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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미지를 활용한 브랜딩 전략

“역동성, 창의성, 헤리티지 표현에 최적”
글로벌 브랜드들이 ‘서울’에 올라타다

이정민 | 380호 (2023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과거 브랜드들이 뉴욕, 파리 등 트렌디한 도시의 이미지를 활용하려 했다면 최근에는 서울의 이미지를 이식하려는 시도들이 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헤라는 ‘서울 여성’을 뜻하는 ‘서울리스타’를 타깃 페르소나로 설정했다. 전지현, 블랭핑크 제니 등과 함께 진행한 캠페인에서 서울의 아름다움과 서울 여성의 당당한 모습을 담았다. 더현대서울이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데는 기존의 백화점 네이밍 방식에 따라 동네명을 넣는 대신 과감하게 ‘서울’이라는 이름을 쓴 점 전략이 주효했다. 최근 디오르, 루이뷔통, 구찌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 역시 서울의 주요 장소에서 런웨이를 열며 서울이 글로벌 브랜드의 새로운 격전지가 됐음을 시사했다. 이는 전통적인 모습과 현대적인 모습이 섞인 서울의 모습에서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혁신을 함께 나타낼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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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한국의 많은 브랜드는 뉴욕, 파리, 런던, 밀라노와 같은 해외 유명 패션 도시를 브랜드 이름에 넣는 일이 자주 있었다. 소비자들이 해외 브랜드를 잘 모르던 때라 가능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다른 도시를 차용하는 일은 상상도 하기 힘들다. 그러나 진짜 그 도시의 이미지를 잘 그리는 브랜드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데 바로 미국 뉴욕의 도나카렌(Donna Karan)에서 파생되어 좀 더 캐주얼하게 전개된 DKNY가 바로 대표적인 예이다.바쁜 뉴요커의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미국 브랜드 DKNY는 항상 광고에 도시적인 이미지를 상징하는 블랙과 함께 뉴욕의 옐로캡을 연상시키는 노란 컬러를 포인트로 활용한다. 이처럼 글로벌 패션 도시 뉴욕은 패션업계에서는 이미지로 많이 소비되는 도시 중 하나인데 뉴욕의 백화점 바니스 뉴욕(Barney’s New York)은 전 세계 어디에서 오픈해도 항상 뉴욕의 지명을 붙여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패션 업계에서는 브랜드 리뉴얼을 시도할 때 도시의 이미지를 활용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젊고 실험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런던, 스포티브하고 상업적인 뉴욕, 클래식하면서도 트렌디한 밀라노, 디자이너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파리 등 도시별 컬렉션 이미지를 활용하기도 한다. 2003년 스포츠 브랜드 라코스테는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르메르가 창조한 컬렉션을 파리 컬렉션이 아닌 뉴욕 컬렉션에서 선보이면서 상업적이면서 동시에 럭셔리한 스포티브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와 같은 도시 이미지를 활용한 브랜딩은 자동차, 전자제품과 같은 내구재 산업에서도 활용된다. 현대자동차는 2018년 신차를 출시하면서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해변 지역인 퍼시픽 팰리세이즈(Pacific palisades)에서 영감을 받아 그 이름을 정했다. 바로 팰리세이드이다.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여유 있고 편안한 라이프스타일의 이미지를 담고자 했다. 지역적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현대차는 LA 오토쇼에서 팰리세이드를 공개했다.

최근에는 브랜드의 스토리와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해지고 있지만 도시가 갖고 있는 고유한 이미지를 브랜딩에 활용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빠르고 직관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다. 최근 그 중심에 뉴욕, 파리에 이어 서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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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발견, 프라다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2009년 글로벌 럭셔리 패션 브랜드 프라다가 서울을 ‘트랜스포머 프로젝트’의 도시로 지명했다. 이는 건축, 디자인 등 프라다의 예술적 감각이 총동원되는 프로젝트로 독특한 구조물에서 전시, 영화, 공연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전 세계 사람들뿐만 아니라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의아해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아시아를 대변하는 도쿄도 아니고, 엄청난 인구를 바탕으로 시장에 영향력을 막 행사하기 시작한 상하이나 베이징도 아닌, 당시로서는 지금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선택한 프라다의 큰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프라다의 디자이너인 미우치아 프라다와 프라다와 협업한 건축 사무소 OMA의 건축가 램쿨하스(Ram Koolhas)가 인터뷰매거진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프라다의 큰 그림을 읽어볼 수 있다. “서울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도시지만 매우 활기차고 멋진 도시이며, 중국도 일본도 아닌 그 중간 어디에 있는 중심 도시로 기술과 혁신이 일어나는 곳.” 바로 2009년 서울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다. 서울을 혁신 기술, 역동성과 신선함을 갖춘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과 같은 도시로 프라다가 가져가려는 변화와 혁신의 이미지를 충분히 표현해 줄 수 있는 도시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라다의 트랜스포머 프로젝트 직후 2010년 영국의 비즈니스 및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모노클이 현대카드와 함께 서울 시티 가이드를 발간하고 2016년 브랜딩 매거진 매거진B에서 창간 5주년을 기념해 ‘서울’ 특집호를 다루면서 우리도 잘 몰랐던 서울의 모습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프라다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서울은 글로벌 유명 도시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매력적인 글로벌 도시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문화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관광 부동산 부문에서 글로벌 컨설팅을 진행하는 레저넌스 컨설턴시(Resonance Consultancy)는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세계 주요 도시를 환경, 기관 및 인프라, 문화, 도시의 다양성, 경제, 해당 도시 인지도 등 6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분석한 순위를 해마다 발표하고 있다. 서울은 지난 2021년 발표에서 42위, 2022년 발표에서 26위를 기록했다가 올해 10월 4일 발표된 2024년판에서는 10위에 올랐다.1

2023년 7월에는 1976년에 창간한 일본의 대표적인 패션&라이프스타일 월간지 ‘뽀빠이’가 창간 이래 처음으로 서울의 라이프스타일을 다룬 서울 시티 가이드가 출간되면서 대세로 떠오른 서울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서울 시티 가이드 작업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던 뽀빠이의 아트 디렉터 타로 감베는 서울을 “특유의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인상적인 도시로 엔터테인먼트, 음악,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미있는 개성이 느껴지는 도시”라고 밝혔다. 뽀빠이 측은 특히 한국이 뉴진스와 같은 케이팝 아티스트뿐 아니라 패키지, 굿즈, 그래픽, 서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젊은 신생 기업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역동적이고 신선한 문화에 주목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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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보여주는 서울

1990년대 후반 아시아 몇몇 국가에서 시작된 한류 열풍은 현재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성장과 함께 전 세계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해가며 서울에 대한 인지도도 함께 높였다. 서울은 스위스의 자연 풍광과 뉴욕의 도시적 이미지, 조선 시대의 고풍스러운 전통과 함께 IT와 전자 기업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젊은 문화와 트렌드를 빠르게 받아들여 전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도시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서울은 글로벌 소비자에게 가고 싶은 곳, 가야 하는 곳이 됐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 케이팝 아이돌의 팬덤이 확대되고 콘텐츠를 넘어 푸드, 뷰티 등이 성장하면서 한국 셀러브리티들의 소셜미디어와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을 통해 그려지는 서울 라이프스타일은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매력적인 콘텐츠가 됐다.

24시간 끊임없이 돌아가는 잠들지 않는 도시 서울은 외국인들의 눈에는 미래 도시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는 서울에 관한 다양한 토론과 함께 특히 서울을 ‘#Cyberpunkseoul’3 이라고 설명한 사진과 함께 게시된 콘텐츠를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외국인들은 서울을 낮에는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공간’에서 밤에는 ‘현재와 미래가 만나는 사이버틱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양면적인 도시로 인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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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취적 서울을 글로벌 고객에게, 헤라
네이밍 하나로 서울의 중심에, 더현대서울

1995년 론칭한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브랜드 ‘헤라’는 서울의 이미지를 선도적으로 활용한 브랜드다. 다른 브랜드들이 파리, 뉴욕 등 패션 뷰티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하던 도시 이미지로 포장하고 싶어 하던 2016년, 선구안을 갖고 ‘서울 여성’을 뜻하는 서울리스타(Seoulista)를 타깃 고객으로 설정하고 세계 어느 도시의 여성들보다 당당하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세계 속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서울 여성의 이미지를 담고자 했다.

2016년 박찬욱 감독과 함께 서울리스타 광고를 기획하며 모델 전지현이 서울의 곳곳을 누비는 모습을 통해 당당하고 우아한 자신만의 멋을 추구하는 서울 여성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등장했던 서울의 모습은 그 당시 한국인들이 바라보고 있는 세련된 선진 도시로서의 서울의 모습을 담고 있다면 최근 광고 모델 제니와 함께 론칭한 서울리스타 광고 캠페인에서는 외국인이 바라보는 서울의 사이버펑크적인 이미지를 통해 한계 없이 도전하는 서울리스타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서울이 갖는 무한 성장의 이미지를 브랜드에 미래적 감각으로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소비자에게 서울의 이미지를 가장 매력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이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진취적이고 미래적인 이미지를 준다면 한국인들은 서울을 어떤 이미지로 받아들일까? 서울의 이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잘 활용한 브랜드는 2021년 대한민국 유통업계의 한 획을 그은 ‘더현대서울’이 아닐까 싶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여의도에 백화점을 오픈하면서 브랜딩에 있어 두 가지 혁신을 감행했다. 하나는 ‘백화점’이라는 업을 규정하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백화점이 들어서게 되는 동네의 이름을 넣는 전통적인 네이밍 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서울’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만약 현대백화점그룹이 ‘현대백화점 여의도점’으로 점포명을 지었다면 어땠을까? 가뜩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높은 임대료로 인해 수익성이 나지 않을 것이다’ ‘누가 여의도까지 쇼핑하러 가냐’ 등의 우려 섞인 목소리 속에서 현대백화점 판교점이나 목동점과 같은 지역 기반 점포에 머물렀을 것이다. 굳이 더현대서울을 방문하는 대신 우리 집 근처의 점포를 방문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 개장 후 1년간 방문객들의 빅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수도권 지역을 제외하고는 더현대서울을 가장 많이 찾는 이들이 의외로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2, 3위는 세종시, 대전 유성구가 차지했다. 이런 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서울’이라는 꼬리표 하나가 전국구 백화점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백화점으로 거듭나는 데 막대한 영향을 준 점이 드러났다.

더현대서울은 과감하게 ‘서울’을 붙임으로써 서울을 대표하는 유통 공간으로 포지셔닝했을 뿐만 아니라 부상하고 있는 한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핵심 리테일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명품이 없으면 소비자를 유인할 요소가 없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컸지만 더현대서울은 이름에 걸맞게 ‘서울의 뜨는 콘텐츠’를 팝업스토어를 통해 한자리에 모아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 요즘 한국, 특히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더현대서울이 꼭 가봐야 할 대표적인 명소로 인식된 데는 ‘서울’이라는 브랜드를 선점해버린 현대백화점그룹의 ‘신의 한 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브랜드의 서울 활용법

최근 우리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서울 이미지’를 글로벌 브랜드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 세계 소비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이 역동성, 창의성과 헤리티지 등 상반된 이미지를 함께 갖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의 공존 등 자신들의 브랜드가 표방하는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글로벌 매력적인 도시라고 이야기한다.

상품 이름에 서울을 넣어 특별 에디션을 만드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2021년 디오르는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블랙핑크의 지수를 비롯한 한국 여성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다홍빛 레드 컬러 립밤 ‘디오르 어딕트 립글로우 서울 스칼렛’을 출시했다. 또한 딥티크는 서울 플래그십스토어 론칭 1주년을 기념해 올해 서울에 대한 헌정과 예찬을 담은 시티 캔들 컬렉션 ‘서울’을 발매했다. 도시 곳곳을 비추는 빛줄기와 현대적이고도 전통적인 한국 건축물의 풍경을 패키지 디자인에 새겨 서울의 이미지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제품이다.

한편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앰배서더로 활동하는 한국의 셀러브리티들은 서울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행사에 한데 모여 글로벌 시장의 이목을 끌고 있다. 게다가 서울이 갖고 있는 다면적인 모습들은 기존 브랜드의 식상함을 신선하게 탈바꿈시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장점이 있다. 서울이 1인당 글로벌 명품 소비 1위 국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미지 구축과 함께 지역의 소비력까지 자극할 수 있다. 이에 명품 브랜드 입장에서 서울은 브랜드의 주요한 이벤트를 열 장소를 물색할 때 반드시 고민해봐야 할 도시가 됐다.

서울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하면 다양한 이미지의 공간이 공존한다는 점인데 디오르는 2022년 가을 컬렉션을 선보일 런웨이의 장소로 이화여대를 선택했다. 프랑스 건축 디자인의 거장 도미니크 페로의 손에서 탄생한 모던하고 웅장한 이화여대 ECC에서 런웨이를 진행했는데 국내 대학 캠퍼스에서 열리는 첫 패션쇼였다. 디오르는 “지금이야말로 젊은 세대 여성들이 미래의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때”라며 “이화여대야말로 이러한 목표 달성에 동행할 최적의 파트너”라고 밝혔다. 실제 디오르는 젊은 여성 발굴 프로그램인 ‘우먼 앳 디올’ 프로그램에 이화여대 학생 6명을 멘토링 프로그램에 선발하기도 했다.

디오르는 한편 비슷한 시기,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성수에 프랑스 파리 몽테뉴가에 있는 본사 건물을 연상시키는 팝업스토어를 오픈했다.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며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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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루이뷔통과 구찌 또한 앞다퉈 서울에서 런웨이 컬렉션을 개최했다. 루이뷔통은 명품 브랜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한강의 잠수교를 런웨이로 꾸며 사람들의 통념을 깨는 신선한 무대를 선보였다. 야외 패션쇼에는 이미 글로벌 시장의 유명 인사가 된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무대 연출에 참여했는데 잠수교 아래의 푸른 조명과 낙하 분수의 백그라운드에 한국적 음감의 산울림의 ‘아니벌써’가 흘러나오면서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루이뷔통은 한강이 갖고 있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상징적 공간을 활용해 서울이 갖고 있는 미래적인 이미지를 차용했다.

팬데믹, 이태원 사태 등으로 두 번이나 연기된 후 개최된 경복궁의 구찌 패션쇼는 경복궁이 과거와 현대의 교차점에서 미래를 이끄는 대표적 문화유산이며 경복궁이 지닌 장소성과 역사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하고 싶다는 의지로 추진됐다. 이탈리아의 글로벌 브랜드가 600년이 넘은 서울의 경복궁에서 과거와 미래를 연결 짓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찌의 야심 찬 발상의 전환은 서울이 K컬처에 열광하는 글로벌 팬덤을 끌어모으기 위한 글로벌 브랜드의 새로운 전쟁터가 됐음을 시사하는 하나의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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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명품 브랜드뿐만 아니라 글로벌 영마켓 트렌드를 주도하면서 스포츠 및 스트리트 브랜드들도 적극적으로 서울의 이미지를 활용한 상품 라인이나 매장 경험을 제안하고 있다. 2021년 아디다스는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시티 익스클루시브 라인 ‘아디다스 서울 컬렉션’을 한정판으로 출시했는데 전 세계 트렌드를 주도하는 ‘서울’의 역동적인 아름다움과 독창적인 에너지를 재해석해 호평을 받았다.

반스는 10월 서울 신당역사에서 ‘지하철역사 혁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신당역의 유휴 공간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반스 스테이션 신당’을 개최했다. 이곳에선 다양한 반스 제품을 커스터마이징하거나 스케이트보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반스는 꾸준히 브랜드의 문화와 가치를 소개하는 ‘하우스 오브 반스(House of Vans)’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운영해왔다. 올해에는 국내외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자와 문화를 공유하는 로컬 브랜드들이 참여했는데 반스의 진보적이고 창의적인 브랜드 정신을 결합하고 한국의 스케이트보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우리 브랜드도 서울을 다시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새로운 스마트폰을 선보이는 갤럭시 언팩 행사는 2009년 싱가포르, 두바이, 런던 등 4개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이후 라스베이거스를 시작으로 뉴욕, 런던, 베를린, 바르셀로나 등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다니면서 행사를 진행해왔다. 이렇게 전 세계 주요 도시를 옮겨 다녔던 것은 이 당시만 해도 갤럭시의 본고장인 한국에 대한 이미지보다 글로벌 브랜드로서 갤럭시를 포지셔닝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갤럭시가 2023년엔 드디어 서울에서 언팩 행사를 진행했다. 높아진 서울의 글로벌 위상과 인지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모두 서울에서 비즈니스 이벤트를 개최했다는 사실을 감안한 결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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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 성수, 압구정, 연남
로컬 서울의 다채로운 모습 발견 필요

지금 서울은 각각의 동네마다 제 모습을 찾기 위해 분주하다.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면서 여유로운 취향을 제안하는 용산·한남 지역은 서울에서 대표적으로 글로벌 취향을 담아내는 지역이다. 여기에 최근 세계적으로 유명한 갤러리들과 글로벌 미식으로 무장한 수준 높은 레스토랑까지 더해지면서 고급스럽지만 부담스럽진 않은 이미지로 각광받고 있다.

10여 년간 암흑기를 거쳐 이제 다시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압구정·청담동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받아들여 젊고 트렌디한 소비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도산공원에서 로데오거리까지 펼쳐진 패션 브랜드들의 플래그십 스토어뿐만 아니라 트렌디한 바와 디저트 카페를 넘나들며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반면 강북의 연남이나 익선동과 같은 아기자기한 골목길이 여전히 옛 정취를 잘 담아내고 있는 지역에서는 한국의 전통이 어떻게 현대적 미감으로 새롭게 태어나는지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창작자의 크리에이티브를 강조하는 브랜드들이나 한국적 정서를 담고자 하는 브랜드들이 플래그십 스토어를 내기에 적합한 곳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매장 사이즈는 오히려 브랜드만의 독특한 감각을 표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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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브랜드들이 모두 한번쯤은 입점을 고민하는 성수동은 오랜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과 짧은 기간 동안 선보이고 사라지는 팝업이 공존하는 융합과 공존의 동네다. 매주 30~40여 개의 팝업스토어가 운영되고 사라지니 그야말로 ‘오프라인 팝업 플랫폼’이라 할 만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용산·한남, 압구정·청담, 성수 등 요즘 가장 핫한 곳들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패션 편집숍 비이커의 경우 상품은 물론이고 매장의 외관, 인테리어, 심지어 마케팅 프로그램까지 모두 다 각 지역의 특색에 맞춰 다르게 운영한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지역들 이외에도 서울에는 양재천, 장충단길 등 아직까지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많은 잠재력을 갖춘 지역들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다. 이제 서울은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팔색조와 같은 다양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멀티페르소나 시티’가 돼가고 있다.

이처럼 한국 기업으로서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활용하고자 한다면 지금이 최적기일 수 있다. 서울을 활용한 브랜딩 전략이 헤리티지와 글로벌 이미지를 함께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선택지라면 여러모로 유리한 고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시 이미지를 마케팅이나 브랜딩에 활용할 경우 명심해야 할 점은 한 도시의 전체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도시 내 각 지역적 특성까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이버펑크 서울의 모습은 네온사인 간판이 가득 들어선 을지로 골목이나 과거 공업 지역을 재개발하고 있는 성수에서 찾아볼 수 있고, 전통과 현대의 모습이 공존하는 서울의 모습은 대표적으로 광화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도시를 활용해 진정성 있게 브랜딩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지역 문화에 침투해 깊숙한 도시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 이정민 | 트랜드랩506 대표

    필자는 1999년 국내 최초 온라인 트렌드 정보 사이트 firstvierkoea.com을 운영하면서 패션, 뷰티 등 소비재 분야의 트렌드 예측 서비스를 제공했다. 소비자 라이프스타일과 사회 문화 현상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기업들의 미래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한섬, 아모레퍼시픽, 엘지전자, SPC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의 컨설팅을 진행하는 트렌드랩506의 대표를 맡고 있다.
    mindy@trendlab506.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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