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군주론에서 배우는 ‘균형적 리더십’

냉혹한 현실 이겨내야 숭고한 이상 실현
선-악, 관대-엄격함 모두 적절히 구사를

김경준 | 391호 (2024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기술 발전과 MZ세대의 사회 진출로 리더십과 조직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도덕론적 관점에 입각한 리더십 스타일이 주목받고 있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리더십 스타일이 고착화되지 않은 중간관리자라면 리더십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즘은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상을 연상시키지만 사실 그 본질은 ‘선악의 이분법적 구분을 벗어나 인간 특성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자유의 이면에는 늘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대의명분이 아닌 명확한 인센티브를 제시해야 부하 직원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또한 중간관리자는 다른 리더와 부하 직원의 성향에 따라 ‘예술가’와 ‘병사’ 역할을 오가며 조직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GettyImages-1165014051


조직문화와 리더십은 주어진 환경에서 공동체의 생존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개별 공동체의 생활 환경에 따른 생존 방식의 최적 형태가 조직문화와 리더십으로 정립된다. 만약 ‘환경-문화-리더십’의 불일치가 커지면 생존력이 떨어져서 도태된다. 또한 그 최적점도 끊임없이 이동한다. 환경이 변하면 생각도 변하기 때문이다. 조직문화의 본질은 공동체의 생존력 확대다. 리더십은 이 목표를 향해 구성원들을 이끌어 나가는 능력이다. 본질적 측면은 변하지 않지만 이를 실천하는 스타일은 시대와 여건에 따라 변화한다. 본질을 유지하되 시대에 따른 외양인 스타일을 변화시키면 ‘리더’가 되지만 반대로 본질을 놓치고 시대착오적인 과거 스타일만 고수하면 소위 ‘꼰대’가 된다.

조직문화, 리더십에 모범 답안은 없다. 조직문화와 리더십의 특성들도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개인과 조직이 선택하고 발전시킨다. 또한 동일한 특징도 환경에 따라 장단점이 변한다. 평상시에는 여유롭고 자유롭게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전쟁과 재해 등 위기 시에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명령, 실행을 단행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특히 패러다임 전환의 격변기라는 환경은 상대적으로 변화가 느린 조직문화, 리더십을 기다리기 어렵다. 이런 시기일수록 본질을 성찰하면서 변화의 지향점과 속도를 설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조직 내부적으로 혼란과 갈등이 증폭되면서 표류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리더와 현실적 리더

문명이 발달하고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리더십은 자연히 관심사가 됐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역사서, 철학서가 리더의 덕목과 역량을 다루고 있다. 리더십은 개인적 품성, 조직적 사명, 시대적 요구가 복합적으로 결합돼 발휘되는 일종의 종합예술로서 크게는 ‘도덕적 당위론’과 ‘현실적 존재론’의 2가지 관점으로 대별된다. 고전 철학에서는 동양의 공자, 맹자, 퇴계 및 서양의 플라톤, 루소가 도덕론의 범주이다. 반면 동양의 한비자, 순자, 율곡을 비롯해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가 현실론으로 분류된다.

도덕적 당위론은 고차원의 덕성과 윤리로 구성원을 이끌면 조직은 발전하고 성과도 높아진다는 입장이고, 현실적 존재론은 분명한 원칙을 수립하고 적용하는 신상필벌(信賞必罰)로 조직을 이끌면 성공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는 두 가지가 상호 보완적이면서 상호 순환적인 측면이 있다. 이상만 추구하면 허황한 도그마에 함몰되면서 현실 중시로 전환하고, 또한 현실만 추구하다 보면 협량하고 비루해져서 다시 이상으로 관심을 돌리는 나선형 변화가 반복된다.

도덕론적 관점은 리더십 자체가 목적이 돼 개인의 품성을 함양하는 자기 수양으로 귀착되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기본적으로 리더십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군인은 승리, 기업은 성장, 국가지도자는 번영이라는 목표를 추구한다. 군대 지휘관이 훌륭한 인품을 갖췄고 신망도 높은데 정작 전투에서 연이어 패배한다면 리더십은 무의미하다. 국가지도자가 숭고한 명분과 정의를 추구했지만 막상 나라가 패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간관리자여, 리더십의 균형을 잡아라

국내 기업들은 디지털 혁명이라는 외부적 환경 변화에 따라 내부적으로도 조직문화와 리더십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수직적, 폐쇄적, 경직적 분위기를 벗어나 디지털 시대에는 수평적, 개방적, 유연한 조직문화를 지향한다. 리더십도 과거의 명령과 통제, 지시와 복종에서 벗어나 소통과 협력, 공정과 이해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일에 대한 사람들의 회의감이 만연해지고 MZ세대가 조직의 주요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조직원의 웰빙이 주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이에 도덕론적 관점의 리더십, 조직문화의 필요성이 더욱 대두됐다. 보통 관리자에 오르면 악하기보다는 선한 인상을 주는 관리자가 되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내부 질서가 흐트러지면서 책임감이 실종되고 조직력이 후퇴하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어제까지는 젊은 인재들의 퇴사를 방지하는 게 주요 쟁점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공정과 보상을 강조하는 젊은 세대들을 어떻게 이끌어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심지어 저성과자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내보낼 수 있을지를 두고 머리를 싸매는 기업도 있다는 것이 경제 위기의 불안감이 고조된 오늘날 기업의 냉혹한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조직의 중추가 되는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 상명하복의 경직성을 탈피해 디지털 시대의 자율적 역동성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특히 중간관리자들이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면서 안정감 있게 조직원들을 이끌어 가는 게 핵심이다. 중간관리자들은 경영진의 지향점과 조직원의 에너지를 갈무리해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심선이다. 몸에 비유하면 경영진이 머리, 조직원이 손과 발이라면 중간관리자는 척추이다. 머리만 있으면 구호만 거창하고, 손과 발만으로는 지엽적 동작에 그친다. 척추가 그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하고 동작을 조율해야 몸이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게 된다.

동시에 중간관리자는 리더십을 경험하는 초기 단계이다. 소규모 조직이라도 경험과 관점, 입장이 다양한 타인과 호흡하면서 목표를 향해 이끌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조직의 요구는 많고 시간은 빠듯하기 마련이다. 누구나 잘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면서 각자 나름의 리더십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 중간관리자 단계에서 인간과 조직의 복합성과 다면성을 경험하고 이해하면서 리더십에 대한 현실적 관점을 정립해야 다음 단계에서 역량 있는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서양의 현실적 리더십을 대표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프리즘으로 삼아 AI 시대 중간관리자들이 견지해야 할 리더십의 균형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GettyImages-1981362360


배덕(背德·immoral)이 아닌 초(超)도덕(amoral)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는 르네상스 이탈리아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출생했다. 29세인 1498년부터 1512년까지 15년 동안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당시는 1492년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으로 대항해 시대가 개막되면서 유럽의 주도권이 피렌체, 베네치아, 제노바 등 이탈리아 지중해 도시국가에서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 대양 영토국가로 이동하는 패러다임 변환기였다. 그는 국제질서 격동기의 약소국 외교관으로 최일선에서 경험한 내용을 『군주론』에 압축했다.

평상시에 흔히 접하는 마키아벨리즘, 마키아벨리스트 등에서는 통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활하고 무자비한 인간 군상’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이유를 불문한 생존’만을 지상 과제로 삼는 저급한 처세술이라면 500년의 시간을 이겨내고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이론을 찬찬히 살펴보면 ‘선악을 가리지 않는 목적 지상주의자’라는 폄하가 단세포적 오해임을 알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배덕(背德·immoral)’이 아니라 ‘초(超)도덕(amoral)’을 주장했다. 공동체를 책임지는 현실의 리더는 선과 악의 평면적 이분법을 벗어나 인간의 복합성을 통찰해야 하며 또한 일반인과는 다른 도덕적 잣대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초도덕적 의사결정을 실천해 공동체를 지켜낸 리더들의 사례를 통해 선악 사이 균형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1. 관대한 악(惡) 엄격한 선(善)의 역설
– 일본항공을 회생시킨 이나모리 가즈오

악덕처럼 보이더라도 번영을 위해서라면 행해야 한다. 미덕처럼 보이는 것도 실행했을 때는 파멸로 이어질 수 있고 반면에 악덕처럼 보이더라도 행하면 안전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군주론 15장

도덕론적 리더십의 관점에서 통상 관대하고 온유한 리더는 선(善)이며, 엄격하고 냉정한 리더는 악(惡)이라고 규정한다. 이나모리 가즈오(1932~2022)는 이러한 단선적 이분법을 초월하는 리더십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태어나 28세에 전자기기 제조 기업 교세라를 창업해 세계 100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존경받는 기업인이었다. 2010년 2월, 79세 고령에 하토야마 유키오 수상의 간곡한 부탁으로 회생불가능 판정을 받은 거대 부실 파산 공기업 일본항공(JAL)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 6개월 만인 2010년 8월 법원에 회생 계획을 제출하고 1년 만에 4만8000명의 직원 중 1만6000명을 감축하는 살벌한 메가톤급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다행히 일본항공은 2011년부터 영업흑자를 기록하면서 기사회생했고 소임을 마친 그는 2013년 3월에 퇴임했다.

당시 이나모리 회장은 경영진에게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 있다’는 소신을 자주 피력했다. 과거 경영진은 부실한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보너스와 각종 혜택을 주고, 합심해서 노력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위로하는 작은 선행(小善)을 지속했지만 결국 회사가 파산하는 커다란 악행(大惡)으로 귀결됐다. 많은 피를 흘리지 않으면 회사는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쓰라린 상황을 비정하게 이야기하고 대수술을 통해 재생 기회를 잡는 것이 대선이라는 지론이었다.

‘관대한 악(惡)과 엄격한 선(善)’의 역설은 이나모리 회장의 개인 철학과는 강렬하게 대비된다. 그는 65세에 은퇴 후 5년간 출가했던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인간을 존중하는 자비(慈悲)를 경영 철학의 근간으로 삼았다. 하지만 조직 회생을 위한 대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고 냉혹한 구조조정이라는 악행(?)을 저질렀다. 이는 자비의 포기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수단이었다. 막연한 관대함이 아닌 전략적 비정함이 공동체를 되살리고, 평면적 자애심이 아닌 현명한 잔인함이 진정한 자비가 되는 리더의 역설을 이나모리 회장이 보여준 것이다.

GettyImages-1187175050_[변환됨]


2. 악이 선을 빛나게 한다
-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CEO

완벽한 선을 추구하지 말고 악해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 속에서 파멸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지키려는 군주는 악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 군주론 15장


미국의 투자 전문가 워런 버핏은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며 많은 경영인에게 존경의 대상이다.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하고 장기간 보유해 수익을 올리며 수백억 달러를 기부하는 활발한 자선과 검소한 생활 태도로 존경받는다. 하지만 투자자로 비치는 현자의 이미지와 실제로 그가 회사를 경영하는 방식에는 다른 측면이 있다.

1998년 콘도와 같은 고가의 자산을 부분 소유하는 회원제 서비스와 같은 방식으로 제트기를 임대하는 네트제츠(NetJets)를 인수했을 때다. 당초 예상과 달리 조종사들의 잦은 파업과 방만한 운영으로 부진이 이어지자 버핏은 조종사 300명을 단번에 해고하는 초강수를 시작으로 철저한 감량 경영을 단행했다. 막연한 선의로 직원들을 대하다가는 기업 자체의 존립이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또한 투자자로서 투자금을 보호해야 했다. 이후 네트제츠의 수익은 5배 가까이 불어났고 경영은 정상화됐다.

버핏은 요란한 마찰음을 내지 않고 단번에 경영진 개편을 결행했다. 1991년 월가의 투자은행인 살로먼브러더스를 인수하면서 부도덕한 핵심 인원 20여 명을 한순간에 정리했고, 1998년 코카콜라의 CEO 더글러스 이베스터도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되자 가차 없이 퇴진시켰다. 전기 작가 엘리스 슈뢰더는 “버핏의 현명함이나 인자함은 냉정함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고 평가한다.

3. 개인적 도덕을 우선하다 패망하다
- 송나라 양공

나라의 힘을 키우는 일보다 자신의 욕구를 좇는 왕이 결국에는 나라를 잃어버리는 예도 심심찮게 있다. 따라서 전술을 소홀히 하는 것은 나라를 잃는 주된 원인이 되는 반면 효율적인 전술은 종종 나라를 차지할 수 있게 한다. - 군주론 14장

송(宋)나라 양공(襄公)은 중국 춘추시대(BC771~BC476) 5패(五覇)에 속하는 강력한 군주였다. 인근 약소국 정(鄭)나라가 남방 강대국 초(楚)나라와 친선 관계를 돈독히 하자 양공은 이를 문제 삼아 정나라를 공격했다(BC638). 초나라가 원군을 보내자 양공은 홍수(泓水)에서 결전을 벌이려고 강변에 먼저 도착해 진용을 갖췄다. 초나라 군사가 강을 건너기 시작하자 참모들은 ‘적군이 강을 절반쯤 건넜을 때가 절호의 찬스이니 공격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양공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대편의 약점을 노리는 것은 군자가 취할 바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마침내 초나라 군사가 강을 다 건넜다. 참모들은 적군이 대형을 갖추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고, 더 늦추면 위험하다고 간곡히 진언했다. 양공은 이 또한 옳지 않다고 물리치고 한참을 더 기다려 초군이 전투태세를 갖춘 후에야 싸움을 시작했다. 승리의 기회를 놓친 송나라는 대패했고 양공도 목숨을 잃는다.

후세 사람들은 어설픈 도덕률에 빠져 전쟁에 지고 목숨까지 잃은 양공의 필요 없는 덕, 어리석은 관용을 일컬어 송양지인(宋襄之仁)의 교훈으로 삼았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상대방의 약점을 노리는 것이 개인 차원에서는 분명한 악덕이다. 하지만 공동체의 운명을 걸고 전쟁에 임하는 리더에게는 전략적 선택지에 불과하며 피상적 선악 개념으로 이를 재단할 수 없다.

4. 자비심이 아니라 이기심이 구원한다
- 영국 정부의 죄수 수송 인센티브 제도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 인간이란 자기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군주론 17장

인간이란 어떤 악이든지 예사로 범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무결한 성인이지도 않다.- 로마사 논고 1-27

1770년 4월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이 호주 대륙을 발견했다. 영국 정부는 호주를 중죄수의 유형지로 삼아 호송을 시작했다. 1788년 1월 호주 초대 총독으로 임명된 아서 필립이 이끄는 11척의 선단이 죄수 732명을 포함한 1373명을 싣고 시드니에 상륙했다. 죄수들은 형기를 마치면 자유인이 되는 조건으로 호주행을 선택했는데 다수가 오랜 항해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다. 1790년부터 3년간 죄수 4082명 중 498명이 죽었고, 심지어 424명 중 158명이 죽는 배도 있었다. 가혹하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정부는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죄수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자비롭고 신앙심 깊은 선장을 선발하는 등 다양한 대책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의외의 방법으로 효과를 거뒀다.

묘안은 ‘인센티브 원리’였다. 선장에게 주는 죄수 호송비의 지급 기준을 기존의 ‘죄수 1인당 지급’에서 ‘살아서 도착한 죄수 1인당 지급’으로 바꿨다. 선장들이 죄수들의 건강에 신경 쓰게 되자 1793년 422명의 죄수를 이송할 때 사망자는 단 1명이었다. 이후 영국은 약 16만 명의 죄수를 안전하게 호주로 보냈다. 결과적으로 선장의 자비심이 아닌 이기심이 죄수들을 구원한 것이다. 당위적 이타심보다 본능적 이기심이 문제를 해결하고 정부-선장-죄수 간의 상호 이익을 확보하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 사례다.


디지털 시대 리더십과 조직문화의 3대 지향점

1. 자유와 책임이 균형인 생태계

싸움에서 이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법에 의한 방법과 힘에 의한 것이다. 전자는 인간의 수단이고 후자는 동물의 수단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전자의 방법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후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즉, 군주는 동물과 인간의 수단을 적절히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 군주론 18장

동물원의 동물들은 안전하다. 자유가 없지만 책임도 없다. 반면 대평원 동물들은 고달프다. 천적들을 경계하며 먹잇감을 찾고 집단 내부 경쟁도 치열하다. 자유롭지만 책임이 뒤따른다. 하지만 우량한 개체가 번식하고 변종(變種)이 출현하고 진화가 일어난다. 대평원은 개체에게는 고달프지만 집단 차원에서는 역동적인 생태계이다. 반대로 동물원은 개체 차원의 안정성은 높지만 역동성은 실종된 화석(化石) 같은 공간이다.

기업 환경의 관점에서 아날로그 시대를 닫힌 동물원에 비유한다면 디지털 시대는 개방적 대평원이다. 아날로그 시대는 명령과 통제, 수직적 위계, 기능적 분업에 기반하는 자유와 책임이 모두 낮은 공간이다. 반면 디지털 시대는 창의와 자율, 수평적 네트워크, 전문가들이 협력하는, 자유롭되 책임도 큰 공간이다.

디지털 조직문화의 핵심은 자유와 책임의 균형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책임감이 수반되지 못하면 한계가 분명하다. 조직에서 자유만 넘치면 무질서한 무리로 전락하고, 책임만 강조하면 경직된 화석이 되기 때문이다.

흔히 구글-애플-메타 등 디지털 시대 아이콘 기업들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표면상 자유로운 분위기의 이면에 있는 생태계와 같은 엄정한 질서라는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업무 방식은 자유롭게 선택하지만 성과에 대한 책임은 분명하다. 출퇴근 시간, 연장근무, 휴가 일수 등에 대한 세세한 간섭은 없지만 목표는 책임지고 달성해야 하고 구조조정은 일상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소위 직장인의 천국으로 보이는 이들 회사에서도 자발적 퇴사자가 여타 기업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발생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2. 이기적 동기와 이타적 협력의 제도화

장어는 뱀과 비슷하고, 누에는 애벌레와 비슷하다. 사람은 뱀을 보면 놀라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어부는 장어를 손으로 움켜쥐고, 아낙네는 누에를 주워 담는다. 이익이 있는 곳에서는 모두 용감무쌍한 장수로 변한다. - 한비자

인간에게 유전자 차원에서 입력된 생존과 번식이라는 본능을 추구하는 이기심은 구체적 행동을 유발하는 심층적이고 강력한 동기다. 도덕과 철학, 종교 등의 정신문화적 요소보다 앞서 심층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간들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 가장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이유이다. 타인과의 협력도 장기적, 간접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돼야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현실에서 이타적 삶은 숭고하지만 엄연한 현실에서 인간은 이기적 존재임을 마키아벨리는 통찰했다.

이러한 이기심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상호 이익의 사회적 행동으로 전환된다. 경제학의 원조인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그들의 생각 덕분이다”라고 통찰했다. 이런 배경에서 실질적 인센티브 없이 추상적 이타심만 강조하는 기업은 현실과 괴리돼 생존이 어려워진다. 조직 차원에서는 개별 구성원의 이기적 동기를 합리적으로 수용하고, 이의 연장선에서 협력적인 이타적 행동을 장려해 조직적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GettyImages-1272099720_[변환됨]


인간들을 움직이는 2가지 동기는 이익과 가치이다. 이익이 크다면 가치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조직원들은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우수한 인력일수록 이런 상황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 또한 가치에 공감해도 헌신적으로 일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도 이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헌신성이 오랫동안 유지되기는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리더십이란 이익과 가치라는 물질적, 정신적 인센티브를 정교하게 운영해 조직원들의 헌신을 이끌어내어 목표를 달성하는 역량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인센티브는 조직 단위에서 설계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세계적인 리더십 분야의 대가인 게리 유클에 따르면 리더는 부하 직원과의 상호 과정에서 영향력 전술을 통해 과업의 인센티브를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그는 상대에게 구체적인 과업 요구에 응하게 만드는 11가지 전술을 제안했는데 그중 이해관계 설명(Apprising), 교환(Exchange), 협력(Collaboration)은 상대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인식하게 만든다.

이해관계 설명은 해당 과업을 통해 상대방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알려주는 것이며 교환은 해당 과업을 통해 상대가 얻을 수 있는 직접적 혜택은 없지만 리더 차원에서 그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협력은 공동의 목적을 함께 달성하며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고 제의하는 것이다. 즉, 이해관계 설명은 “이 일이 너에게 좋아”, 교환은 “이 일 잘하면 너에게 보상을 줄게”, 협력은 “이 일 같이하면 효율적이야”라고 상대방의 승낙을 유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전술은 부하 직원에게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장에서 다양한 구성원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중간관리자에게는 더욱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비윤리적인 요구를 수용시키는 데 활용할 경우 오히려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3. 액체적 역동성과 고체적 안정성의 조화

현명한 군주란 눈앞에 보이는 일만이 아니고 먼 장래의 문제도 내다보고 대처해야 한다. 위험이란 미리 알면 쉽게 대비할 수 있지만 코앞에 닥쳐올 때까지 보고만 있으면 그 병은 악화돼 불치병이 된다. - 군주론 3장

디지털 시대 기업 환경의 특징은 VUCA (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mbiguity)로 ‘변동성-불확실성-복잡성-모호성’의 동시적 증폭이다.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역동성을 높여야 하지만 기존 부문의 안정성도 중요하다. 역동성만 높아지면 조직이 불안정해지고, 안정성이 지나치면 시대 변화에 뒤처지는 화석으로 전락한다.

사업 구조의 관점에서 신규 사업은 외견상 화려하지만 아직 수익성이 낮고 미래도 불투명하다. 반면 기존 사업은 진부해 보이지만 안정적으로 현금이 창출되는 근간이다. 현재에만 집중하면 미래가 없고, 미래에만 집중하면 현재가 불안하다. 따라서 조직의 현재를 위해서는 고체적 안정성이 필요하고 미래를 위해서는 액체적 역동성이 필요하다. 모든 조직에 창의성과 역동성을 일률적으로 강조하면 불안정성이 지나치게 증폭되고 혼돈에 빠진다. 반대로 확실성과 안정성만 강조하면 경직된 화석이 된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서는 전체 조직 차원에서 개별 단위의 역할 분담으로 접근해야 한다.

저서 『룬샷』에서 사피 바칼은 디지털 시대의 조직은 역동성 확보를 위한 ‘프로젝트성 예술가’와 안정성 확보를 위한 ‘프로세스성 병사’가 독립적으로 병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수인 창의적 예술가는 미래를 개척하고, 다수의 안정적 병사는 현재를 유지하는 역할 분담이다. 경영자는 예술가로부터 역동성을 발휘시켜 미래를 개척하고, 병사로부터 안정성을 확보해 현재를 관리하는 양면적 역량이 필요하다.

조직에서 리더십은 일종의 공유 효과를 가진다.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 아래 속한 고위관리자, 중간관리자의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 조직의 행보가 다르게 결정될 수 있다. 중간관리자는 자신의 상사인 직속 임원과 부하 직원들의 성향에 따라 예술가와 병사 사이의 역할을 오가며 조직의 균형을 잡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숭고한 이상을 추구하려면 냉혹한 현실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모든 게 다 보이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밖에는 보지 않는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도덕론은 믿고 싶은 편안한 환상인 반면 현실론은 부정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다. 도덕론을 앞세우는 종교가 지배적인 분위기인 서양 르네상스 시대에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본능과 복합성,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냉혹함, 힘과 책략을 구사하고 선악을 초월하는 리더 역할의 다면성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했기에 그토록 비난받고 배척당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현실은 진실과 맞닿아 있기에 지금까지 생명력을 가진다. 그의 관점에서 리더십의 요체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를 생존·발전시키는 것이다. 군주론의 핵심은 ‘숭고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냉혹한 현실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차원 높은 현실론이자 진정한 이상론이다.

21세기에도 유효한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가치는 리더십의 균형 감각에 있다. 역량 있는 리더라면 추상적 도덕론이나 극단적 현실론에 함몰되지 않고 책무 수행의 전체적 맥락에서 선과 악, 관대함과 엄격함, 용기와 책략 등의 상반적인 덕목들조차 적절히 구사해야 한다.

특히 리더십을 경험하는 초기 단계인 중간관리자들은 이러한 복합성과 다면성에 대한 통찰을 더욱 명심해야 한다. 리더십 경험이 축적된 고위관리자는 본인만의 리더십 스타일을 개발하고 이를 고수하려 한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다양한 리더십의 면모를 강조하는 것은 그리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경영 환경에 따라 요구되는 리더십 행동은 장단기적으로 꾸준히 변화할 것이다. 리더십 스타일이 고착화되지 않은 중간관리자 시기에 세상이 강조하는 리더의 역할 이면에 숨겨진 역할은 없는지 고민해봐야 하는 이유이다. 도덕과 현실, 어느 하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다른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개방성과 그를 기반으로 한 균형 감각을 찾는 것이다.
  • 김경준 | CEO스코어 대표

    필자는 딜로이트컨설팅 대표이사, 딜로이트 경영연구원장 및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기업 데이터 연구소인 CEO스코어 대표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마흔이라면 군주론』 『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 『팀장이라면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세상을 읽는 통찰의 순간들』 『디지털 인문학』 『AI피보팅』 등이 있다. 서울대 농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kjunkim@hanmail.net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