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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비윤리 행동에 대한 행동경제학적 솔루션

도덕적 인간이 나쁜 사회 만든다?
‘착한 기업’일수록 경계해야 할 윤리성의 덫

민재형 | 353호 (2022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조직에서 개인은 자신이 따라야 하는 것에 반하는 행동에 대한 인센티브, 즉 이해의 충돌로 비윤리적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 개인은 자신의 비윤리적 행동을 쉽게 망각하는 경향이 있고, 한 번 비윤리적 행위를 저지르면 행동 원칙이 변해 반복적이고, 더욱 심각한 비윤리적 행위로 확대될 수 있다. 윤리적이라 알려진 기업 역시 ‘도덕 면허’를 얻었다는 생각으로 비윤리적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현재 기업이 실시하는 ‘잘못된 행동을 하지 말자’ 식의 교육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비윤리적 행위를 방지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 개인이 비윤리적 행동을 스스로 교정할 수 있도록 너지를 활용한 윤리 교육이 필요하다.



윤리성은 공정성, 정의로움과 함께 이 시대의 화두이다. 기업, 조직, 대학 등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항상 윤리성을 강조한다. 기업 윤리, 직업윤리, 공직자 윤리, 퇴직자 윤리 등등 윤리가 접미사처럼 붙는 시대이다. 그래서 사회 어디서나 구성원의 윤리 교육을 강조한다. 하지만 윤리 교육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학교 수업에서나 기업 윤리 헌장에서나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don’ts)을 하지 말라’거나 ‘이렇게 해야 윤리적이다’라는 ‘픽스잇 패러다임(fix-it paradigm)’ 형식의 윤리 교육이 주를 이룬다.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은 우리 주위에서 관찰되는 많은 비윤리적 행동은 의식적으로 또는 고의적으로 행해지는 경우보다는 인간의 인지 편향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윤리 교육은 ‘비윤리적 행동의 의식적 금지’에만 국한돼왔다. 사실 다 큰 성인(成人)들에게 윤리적으로 행동하라는 설교식의 가르침은 별 효과가 없다. 어느 영화 대사처럼 “너나 잘하세요” 같은 반응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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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윤리 교육은 인간의 인지적 한계로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비윤리적인 행동, 즉 ‘제한된 윤리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제한된 윤리성이란 부지불식간에 자신이 선호하는 윤리와는 다른,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에 사람을 가담하게 하는 체계적이며(systematic), 예측 가능한(predictable) 심리 과정이다. 여기서 ‘체계적’이란 말은 원인을 알면 교정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어떤 원인이 작용하면 어떤 제한된 윤리성이 발생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설교형(preaching) 교육에서 자신을 스스로 교정하는(nudging) 방식으로 윤리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뀔 필요가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생하는 비윤리적 판단이나 행동을 스스로 교정하기 위해서는 제한된 윤리성을 초래하는 원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제한된 윤리성을 초래하는지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그 원인 몇 가지를 사례와 함께 이야기해보자. 우리는 왜 해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비윤리적 행위, 불공정한 행위,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계속 일으키는가?

나도 모르는 ‘나’

사람들에게 ‘비윤리적인 행위를 할 것인가’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혹은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를까? 종교 편향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특정 종교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겉으로는 인종이나 특정 연령대의 성(gender)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만 속으로는 특정 인종이나 ‘이대남(20대 남성)’ ‘이대녀(20대 여성)’ 같은 특정 연령대의 성에 대해 혐오감을 가진 사람이 있다. 실로 많은 사람이 겉으로 주장하는 바와 상반되는 태도를 마음속에 감춰둔 채 살아간다. 겉과 속이 다른 게 아니라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내재적 태도(implicit attitudes)’가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것이다.

내재적 태도는 대부분 과거의 특정 경험이나 기억,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고정관념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체화된 것이다. 자기도 인지하지 못하는 대표성1 의 체화 현상이다. 제니퍼 에버하트(Jennifer Eberhardt) 스탠퍼드대 교수와 동료들은 사람들이 흑인과 폭력을 연결 지어 생각하는 내재적 태도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2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처음에는 희미하게 보이지만 점점 뚜렷해지는 그림 동영상을 보여주고 무슨 그림인지 맞히게 했다. 실험 결과, 흑인 사진이 들어간 범죄 관련 물건 영상에서는 실험 참가자들이 빠르게 그게 무슨 물건인지 알아냈다. 하지만 같은 영상에 백인 얼굴을 끼워 넣었을 때는 그게 무슨 물건인지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연구진은 일련의 실험을 통해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 부지불식간에 작용한다고 결론지었다. 이 연구는 심각한 현실 문제로 연결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흑인에 대한 경찰의 오발 사건이다. 흑인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행동을 총을 꺼내는 행동으로 오인한 경찰이 반사적으로 사격을 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백인이든, 흑인이든, 다른 인종이든 상관없이 발생하는 일이다.

내재적 태도는 직업이나 교육 수준과 상관없이 발생한다. 오히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특정 집단에 대한 암묵적 태도는 더 깊게 자리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캐서린 밀크만(Katherine Milkman) 와튼대 교수와 동료들이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 결과를 살펴보자.3 6548명의 교수에게 가상의 박사 과정 학생의 이름으로 1주일 후 연구를 위해 방문하고 싶다는 e메일을 보냈다. 이때 e메일 내용은 똑같이 했고 이름을 통해 성별 및 인종(백인, 흑인, 히스패닉, 인도인, 중국인)을 추측할 수 있도록 했다. 연구 결과, 훨씬 많은 수의 교수가 여성, 흑인, 히스패닉, 인도인, 중국인 학생보다 백인 남학생에게 더 빨리 우호적인 회신을 보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연구의 실험 대상이었던 교수들은 미국 상위 260개 대학의 교수들로서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는 저명한 학자들이었다. 즉, 사회적 지위가 높고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모습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조차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선호도를 보인 것이다.

인간의 내재적 태도는 ‘겉과 속이 다른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부지불식간에 숨겨진 감정이 결정적인 순간에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재적 태도로 인한 판단 착오를 바로잡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편견을 반증하고자 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반대 고려하기(consider-the-opposite) 전략4 을 주기적으로 활용하고 나의 편견을 교정할 수 있는 정보를 다양한 정보원(information sources)으로부터 의식적으로라도 수집하는 활동을 통해 나도 모르는 나의 내재적 태도가 가져올 수 있는 오류의 빈도와 크기를 줄여나가야 한다.

공익(公益)과 사익(私益) 사이의 간극

조직, 기업에서는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비윤리적인 행위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조직에는 개인의 내재적 태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개인적, 조직적 차원의 목적과 동기가 존재한다. 특히 어떠한 유혹이나 인센티브로 인해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과는 다르게 판단하고 행동할 때 ‘이해의 충돌(conflict of interests)’이 일어날 수 있다. 이해의 충돌이란 개인적 이득과 사회적 선, 즉 사익과 공익의 충돌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동기적 판단 착오, 즉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유도한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인센티브 때문에 자신이 따르는 가치관과는 다른 판단을 내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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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2004년 도입된 법원의 향판(鄕判) 제도는 잦은 법관 순환 인사로 인한 재판 부실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주기적으로 전국을 이동하며 근무하는 대신 지방의 관할 법원 중 한 곳에 부임해 퇴임할 때까지 근무하는 이 제도의 도입 취지는 재판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확보하고 지역의 민심과 정보를 파악할 수 있어 지역 정서를 반영한 재판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아쉽게도 이해의 충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고의 이성과 공정성이 담보돼야 하는 사법부의 제도조차 도입 취지와는 달리 지역 토호 세력과의 유착에 따른 재판의 불공정, 법조 비리, 새로운 지역 권력의 탄생 등의 논란을 일으키면서 2014년 폐지됐다.

대표적인 예가 2010년 일어난 소위 ‘황제 노역’ 사건이다. 2010년 1월 당시 광주고등법원 형사1부장판사가 비자금 조성과 탈세 혐의로 기소된 대주그룹 전 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을 선고하고, 이 벌금에 대해서 일당 5억 원의 환형유치(換刑留置, 벌금을 내지 않는 피고인을 일정 기간 노역장에 유치하는 일) 노역 판결을 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14년 3월 검찰의 대주그룹 전 회장에 대한 비자금 조성 및 탈세 의혹 조사 과정에서 세상에 밝혀져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때 대주그룹 전 회장의 판결과 관련된 인물들은 대부분 향판이었다.

2013년 김영란법과 함께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됐던 ‘이해충돌방지법’ 또한 공직자의 직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한 사익 추구를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2022년 5월19일부터 시행됐다. 그동안 공무원의 직무 관련성 개념이 모호하다는 등의 이유로 발의와 폐기를 거듭했으나 2021년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태를 계기로 법안 처리에 속도가 붙었다.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활용해 재산상 이익을 얻을 때 7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7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규제 대상은 입법•사법•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등 190만 명이다.

법은 인간 사회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약으로, 평균적 인간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법이 강제하는 의무의 수준은 ‘평균인이 지킬 수 있는 정도’로, 이를 위반할 때 ‘옳지 않다(不正)’라는 감(感)을 사람들이 느끼게 하는 데 그 특색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법을 제정한 이유가 차공제사(借公濟私, 공익을 빙자해 사익을 추구하는 것)하는 공직자들이 우리 주위의 평균적 인간보다 꽤 많기 때문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나쁜 행동은 쉽게 망각된다

최근 화제가 된 우리은행 횡령 사건에서 사고자들은 6년 동안 3차례에 걸쳐 범행을 저질렀다. 새마을금고의 경우 16년간, 모아저축은행의 경우 14차례에 걸쳐 횡령이 일어났다. 한 번은 상충된 이해 때문에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른다 해도 이처럼 여러 번에 걸쳐 반복되고 큰 사건으로 번지는 건 어째서일까.

우리는 종종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하곤 한다. 과연 그 말처럼 그때가 지금보다 좋았을까? 그때도 분명 힘든 일이 있었을 텐데 그때가 지금보다 더 좋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학자들은 이를 해석수준이론(CLT, Construal Level Theory)으로 설명한다. 해석수준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나 자신(myself), 현재(present), 이곳(here)을 중심으로 상황의 거리를 판단한다. 거리가 멀수록 상황에 대한 해석이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면(상위 수준)에 집중하게 된다. 같은 상황이지만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에 대한 해석이 구체적이고, 부차적인 면(하위 수준)에 주목한다. 이를 심리적 거리감(psychological distance)이라고 한다.5 6

가까운 사람의 조언보다는 미디어나 전혀 모르는 타인의 조언이 더 신빙성 있게 들리는 이유이다. 바로 며칠 전 여행에 대해서는 숙박 시설, 식사 메뉴, 관광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생각나지만 일 년 전 여행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좋은 가족여행이었어” “오랜만에 참 잘 쉬었어” 같은 그 여행의 목적이나 전체적 분위기가 생각나는 것도 이 심리적 거리감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적 거리감으로 인해 인간은 예측(prediction), 행동(action), 회상(recollection)이라는 시간상 분리된 세 단계에서 윤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예측 단계에서는 자신이 윤리적인 행위를 할 것으로 예상하고, 회상 단계에서도 실제 자신이 한 것보다 윤리적인 행동을 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 행동 단계에서는 예측이나 회상 단계와는 달리 비윤리적인 행동을 한다.

앤 텐브런셀(Ann Tenbrunsel) 미 노트르담대 교수와 동료들은 시간 차이에 따른 비일관적 행태를 욕망 자아(want-self)와 당위 자아(should-self)로 설명하고 있다. 예측 및 회상 단계에서는 당위 자아가 우세한 힘을 발휘하지만 실제 행동 단계에서는 욕망 자아가 우선한다는 것이다.7 예를 들어, 상대방과의 물품 구매 계약을 앞두고는 윤리적인 거래를 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러나 실제 계약에서는 좀 더 나은 조건으로 거래하기 위해 의도하지 않은 비윤리적 행동을 하게 되고, 또 나중에 계약 당시를 회상할 때는 실제보다 윤리적인 행동을 했다고 믿는 것이다. 즉, 당위 자아는 해석수준이론에서 말하는 상위 수준의 상황 해석을 유도하고, 욕망 자아는 하위 수준의 상황 해석을 유도한다.

해석수준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이 비윤리적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이 했던 비윤리적 행동에 대한 인식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심리적 거리감으로 인해 자신이 과거에 했던 비윤리적 행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잊기 쉽다. 이러한 현상을 ‘비윤리성의 기억상실증(unethical amnesia)’이라고 부른다.8 즉,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의 기억 속에서는 자신이 한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아울러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바람,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도덕적인 사람으로 바라보는 편견도 자신이 행한 잘못된 행동을 잊게 만드는 동기적 요인이 된다. 또한 비윤리성의 기억상실증은 비윤리적 행동을 저지른 후 나타나는 심리적 불안감이나 불편함을 덜어내는 도구가 된다.9 10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데요”라고 말하는 낯 두꺼운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본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이 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비윤리적 행위를 기억하고 싶지 않아 일어나는 일종의 망각 증세이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것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져 가고, 그래서 비윤리성의 기억상실증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기억을 잃는다고 해서 자신의 과거 행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비윤리적,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기억상실증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잘못된 행동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이를 교정하기보다는 기억 상실을 통해 다시금 비윤리적 행동을 하고, 이는 또 다른 비윤리적 행위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세상 어디서나 비윤리적 행동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유이다.

이미 저질러버린 비윤리적 행동에 대해서는 괴롭겠지만 그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신을 성찰하겠다는 마음가짐과 그에 대한 의식적 실천은 자신의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만들어준다. 성찰을 통해 생긴 생생한 기억은 자신의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하게 만들며, 마침내 그 행동을 바로잡게 만드는 교훈을 줄 수 있다.

한 번 이동한 원칙은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비윤리적인 행위가 반복된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사실이 있다. 바로 비윤리적 행위가 반복될수록 더욱 심각한 사건으로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요리할 때 소금이나 간장을 조금씩 넣어가며 간을 맞춰보지만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간을 맞추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너무 짜져서 음식을 못 먹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요리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일이 그렇다. 큰 변화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미세한 변화는 그것이 누적돼 우리의 목을 죄어 오기 전까지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

적지 않은 경영자들이 변화를 사소한 것으로 무시하거나 못 본 체하고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우리가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그 변화들도 쌓이면 손을 쓸 겨를도 없이 어느새 우리의 목을 죄어 온다. 비즈니스에서도 시장 환경의 변화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알아도 무시하고 평가절하해서 실패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원대한 꿈과 의지를 갖고 태어난 기업들이 얼마 못 가 사라지고 100년 이상 살아남은 기업이 전 세계적으로 그리 많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기업이 주창하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헛된 구호로 그치게 된다. 변화에 대한 둔감은 비윤리적 행위도 불러온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05년이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골프클럽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자주 골프를 즐기며 친구가 됐다. 한 사람은 세계적인 회계법인 KPMG의 파트너였고, 다른 한 명은 LA에서 작은 보석상을 운영했다. 친구 사이가 거래 관계로 바뀐 건 2009년. KPMG 파트너는 보석상 경영이 어려워진 친구를 돕기 위해 고객사의 비밀 정보를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콘서트 티켓이나 작은 보석 등을 정보의 대가로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금 뭉치, 롤렉스 시계 등으로 덩치가 커졌다.11

뉴스에서 심심찮게 접하는 부정 사건을 보면 그 발단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다. 위 기사에 따르면 29년 경력의 베테랑 회계사는 자신이 회계 감사를 맡은 고객사의 비밀 정보를 친구에게 여러 차례 제공하고 그 대가로 현금 5만 달러와 고가의 시계 등을 받다가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악마는 작은 곳에 숨어 있다. 동서고금 어디를 살펴봐도 부정(不正)은 항상 소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상대방과의 소소한 식사 자리가 고기 선물로 발전하고, 고기 선물이 돈다발이 담긴 사과 상자로 변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내가 지켜야 할 원칙이 조금씩 이동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비리가 자신을 감싸고 있고, 그 비리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부정한 뇌물은 처음부터 큰 액수로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액수가 크면 겁이 나서 거부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마음이 쉽게 생긴다. 하지만 인지상정이라고, 아는 민원인과의 작은 식사 자리는 거부하기 힘들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생각한 식사 자리가 점차 자신의 원칙을 이동시키고, 이동된 원칙은 다시금 새로운 원칙이 돼 현재의 나는 내가 애초에 지키겠다고 약속한 원칙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표준의 조정(standard adjustment)’이라는 말이 있다. 표준 또는 원칙에서 한 발짝 벗어나게 되면 처음에는 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를 정당화하려 한다. 하지만 한 번 이동된 원칙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다시금 새로운 표준의 역할을 한다. 원칙에서 벗어나는 이러한 조그마한 편차들이 누적되면 결국 나의 현재 상태와 내가 지켰어야 하는 원래의 원칙 간의 거리는 너무도 멀어져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것이 원대한 꿈을 갖고 태어난 기업이 그리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이고, 자신도 모르게 비윤리의 덫에 걸려드는 이유이다. 모든 일은 작게 시작한다. 원칙에서 작은 편차가 보일 때 고쳐야 한다.

간접적으로 행하는 비윤리적 행위

조직폭력배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보면 두목은 성실한 사업가 행세를 하면서 온갖 나쁜 일은 아랫사람에게 시키고 그 책임까지 뒤집어쓰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누가 더 나쁜 사람일까? 직접 움직이는 하수인도 나쁘지만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나쁜 일을 사주하는 두목이 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는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ESG 경영이 강조되는 요즘, 협력사들의 윤리적 흠집이 우리 기업에 거대한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알게 모르게 부하직원 또는 변호사, 회계사, 협력업체 등 외부인에게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방법이든 동원하도록 요구한다. 그것이 비윤리적인 방법임에도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많은 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생산을 외주(outsourcing)하고 있다. 특히 외주 업체가 개발도상국에 있는 역외조달(offshoring) 형태라면 훨씬 열악한 노동 조건, 작업 환경, 안전기준 아래에서 그곳 노동자들이 착취될 수 있다. 해당 지역의 원청 업체가 하청을 주고, 또 재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품질 하락은 물론 안전사고까지 유발해 결국은 하청 업체를 파산으로 내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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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외 조달의 문제점을 폭스콘(Foxxcon)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폭스콘은 1974년 설립된 대만의 전자기기 주문자상표부착(OEM) 생산 기업으로 홍하이(Hon Hai)정밀공업의 자회사이다. 애플의 아웃소싱을 도맡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기업이다. 2010년 폭스콘의 중국 공장에서 일어난 집단 자살 사건은 폭스콘의 노동 착취 관행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폭스콘 직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반발해 왔으며 이들 중 12명이 자살을 시도, 10명이 숨을 거뒀다. 이 사건에 대해 애플은 2006년부터 이미 폭스콘을 비롯한 생산 시설에 대해 지속적인 점검을 해왔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잘못은 폭스콘에 있다며 그 책임을 떠넘기려고 했다. 폭스콘으로부터 받아온 노동환경 보고서가 조작돼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플에 대한 비난 여론은 잠재울 수가 없었다. 결국 애플은 2012년 노동환경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 조사에 착수하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지었다.

당시 애플의 최고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 또한 열악한 노동환경과 과중한 업무로 직원들이 연달아 자살을 선택해 ‘자살 공장’이라고 비판받은 폭스콘을 두고 “폭스콘에서는 노동력 착취가 없으며 폭스콘의 자살률은 중국 평균보다 낮다”고 발언해 많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애플은 노동시간 규정이나 아동 노동 금지 같은 공장 직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자체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준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생산 시설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를 진행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애플이 근로자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까? 애플 또한 폭스콘의 조작된 보고에 속아 넘어가 억울하게 손해를 본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애플은 자사 제품의 기밀 유지, 특히 신제품에 대한 보안을 유지하는 데 지대한 노력을 쏟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외주 업체와 계약할 때 엄격한 기밀 유지 서약서를 작성한다. 외주 업체는 애플과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엄격하게 공장을 통제한다. 예를 들어, 당시 중국의 한 폭스콘 공장에선 기밀 유지를 위해 공장 주위에 거대한 벽을 세우고, 직원들은 숙식, 여가 모두를 공장 안에서 해결하게 했다. 외출을 위해선 몸수색이 필수였다. 또한 애플은 신제품 유출 방지를 위해 최종 제품을 최대한 늦게 조립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공장 노동자들을 마감 기한에 쫓기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관행은 공장의 폐쇄성을 강화해 여러 위법 행위가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만들었으며 공장 직원의 추가 근로도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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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직접적으로 폭스콘에 이 같은 행위를 하도록 지시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합법적인 노동환경에서 시행하기에는 너무 무리한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폭스콘으로 하여금 공장 노동자에게 비윤리적 행위를 하도록 유도한 것은 분명하다. 간접적으로 행한 비윤리적 행동인 것이다.

집단 자살 사건이 일어난 지 1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최근까지도 폭스콘과 관련된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애플 또한 마찬가지다. 인권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며 자신을 스스로 홍보하고 있지만 계속되는 폭스콘의 작업환경 논란에도 여전히 제품 생산 대부분을 폭스콘에 외주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되는 전기차 애플카 또한 폭스콘에 생산을 위탁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이에 더해 중국 신장 지역 외곽의 위구르족 강제 수용소에서 ‘노예 노동’으로 생산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법(Uyghur Forced Labor Prevention Act)’을 막기 위해 애플이 로비 업체를 고용했다는 사실이 미 의회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위구르족 강제 노동이 이뤄지는 공장에서 애플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법안은 미국 상하원을 거쳐 2021년 12월23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통과됐고, 2022년 6월에 발효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애플 홈페이지의 ‘협력업체에 대한 책임’에는 “People Come First(사람이 우선입니다)”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다. 여기에 더해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테슬라(Tesla)는 바이든의 서명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2021년 12월31일 중국 신장 위구르족 자치구 우루무치에 대리점을 열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음식 배달 시장 역시 간접적인 비윤리적 행위가 벌어지는 또 다른 예이다. 음식 배달 시장은 연간 20조 원 규모로 성장했으나 그만큼 배달 라이더의 사고도 급증해 이륜차 사망자의 절반을 배달 라이더가 차지하고 있다. 사고 급증의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라이더들의 낮은 안전 의식과 교통 법규 위반이다. 하지만 배달 중개 플랫폼 또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플랫폼의 정책이 배달 사고 급증을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간접적으로 이를 부추긴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플랫폼 시장의 과열 경쟁에 따라 그들은 ‘속도’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소비자에게 소구한다. ‘번쩍 배달’ ‘총알 배달’ 등 타 플랫폼 대비 빠른 속도를 강조하는 마케팅과 ‘늦은 배송 환불’ 같은 다양한 속도 관련 정책은 결과적으로 배달 라이더의 과속 문화를 조장하고, 이것이 사고의 증가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배달 중개 플랫폼과 라이더의 관계 또한 과속 문화를 조장한다. 라이더는 ‘생각대로’ ‘부릉’ 등 배달 대행업체에 속해 있지만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배달 중개 플랫폼에 지시를 받는 구조적 모순이 존재한다. 따라서 라이더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배달 중개 플랫폼은 속도를 강조하는 배차 및 수수료 시스템을 구축해 라이더가 과속하도록 유도한다. 배달 중개 플랫폼은 소비자에게 더 큰 편익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속도를 강조하는 다양한 정책을 만들었겠지만 그러한 정책은 오히려 배달 사고 급증의 간접적 원인이 되고 말았다. 배달 중개 플랫폼이 간접적으로 행한 비윤리적 행위이자 성숙한 시장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자기 일을 남에게 넘길 경우, 훌륭한 리더라면 그 일이 가져올 윤리적 사안에 대해서도 책임 의식을 가지고, 혹시라도 남의 손을 빌려 간접적으로 비윤리적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아울러 다른 사람이나 조직이 나를 위해 일하는 경우, 혹시 내가 비윤리적 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지는 않은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이자 조직이 지속가능하기 위한 필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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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도는 좋은 결과를 담보하는가


“우리가 저지르는 큰 실수 중 하나는 정책이나 프로그램을 결과가 아니라 그 의도로 판단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말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좋은 취지로 시행되는 정책들이 예상과는 다르게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일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정부가 2007년부터 시행한 입양 비용 및 입양 아동 양육 수단 지원 정책도 하나의 예이다. 더 많은 아이가 좋은 가정에서 양육될 수 있도록 유인책으로 시행한 보조금 정책이 의도한 것처럼 아이들을 보호하고 국내 입양을 늘렸을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로 입양된 아동 수는 최근 10년간 크게 감소했다. 2009년 국내 입양 아동 수는 1314명이었으나 2018년에는 378명으로 집계됐다.12 2007년 보조금 정책이 시행된 이후 국내 입양이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내일을 위한 신발(Tomorrow’s Shoes)’의 약자인 탐스슈즈(TOMS Shoes)는 창업자인 블레이크 마이코스키(Blake Mycoskie)가 아르헨티나 여행 중 현지 아이들이 맨발로 걸어 다니는 모습에 착안해 만든 브랜드이다. 신발 한 켤레를 사면 신발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도 한 켤레가 기부되는 ‘원포원(One for One)’ 정책을 통해 ‘착한 기업’의 상징이 됐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비가 기부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좋은 취지’에 열광했고, 탐스는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윤리적이라고 생각해 내린 의사결정이 원래의 취지와는 다른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우선, 신발이 태국, 세네갈 등 신발이 불필요하거나 자체적으로 충분히 생산 가능한 지역으로도 건너가게 됐다. 결과적으로 현지에서 생산되는 신발보다 탐스슈즈가 우위를 점하게 됐고, 이는 현지인들의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위협 요소가 됐다. 아울러 현물 기부는 외부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해당 지역의 자체적인 생산 노력과 발전을 저해한다.

특정한 시점에서 윤리적이라고 생각해 내린 의사결정이 다른 시점에서는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일은 우리 주변에 허다하다. 진정성을 갖고 큰 노력을 기울였지만 억울하게 ‘OO워싱’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어떤 의사결정이 윤리적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가져올 파급 효과까지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의도가 선하다고 좋은 결과가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다음 질문을 스스로에게 주기적으로 던져야 한다. 첫째, “내가 지금 하려는 판단이나 행동이 정녕 수혜 대상을 위한 것이 맞는가? 혹시 나의 도덕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닌가?” 둘째, “내가 이러한 판단이나 행동을 했을 때 수혜 대상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 결과가 내 의도와는 달리 부정적일 때 그것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려는 노력은 우리의 근시안적 의사결정의 빈도를 크게 줄여줄 것이다.

도덕적 인간이 오히려 나쁜 사회를 만든다

도덕적이라고 알려진 기업이나 개인들 역시 비윤리적 행위로부터 자유롭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로랑 베그(Laurent Bègue)는 “도덕성을 획득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일이 급격히 틀어질 수 있다. 가혹한 역설이지만 스스로 타의 모범이 될 만하다는 생각이 모범적일 수 없는 행동들을 낳는다”고 말했다.

‘도덕적 인간이 오히려 나쁜 사회를 만든다’라는 역설적 명제가 있다. 이러한 역설의 근거가 바로 ‘도덕 면허(moral licensing)’ 현상이다. 도덕 면허는 ‘나는 그래도 돼, 나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라는 표현으로 대변될 수 있다. 도덕 면허 현상은 ‘도덕 저축(moral credits)’ 현상과 ‘도덕 자격증(moral credentials)’ 현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나는 이미 충분히 도덕적이기 때문에 덜 도덕적인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하면서 부도덕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덜어버리는 ‘도덕 저축’ 현상, “나는 이미 누구보다 높은 도덕적 경지에 올라 있다”고 하며 자신을 ‘도덕’이라는 브랜드로 포장하는 ‘도덕 자격증’ 현상 등으로 인해 도덕성을 발판으로 높은 사회적 위치나 권력에 오른 사람들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오히려 불공정하고 부도덕한 사회를 의도치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도덕 면허를 취득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특히 말과 행동에 거리낌이 없다. 자신을 고승이나 종교 지도자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고승이나 종교 지도자의 일탈 행위에는 범부(凡夫)가 이해할 수 없는 큰 뜻이 숨어 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도덕 면허가 위험한 이유는 도덕 면허를 취득했다는 자기 최면적 착각이 무의식적으로 훅 치고 들어와 모순적 생각과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죄책감 없이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재를 증오하던 사람이 독재자가 되거나 공정, 정의를 외치던 사람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불공정과 진영 논리에 자신을 가둔다. 다음은 중미 국가인 니카라과에서 4연임, 20년 연속 집권 중인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과 그의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 부통령의 이야기다.

독재와 싸운 이력도 매력적이었다. 무리요는 미국을 등에 업고 46년간 권력을 이어온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정권의 독재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다 오르테가를 만나 결혼했다. 1979년 7월 검은색 베레모를 쓰고 어깨에 소총을 멘 채 좌익 무장 단체인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사령관들과 함께 있는 사진은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한때 혁명가였던 이들 부부는 2007년 재집권 이후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웠다. 무리요는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며 국가 중대사에 관여했고, 오르테가는 2014년 재임 횟수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켜 종신 집권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2016년 대선에서는 무리요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해 “새 왕조를 만들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무리요가 부통령이 된 뒤 니카라과의 민주주의는 더 위태해졌다. 정부와 군, 언론을 완전히 장악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에겐 관용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13

도덕 면허는 비도덕적 행위를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행위를 관찰하는 제3자에게도 적용된다.14 예를 들어, 제3자인 관찰자가 행위자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그의 나쁜 행동을 우호적으로 해석하거나, 혹은 반대로 그의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그 행동에 대해 동정심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우리 사회에서 범법자의 사회경제적 지위 혹은 범법자가 속한 사회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이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원들의 처벌 판단에 영향을 미쳐 객관적인 법적 판단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도덕 면허는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조직에도 해당한다. 포천지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사회적 무책임(CSiR, Corporate Social IrResponsibility) 사이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많은 사람의 기대와는 반대되는 결과가 나타났다.15 CSR에 많이 투자한 기업들이 오히려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선행이나 도덕적 행동을 한 개인이 도덕적 자만심이 커져 나중에 비도덕적 행위를 해도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 희석되듯이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투자가 도덕성에 대한 자기 이미지를 강하게 만들어 ‘지금까지 사회를 위해 이 정도 기여했으니 이 정도 비도덕적 행위는 괜찮겠지’ 하는 자기합리화, 자기정당화의 방편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회를 위해 기부도 많이 하고 착한 일도 많이 했기 때문에 ‘이 정도 나쁜 일이야 괜찮겠지’ 하는 보상 심리가 발동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에게 관대해지고, 오히려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행동을 죄책감 없이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실제로 비윤리적 행동을 줄일 목적으로 윤리 경영 시스템을 도입한 조직의 경우, 구성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들의 도덕적 책임이 이 시스템에 의해 면제된 것으로 착각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때 윤리성보다는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갖는다.16 17 18 윤리 경영 시스템의 도입 자체가 마치 윤리 경영 자격증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도덕적 판단 능력과 동기를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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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기업, 공공기관, 학교 등 많은 조직에서 윤리 규정, 윤리 교육, 규정 준수 프로그램, 내부감사제도 등 큰 노력을 기울여 구성원들의 윤리 의식을 고취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에도 불구하고 조직에서 관찰되는 비윤리적인 행위는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다. 왜 그럴까? 이는 스스로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우리의 눈을 가리는 인간의 여러 가지 인지 편향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직의 책임 있는 최고경영자의 업무는 일반적으로 과중하고 신속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생각을 동반하는 시스템 2 사고 체계보다는 자연 반사적이고 즉흥적인 시스템 1 사고 체계를 빈번히 활용한다.19 하지만 시스템 1 사고 체계는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결단력은 제공할지 몰라도 여러 가지 인지 편향을 일으킬 수 있고, 이러한 인지 편향으로 인해 비윤리적 판단이나 행동을 별생각 없이 일으키고 조장하기까지 해 조직의 제한된 윤리성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인지 편향을 고려하지 않는 현재의 주입식 윤리 경영 프로그램은 오히려 구성원들의 세뇌 교육에 대한 불신, 윤리성의 정치화, 윤리적 판단 능력의 쇠퇴 등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고, 비윤리적 행동을 막겠다는 원래 취지마저 퇴색시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고치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자’라는 식의 설교조 윤리 경영 프로그램보다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날 수 있는 비윤리적 판단이나 행동의 원인을 알려주고, 이해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의 비윤리적 행동을 스스로 교정할 수 있도록 하는 윤리 교육이 필요하다.

윤리 교육이 설교식에서 자기 교정 방식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제한된 윤리성을 조장하는 다양한 원인에 대한 학습과 이해가 우선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통해 자신의 판단이나 행동이 인지 편향의 제물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신속한 사고(思考)를 위해 불가피하게 시스템 1을 먼저 가동한 후에는 시스템 2를 이용해 시스템 1에 의한 인지 편향을 교정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감시나 제재, 구호 외침보다 의도를 달성하는 데 더 효과적인 예는 많이 있다. 다이어트를 위해 식사량을 줄이자는 구호보다는 밥그릇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다른 예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Schiphol) 공항에서 시작한 방법이지만 요즘 우리나라도 화장실의 남성용 변기 중앙에 파리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변기 앞에 붙여진 “자신 없으면 한 발 앞으로”라는 표어보다 훨씬 효과적인 자기 교정 방식이다. 이처럼 너징 방식은 무엇을 강요하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행동을 교정하게 하는 방법이다.

무심코 발생하는 조직의 비윤리적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감시나 제재 장치만으로는 조직의 윤리 의식을 개선하기 힘들다. 조직의 비윤리적 행위를 무의식적으로 초래할 수 있는 인간의 인지 편향과 잘못된 인센티브 시스템을 이해하고, 모든 의사결정이 가져올 수 있는 윤리적 함의를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를 살피지 않는다면 우리가 개인이나 조직 생활에서 없애고자 노력하는 비윤리적 행위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허락하거나 조장하기까지 할 수 있다.

의사결정을 내릴 때마다 다음 질문을 의식적으로라도 해보자. “과연 이 의사결정이 어떠한 윤리적 논란거리를 가져올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실천 노력이야말로 윤리적 의사결정을 우리 몸속에 체화시키는 첫 단계가 될 것이다.


민재형 서강대 경영대 교수 jaemin@sogang.ac.kr
필자는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의사결정학(Decision Sciences)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의사결정 전문가다. 1992년 서강대 교수로 부임한 이래 경영대학장과 경영전문대학원장, ㈔한국경영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좀 더 스마트한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자 전략적 의사결정, 과학적 경영, 비즈니스 애널리틱스(Business Analytics) 등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쉬운 언어를 통해 사회에 전파하는 데 힘쓰고 있다.
  • 민재형 | - (현)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
    - 영국 캠브리지대(The British Chevening Scholar) 객원 교수 역임
    - 미국 스탠퍼드대 객원 교수 역임
    jaemi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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