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등장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개념이 진화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촉발한 중국·러시아 중심 브릭스의 팽창이 미국 중심 일극 체제를 흔들어 놓고 있어서다. 중진국판 G7을 꿈꾸는 브릭스는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아랍에미리트 등 아프리카-중동 국가들을 품은 데 이어 동남아시아 국가를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 전반으로 영향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선진국의 지배에 대응해 개발도상국 사이의 협력을 강조해온 글로벌 사우스 개념이 글로벌 패권 전쟁의 향배를 가를 제3지대, ‘익스텐디드 글로벌 사우스(Extended Global South)’로 확장하고 있는 배경이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11북반구 저위도와 남반구에 자리 잡은 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 등지의 신흥 개발도상국을 가리키는 말. 미국의 저술가 칼 오글스비(Carl Oglesby)가 1969년 한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제3세계’를 대체하는 말로 사용하면서 널리 쓰이는 용어가 됐다.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멕시코를 비롯한 120여 개 국가가 글로벌 사우스로 분류된다.
닫기 오래전 등장한 이 용어가 ‘익스텐디드 글로벌 사우스(Extended Global South)’라는 이름을 통해 2025년 핵심 키워드로 다시 소환된 이유는 분명하다.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흔들리고 있고 이 체제를 흔드는 중심에 바로 글로벌 사우스의 주요 국가에 해당하는 브릭스(BRICS)가 자리 잡고 있어서다.
2006년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4개국 연합체로 출범했던 브릭스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난해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등을 회원국으로 추가하며 한껏 덩치를 키웠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아르헨티나가 가입을 철회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입 발표 직후 ‘검토 중’으로 입장을 번복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중진국판 G7’을 꿈꾸는 이들의 행보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순회의장국인 러시아에 따르면 브릭스에 가입을 신청하거나 검토 중인 국가의 숫자는 30여 개국에 달한다. 오랜 기간 유럽연합(EU) 가입을 타진해왔던 튀르키예를 비롯해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주요 국가도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오는 10월 러시아 카잔 정상회의에서 신규 회원국을 결정하는데 이를 기점으로 국제사회에서 브릭스의 힘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층 강력해진 브릭스의 목적은 분명하다. 비슷한 위치에 있는 글로벌 사우스 내 다른 국가들과 연대·협력해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에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이다. 선진국 그룹인 글로벌 노스의 ‘지배’에 대응해 개발도상국 간의 ‘협력’을 강조했던 기존 글로벌 사우스의 개념을 뛰어넘어 글로벌 정치·경제 패권 전쟁의 향배를 가를 캐스팅보트로 떠오른 익스텐디드 글로벌 사우스 개념을 2025년의 핵심 키워드로 주목해야 할 이유다.
김경준kjunkim@hanmail.net
CEO스코어 대표
김경준 대표는 딜로이트컨설팅 대표이사, 딜로이트 경영연구원장 및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기업데이터연구소인 CEO스코어 대표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디지털 인문학』 『세상을 읽는 통찰의 순간들』 『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마흔이라면 군주론』 등이 있다. 서울대 농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