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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적 혁신’ 이론으로 본 AI 기술 개발

기술 고도화와 추격에만 매몰되지 말고
보편성 확보, 비고객 문제 해결에 주목해야

윤지환 | 388호 (2024년 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AI를 ‘파괴적 기술’로 칭하며 AI가 산업 지형을 바꾸고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주창한 ‘파괴적 혁신’ 이론에서 파괴적 기술은 시장을 압도하는 최신의 고성능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주류에서 벗어나 기존 고객의 말을 듣지 않고 단순하고 저렴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을 뜻한다. 파괴적 혁신 이론에 따르면 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변화하는 현상에 흔들리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문제를 세심히 관찰하라는 것이 AI 시대, 파괴적 혁신이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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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기술의 홍수 시대에 접어들었으며 특히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유례없이 커져가고 있다. 인류의 삶에 미칠 AI의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에 대해 사회 각 분야에서는 기대와 우려를 함께 품고 있다. 오늘날 AI가 교향곡 수준의 음악을 작곡하고, 전문가 수준의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더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AI는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선사하고 있다. 같은 웹사이트에 접속하더라도 사용자마다 다른 화면을 보게 되는 것은 AI가 각자의 검색 키워드와 취향을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와 광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기술의 발전이 야기하는 혼란도 무시할 수는 없다. AI로 인해 대학은 리포트 작성의 주체가 과연 학생인지 AI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예술계는 저작권을 비롯한 지적재산권의 귀속에 대해 논쟁하게 됐으며, 사회는 AI가 인류를 통제하고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며 걱정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AI 이전에는 메타버스, 증강현실(AR) 및 가상현실(VR), 블록체인 등의 기술들이 관심을 모았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몇 년간 AI를 포함해 수많은 신기술이 세상에 속속 등장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한 기술에서 다른 기술로 신속히 이동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에 대한 안목과 혁신의 필요성을 더욱 키웠다. 그 결과, 많은 경영자가 신기술 개발과 응용, 혁신에 대한 강박을 갖게 됐다. 하지만 기술 홍수 시대일수록 어떤 새로운 기술에 주목해야 하고, 혁신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은 점점 커지고 있다. 모두가 새로운 기술에 주목하지만 이 기술을 실제 경영에 어떻게 접목시킬지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해답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최근 참가한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4’의 화두 역시 단연코 AI를 비롯한 다양한 기술이 여러 산업에 미칠 파급력이었다. 모든 산업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과 혁신이 융복합적으로 얽혀 변해가는 미래가 중요한 화두가 됐으며 이러한 변화가 인류의 삶을 크게 변화시킬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양한 기술 중 어떤 기술이 우리 삶에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술의 홍수에 표류하지 않고 혁신을 위한 이정표를 찾기 위해 필요한 나침반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개발하거나 접목해야 할 기술을 논할 때, 또 당장 실행해야 할 혁신을 논할 때, 수많은 기술과 혁신의 대상 중에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북극성(North Star)’으로 삼을 만한 이정표는 무엇일까? 모든 기술 혁신의 기준점이 될 북극성을 기술경영과 혁신의 고전인 ‘혁신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에서 찾는다.


혁신기업의 딜레마,
위대한 기업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2020년 작고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 교수가 집필한 『혁신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 – When New Technologies Cause Great Firms to Fail)』는 1995년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을 통해 선보인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이론을 기반으로 1997년 출간한 책이다. 미국 유타주 출신인 크리스텐슨 교수는 모르몬교 신자로 1971~1973년 한국의 부산과 춘천 등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면서 한국과 연을 맺기도 했다.1 크리스텐슨 교수는 경영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싱커스 50(Thinkers 50)’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경영 사상가 50인에 수차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HBR이 가장 훌륭한 논문을 써낸 저자에게 수여하는 ‘맥킨지상(McKinsey Award)’도 여러 번 수상했다.

이 책에서 소개된 파괴적 혁신 이론은 인텔, 애플, 아마존 같은 많은 혁신 기업에 영감을 줬다. 일례로 1990년대 크리스텐슨 교수는 인텔을 방문해 앤디 그로브 당시 CEO를 비롯해 여러 임직원을 대상으로 파괴적 혁신에 대해 강의를 수차례 진행했다. 교육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인텔은 고가 제품에만 매달리지 않고 대중적인 제품으로 ‘셀러론’이라는 저가의 저사양 프로세서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AMD, Cyrix 같은 파괴적 공격자들의 시장 진입을 저지하며 인텔을 지켜냈고, 중요한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혁신기업의 딜레마는 크게 2개의 파트와 11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다. 책의 1부에서는 주로 파괴적 혁신 현상이 여러 업계에서 우량 기업들에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례를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기술의 발전과 제품의 수명 주기가 빠른 디스크 드라이브 산업(5.25인치에서 3.5인치로)에서부터 기술 발전 속도가 상대적으로 늦어 몇십 년 동안에 걸쳐 변하는 굴삭기 산업(대형 케이블 굴삭기에서 소형 유압식 굴삭기로), 기술 혁신과 더불어 체계적인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중요한 철강 산업(종합 제철소에서 미니밀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산업에서 파괴적 혁신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사례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 총체적인 관점으로 분석해 설명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특히 다양한 산업에 걸쳐 연구를 수행하면서 뜻밖의 발견을 하게 됐는데 바로 우량 기업들은 그들이 속한 산업을 막론하고 서로 일치하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고객의 말을 경청하면서 주력 시장의 변화에 대응했고,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기술, 제품 및 제조 능력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경영의 정석을 실천했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우량 기업들이 업계의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쇠락하는 원인이 바로 그들을 정상까지 올려놓았던 바로 그 성공 요인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즉 고객의 말을 경청하면서 주력 시장의 요구에 대응했고,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기술, 제품, 제조 능력에 능동적으로 투자했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실패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이다. 즉 기업의 성공 요인과 실패 요인이 같은 역설적인 딜레마 현상을 발견했기에 책 제목에 ‘딜레마’라는 문구를 넣게 됐다.

파괴적 기술이 처음 세상에 등장할 때는 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선도적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능하게 한 훌륭한 기술보다 열위에 있고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감당할 만한 성능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대개의 경우 시장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파괴적 기술은 성능과 사양이 떨어지기에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특성인 ‘저렴하고, 복잡하지 않아 사용하기 편하고, 쉽고, 간단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굳이 고성능이 필요하지 않거나 부유층이 아니어서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그 기술을 기반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점차 쓰기 시작한다.

파괴적 기술에 반응하는 고객들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 개별 상품당 높은 이윤을 창출하지는 못하지만 상대적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이와 동시에 파괴적 기술로 등장한 기업들도 지속적 혁신을 통해 점차 안정성이나 성능을 높여 나가면서 더욱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모으 게 되고 어느덧 시장의 주력으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기존의 강자들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파괴적 기술이 항상 후발 주자에게서만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선도 기업 내에서 파괴적 기술이 개발되기도 한다. 문제는 선도 기업 내에서 이 같은 파괴적 기술은 대부분 환영받지 못한다는 데 있다. 선도 기업의 고가의 기술 우위 제품에 익숙한 고객들이 이런 기술 열위 저가 제품에 실망하는 반응을 보이거나 기업 내 재무 부서에서 마진율이 낮은 제품을 굳이 출시할 필요가 있냐고 태클을 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선도 기업들은 대부분 이런 파괴적 기술을 활용하기보다는 기존의 제품을 좀 더 개선해 더 고성능, 고사양으로 혁신하게 하는 존속적 기술의 발전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파괴적 기술을 바탕으로 저가 시장을 야금야금 장식한 파괴적 혁신 기업에 의해 결국에는 기존 강자들이 시장에서 철수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기존에 잘나가던 우량 기업이 결국 실패하고 몰락하는 이유는 더 나은 성능, 더 좋은 사양, 더 훌륭한 품질 등 위만 바라보며 지속적 혁신에 매달리느라 밑에서 오는 파괴적 혁신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우량 기업과 신생 기업 모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점이다. 우량 기업 입장에선 지속적 기술 혁신에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인, 최선의 경영 전략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그들의 주요 고객이 원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경영 전략에 따르면 기업은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상품과 서비스에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은 더 빠른 속도의 인터넷과 더 높은 음질의 스피커, 보다 선명한 고화질의 TV를 원한다. 따라서 기업은 이러한 소비자의 수요를 면밀히 분석한 후에 소비자가 원하는, 더 좋은 상품을 생산하고자 지속적인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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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적 혁신의 핵심은 기술 혁신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


많은 기업의 경영자는 조직 구성원들에게 파괴적 혁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를 행하도록 당부한다. ‘파괴’라는 강렬한 단어와 ‘혁신’이라는 매력적인 단어가 결합된 파괴적 혁신이라는 용어는 기업이 현 상황을 뛰어넘어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구성원들을 독려하는 목적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기업이 자극적인 동기부여 언어로 종종 사용하는 파괴적 혁신이라는 용어는 사실 이 용어를 처음 창시한 크리스텐슨 교수의 의도와는 전혀 맞지 않다.

‘파괴적 혁신’이라는 용어의 원래 이름은 ‘Disruptive Innovation’, 많은 사람이 ‘Destructive Innovation’라는 용어로 혼동하는데 정작 크리스텐슨 교수는 이 용어를 쓴 적이 없다. ‘Destructive’는 ‘파괴적’이라는 의미에 가깝지만 원래 용어인 ‘Disruptive’의 의미는 ‘파괴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본류에서 벗어난’ ‘와해적’ ‘분열적’이라는 의미에 좀 더 가깝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혁신기업의 딜레마』에서 파괴적 혁신에 대해 정의하기를 ‘경영학 교과서나 비즈니스 전략의 주류에서 벗어나 기존 고객의 말을 듣지 않고 단순하고 저렴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로 정의했다. 즉, 기존에 주목받지 못하던 고객이 존재하는 하위 혹은 신시장을 공략한 후 차츰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서 결과적으로는 기존 시장을 장악하는 전략을 뜻한 것이다. 이는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을 가진 기업이나 새로운 스타트업이 주류 시장이 아닌 밑바닥 시장이나 주류 시장에서 벗어난 새로운 틈새시장에 진입해 안착하는 프로세스다. 또한 대기업들이 고객의 말을 경청하고 기술로 제품을 더욱더 고사양, 고성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기존의 경영 이론과 전략에 충실함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도태돼 와해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혁신의 나침반(북극성)

서론에서 다룬 화두를 다시 보자. AI 기술이 고도화돼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겼던 창의성마저 장악해 수준 높은 동영상을 제작하고 가짜 뉴스와 거짓 딥페이크 영상 등을 만들어 낸다는 기사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AI 외에도 로봇 등 다양한 기술이 범람해 단순 노동직뿐만 아니라 전문직마저 일자리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어두운 소식들이 들린다. 불확실성과 두려움 속에서 기업은 과연 어떤 기술을, 어떻게 혁신해 신사업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AI를 비롯해 날마다 등장하는 여러 기술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표류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나침반은 무엇일까?

혹자는 결국 고객이 답이라며 기존 기업들은 AI 기술을 활용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빠르게 고객 개개인의 니즈를 파악해 더 비용 효율적으로 개인의 니즈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한다. 기존 기업들은 과거보다 고차원적이고 복잡해진 고객의 니즈도 더 고도화된 기술로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같은 논리로 새롭게 등장하는 스타트업들도 AI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 기존 고객들이 좋아할 것이기에 기존 산업에 진입장벽을 낮춰 빠르게 진입하고 단기간에 고성장, 고마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한다. 하지만 ‘혁신 기업의 딜레마’는 이런 때일수록 기업은 이미 존재하는 고객이나 시장, 날마다 등장하는 기술을 고도화 하는데만 매몰되지 말고 더 중요한 본질을 바라봐야 한다고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LLM(Large Language Model, 대규모 언어 모델)과 머신러닝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생성형 AI 기술은 그 특성상 과거에 효과적이었거나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것을 기반으로 미래의 패턴을 예측한다. LLM이라는 초거대 모델은 엄청난 양의 텍스트, 즉, 현재 웹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텍스트를 학습해 다음 단어 예측을 위한 통계 모델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앞서 우량 기업의 기술 혁신 방법과 닮았다. 과거의 성공 방식을 학습해 조금 더 나은 기술적 대안을 내놓는 방식 말이다. ‘파괴적 혁신’ 이론에 따르면 이 같은 방식으로 내놓는 해답이 완전히 틀릴 수도 있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 중요한 본질은 고객과 비고객을 모두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며 겪는 다양한 문제에 초점을 두고 그것을 해결할 기술을 보다 많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방식으로 개발해서 적용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고객이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객이 아닌 사람들은 왜 우리의 고객이 아닌지’에 있다. 또한 기술적으로 어떻게 이들을 우리 고객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고객이 아닌 비고객 또한 결국 사람들이고, 그들 또한 일생을 살아가며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다. 이들 비고객이 겪는 문제를 우리가 기술적으로 더 잘 해결한다면 그들도 우리 고객이 될 수 있다.

‘혁신기업의 딜레마’는 업계에서 기존 고객과 기존 기술의 개선, 기존 주력 시장에만 매몰되는 근시안적인 시야에 경고를 날린다. 고객은 항상 옳고 고객의 말을 경청하라는 기존 경영학의 가르침이 언제나 좋은 충고는 아니라는 것이다. 파괴적 혁신 이론은 성공 가도를 달리던 우량 기업도 실패할 수 있는 이유와 그에 대한 대비책, 그리고 스타트업이 진출해야 하는 프로세스에 대해 설명하는 유용한 이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AI를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 기술도 결국은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 어떻게 사업에 접목해 시장을 선도할지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성공하는 기업들은 기존 고객이나 기술 같은 결과적으로 드러난 현상에 초점을 두지 않고 왜 아직도 고객이 아닌 비고객인 사람들이 존재하며, 왜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는지와 같은 본질에 관심을 둔다. 혁신적인 기업들은 변화하는 현상에 흔들리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문제를 세심히 관찰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기술적 방식을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인 ‘저렴하고, 편리하며, 쉽고 빠르게 해결하는 데’ 접목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발견하거나 개발해 조직을 이끄는 것이 AI 시대에도 진정한 혁신이다.

인간의 성장에 대한 욕구, 더 높은 곳을 지향하는 욕구는 우리를 더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고 더 나은 환경을 요구한다. 또한 이 욕구는 기업으로 하여금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더 비싼 가격을 받아 더 높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위대한 기업의 덕목이라고 믿게 한다. 이를 위해 효율적으로 일하고 고부가가치로 이윤을 더 많이 내야만 할 것 같은 사회적 압박도 존재한다. 하지만 ‘혁신기업의 딜레마’는 우리가 의도적으로라도 계속 낮은 곳을 바라보고, 최고 이윤을 창출해주는 극소수의 고객보다는 고객과 비고객을 모두 포함한 절대다수의 사람들의 문제를 찾으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기술적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는 마음을 가지라고 한다. 무조건 최고 기술과 최고 성능을 추구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에 집중해서 현재 부족한 점을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일단 미미하지만 실천해보고 겸손하게 항상 배우면서 열린 생각으로 여러 의견을 받아들여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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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적 혁신을 시도할 때 유념할 점



① 파괴적 기술 연구소는 본사에서 멀찍이

첫 번째 제언은 기존의 우량 기업이 신생 기업에 파괴되지 않기 위해서는 본사에서 가급적 멀리에 파괴적 기술만 연구하고 개발하는 별도 조직을 신설하고 완전히 분리된 조직으로 따로 운영하라는 것이다. 본사에서 일부러 멀리 떨어뜨리는 이유는 파괴적 기술에 초점을 둔 조직은 지속적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한 모기업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새로운 가치 체계를 가지기 때문에 별도 조직으로 만들어 기존 기업으로부터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고받지 못하게 해야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IBM은 기업용 컴퓨터에 주력하는 뉴욕 본사에서 멀리 떨어진 플로리다에 개인용컴퓨터 조직을 별도로 설립해 의사결정에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지 못하도록 해 커지는 개인용컴퓨터 시장 대응에 성공했다. 구글 같은 큰 기업들이 끊임없이 파괴적 기술을 내놓는 원동력도 이른바 ‘스컹크웍스’라고 불리는 본사로부터 독립된 별도의 기동대 역할을 하는 신규 사업 프로젝트팀 덕이라 할 수 있다.


② 일단 실행하고 궤도를 수정하라


성공을 거둔 신규 사업의 대다수는 계획을 정교하게 세우기보다 미완성된 계획이지만 일단 실행해 본 후 시장에서 무엇이 통하고, 무엇이 통하지 않는지를 학습하면서 최초의 사업 전략을 포기하거나 궤도를 수정하며, 즉 피버팅하면서 진행했다. 새로운 기술들이 나오고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신중히 계획을 세우는 데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일단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행동해보고 시장의 반응을 보며 수정해 나가는 것이 더 주효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시장은 계획을 통해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혼다의 북미 오토바이 시장 진출 사례를 통해 시장은 예측하기보다는 발견에 가깝다는 것을, 그리고 계획을 잘 세우는 것보다는 우선 실행해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혼다는 일본 내에서 자전거와 유사한 형태의 소형 오토바이 사업을 하다가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그 후 오토바이의 최대 시장인 미국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진출을 위해 혼다는 미국 오토바이 시장을 자세히 관찰하고 계획을 세웠는데 혼다가 분석하기로는 미국인들은 오토바이를 장거리 운전에 주로 사용하고 오토바이를 구매할 때는 ‘머슬 바이크’라고 불리는 대형 고성능 오토바이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혼다는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시장에 맞춘 강력한 성능의 오토바이를 설계 및 생산하고, 이를 판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대형 오토바이를 제조해 본 적이 없는 혼다는 엔진 기술력이 미흡했기 때문에 경쟁자인 할리 데이비슨이나 트라이엄프에 밀렸다. 결국 혼다는 미국 시장에서 철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기회가 생겼다. 미국에서 철수하기 얼마 전 한 직원이 일본에서 가져왔던 소형 모터 엔진 오토바이를 출근을 하는데 이를 본 동네 사람들이 그러한 소형 오토바이는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미국의 대형 오토바이들에 비해 혼다의 소형 오토바이가 주부나 대학생들의 쓰임에 더 맞았던 것이다. 이렇게 소형 오토바이를 찾는 현상이 반복되자 혼다는 장거리 고성능 시장에서의 실패를 인정하고 단거리 생활용 혹은 단순 여가용 시장에 집중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한 혼다의 소형 오토바이 ‘슈퍼커브’는 오늘날 단일 기종으로 오토바이 사상 최다 판매 기록을 세운 상품이 됐다.


③ 절대 다수의 비고객을 살펴라

세 번째 제언은 기업 입장에서 최고로 이윤을 높게 창출해 주는 고객의 의견에 매몰되지 말고 절대다수의 비고객층을 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기업 입장에서 최고로 높은 이윤을 창출해주는 고객(최고 이윤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끝없이 개발해 그들로 하여금 재방문하고 재구매하게끔 하는 것이 최고의 경영 전략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러한 최고 이윤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오히려 새로운 성장 사업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최고 이윤 고객은 고객당 높은 이윤을 창출해줄 수는 있지만 그러한 고객의 절대적인 숫자는 아무래도 적을 수밖에 없다. 최고 이윤 고객에게 집중하다 보면 기업은 그보다 절대다수인 대중 고객이 원하는 수준보다 훨씬 뛰어난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게 된다. 이른바 성능과 사양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기대 수준 이상으로 치닫는 ‘과잉 충족’ 현상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저가 시장 또는 주변 시장으로 여기던 비소비층 고객에게서 생기는 성장 기회를 다른 신생 기업들에 뺏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최고 이윤 고객뿐만 아닌 전체 소비층의 제품 이용 동향을 면밀하게 파악해야 시장에서 경쟁 기반이 바뀌는 지점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 윤지환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필자는 혁신 전략, 조직 리더십, 기술 기반 신사업에 다양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으며 Human Resource Management,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 Decision Support Systems, Journal of Engineering and Technology Management, Technological Forecasting and Social Change와 같은 세계적인 저널에 주 저자로 논문을 게재했다.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하며 조직 변화와 전략 수립 및 실행 관련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으며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towny@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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