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선택을 받았던 기술엔 공통점이 있다. ‘분명한 쓸모’, 즉 정확한 사용 목적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적절한 정의(Definition)가 필요하다.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그 용도에 걸맞은 기능적 요소가 정확히 들어가 있는지 등이 포함돼야 한다. 확장현실(XR)을 우리 눈에 구현할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 역시 마찬가지다. 첨단 기술이기 이전에 소비자에게 어떤 콘텐츠와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아주 개인화한 것이어야 하고, 즐거운 것이어야 하며, 온·오프라인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것이어야 한다.
기업은 생존을 위한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 산업은 아직 태동하는 단계지만, 그렇기에 초기 단계부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가상현실 플랫폼 ‘제페토’에 신라면 분식점을 내고 현실의 팝업 스토어와 연계한 농심, 다양한 AR·VR 서비스로 고객 경험을 확장하는 이케아 등 기업들의 움직임은 이미 빨라지고 있다.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 정의부터 제대로 해야
구글 글라스를 한 문장으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눈에 쓰는 컴퓨터라고 정의해 보자. 그러면 구글 글라스는 기능적으로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을 거의 다 해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노트북이나 태블릿PC, 휴대폰을 통해서 컴퓨터를 들고 다닌다. 과연 눈에 컴퓨터를 쓰고 다니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노베이터나 얼리어댑터들의 열광 속에서도 구글 글라스가 대중화에 실패한 이유일 수 있다. 인류는 생존에 필요한 도구들을 개발하고 혁신시켜 현재의 기술 사회를 만들어 왔지만 모든 기술과 혁신이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구글 글라스도 어쩌면 그런 필요하지 않은 도구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구글 글라스의 실패 이후에도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구글 글라스는 실패했다고 말하기보다는 진화의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단지 선택받는 기술의 조건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했을 뿐이다.
선택받는 기술과 기기가 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첫째는 정확한 사용 목적이다. 기술이나 기기와 만나 인류의 선택을 받으려면 ‘분명한 쓸모’가 있어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정의(Definition)다. 구글 글라스에는 ‘모두에게 필요한 글라스’가 아니라 특정 분야에 꼭 필요하다는 분명한 정의가 필요했다. 모든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싶다는 건 좋은 목적이다. 하지만 안경이란 게 그렇다. 모든 사람이 늘 안경을 쓰는 건 아니다.
2022년 5월 구글은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실시간 번역 언어를 시각적으로 내 보내주는 AR 글라스를 공개했다. 시연 영상에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자막으로 안경에 띄워주는 기능이 등장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쉽게 대화하고, 청각장애인도 수화 없이 의사소통을 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이는 기존에 구글 글라스에서 구현하려던 것들 중 하나다. 하지만 그 하나만을 보여준 것이 정의라는 측면에서 더 주효했다. 이 번역 안경은 사생활 침해 논란을 겪을 일도 없고,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진 않겠지만 누군가의 어떤 순간엔 꼭 필요한 기기로 가치를 입증했다. 이는 비전 디바이스를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조명광mike@dttrees.com
디트리스 대표
필자는 ㈜디트리스, ㈜코네이스 대표로 삼성카드 프리미엄 마케팅팀/브랜드팀, 현대캐피탈 고객전략팀, 신세계백화점 CRM팀 등을 거쳐 24년여간 마케팅 현업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마케팅, 브랜딩 관련 컨설팅, 강의 및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한양사이버대학원 마케팅MBA, 가톨릭대 융복합전공 겸임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저서로 『21일 마케팅』 『호모마케터스』 『마케팅 무작정 따라하기』 『잘 팔리는 팝업스토어의 19가지 법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