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기는 위험한 시기지만 가장 큰 위험은 현실을 부정하려는 충동이다.” 경영학 구루 피터 드러커는 1980년 저서 『혼란기의 경영(Managing in Turbulent Times)』에서 인구구조의 변화, 글로벌화 심화 등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미래 메가 트렌드를 예측하며 경영자들에게 어제의 확실성에 기대기보다 새로운 현실을 이해하고 기회를 포착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기업이 혼란기에 나타날 수 있는 위협이나 리스크를 잘 견디려면 끊임없이 ‘기초체력(fundamental)’을 관리하는 한편 불시에 찾아올 수 있는 기회를 감지하기 위한 ‘내일을 위한 경영’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조언은 2025년 격변의 한가운데에 선 기업들에 여전히 유효하다. 미중 패권 경쟁에 기술이라는 또 다른 축이 더해지며 동맹 중심 공급망으로 글로벌 비즈니스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동시에 일상 깊숙이 파고든 AI는 업무 방식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과 인지 구조 자체를 바꾸며 ‘지능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드러커에 따르면 오늘 확실한 것도 내일이면 불확실한 것이 되기 마련이다. 즉 어제의 성공 공식을 붙잡고 버티는 순간 곧 구조적 리스크로 전환될 수 있다. 결국 위기와 불확실성이 도사릴수록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변화를 전제로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란제이 굴라티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신중하게 첫발을 내딛고 방향을 조정하며 올바른 경로로 나아가는 ‘센스메이킹’을 실천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서 그는 눈보라 속에 길을 잃은 한 부대가 우연히 찾아낸 지도를 붙잡고 진군해 무사히 기지로 돌아온 일화를 함께 소개한다. 군인들은 나중에야 그 지도가 자신들이 있던 산이 아닌 전혀 다른 지역의 지도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완전한 지도였음에도 멈춰 있던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현장의 단서와 신호를 모아 나아가게 했다는 점에서 그 효용은 충분했다. 완벽한 예측이 아닐지라도 미래를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대비하려는 시도가 중요한 이유다.
DBR은 2026년 전망을 담은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이러한 ‘지도’를 제시하고자 한다.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는 데 단서가 될 ‘비즈니스 트렌드 인사이트’를 제공하기 위해 올해도 각 분야 최전선의 전문가들과 함께 다가올 미래를 전망했다. DBR 필진, 객원편집위원, 명예기자 등 그동안 DBR 제작에 깊이 관여해 온 국내외 석학과 업계 전문가 100명으로 구성된 ‘DBR 인사이트 어드바이저’는 2026년 국내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서 화두가 될 키워드와 관련 사례, 최신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이들의 제언을 바탕으로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DBR 취재진은 2026년 비즈니스 트렌드를 응축한 12개의 핵심 키워드를 도출했다.
핵심 키워드들에 담긴 인사이트는 명확하다. 어제의 논리를 탈피해 내일의 설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팽팽해지는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경쟁과 협력을 취사선택하는 유연성을 갖추고 하드 파워가 경계를 세울수록 한국적 감성을 담은 소프트 파워로 넘어서야 한다. 기술이 비즈니스와 일상 전반을 바꾸는 전환기에는 제품부터 인력 구조까지 AI 네이티브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시장에서는 감성을 강조하며 소비자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최종 선정한 12개 키워드를 비롯해 어드바이저 100인의 고견을 종합한 ‘2026 비즈니스 트렌드 인사이트’를 요약 소개한다. DBR이 엄선해 제시하는 통찰이 변화의 신호를 감지하고 생존을 넘어 혁신으로 가는 경로를 안내하는 유용한 지도가 되길 바란다.
경쟁의 새로운 문법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간 대립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기술의 안보재화, 즉 ‘테크노 내셔널리즘’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반도체, AI, 양자컴퓨팅, 6G 통신과 같은 첨단 기술이 국가 패권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 됐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각각 국가 주도의 기술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우군을 형성(Ally-shoring)해 중국 기술을 배제한 ‘작은 공통 규칙(mine+allies)’ 체제를 구축하며 동맹국끼리만 부품·기술을 공유하거나 공동 표준을 만드는 흐름도 감지된다. 이재훈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선임은 “‘테크노 내셔널리즘’이 글로벌 경제 질서의 핵심 원리가 되는 국면에서 한국 기업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며 “과거에는 비용 절감과 생산성 중심의 글로벌 분업 체계(Global Value Chain) 최적화가 기업 전략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국가별 기술 규제, 공급망 블록화, 기술 표준 경쟁, 인재 확보 전쟁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중국에서 개발한 기술과 플랫폼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차이나 인사이드(China Inside) 2.0’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기술 패권 경쟁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과거 중국산 제품이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단계를 지나 이제는 폴크스바겐이 샤오펑(XPeng) 기술을 수혈받고 스텔란티스가 립모터와 손잡는 등 중국 기술과 플랫폼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천서형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2026년에는 SDV(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를 넘어 AIDV(AI 정의 자동차)가 본격 화두가 될 전망”이라며 “웨이모, 테슬라 등 AI 원천 기술을 쥔 미국과 바이두 아폴로, 포니.ai 등 막대한 데이터, 정부 지원으로 상용화 속도를 내는 중국의 기술 패권 전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한 지각변동 속에서 한국은 경쟁 영역에서는 진영을 확실히 하더라도 협력 영역에서는 양국과 모두 활발히 교류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쟁우위를 추구하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문정빈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미중 관계는 단순한 적대적 대립이라기보다는 목표와 분야별로 경쟁과 협력을 취사선택하는 ‘패권 협력 경쟁(hegemonic coopetition)’의 양상을 띤다”며 “제3국인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과는 첨단 기술·안보 협력을, 중국과는 환경·인프라 등 비군사·비민감 영역에서 협력 프레임을 고도화하는 균형 전략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변화하는 글로벌 지형을 전략적으로 노려볼 수도 있다. 최근 유럽에서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기술의 자립 가능성, 즉 ‘기술 주권(Tech Sovereignty)’ 확보가 주요 정책 및 투자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AI·반도체·에너지·국방 등 핵심 분야에서 자급자족을 가능케 하는 전략적 기술을 의미한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유럽은 기술 주권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EU Chips Act(반도체 산업에서 유럽의 전략적 자립 확보), European Sovereignty Fund(유럽 전략 산업 자립을 위한 장기 펀드) 등을 통해 투자에 주력하고 있다. 이은서 123팩토리 대표는 “지난해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간 연구 혁신 프로젝트인 ‘호라이즌 유럽’에 한국이 준회원국으로 참여 자격을 얻는 등 유럽과의 공동 기술 개발 및 PoC 협력 기회가 늘고 있다”며 “중국은 두렵고 일본은 느리다는 인식으로 유럽 내 많은 기업과 연구기관이 한국을 협업국으로 고려하고 있는 만큼 유럽의 주요 자립 기술 분야에서 협업 기회를 전략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상황에서 기업들이 ‘전략 지정학적 복원력(Geostrategic Resilience)’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더 이상 지정학적 리스크를 ‘외부 변수’로 치부하고 사후 대응하는 소극적 방식을 채택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류종기 EY한영 상무는 “정치 분석가(Political Scientist)가 기업의 필수 인적자원이 돼야 하는 시대”라며 “인재 확보는 물론 공급망의 지역 다변화, 제조 거점 재배치, 데이터센터의 법적 관할 구역 판단까지 모두 지정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선 이후 심화하는 정치·경제적 불확실성,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이란 갈등 등 극단적인 사건(extreme events)이 상시적으로 벌어지는 가운데 기업의 위기 대응 리더십 역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박종규 뉴욕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100년에 한 번 일어날 법한 예외적이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반복되는 위기 속에서 조직이 극단적 상황을 어떻게 관리하고 회복할 수 있을지에 고민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최중경 한미협회장은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기업들은 성장보다는 생존을 위한 혁신을 경영 목표로 삼아야 한다”며 “비상한 각오로 비용 구조와 현금흐름 관리 강화, 경영 역량 재배치, 리스크와 불확실성 최소화를 위한 관리 체제 정비 등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2026년은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탈세계화, 인구절벽과 불평등으로 인한 구조적 불안정성, AI 혁신 본격화 등 세 가지 대전환이 동시에 맞물리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이는 한국 경제가 최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코리아 피크아웃’의 우려를 현실화할 수도, 새로운 경제 성장 궤도를 여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배정희 베인앤드컴퍼니코리아 파트너는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 담론의 반복이 아닌 실행 가능한 전략 설계”라며 “기업은 공급망 리스크 관리, AI 기반 생산성 혁신, 사회적 신뢰 자산 축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AI 에이전트 시대를 준비하라2026년이 ‘AI 에이전트’ 상용화의 원년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2024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언급된 AI 에이전트는 2025년 기업들이 앞다퉈 개발, 검증하며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어드바이저들은 2026년 일상에서 AI 에이전트의 효용을 체감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 10여 년간 궁금한 것이 있으면 검색하고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비교 사이트를 찾아보는 등 스스로 필요한 정보를 찾는 DIY(Do-It-Yourself) 방식에 익숙했다면 향후에는 AI 에이전트가 대신해주는 ‘DIFM(Do-It-For-Me)’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개인마다 금융 상품 선택과 거래 실행을 돕는 AI 봇이나 에이전트를 두는 등 금융 서비스 분야를 필두로 DIFM 경제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제홍 아키텍트에쿼티 대표는 “AI 에이전트 경제에서는 기술 스택과 비즈니스 전략 전반에 걸쳐 AI 친화적 전환이 요구된다”며 “API를 통해 외부 AI와 손쉽게 결합될 수 있도록 초창기부터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개방해 서비스를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AI가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단순히 고도화된 모델 개발을 넘어 더 잘 쓰이게 만드는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AI 네이티브로 사용자 경험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AI 네이티브 경험(AI Native Experience, ANX)’이란 AI 에이전트가 사용자의 의도(Intent)를 파악하고 정보 탐색·입력·전환 단계를 최소화해 계획을 세워 실행(Action)까지 연결하는 새로운 인터넷 경험을 의미한다. 장진규 컴패노이드랩스 의장은 “기존의 검색 경험 중심의 인터넷에서 의사결정 경험 중심의 AI 인터넷으로 전환되고 있다”며 “공급자가 고정 제작한 화면이 아닌 과업 상황과 수행 방식에 따라 AI가 실시간으로 설계·생성하는 유동적인(Fluid) 인터페이스가 표준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AI가 소비자 일상의 기본 인터페이스로 자리 잡으려면 신뢰를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곽승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AI 양가감정(AI Ambivalence)’을 2026년 AI 확산의 핵심 변수로 지목했다. AI에 대한 편리함과 기대, 호기심 같은 긍정적 감정과 동시에 ‘정말 믿어도 될까?’라는 불안, 두려움 등 부정적 감정도 소비자가 함께 느끼는 이중 심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기업은 AI의 성능뿐만 아니라 AI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나 수용을 높이기 위한 ‘프레이밍’에도 주력해야 한다. 곽 교수는 “예를 들어 ‘AI가 이 투자 전략의 성공을 확신합니다’라는 문구는 전문가의 결단력을 암시해 심리적 안정감을 유도하지만 ‘AI에 따르면 이 투자 전략의 성공 확률은 93%입니다’처럼 확률을 제시하면 오히려 불확실성과 조건적 해석을 유도해 경계심을 키울 수 있다”며 “기업은 AI가 제공하는 정보의 표현 방식(프레이밍)에 따라 신뢰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인지하고 서비스를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현장의 실용화 역량에 따라 AI 옥석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괄목할 만한 사용 사례와 함께 실패 사례도 빠르게 쌓이고 있는 것이 AI 도입의 현실이다. 맥도날드는 AI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을 시범 도입했지만 계속되는 오류로 중단했고, 에어캐나다는 AI가 고객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가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임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조직들이 AI 프로젝트를 반복하며 학습을 축적한 덕에 어떤 분야·업무에 AI를 적용해야 효과적인지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는 AI 도입 비용과 효과를 냉정하게 계량해 의사결정하는 문화가 일반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다시 그리는 조직도AI는 조직 지형에도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그간 HR 분야에서 핵심 인재는 평균적인 성과를 내는 직원보다 뛰어난 성과를 내는 직원, 즉 ‘고성과자(High Performer)’와 고성과자로의 빠른 성장 가능성을 지닌 ‘고잠재력자(High Potential)’로 정의돼 왔다. 이들은 조직 인재 분포 곡선의 상위 10%에 해당하며 HR 전략은 이들의 성과와 잠재력을 극대화해 전체 조직의 평균 성과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돼왔다. 그러나 어드바이저들은
AI와 함께 사고하고 학습하며 문제 해결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초고지능형 성과자(Hyper-intelligent performer)’라는 새로운 인류가 등장하면서 인재 경영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권기범 East Texas A&M대 인적자원개발학부 교수는 “조직 내 평균을 상회하는 고성과자 수준을 넘어 업계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직 성과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내는 극소수의 초고지능형 성과자를 중심으로 인재 경영이 재편되면서 실리콘밸리에서는 경쟁사의 핵심 인재를 노골적으로 빼오는 ‘인재 약탈(Competitor poaching)’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압도적인 성과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극소수 핵심 인재에게 자원과 권한이 집중되면서 조직 내 ‘임팩트 계급제’가 나타날 수 있다. 보상의 기준은 ‘얼마나 큰 임팩트(성과)를 창출했는가’ 한 가지로 수렴되고 정해진 성과 기준선을 넘으면 초고연봉이 보장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상이 급격히 하락하거나 해고로 이어지는 ‘급여 절벽형 보상 구조’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태희 리박스컨설팅 대표는 “살아남은 초고성과자에게 최소 수억~수십억 원대 연봉과 전폭적 권한이 집중되고 평균 수준의 성과를 내는 직원 층과 중간관리층이 사라지면서 조직 내 양극화가 심화되고 토너먼트식 경쟁 문화가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AI가 조직 구조를 재편하는 가운데 요구되는 리더십 역시 변화할 전망이다. 김진영 커넥팅더닷츠 대표는 “AI 도입으로 중간관리자가 축소되고 개별 직원의 자율성과 책임이 증가하는 ‘평면화 조직 전환(Organizational Flattening)’이 가속화되면서 리더십은 리더만의 것이라는 사고를 탈피하고 분산형 의사결정 구조가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타인의 감정과 관점을 이해하고 조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을 관리하는 ‘갈등지능’도 리더십의 핵심 역량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김명희 인피니티코칭 대표는 “AI의 발전으로 많은 인력이 감축되고 조직 내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리더의 역할이 재정의되고 있다”며 “자기 인식, 사회적 기술, 상황 적응력, 체계적 사고를 결합한 갈등지능이 리더의 필수 자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함규정 성균관대 경영대학 겸임교수는 “팀 내 갈등, 협업 난항, 낮은 몰입도의 이면에는 종종 감정 표현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감정을 단순히 관리하는 것을 넘어 감정을 읽고, 표현하고, 조율하는 역량인 ‘감정 리터러시(Emotional Literacy at Work)’가 조직 성과와 직결된 전략 역량으로서 재조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AI가 촉발한 구조조정과 업무 지형의 변화는 채용의 종말을 암시하고 있다. 정형화된 직장과 고용 관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AI 기술의 발전으로 직원 없이 혼자 상품 및 서비스를 기획·생산·판매까지 모두 수행해 수익을 내는 1인 창업자인 ‘솔로프러너(Solopreneur)’가 부상하고 있다. 미국에서 5년 전 약 11% 수준이던 솔로프러너 비중은 최근 30%대로 급증했다. 이재형 엠지알브이(MGRV) CHRO는 “내부 직원만을 전제로 한 인력 모델의 한계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솔로프러너의 증가는 기업에 전문성을 가진 인재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며 “계약직, 프리랜서, 파트너 심지어 기술(AI)까지 포괄하도록 인력 개념을 확장해 관리 및 제도화하는 ‘워크포스 생태계(Workforce ecosystem)’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불확실성의 시대, ‘감성’의 힘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시장에서 소비를 움직이는 1순위 변수는 이성보다 ‘감성’이라고 어드바이저들은 입을 모았다. 장순위안(Shunyuan Zhang) 하버드경영대학원 마케팅 부교수가 최근 발표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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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따르면 에어비앤비의 실제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호스트가 프로필 사진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경우 평균적으로 해당 숙소의 수요가 약 3.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소가 불확실성에 대한 지각을 낮추고 심리적 안심을 높여 구매 의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라부부처럼 무해한 미소를 전면에 내세운 캐릭터가 소비자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제·사회적 불확실성이 클수록 미소가 구매를 유도하는 ‘스마일노믹스(Smilenomics)’ 효과는 커질 것”이라며 “신뢰가 낮거나 품질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업종일수록 브랜드 로고나 제품 및 패키지 디자인에 미소를 적용해 긍정적 이미지를 창출하고 소비자의 구매를 자극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해외에서는 소비자들의 감성을 파고든 ‘다윗 기업’들이 이미 각광받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거대한 자본을 앞세워 매장 리모델링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는 ‘골리앗 기업’ 스타벅스보다 소규모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통해 따뜻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더치 브로스 커피(Dutch Bros Coffee)가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주재우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는 “‘브로이스타’라 불리는 더치 브로스 커피의 바리스타들은 고객의 이름과 좋아하는 음료를 기억해 주문 순간을 단순한 구매가 아닌 인간적인 대화처럼 느끼게 한다”며 “커피를 팔지만 사업의 본질은 ‘관계’에 두는 전략이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며 재방문과 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비자의 감성·정서를 기반으로 한 AI 서비스도 다양하게 등장할 전망이다. 리테일·이커머스에서는 일명 ‘오늘의 위로템’ 같은 월경 주기나 기분 변화와 연동된 기프트 박스 구독, “오늘 과제 마감날이잖아!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미리 해보자”라며 사용자의 하루를 섬세히 챙기고 감정을 살피는 퍼스널 케어 AI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황세림 성균관대 SKK GSB 교수는 “AI가 단순한 정보 제공 도구를 넘어 인간적인 위로와 케어를 제공하는 디지털 시대의 양육자로서의 역할이 강화될 것”이라며 “엄마처럼 나를 돌봐주는 ‘Mommy AI’가 일상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AI 기술과 SNS 등 플랫폼의 발달로 다양한 경험을 손쉽게 할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기억에 남는 경험을 중시하는 ‘경험 컬렉터(Experience Collector)’로 변모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 해변가의 5성급 호텔보다 캐나다 퀘벡의 얼음으로 만들어진 호텔을 택하는 식이다. 이제 기업은 페인 포인트보다 소비자의 ‘열망 포인트’를 겨냥해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송수진 고려대 글로벌비즈니스대학 교수는 “경험 수집에 열중하는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업은 소비자들이 갈구하는 의미(Meaning), 재미(Fun), 상징(Symbol)의 세 가지 열망 포인트를 충족시켜야 한다”며 “이 지점을 충족시키는 경험을 설계할 때 소비자는 단순한 제품 구매자가 아닌 경험을 수집하는 주체로서 브랜드와 깊이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국력, 소프트 파워와 K콘텐츠하드 파워가 세계를 갈라놓는 시대일수록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 있는 건 ‘소프트 파워’다. 김유진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는 하드웨어와 제조 역량을 대신해 콘텐츠·브랜드·문화 코드 같은 무형 자산을 핵심 동력으로 삼아 세계 시장에 진입하는 ‘소프트 파워 기반 세계화(Softpower-based Globalization)’를 향후 기업들이 취해야 할 전략으로 꼽았다. 상징적인 사례가 있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AR 글라스 인터페이스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구글이 지목한 파트너 중 하나가 바로 국내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였다. 기술만큼이나 브랜드·디자인·스토리텔링 역시 제품의 완성도를 좌우할 중요한 요소이며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임을 보여준 대표 사례다. 일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K팝 세계관을 테마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글로벌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한국 전통 문양으로 디자인한 와인 캐리어가 아마존 해당 카테고리 1위를 기록한 사례 역시 한국 소프트 파워의 저력을 방증한다. 김 교수는 “한국의 문화적 매력을 레버리지 삼아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스케일업하는 소프트 파워 기반 전략을 미래 성장 엔진이자 글로벌 확장의 플레이북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소프트 파워를 경제적 선순환으로 전환하는 엔진은 바로 ‘K콘텐츠 루프’다. 하나의 장르에서 촉발된 매력이 다른 장르로 끊임없이 확장, 소비되며 거대한 비즈니스 생태계를 형성하는 순환 고리를 뜻한다. K드라마, K팝, K웹툰 등 K콘텐츠 소비자가 K뷰티, K푸드 등 타 분야로 관심을 확장하며 산업의 동반 성장을 견인하는 패턴이 대표적이다. 이때 핵심은 IP(지적재산)의 다각화와 플랫폼 시너지다. 원소스 멀티유즈(OSMU)를 넘어 캐릭터·세계관 등이 각기 다른 새로운 상품군과 서비스로 파생되고 글로벌 플랫폼이 이 순환을 촉진한다. 전정환 크립톤 부대표는 “K콘텐츠 루프는 수요를 만들어내는 소비자와 이를 활용해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공급 기업 간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된다”며 “기업은 팬덤과의 상호작용 및 플랫폼 활용, 산업 간 융합을 통한 시너지 창출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루프는 콘텐츠를 넘어 물리적 공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한국이라는 장소의 감성이 복수의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재현·소비되는 현상을 ‘포터블 멀티로컬리티(Portable Multilocality)’라고 정의했다. 홍콩 소호의 ‘부산’ 테마 주점, 뉴욕의 ‘기사 식당’, 인도네시아의 ‘포장마차’ 프랜차이즈, 필리핀의 ‘한강 K라면’ 카페 등 세계 곳곳에서는 한국의 로컬 감성이 키트처럼 수출돼 현지화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강 연구원은 “한국성(Koreaness)을 상품, 서비스 또는 경험으로 연계하고자 하는 기업은 한국에서 볼 법한 간판, 글씨체, 조명, 인테리어 등 한국적 공간이 제공하는 총체적 경험을 세세하게 설계하고 특정 지역이 가진 고유의 라이프스타일과 이미지를 브랜드에 투영하는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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