼야

지난 4월 11일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제5-2공구 지하 터널 붕괴사고는 지반 불량 등의 환경적 요인이 주된 원인으로 파악된다. 사고 전 이미 구조물 손상 징후가 발견돼 대피가 이뤄졌으나 안전 진단과 보강 작업 중 붕괴가 발생해 1명이 숨졌다. 감사원은 해당 구간 지반을 ‘매우 불량’(5등급)으로 평가했음에도 설계에 필수 구조물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해당 지역 공사 구간의 진행 속도가 느려 작업에 속도를 내던 중 지반 보강이나 안전 진단을 간략하게 진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문가의 견해도 나왔다. 당시 사고가 난 제5-2공구 건설 현장의 공정률은 약 58%로 제3공구 다음으로 진행 속도가 느린 것으로 밝혀졌다. 전체 공사 구간 중 가장 짧지만 시흥과 안산으로 갈라지는 핵심 구간으로서 이곳을 완공하지 않을 경우 시흥과 안산 두 구간 모두 서울과 연결이 어려워진다. 특히 해당 구간의 경우 지반 상태가 좋지 않은 점을 지적받아 특수 설계와 공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사실 급박한 공사 기한으로 시공이 부실해진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특히 최근에는 건설업계의 업황이 급격하게 나빠짐에 따라 수익성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공사 기한 준수에 대한 요구가 커진 점 또한 현장에 부담감을 더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공사 기간이 늘어날수록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안산선 사고의 경우 근로자나 감독관 개인의 행동보다는 현장 환경과 업계의 특성이 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영진과 관리자들의 의지가 중요하다.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공사비를 아끼고 수익을 개선하기 위해 공사 기한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경영자와 관리자는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할까. 무엇이 정답이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선언이 단순 구호로 그치지 않기 위해선 실제 경영자와 관리자들의 의사결정에 반영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전 문화가 조직 내에 뿌리내려야 한다. 결국 조직의 구성원들은 조직문화에 의거해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레이던대(Leiden University) 심리학과의 패트릭 허드슨 교수 또한 산업안전 문제의 초점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분석하며 안전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1970년대에는 사고의 원인을 주로 장비의 결함 같은 기술적 문제에서 찾았으며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인증, 평가, 안전관리 체계와 같은 시스템으로 관심이 이동했다고 설명한다. 1990년대 말 안전 성과가 정체기에 이르자 사고를 유발하게 만드는 제도나 조직문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안전 문화를 구축하는 과정에는 제임스 리즌의 지침을 참고할 만하다. 그는 안전 문화의 4가지 요인으로 1) 보고 문화(Reporting Culture) 2) 정당 문화(Just Culture) 3) 유연 문화(Flexible Culture) 4) 학습 문화(Learning Culture)를 꼽았다. 보고 문화는 사고와 사고 근접 사례를 보고할 수 있는 문화를 뜻한다. 이러한 보고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개인은 불이익이나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솔직하게 보고하기보다는 덮어두는 편을 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고와 위험을 보고한 구성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아야 하며 조직은 필요에 따라 그를 보호해야 한다.

정당 문화는 이러한 보고에 대한 합당한 결과를 제공하는 것이다. 안전에 도움이 되는 정보에는 보상하며 불안전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유연 문화란 원칙이 작동하기 어려운 비상 상황에서 현장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개인에게 통제권을 부여하는 것이며, 학습 문화는 관찰, 창조, 행동을 통해 안전에 대해 배우려는 자율적인 노력이자 태도를 가리킨다.


구조적 문제 해결하려면

대통령까지 직접 질타에 나서고 정부의 집중 관리 대상이 된 것이 포스코이앤씨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0∼2024년 사이 지난 5년간 10대 건설사 중 포스코이앤씨는 삼성물산과 더불어 사망자 수 자체는 가장 적었다. 역으로 이러한 안정적 상태가 현장의 안일함을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포스코이앤씨가 공개한 ‘2024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해 ‘중대재해 제로’를 달성하며 현장의 자율성이 확대됐고 이에 본사 피드백이 줄어들었는데 이로 인해 안전관리 체계 작동이 약화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7월 28일부터 8월 29일까지 포스코이앤씨 현장 63개소 중 23개소를 불시 감독한 결과 22개소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법 사항을 발견했다. 위반 내용으로는 안전보건규칙 제22조(통로의 설치), 제301조(전기 기계·기구 등의 충전부 방호), 제339조(굴착면의 붕괴 등에 의한 위험방지) 등이 포함됐다. 이로써 2건의 사법 처리(송치)와 2억4648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하지만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대형 사고를 막기 위한 가장 유용한 대책이 과연 징벌적 처분 강화인지는 면밀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 먼저 업계는 징벌적인 처분 강화만으로 현장 사고가 줄어들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이앤씨 사고 이후 건설업계 전반에서 대대적인 안전 점검과 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사고가 잇따르는 현실 자체가 구조적 문제의 존재를 방증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따라서 단순한 사후 조치보다는 건설업계의 근본적 원인을 짚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숙련공 감소와 외국인 근로자 증가로 인한 현장 인력의 숙련도 저하, 안전교육 체계 미흡과 권한·책임 부여의 부재 등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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